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월성 원전 1호기 앞 바닷가에 ‘지진해일 대피 안내판’이 서 있다. 경주/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경주 월성원전 부지 지하수가 광범위하게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트리튬)로 오염된 사실이 한국수력원자력 자체 조사로 드러났다. 한수원은 지하 배관과 사용후핵연료저장조 등을 지하수에 함유된 삼중수소의 주요 유출원으로 보고 설비 교체와 보수 등의 대책을 추진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삼중수소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오염수에 대량 함유돼 논란을 빚고 있는 방사성 물질로, 인체에서 내부 피폭을 일으켜 유전자 변이를 초래한다고 알려져 있다. 원전에서 정하진 않은 경로로 방사성 물질을 유출하는 것은 원자력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이번에 유출이 확인된 삼중수소는 원전 부지 경계에 설치된 지하수 관측정에서도 고농도로 검출돼 원전 외부까지 확산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한수원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해당 관측정이 모두 원전 구역 안에 위치해 원자력법상 외부 유출이라 할 ‘환경 방출’로 볼 수 없다”며 ‘대국민 공개’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다. 유출 규모도 파악하지 않고 있다.
23일 <한겨레>가 입수한 한수원의 ‘월성원전 부지 내 지하수 삼중수소 관리 현황 및 조치 계획’ 보고서를 보면, 한수원은 지난해 4월 월성원전 3호기 터빈 건물 하부 지하수 배수로(터빈갤러리) 맨홀에 고인물에서 리터 당 71만3000Bq(베크렐)의 삼중수소를 검출했다. 해당 배수로는 방사성 물질 배출 경로가 아니다. 71만 베크렐은 원자력안전위가 정한 배출 가능 배수로에 대해 정한 관리기준(4만Bq/L)의 17.8배에 이르는 고농도다.
한수원이 지하수 감시 프로그램을 가동한 결과, 지난해 8월부터 보고서 작성 직전인 지난 5월까지 월성 3호기 사용후핵연료저장조(SFB) 하부 지하수에서 최고 농도 8610Bq/L의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같은 기간 2호기 사용후핵연료저장조 밑 지하수에서는 최고 2만6천Bq/L, 1호기 사용후핵연료저장조 아래 지하수에서는 최고 3만9700Bq/L의 삼중수소가 나왔다.
원전에서 계획된 배기구와 배수구를 통하지 않은 ‘비계획적 방출’은 농도와 무관하게 원자력법에 따른 운영기술지침 위반이다. 감시와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원전 주변 환경과 주민에 끼칠 영향을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월성원전은 삼중수소에 의한 지하수 오염 가능성을 이르면 2013년, 늦어도 2017년부터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수원 보고서를 보면 월성 3호기 근처에 설치된 지하수 관측정(SP-5)을 비롯한 일부 관측정에서는 2013년에도 최근과 비슷한 수준으로 삼중수소가 검출됐다. 당시 한수원의 중앙연구원 연구진은 국외 원전의 비계획적 방출에 따른 지하수 오염 사례를 조사해 대응 필요성을 제기했다. 2017년 초반부터는 지하수 오염 위험이 높은 구조물 인근 일부 관측정에서 농도가 현저히 높아졌다. 2호기 근처의 관측정(WS-2)에서는 한때 2만8200Bq/L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한수원은 지난해 5월에야 뒤늦게 ‘삼중수소 현안 특별팀’을 꾸려 본격 대응에 나섰다. 원안위 역시 아직 비계획적 방출에 대한 보고와 관리 기준을 마련하지 못해 늑장 대응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한수원은 보고서의 존재는 시인하면서도 “현재까지 비계획적인 유출이 확인된 바 없다”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수로 특성상 원전 부지 내 삼중수소 농도는 주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나, 현재까지 유출이 확인된 바 없다”라고 밝혔다.
한수원은 삼중수소에 의한 지하수 오염 차단 대책으로 지하 배관을 교체하고 사용후핵연료저장조, 냉각수에서 방사성 물질을 흡착해 제거하는 수지를 모아 놓은 폐수지저장탱크(SRT), 액체폐기물탱크(LWT) 등을 점검해 보수하는 대책을 추진해 왔다. 이런 대책은 이들 시설물을 삼중수소의 지하수 유출원으로 본다는 얘기다. 이 시설들은 지하에 설치된 수영장과 같은 형태로, 두께 1m가 넘는 콘크리트 수조 안쪽에 방수 처리를 한 구조다. 금속재로 설치된 다른 원전 시설보다 노후에 따른 손상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삼중수소가 검출된 월성원전 부지 내 주요 지하수 관측망 위치. 구글어스에 표시
한수원 보고서를 검토한 전문가들은 삼중수소가 시설물의 손상 부분으로 새 나오는 것뿐 아니라, 시설물에 침투해 스며 나올 가능성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삼중수소는 세슘이나 테크니슘 등과 같은 감마핵종과 달리 크기가 특히 작아 두꺼운 철판에서도 철 원자 틈으로 스며 들어 통과하기 때문이다. 실제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연료로 이용하는 핵융합 연구에서는 이런 과정을 통한 반응로 금속의 오염을 막는 것이 주요 과제의 하나가 되고 있다.
한 원전 전문가는 익명을 전제로 “만약 균열을 통해 새 나오는 것이라면 크기가 큰 감마핵종도 검출돼야 한다”며 “모든 사용후핵연료저장조 하부 지하수와 20여개가 넘는 관측정에서 삼중수소만 검출되고 있는 사실로 볼 때 침투에 의한 유출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대로 삼중수소가 침투를 통해 스며 나오고 있다면 문제 해결은 쉽지 않다. 또 다른 원전 전문가는 “오랜 기간 삼중수소로 포화된 노후 원전의 구조물을 그대로 두고 삼중수소 방출을 근본적으로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저장조 지하를 파서 해체하는 수준의 조사를 통해 문제가 확인되면 저장조 내부 방수용 에폭시 도막을 스테인리스 철판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용도 문제지만 원전을 운영하는 상태에서는 적용하기 쉽지 않은 대책이다.
삼중수소는 한수원이 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후 1·2호기 원전부지 북서쪽 경계 지역에 설치한 지하수 관측정 5곳에서 모두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제한치(740Bq/L)를 넘어 최대 1320Bq/L까지 검출됐다. 1호기 사용후핵연료저장조에서 북쪽으로 450m가량 떨어진 부지 경계 관측정(SP-11)에서도 최고 924Bq/L까지 나왔다. 경북대 방사선과학연구소가 지난해 환경방사능 조사 과정에서 원전 인근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서 측정한 지하수 중 최고 농도 8.81Bq/L의 100배가 넘는 고농도다.
원전 경계 지역 관측정의 고농도 삼중수소 검출 결과를 접한 지역 탈핵운동 단체들은 지하수의 이동성을 감안할 때 부지 경계 밖으로도 삼중수소 오염이 확산됐을 것이 분명하다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상홍 탈핵경주시민공동행동 집행위원장은 “원전 밖으로 확산됐는지는 삼중수소가 검출된 경계 지역 외부에 지하수 관측정을 설치해 조사하면 간단히 확인할 수 있는데도 한수원과 원안위가 이런 노력도 없이 환경(외부)으로 방출되지 않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조속히 환경 방출 여부를 확인해 오염 방제 등의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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