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9.05.26 09:30
1985년 인텔은 D램 사업에서 손을 뗀다. 일본 전자업체의 총공세에 두 손을 든 것이다. 세계 반도체의 중심인 미국 실리콘밸리의 충격은 컸다. ‘제2의 진주만 습격’이었다. 인텔을 세운 로버트 노이스 당시 반도체산업협회 회장은 미국 무역부(USTR)에 일본 반도체 산업 정책의 불공정성을 조사해달라고 나섰다.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은 NEC, 히타치, 미쓰비시, 도시바 등을 반덤핑 혐의로 제소했다.
플라자 합의(엔화 대폭 절상)와 1986년 계속된 미국의 보복 관세에 일본은 무릎을 꿇고 ‘미·일 반도체 협정’에 서명했다. 일본 내 외산 반도체 점유 비중을 20%까지 올린다는 것을 골자로 한 미·일 반도체 협정은 1854년 페리 제독의 일본 개항과 유사한 ‘제2의 굴욕 개항’으로 불렸다. 한국과 대만 기업에는 기회였다. 2차, 3차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일본 기업들은 D램에 하나둘씩 손을 뗐고 일본 최대 D램 업체 엘피다(NEC·히타치 합작회사)는 2012년 끝내 파산했다. 삼성전자는 반복된 호황과 불황의 파고와 피 말리는 치킨 게임에서 살아남아 미·일 반도체 협정 30년만인 2017년 세계 반도체 시장 1위에 올랐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 분쟁이 확전을 거듭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이 지식재산권을 탈취하며 외국 기업에 온갖 불리한 조건을 붙이고 있다며 중국산 제품 최대 5500억 달러어치에 25%에 달하는 관세 폭탄 카드를 던졌다. 각종 봉쇄 조치도 이어졌다. 중국 통신 장비·스마트폰 업체인 화웨이는 타깃이었다. 화웨이는 스마트폰의 심장 역할을 하는 구글의 운영체제(OS)와 두뇌 역할을 하는 영국 ARM(일본 소프트뱅크 소유) 반도체 설계도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반도체 장비업체들의 중국 진출을 막아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崛起·우뚝 섬)를 저지했다.
지난 14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국제 콘퍼런스 아시아리더십컨퍼런스(ALC)에서 만난 미국 국가안보전문가 앤디 케이서는 "중국 통신장비는 국가 기밀을 빼내는 무기"라면서 "삼성 같은 서구 진영에서 통신 장비를 만들어 미국에 공급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했다. 삼성전자가 대(大) 분쟁의 반사이익을 볼 것인가. 기회는 준비한 자에게 온다는 지극히 당연한 금언에서 보면, 삼성전자가 기회를 잡을 가능성은 반반(半半) 정도다.
되돌아보자. ‘반도체가 뭐고?’라며 삼성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공부를 하기 시작한 때가 1978년이었다. 5년 뒤인 1983년 3월 ‘도쿄 선언’을 통해 삼성은 반도체 사업의 공식 진출을 선언했다. 그의 나이 73세였다. TV를 제대로 못 만드는 기업이 감히 반도체를 넘본다며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라는 회의론이 지배적이었다. 이 회장은 반도체사업본부장을 자처하고 연구원들은 합숙하다시피 개발에 매달렸다. 1987년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 누적적자 2000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도 3라인 공장 착공에 나섰다. 이 회장은 3라인 공장의 첫 삽 뜨는 것을 보고 3개월 후 눈을 감았다.
이듬해 PC시장 호황으로 D램 품귀현상이 빚어졌다. 인텔의 D램 사업 철수, 미·일 반도체 통상 마찰로 일본 기업의 투자 감소로 공급 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지 14년 만에, 도쿄 선언을 발표한 지 5년 만에 첫 흑자를 냈다. 첫 이익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누적적자를 제하고도 순이익이 1600억원에 달했다. 준비한 자가 써 내려간 드라마였다.
