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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증언

이종우 국기원 부원장의 ‘태권도 과거’충격적 고백!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입력
2004-10-27 17:11:00
‘태권도와 나’에는 이부원장에 대한 최홍희 총재의 불편한 감정이 여과없이 드러나 있다. 심지어 이런 표현까지 나온다.

‘이종우는 태권도 기술은 없고, 음모와 아첨의 명수이며, 김종필 중앙정보부장과 접선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우이동 일류 요정에서 주흥이 어느 정도 오르자 김종필 곁에서 뻔질나게 귀엣말을 나누었다.’

―최총재가 이부원장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술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제일 강적이니까 그랬겠죠. 내가 그 자한테 국제태권도연맹까지 만들어주었는데, 어떻게 나를 그렇게 모략하는지…. 최홍희는 태권도를 개인 소유물처럼 여겼어요. 국제감각이라고는 전혀 없었거든. 그래서 맨날 돈 받고 단증이나 만들어주는 수준에 그친 거예요. 그 바람에 처음에는 최홍희를 따르던 사람들도 나중에 다 떨어져 나갔잖아요.”

―최총재는 자신이 3선개헌을 반대하니까 박정희 대통령과 불편해졌고, 태권도계에서 조직적으로 자신을 음해하는 세력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거짓말이에요. 그 놈은 여기서 금방 이렇게 얘기했다가 ‘아까 얘기하고 다르잖아’ 그러면 ‘아까는 농담이고 이젠 진담’이라고 둘러대는 아주 소문난 놈이에요. 박정희 밑에서 말레이시아 대사까지 해먹다가 공금유용으로 귀국조치 당한 거잖아요. 그러다가 청와대 경호실 출신인 김운용씨가 태권도계에 들어오니까 슬그머니 도망간 거고. 나는 그가 거짓말한 증거를 수도 없이 댈 수 있어요.”

최홍희 총재가 북한 군부대를 중심으로 태권도를 보급하면서 남북 태권도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왔다. 남한이 경기화와 건강증진에 역점을 두었다면, 북한은 실전용 무술로 발전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남북한의 장점을 조화시킬 경우 태권도의 경쟁력이 더 높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일부에서 제기된 남북한 태권도 통합론을 어떻게 보세요.

“나는 그걸 반대하는 사람이에요. 이북은 이북대로 세계연맹의 회원국으로 들어오면 되는 겁니다. 최홍희가 국제연맹을 이끌고 있지만, 그건 사조직이나 다름없어요. 우리가 사조직과 타협해서야 되겠습니까?”

―남북한 태권도의 장점을 통합할 필요는 없다고 보세요? 북한 태권도는 특히 실전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우리가 창조적으로 수용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저도 기술적으로 인정할 부분은 있다고 봐요. 하지만 실전에 강하다는 건 붙어봐야 아는 거니까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기 힘듭니다. 현대 스포츠는 어찌 됐든 경기화(스포츠화) 수준에 따라 발전하는 겁니다. 과거에는 개인별로 운동하거나 국가별로 자기네 문화를 유지해도 됐지만, 이제는 세계가 하나이기 때문에 경기화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어요.”

―우리 태권도를 좀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북한 태권도의 기술적인 부분을 받아들일 수는 있다고 보십니까.

“그냥 시범하는 것하고 실제로 겨루는 것은 달라요. 그래서 화면만 보고 북한 태권도의 기술수준을 평가하기가 힘든 거죠. 태권도에서는 어떤 사람이 발차기를 할 때 또는 주먹을 지를 때, 기술적인 문제보다도 눈의 발달이 중요합니다. 모든 신경계가 발달해야 되고, 감지기능이 빨라야 하거든요. 그런 것은 서로 겨뤄보기 전에는 아무도 몰라요.

