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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증언

이종우 국기원 부원장의 ‘태권도 과거’충격적 고백!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입력
2004-10-27 17:11:00
최씨는 1972년 캐나다로 망명했는데, 이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엇갈린다. 상당수 남측 태권도인들은 최씨가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공금유용 혐의를 받고 귀국조치를 당했으며, 김운용씨가 태권도계에 들어오자 위기를 느끼고 외국으로 도망쳤다고 말한다. 반면 최씨는 2001년 발간된 ‘태권도와 나’에서 “3선개헌에 반대하고 박정희 정권과 부딪히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술회했다.

캐나다로 간 최씨는 박정희 정권을 강하게 비판했다. 1980년대엔 북한을 수시로 드나들며 군부대를 중심으로 태권도 보급에 앞장섰다. 이러한 최씨의 ‘친북행보’ 때문에 남한에서는 최근까지도 최홍희라는 이름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로 여겨졌다. 최씨는 자신이 1966년 창설한 국제태권도연맹 총재로도 활동했지만, 1973년 김운용씨가 세계태권도연맹(WTF)을 출범시킨 이후 국제경쟁에서 조금씩 밀려났다. 남측의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면서 태권도를 둘러싼 남북한의 주도권 싸움은 사실상 막을 내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태권도’라는 명칭은 1955년 4월11일 최홍희 총재가 중심이 됐던 ‘명칭제정위원회’에서 결정됐습니다. 세계적인 권위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도 태권도의 창시자는 최홍희씨로 나와있고요. 이건 인정하시죠.

“최홍희가 독단적으로 ‘택견’을 한문으로 옮기면서 ‘태권(跆拳)’으로 했던 거죠. 태권은 지축 태(跆)와 주먹 권(拳)을 합한 뜻입니다.”

―최홍희씨가 쓴 ‘태권도와 나’를 보니까 당시 여러 명이 모여서 협의를 통해 만장일치로 ‘태권도’라고 정한 걸로 나오던데요.



“반대한 사람도 있었으니까 만장일치는 아니죠.”

―최홍희씨는 군복무 시절인 1949년부터 9년 동안 자신이 연구해서 현대적 태권도를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그건 평가할 가치가 없어요. YMCA에 창무관을 만들고 경동고등학교에서 김운용씨에게 가라테를 가르친 분이 윤병인씨인데, 그 양반이 일본에서 최홍희를 만나서 같이 하자고 그랬는데 최홍희가 안했어요. 그 뒤 최홍희가 부대에서 여러가지를 조합해 무술을 만들었는데, 그게 모두 일본 거예요. 가라테를 기본으로 만든 거죠. 가라테를 기본으로 하고 명칭만 태권이라고 했으니까, 아예 처음부터 가라테라고 인정한 우리가 더 순수하죠. 최홍희가 나중에 이박사(이승만 대통령)한테 ‘태권’ 휘호를 신청했는데 이박사가 안 써주고 그랬어요.”

―최홍희씨 책에는 이대통령이 시호를 써준 것으로 나와 있던데….

“거짓말이에요. 그건 최홍희가 쓴 겁니다. 글씨가 최홍희 글씨예요. 태권도라는 휘호는 나중에 김운용씨가 박정희 대통령한테 받았어요. 만약 최홍희가 대통령한테 그때 휘호를 받았다면 근거가 있어야 될 것 아니에요. 우리가 1970년대에 박정희 대통령한테 휘호를 받았다고 하니까 자기도 지지 않으려고 만들어낸 겁니다. 당시에는 최홍희가 휘호를 받았다는 소리를 한번도 꺼낸 적이 없어요. 만일 받았다면 왜 그때 공개하지 않았겠어요?”

―태권도 이전에는 태수도(跆手道)로 불렸습니다. 태수도라는 말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겁니까.

“내가 한남동 외무부장관 공관 위에 살 때 최홍희 집은 그 건너 이슬람교회 너머에 있었어요. 그래서 둘이 자주 만났죠. 5·16이 나고 얼마 안됐는데, 최홍희가 태권으로 쓰자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태권이 뭐냐? 가라테의 변형인데’라고 대꾸했어요. 그러다가 가라테(당수·공수) 하고 태권도를 합해서 태수도라는 말이 나왔죠. 우리끼리 펴면 수(手)고 쥐면 권(拳)이니까, 쥔 거나 편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도 했어요. 그때 최홍희가 6군단장이었는데 권총을 차고 막 출근하려다 말고 나하고 얘기한 기억이 나요.”

―부원장께서는 태수도를 태권도로 바꿀 때 왜 반대했습니까.

“한번 정했으면 됐지 왜 자꾸 바꾸느냐고 따졌죠. 그랬더니 최홍희가 체육회에 압력을 넣고 해서 사태가 아주 복잡했어요. 그때는 군사혁명 직후니까 군인들이 요직에 많았거든요. 나는 그때 ‘왜 체육회가 명칭까지 바꾸려고 드느냐’면서 싸우기도 했는데, 결국 태수도 간판을 내리고 태권도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태권도와 나’에는 태권도 통합논의 과정에서 이부원장께서 ‘태권도협회 간판으로 갈 수는 없다’고 맞섰고, 태권도와 태수도의 표결에서 태권도 표가 더 나오자 두 다리를 뻗고 울면서 ‘죽어도 가라테로 만들고야 말겠다’고 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미친 놈이에요. 내가 그것 때문에 울고 그랬겠어요? 오히려 그 자식이 술만 먹으면 울면서 ‘나는 두 사람(이부원장과 엄운규 전부원장)밖에 없어. 나는 믿을 사람이 없어’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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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