그렇다면, 삼성전자가 최근 5~10년동안 무엇을 했나. 황금같이 귀한 시간을 놓친 건 분명해 보인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져 승계 문제가 그룹의 최대 이슈로 등장했다. 삼성 그룹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매달렸고 이후 각종 풍파에 시달렸다.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의 공격을 받았고 이재용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2017년 2월 구속됐다. 삼성은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없앴다. 2018년 2월 이 부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등 공방은 여전한 상태다.
화웨이 봉쇄 조치에 수혜를 입을 삼성전자 네트워크 사업부는 4년 넘게 매각설에 시달렸다. 지난해 미·중 무역 전쟁이 본격화하고 난 뒤에서야 매각설을 일축하고 인력 확대 나섰다.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에 승부수를 던진 것은 최근이었다.
물론 삼성전자는 신사업을 위한 공격적인 인수·합병(M&A) 행보를 이어갔다. 2016년 80억달러(9조4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전장기업 하만(Harman)을 깜짝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2014년 삼성테크윈 등 4개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넘긴 것을 시작으로 삼성정밀화학 매각(롯데), 프린팅 사업 매각(HP), 삼성생명 건물 매각(부영) 등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업을 정리정돈했지만,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10년간 가장 눈에 띄는 성과라면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일찌감치 거점을 마련해둔 것 정도일 것이다. 삼성전자는 2008년부터 베트남에 공장을 짓기 시작해 지금까지 12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현지 고용 직원만 15만명에 달한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으로 탈(脫) 중국 바람이 거세고 국제 분업 체계와 무역 질서에 근본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섯 보는 앞선 행보였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의 운명은 고달팠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 게 한국전쟁(6.25전)이다. 하지만, 강대국들이 서로 견제하는 싸움에서 한국은 자신을 위협하지 않을 믿을만한 협력 파트너로 부상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충분히 활용할 기회다. 하지만, 기회의 신 '카이로스'의 뒷머리에는 머리카락이 없다. 지나가면 잡을 수 없고 그의 발에 날개가 달려 눈앞에서 금방 사라진다.
트럼프의 타깃이 제아무리 중국이라고 할지라도 전 세계 보호무역주의가 장기화하면 세계 시장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중국의 중간재 수요가 줄면 삼성전자의 메모리, 디스플레이 판매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조짐은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 감소했다. 10분기 만에 가장 적은 흑자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기회는 그냥 스쳐 지나간다.
플라자 합의(엔화 대폭 절상)와 1986년 계속된 미국의 보복 관세에 일본은 무릎을 꿇고 ‘미·일 반도체 협정’에 서명했다. 일본 내 외산 반도체 점유 비중을 20%까지 올린다는 것을 골자로 한 미·일 반도체 협정은 1854년 페리 제독의 일본 개항과 유사한 ‘제2의 굴욕 개항’으로 불렸다. 한국과 대만 기업에는 기회였다. 2차, 3차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일본 기업들은 D램에 하나둘씩 손을 뗐고 일본 최대 D램 업체 엘피다(NEC·히타치 합작회사)는 2012년 끝내 파산했다. 삼성전자는 반복된 호황과 불황의 파고와 피 말리는 치킨 게임에서 살아남아 미·일 반도체 협정 30년만인 2017년 세계 반도체 시장 1위에 올랐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미·중 무역 분쟁이 확전을 거듭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이 지식재산권을 탈취하며 외국 기업에 온갖 불리한 조건을 붙이고 있다며 중국산 제품 최대 5500억 달러어치에 25%에 달하는 관세 폭탄 카드를 던졌다. 각종 봉쇄 조치도 이어졌다. 중국 통신 장비·스마트폰 업체인 화웨이는 타깃이었다. 화웨이는 스마트폰의 심장 역할을 하는 구글의 운영체제(OS)와 두뇌 역할을 하는 영국 ARM(일본 소프트뱅크 소유) 반도체 설계도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반도체 장비업체들의 중국 진출을 막아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崛起·우뚝 섬)를 저지했다.