한국 태권도는 경기화하면서 기본이 변질됐어요. 그래서 기본만 놓고 따지면 북쪽이 더 낫다는 주장이 나오는 겁니다. 그쪽은 경기화하지 않아서 덜 변질됐으니까요. 쉽게 얘기해서 때릴 때 힘을 빼야 하는데 요즘 태권도 하는 아이들을 보면 힘이 많이 들어가요. 이북 아이들도 힘이 들어가는 건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체중을 실어서 때리느냐 주먹으로만 때리느냐는 문제도 중요합니다. 때릴 때 체중을 실어야 강한 펀치가 나오거든요. 무게하고 속도가 있으면 힘이 생기는 게 물리의 법칙인데 선수들이 그걸 망각하고 있어요.

또 우리 선수들은 뻗정다리 발차기를 많이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안돼요. 무릎이 먼저 들려야 제대로 된 발차기가 나옵니다. 돌려차기를 할 때도 발만 도는 게 아니라 몸 전체가 돌아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하는 선수는 별로 없어요. 그러니까 스피드와 파워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 요즘 선수들이 경기하는 걸 보면 고칠 게 수두룩한데 습관이 돼서 교정하기가 아주 힘들어요.”

―얼마 전 김운용 회장이 최홍희 총재를 초청하겠다고 밝혔잖아요. 두 사람이 만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막연하게 정치적인 제스처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어요. 지금 만나서 뭘 하겠습니까. 지금도 부자간에 권력다툼이나 하고 있잖아요.”

광복 직후 한국 무술계엔 수많은 파벌이 존재했다. 그들이 저마다 도장을 열었는데, 상당수가 가라테를 가르쳤다고 한다. 이부원장은 이들을 통합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가장 적극적으로 제시했고, 엄운규 전부원장 고 이남석씨 등과 함께 실무작업을 맡았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태권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자세히 알고 있다.

―어떤 책을 보니까 광복이 되고 나서 40여 개 파벌이 난립했다고 나오던데, 이걸 하나로 묶어서 새롭게 태권도의 틀을 만든 거죠.

“40여 개까지는 안됩니다. 지도관 청도관 무덕관 송무관 창무관 오도관…. 거기에서 파생된 유파까지 합치면 9개가 주축이죠. 우선 협회 기준으로 9개관으로 정리했는데 관 파벌 때문에 힘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통합관을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그렇게 하면 이종우한테 다 먹힌다’고 해서, 그냥 을지로 6가에 9개 관이 함께 쓰는 총본관 사무실을 얻었죠. 그때 9개 관이 모두 책상을 가지고 들어와서 복닥거렸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가 김운용씨하고도 의논해서 그때까지 각 관에서 심사를 보고 협회에 신청하던 단증 제도를 완전히 바꾸었어요. 총본관을 폐지하고 단증 발급을 협회로 넘겨버린 거죠. 그러고 나니까 관장들은 맥을 못 추게 됐고 협회가 태권도의 기준이 된 거예요. 아직까지도 파벌의 뿌리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예전에 비하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태권도의 역사를 기술한 책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전통무예에서 태권도의 원류를 찾는 부류고, 다른 하나는 광복 이후에 만들어진 신종 무예로 보는 관점이다. 한국태권도계는 오랫동안 전자를 대변해왔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통무예와 태권도를 연결시킬 만한 구체적인 물증이 빠져 있다. 반면 후자는 최근 소장파 학자들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가라테 유입설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 위에서 가라테의 잔재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의 경기화된 태권도는 가라테와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품세 등에 아직까지 가라테적 요소가 남아 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먼저 과거의 관점으로 기술된 문헌을 살펴보자. 이종우 부원장이 지도위원으로 참여한 ‘국기 태권도 교본’(국기원, 2000)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시대적 환경이 무예를 중시한 관계로 무사단의 창설을 촉진하였으니, 그 대표적인 예가 고구려의 ‘선배(帛衣仙人)’와 신라의 화랑이었으며, 이들의 심신단련과 무예수련의 방법으로 태권도가 행하여졌다고 추찰된다.’

다음은 교육인적자원부 검정 중학교 체육1 교과서(교학사, 2001) 내용이다.

‘태권도는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우리나라의 전통무예다. 삼국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조상의 슬기와 얼이 담긴 우리의 전통무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무인들의 필수 무예로 성행하였으며, 시대에 따라 명칭도 다양하게 변하면서 발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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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