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천천히 좀 가자!" "오늘 반찬은 뭐야? 배고파 죽을 거 같아."

23일 낮 경기도 안양시 대안여중 복도. 4교시 수업이 끝난 뒤 급식시간이 되자 교복차림의 학생들이 서로 소리를 지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선머슴처럼 뛰어다니고, 끼리끼리 모여 재잘대던 여중생들이 갑자기 '동작 그만' 상태가 됐다. 선생님 한 분이 교실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일제히 두 손을 배 위에 붙인 뒤, 70도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외부인이 보기엔 어색해 보였지만, 이제 대안여중에선 일상이 된 광경이다. 대안여중 학생들이 공수(拱手·배에 두 손 얹고 깍듯이 인사해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예) 인사를 시작한 것은 1년 전부터. 2006년 9월 이 학교에 부임한 최명선(여·57) 교장이 낸 아이디어였다.

"뭐가 그렇게 바쁜지, 아이들은 선생님을 봐도 '휙' 하고 지나가기 일쑤더군요. '인사'는 인간관계의 첫걸음이에요. 인사를 주고받기 위해 동작을 멈추면, 교사·학생이 서로에게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23일 오후 경기도 안양 대안여자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수업이 끝난 뒤 선생님께 두 손을 모으고‘공수 인사’를 하고 있다.
23일 오후 경기도 안양 대안여자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수업이 끝난 뒤 선생님께 두 손을 모으고‘공수 인사’를 하고 있다.

공수 인사는 수업이 시작하고 끝날 때도 마찬가지다. 이 학교 3학년 6반 교실. 6교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교사가 들어오자 반장이 일어나 구호를 외쳤다.

"차려! 공수! 인사!"

그러자 40명의 학생들이 두 손을 배에 얹은 채 한목소리로 외쳤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수업시간 전후에 하는 공수 인사는 특히 수업 분위기를 잡는 데 효과적이라는 게 교사들의 설명이다. 문경미 교사는 "전에는 수업 종이 울려도 학생들이 복도를 돌아다니고 엎드려 자는 등 어수선했지만, 지금은 수업 분위기가 한결 정돈돼 가르칠 맛이 난다"고 했다.

학생들 반응도 좋다. 3학년인 오신영(여·15)양은 "예(禮)를 차리다 보니 '이제 수업 시작이구나' 싶고 선생님을 존경하는 마음도 생겨 수업 집중도가 확 올라간다"고 했다.

공수 인사가 처음부터 환영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3학년 구경림(15)양은 "목례도 생략하는 판에, 조선시대에나 통할 것 같은 느릿느릿한 인사를 하라고 해 너무 어색하고 민망했다"고 말했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그냥 하다 말겠지'라는 회의적인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 학기가 지나고 점차 공수 인사의 '선순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교사에게 공손하게 인사할수록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더 관심을 쏟았고, 이를 느낀 학생들은 교사에게 더 마음을 열었다. 교사·제자 사이가 눈에 띄게 가까워진 것이다.

올해 초 대안여중에 부임한 안미영(여·50) 교사는 "다른 학교에서는 인사는커녕 교사가 무슨 지적을 하면 삐딱하게 쳐다보기 일쑤였다"며 "이곳에서는 우리에게 설 자리가 있다는 느낌이 들어 수업에도 열의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공수 인사는 '왕따'도 없앴다. 최명선 교장은 "보통 내성적이고 순한 아이들이 따돌림을 받기 쉬운데, 학교 분위기가 워낙 온화하다 보니 '왕따 현상'이 발붙이지 못한다"고 했다. 이런 대안여중의 공수 효과는 학생·학부모들의 입을 타고 퍼졌고, 주변 학교에서 따돌림에 시달리다 전학을 오는 학생들도 생겼다고 했다.

작년에는 왕따를 당하다 거식증에 걸린 중3 학생이 전학을 와 거식증도 고치고 무사히 졸업했다.

공수인사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도 좋다. 작년 실시한 학교만족도 조사에서는 학부모의 90% 이상이 '만족한다'고 답했다. 학교로 학부모들이 전화를 걸어 "예전에는 애들이 집에 오면 인사도 안 하고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렸는데, 이젠 집에 와 인사를 하게 되면서 얘기도 자주 나누게 됐다"는 감사인사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최 교장은 "학교에서 인사를 잘하자는 것이 뭐가 대수냐 하겠지만, 우리 학교가 지난 1년 경험한 공수 효과는 학생들의 인성까지도 바꿔 놓을 수 있는 작지만 큰 시도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