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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증언

이종우 국기원 부원장의 ‘태권도 과거’충격적 고백!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입력
2004-10-27 17:11:00
이종우 부원장은 1928년 서울 창신동에서 태어났다. 이부원장의 부친은 경기도 이천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왔는데, 천도교 대표로 독립운동을 했던 손병희 선생의 행랑채에 살았다고 한다. 1949년 이부원장은 경신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들어갔는데, 이듬해 6·25가 터지는 바람에 학업을 중단하고 무도계에 입문했다. 미술대를 지원한 것은 ‘전과’를 위한 수단이었지만, 전쟁을 겪으면서 인생의 진로를 바꾸었다고 한다.

―부원장께서 무예를 처음 접한 건 언제입니까.

“해방 직후죠. 사춘기의 꿈이라고 할까. 17세 무렵 막연하게 무림의 고수를 꿈꾸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소공동에 가면 18계를 가르치는 곳이 있다고 하잖아. 그래서 거기를 찾아갔죠. 그곳이 바로 일제시대 유도 도장이었는데, 그때는 조선연무관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유도부와 권법부를 만들었어요. 그때부터 권법부에서 가라테를 배운 거죠. 권법이 바로 일본 가라테거든요. 일본말로 부르면 국민감정도 있고 하니까 권법이라고 부른 겁니다.”

―‘장군의 아들’이나 ‘시라소니’ 같은 영화를 보면, 광복 직후의 주먹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 사람들도 가라테를 배웠나요.

“내가 알기로 깡패 중에 가라테를 제대로 배운 놈은 없어요. 그냥 떼거지로 몰려다니면서 몽둥이로 때리니까 강해 보였던 거지, 진짜 실력으로 붙었으면 김두환이고 시라소니고 형편없었을 걸. 운동으로 성공하지 못한 ‘쪼다’들이 주먹계에 들어간 경우는 간혹 있었고.”



―당시 가라테는 당수(唐手)로 불렸죠.

“당수(唐手)로 쓰는 사람도 있고 공수(空手)라고 쓰는 사람도 있었죠. 당수나 공수를 일본말로 옮기면 가라테가 되거든. 모두 같은 내용인데 도장별로 특색 있게 보이기 위해 권법이다 당수도다 공수도다 그렇게 불렀어요.”

―부원장께서는 조선연무관에서 가라테를 배우다가 지도관을 새로 여신 겁니까.

“초창기 조선연무관은 유도가 중심이고 한쪽 구석에 권법부가 있었어요. 그런데 조선연무관이 6·25 때 부역을 했습니다. 조선연무관을 관장하던 이병석씨는 민족주의자였거든요. 그래서 정치적으로 곤란하니까 권법부 사람들이 다른 장소를 구해서 떨어져 나간 거죠. 을지로 3가에 있던 한국체육관이 지도관 자리였어요.”

―무술단수로 부원장님은 몇 단까지 땄습니까.

“1년 넘어서 초단이 되고 2단이 되고 3단이 되고 그러면서 6·25가 났어요. 서울이 수복되고 4단 심사를 보는데 그때 내가 맹장수술을 받았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실기시험을 보았고, 나는 추천으로 4단을 땄죠. 나중에 협회를 만든 뒤에는 9단까지 올라갔고요. 처음엔 권법 1단이었는데, 나중엔 태권도 9단이 된 겁니다. 명칭이 그렇게 바뀌었으니까.”

태권도계에서 무술단수를 얘기할 때 양념처럼 등장하는 게 김운용 회장의 실제 태권도 실력이다. 태권도인들은 김회장을 ‘명예 10단’이라고 부르는 데 여기에는 이중적 의미가 담겨있다. 그가 태권도계에 기여한 부분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실제 태권도 실력에는 의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김회장이 태권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습니까.

“그냥 무도에 관심이 많았어요. 이 양반이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혼자서 독습을 많이 했거든요.”

―김회장의 태권도 실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 부분에 대해 태권도인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경동고등학교 체육교사로 있던 윤병인 선생이 조선연무관에 나왔다가 나중에 종로 YMCA 체육부에 권법부를 만들었는데, 김운용씨가 거기서 운동을 했어요. 김운용씨가 경동고등학교를 나왔잖아요. 저도 정확한 단수는 잘 모릅니다. 김운용씨도 그 얘기를 한 적이 없고요.”

―태권도인들은 김회장에게 ‘명예 10단’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내가 지도관에 있을 때 그 양반에게 6단을 선물한 적이 있어요. 당시에는 실력이 없어도 공로가 있으면 단을 주고 그랬어요. 단이라는 것이 꼭 실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연륜과 인격을 상징하던 시절이었죠.”

―저는 무술계를 잘 모르지만, 1단부터 차근차근 올라가는 것이 정상 아닌가요.

“지금은 그렇게 돼있지만 그때는 달랐어요. 인격적으로 훌륭하면 관장이 단증을 줄 수 있는 재량권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기준으로 그걸 따지는 게 이상한 거예요. 일반인들은 기술이 있어야 단을 준다고 생각하겠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또 단증과 실력이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요. 10년을 배우고도 실력이 형편없는 사람이 많거든요. 나는 유도 단증이 없지만, 유도 4단을 이긴 적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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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