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중국에 비하면 한국에는 문명이랄 것도 없는 수준이긴 했지만, 서양과 비교해보면 중국문명은 그야말로 저질인게 확연히 드러난다.

중국인들 스스로가 조셉 니덤의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중국에 과학적 전통은 없는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감영(甘英)이 로마제국 본토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바빌로니아까지만 갔던 것을 가지고 중국이 근대과학을 꽃피울 기회를 잃었다며 안타까워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감영의 나약함을 비판했고.

이는 곧 중국인 스스로가 중국문명에는 과학적 씨앗이 없다고 여겼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니덤이 중국의 과학이랍시고 기술을 재조명해주니까 그제서야 자신감을 가지고 마치 서양의 과학문명에 필적했던냥 착각을 하는 것이고.

그런데 정작 니덤은 중국의 과학이라는 것에 대하여 경험적이고 원시적인 이론이라 평가했다. 바퀴를 만드는데 공학적 이론은 필요없다며 이에 비유하기도 했고. 즉 중국의 기술을 재조명하여 이를 과학에 포함시켰을 뿐, 구체적으론 과학이 아닌 기술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성격을 비이론적이고 경험적인, 실용성에만 맞춰진 산물로 분류하고 있고.

이는 니덤이 직접 명시한 것이다. 즉 니덤은 중국의 문명에서 고대 그리스 과학에 필적할만한 과학문명은 없다고 단언한 것이다. 단지 서양보다 앞섰던 기술들을 소개하고 있을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과학문명을 서양과 대등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니덤이 도교를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과 유사한 부류로 오판했기 때문이다. 도교의 道가 고대 그리스의 진리에 해당하며 도교도들은 이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유교의 세속성과는 담을 쌓았고 따라서 이 도교가 바로 중국판 그리스 철학이라는 것이 니덤의 요지다. 다만 도교가 유교에게 밀렸기에 중국에선 과학의 씨가 말랐다는 것이고.

하지만 도교는 결코 그리스의 자연철학이 될 수 없다. 애초에 도교는 논리에 적대적인 철학이었기에 과학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교는 모순을 옹호하고 조화와 타협을 중시했다. 유교나 불교처럼. 가벼움은 무거움의 근원이고 정적인 것은 동적인 것의 근원이다(重爲輕根 靜爲躁君) 같은 도덕경의 내용 등이 대표적이지.

또 사물의 분석을 못하고 전체의 윤곽만 파악하는, 즉 중화문명의 보편적인 성향을 보였다. 그래서 범주화라는 카테고리화를 배격했다. 즉 추상화를 배격했다는 얘기다. 이 말은 사물의 본질에 대한 탐구 및 추출을 배격했다는 말이다. 그리스철학이 귀납 후 같은 범주의 사물에 대한 연역에 집착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성향이지.

더군다나 과학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물질적 사고, 분석적 사고도 없다. 오로지 성향, 흐름에 따른 연관짓기뿐이다. 4원소설이 만물은 4원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명백한 물질론적 이론임에 비해 오행설은 만물의 성질과 흐름을 말할 뿐 과학과는 관계가 없는 이론이다. 가령 木에는 봄과 바람, 초록, 동쪽 등이 같은 부류에 속하는데 이는 봄이 오면 나무가 푸르러지고 동풍이 분다는 지극히 상호관계에 따른 도식이다. 즉 과학과는 상관이 없는 이론인 것이다.

이처럼 도교는 분석과 범주, 집착 등을 배격했고 자연계와 인간계를 구별하지도 못했다. 자연에 인간이 뒤섞여 어우러지는 것을 자연계로 간주했고 그 결과 자연계를 샤머니즘적 성격으로 색칠했다. 엄격히 분리한 고대 그리스 과학과는 천양지차인 것이다. 그저 자연을 예찬했을 뿐 과학적 사고방식과는 상극에 있던 사상인데 니덤은 이를 간과한 것이고.

