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는 그 때 나이 열여섯살인데, 헐벗고 입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인가 원피스 한 벌하고 구두 한 켤레를 갖다줍디다. 그걸 주면서 가자고 그래가지고, 그걸 받아가지고 아주 그 때는 뭐 그런 줄도 모르고 좋다고 따라갔습니다. ”
“어머니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그냥 분순이를 따라 집을 나섰다. 집에서 입고 있던 검은 통치마에 단추 달린 긴 면적삼을 입고 게다를 끌고 있었다. 가서 보니 강가에서 보았던 일본 남자가 나와 있었다. 그는 마흔이 좀 안 되어 보였다. 국민복에 전투모를 쓰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옷보퉁이 하나를 건네주면서 그 속에 원피스와 가죽구두가 있다고 했다. 보퉁이를 살짝 들쳐 보니 과연 빨간 원피스와 가죽구두가 보였다. 그걸 받고 어린 마음에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만 다른 생각도 못하고 선뜻 따라나서게 되었다.“
[정정보도]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장이 최근 이용수 씨의 위안부 증언들을 1차 자료를 중심으로 다시 검토한 결과 과거 미디어워치의 이용수 검증 보도에서 일부 오류가 있었음을 알려왔습니다. 김 소장의 지적은 다음과 같으며, 미디어워치는 이 지적을 전적으로 수용하고 이에 정정하는 바입니다. (1) 이용수 씨의 위안부 관련 증언이 미디어워치의 지적처럼 1993년부터 최근까지 이십여 차례에 걸쳐 연도, 나이, 경위, 기간 등에 일관성이 없이 오락가락했던 것은 사실이다. 다만, 미디어워치가 연합뉴스 등의 관련 보도를 인용하여 증언 내용이 달라졌다고 지적한 '2007년 미국 의회 증언'과 '2018년 프랑스 의회 증언'은, 원 증언 내용을 확인해본 결과 기본적으로 같은 취지의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두 증언에는 공히 “강제연행 현장에 군인이 있었다”, “등에 칼이 찔려 끌려갔다”는 ‘1993년 최초 증언’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강제연행 증언이 담겨 있는데, 이는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내용은 아니고 실제로는 (2007년, 2018년이 되어서가 아니라) 이미 2000년을 전후로 하여서 등장한 내용으로 여겨진다. 이 씨의 ‘1993년 최초 증언’이 2000년대 들어서 국내외로 갑자기 과격한 강제연행 증언으로 바뀌고, 결국 2007년 미 의회에서까지 그렇게 바꾸어 증언한 경위를 추궁하는 것이 이용수 위안부 증언 변천 문제의 핵심이다. 이 씨가 ‘1993년 최초 증언’을 계속해서 부정하고 최초 증언집은 더 이상 팔면 안 된다고 최근 기자회견에서 강조했음도 유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2) 미디어워치가 한겨레를 보도 등을 인용해 이용수 씨가 2016년 12월, 박유하 교수 결심 공판에서 한 증언은 미디어워치의 소개와는 달리 공식적인 '법정증언'이 아니다. 이 씨가 당시 증언대에서 여러 이야기를 했었지만, 이 씨는 일단 당시에 증언선서를 한 바가 없었다. 법적으로는 단순히 재판 방청인의 의견진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박유하 교수의 관련 1심 기록을 직접 확인한 결과로도 이용수 씨가 법정증인으로 채택된 내역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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