지난 14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국제 콘퍼런스 아시아리더십컨퍼런스(ALC)에서 만난 미국 국가안보전문가 앤디 케이서는 "중국 통신장비는 국가 기밀을 빼내는 무기"라면서 "삼성 같은 서구 진영에서 통신 장비를 만들어 미국에 공급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했다. 삼성전자가 대(大) 분쟁의 반사이익을 볼 것인가. 기회는 준비한 자에게 온다는 지극히 당연한 금언에서 보면, 삼성전자가 기회를 잡을 가능성은 반반(半半) 정도다.
되돌아보자. ‘반도체가 뭐고?’라며 삼성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공부를 하기 시작한 때가 1978년이었다. 5년 뒤인 1983년 3월 ‘도쿄 선언’을 통해 삼성은 반도체 사업의 공식 진출을 선언했다. 그의 나이 73세였다. TV를 제대로 못 만드는 기업이 감히 반도체를 넘본다며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라는 회의론이 지배적이었다. 이 회장은 반도체사업본부장을 자처하고 연구원들은 합숙하다시피 개발에 매달렸다. 1987년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 누적적자 2000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도 3라인 공장 착공에 나섰다. 이 회장은 3라인 공장의 첫 삽 뜨는 것을 보고 3개월 후 눈을 감았다.
이듬해 PC시장 호황으로 D램 품귀현상이 빚어졌다. 인텔의 D램 사업 철수, 미·일 반도체 통상 마찰로 일본 기업의 투자 감소로 공급 공백이 발생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지 14년 만에, 도쿄 선언을 발표한 지 5년 만에 첫 흑자를 냈다. 첫 이익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누적적자를 제하고도 순이익이 1600억원에 달했다. 준비한 자가 써 내려간 드라마였다.
그렇다면, 삼성전자가 최근 5~10년동안 무엇을 했나. 황금같이 귀한 시간을 놓친 건 분명해 보인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져 승계 문제가 그룹의 최대 이슈로 등장했다. 삼성 그룹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매달렸고 이후 각종 풍파에 시달렸다.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의 공격을 받았고 이재용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2017년 2월 구속됐다. 삼성은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없앴다. 2018년 2월 이 부회장은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 등 공방은 여전한 상태다.
화웨이 봉쇄 조치에 수혜를 입을 삼성전자 네트워크 사업부는 4년 넘게 매각설에 시달렸다. 지난해 미·중 무역 전쟁이 본격화하고 난 뒤에서야 매각설을 일축하고 인력 확대 나섰다.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에 승부수를 던진 것은 최근이었다.
물론 삼성전자는 신사업을 위한 공격적인 인수·합병(M&A) 행보를 이어갔다. 2016년 80억달러(9조4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전장기업 하만(Harman)을 깜짝 인수한 게 대표적이다. 2014년 삼성테크윈 등 4개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넘긴 것을 시작으로 삼성정밀화학 매각(롯데), 프린팅 사업 매각(HP), 삼성생명 건물 매각(부영) 등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업을 정리정돈했지만,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10년간 가장 눈에 띄는 성과라면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일찌감치 거점을 마련해둔 것 정도일 것이다. 삼성전자는 2008년부터 베트남에 공장을 짓기 시작해 지금까지 12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했다. 현지 고용 직원만 15만명에 달한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으로 탈(脫) 중국 바람이 거세고 국제 분업 체계와 무역 질서에 근본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다섯 보는 앞선 행보였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의 운명은 고달팠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진 게 한국전쟁(6.25전)이다. 하지만, 강대국들이 서로 견제하는 싸움에서 한국은 자신을 위협하지 않을 믿을만한 협력 파트너로 부상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충분히 활용할 기회다. 하지만, 기회의 신 '카이로스'의 뒷머리에는 머리카락이 없다. 지나가면 잡을 수 없고 그의 발에 날개가 달려 눈앞에서 금방 사라진다.
트럼프의 타깃이 제아무리 중국이라고 할지라도 전 세계 보호무역주의가 장기화하면 세계 시장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중국의 중간재 수요가 줄면 삼성전자의 메모리, 디스플레이 판매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조짐은 나타났다.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 감소했다. 10분기 만에 가장 적은 흑자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기회는 그냥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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