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돈 50억원을 자신의 계좌로 받았다며 노 전 대통령 조카사위 연철호씨(36·노건평씨 사위)가 손을 들고 나섰다. 연씨의 변호인 정재성 변호사는 “연씨가 2007년 12월 박 회장에게 먼저 연락해서 해외 창투사를 설립하는 데 투자를 해달라고 부탁했고, 박 회장이 이를 받아들였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500만 달러는 베트남과 필리핀 등 국외 투자를 위해 정상적으로 투자받은 돈이며 실제 200만 달러 이상이 투자됐고 나머지는 아직도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혹을 해소하지는 못했다. 정상적 사업으로 보기에는 허점이 많았다. 연씨는 2007년 11월 새 직장을 구했다. 그런데 겨우 두 달 만에 조세 피난처로 유명한 버진아일랜드에 회사를 차렸다. 회사를 차린 지 한 달 만에 박 회장 돈 50억원을 투자받았다. 박 회장과 연씨는 투자 계약서조차 작성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한 친척은 “연철호가 나이가 몇이고, 뭘 하는 사람이냐? 투자를 결정하고 집행할 위치에 있지 않다”라고 말했다. 연씨의 변호인 정재성 변호사는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경력과 능력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박 회장이 검찰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돈을 주었다고 진술하고 있어 노 전 대통령은 더욱 곤혹스러운 처지이다. 박 회장은 변호사를 통해 “봉하마을 주변 개발 사업비로 쓰라고 줬다. 대통령을 위한 돈이었다”라고 말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박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50억원이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활동을 위한 후원금 명목이었다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후원금을 내는 것으로 생각해 대통령의 조카사위에게 투자했다고 진술했다”라고 말했다.
2007년 초부터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은 대통령 퇴임 후 설계도를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2007년 4월에는 노 전 대통령 고향인 경남 김해에 있는 인제대에 기념관 건립을 추진했다. 연세대에 만들어진 김대중 도서관이 모델이었다.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은 퇴임 이후 기념관에 집무실을 두고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학생 등의 반발로 기념관 건립이 무산됐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은 ‘노무현 재단’ 추진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노 전 대통령 최측근인 한 인사는 “대통령의 활동 무대를 만들어주기 위해 재단을 설립하려고 머리를 맞댔다. 그러나 이마저 수월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재단이라는 게 최소 100억원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돈 만들 능력이 없어서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았다. 정상문 총무비서관이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나섰고 청와대 내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배제되었다”라고 말했다.
노무현 재단은 청와대 안살림을 맡았던 정상문 당시 총무비서관의 일이 됐다. 정 전 비서관은 우선 대통령의 후원자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박연차 회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2007년 8월 신라호텔에서 정상문 비서관은 박연차 회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는 강금원 회장이 동석했다. 이에 대해 정 전 비서관은 대리인을 통해 “3자 회동은 노 대통령 퇴임 이후 도서관이나 환경사업 등을 해보면 어떨까라는 정도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자리였고 출연 방법에 대한 의견이 달라 무산됐다. 비서관 자격이 아니라 사적인 모임이었다”라고 해명했다.
정상문 전 비서관이 전화만 했을까
기금 모금에 어려움을 겪어 노무현 재단은 물 건너갔다. 2007년 9월 강금원 회장은 50억원을 들여, 농촌 관광 및 생태·문화 보존사업을 하는 회사 (주)봉화를 설립했다. 강 회장은 창신섬유 이사회 의결을 거쳐 50억원을 투자했다. 강 회장 혼자서 노 전 대통령 퇴임 후를 대비하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강 회장은 “대통령 퇴임 뒤를 위해 집사가 뭐 좀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됐다. 재단을 만든다고 했더니 사람들은 핑계를 대고 또 블랙 마켓도 아닌데 검은돈을 주려고 하고…. 그래서 다 치우고 그냥 나 혼자 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2008년 2월 박 회장의 홍콩 자금 500만 달러(당시 50여 억원)가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 계좌로 입금된다. 2007년 12월 박 회장에게 투자를 권유한 것은 정상문 전 비서관이었다. 연씨가 박 회장과 안면이 있지만 좀더 쉽게 투자받기 위해 정씨를 거쳤다는 것이다. 연씨 변호인 정재성 변호사는 “2008년 1월께 연씨가 ‘박 회장에게 투자를 부탁하고 싶다’며 정씨에게 도와달라고 했다”라고 밝혔다.
연씨가 박 회장과 막역한 장인 건평씨가 아닌 정 전 비서관에게 부탁했다는 대목이 50억원의 종착역이 노 전 대통령일 것이라는 의심을 키우고 있다.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이 50억원 투자 사실을 안 것은 퇴임 후 봉하마을에 내려온 작년 3월쯤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에는 박 회장이 자기 회사 이사로 있던 사람에게 투자금을 대줬고, 사업자금으로 투자한 것이라는데 거기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어떤 조처를 취할 수 있었겠느냐”라고 덧붙였다. 문 전 실장의 해명이 명쾌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또 정 전 비서관이 재단을 위해 다른 자금을 모아두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여전히 노 전 대통령이 처음부터 박 회장의 50억원 투자 과정을 알았을 가능성을 두고 논란이 인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 측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주장한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다. 하지만 지난 정권 때 박 회장이 실세 행세를 하고 다니자, 청와대와 친노 진영 일각에서는 박 회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무엇보다 노 전 대통령이 박 회장에 대해서 선을 그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지난 정권 ‘PK 대통령’은 노건평·박연차
박 회장의 투자 배경에는 연씨의 장인인 노건평씨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이 1988년 국회의원 선거에 나왔을때 건평씨가 선거자금이 필요하다며 박 회장에게 땅을 팔았다. 이때부터 박 회장은 건평씨와 친구가 됐고, 훗날 친구의 동생은 대통령이 됐다. 그러자 두 친구는 매우 돈독해졌다. 한 부산 지역 정보기관 관계자는 “지난 몇 년간 ‘부산·경남공화국’의 대통령은 노건평과 박연차였다”라고 말했다.
50억원의 주인에 대해 한 친노 인사는 “노 대통령이 박 회장에게 퇴임 후에 쓸 돈을 달라고 했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박 회장이 돈을 보내는 것을 건평씨가 몰랐을 가능성도 0%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건평씨가 돈의 전달 과정을 정확히 알았을 것이다. 50억원의 진짜 수혜자는 건평씨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한 수사 관계자는 “지난해 박연차 사건이 터졌을 때 연철호씨는 수상한 돈거래가 포착돼 건평씨의 비자금 관리인으로 의심받던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지난해 손에 쥔 박연차 리스트 70명에는 여야와 청와대, 그리고 권력기관 실력자들이 망라되어 있다. 여기에 홍콩 자금 685억여 원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박연차 폭탄은 폭발 초읽기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