사실 니덤은 굉장한 중국예찬론자다. 중국의 문명을 찬양한 사람이지. 그래서 서구사학계에선 지나치게 모든 기술의 기원을 중국에서 잡는다고 비판받기도 한다.(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무시당했다. 니덤이 제시한 것들은 과학이 아닌 기술이었기 때문에)

그런 니덤조차 중국의 과학문명에 대해선 경험적이고 비이론적이며 기술일 뿐이라고 명시했다. 일반 동아시아 대중은 과학과 기술을 분간하지 못하고 또 베이컨의 3대 발명품 같은 것이나 줏어듣고서 중국에 과학이라는게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고 자빠졌지만 말이지.

이런 저질스러운 문명을 과대평가하고 또 이를 바탕으로 중국이 세계 문명의 패권국이 될 것처럼 착각하는 건 때려쳐야 된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의 지식인은 현실에 쓸모있는 것만 밝힌다는 악평을 듣는 실정이니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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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단 '도교는 모순을 옹호하고 조화와 타협을 중시했다. 유교나 불교처럼. 가벼움은 무거움의 근원이고 정적인 것은 동적인 것의 근원이다(重爲輕根 靜爲躁君) 같은 도덕경의 내용 등이 대표적이지.', '전체의 윤곽만 파악하는, 즉 중화문명의 보편적인 성향을 보였다. 그래서 범주화라는 카테고리화를 배격했다. 즉 추상화를 배격했다는 얘기다. 이 말은 사물의 본질에 대한 탐구 및 추출을 배격했다는 말이다. 그리스철학이 귀납 후 같은 범주의 사물에 대한 연역에 집착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성향이지. ' 이런 말씀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공감을 합니다. 하지만 현대 물리학이 모순적인 경향을 띄고 만물이론을 추구하며, 학문간의 분화를 없애고 통섭이 일어나고 있는 추세 등을 볼때 꼭 잘못된 거라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과거 중국의 과학 문명이 저급했다는 것과 미래에 중국이 세계 패권국이 되는 것은 같은 연장선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마치 중세시대에 게르만 민족들을 보고 옛날 게르만족들은 문명자체가 없는 미개한 민족이였기 때문에 미래에도 그럴 거라고 오판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리고 현재 중국의 지식인들이 현실에 쓸모있는 것만 밝힌다는 악평은 금시초문이군요. 어디서 그런 평가를 하는지요? 현재 중국의 학계를 볼때 한국 보다는 훨씬 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현재 중국이 미국에 이어 논문 발표량 2위지만 논문의 질은 낮다며 위로했지만 최근에 중국은 논문의 질마저 한국을 추월했습니다. 절대 만만히 볼 수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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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뭘 배웠다고 이런 소릴 막하지? 짱께들이 암만 미워도 그렇지. 애초에 전제부터 웃긴다. 서양 사람들 철학이 어쩌고저쩌고 하던 시절의 경제력 비교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나 아나? 이런 소리하는 놈들이 보고싶은 거만 보는 내부의 적이다. 지금 중국의 철학에 대해 우리보다 영미권 학자가 더 많이 아는 판에 이건 뭔 소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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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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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까지 포터블 버전 f.lux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버전업이 멋대로 되더니 설치 버전으로 바뀌면서 위치정보까지 요구하는 바람에 그냥 지워버리고 다른 프로그램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다른 프로그램 찾기도 쉽지 않아서 여기에 정리해두려고 한다. 소스는 아래 사이트이다.

https://www.geckoandfly.com/21437/blue-light-filter/

위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IRIS, SunsetScreen, f.lux, redshift, PC SunScreen, G.lux가 추천되어 있다. 그런데 IRIS의 경우 포터블로 검색하면 엉뚱한 것만 잔뜩 나와서 걍 패스했고(뭐 다른 검색어를 추가하면 나올 수도 있지만 귀찮음),

두번째인 SunsetScreen의 경우 포터블로 검색하니 나와서 다운 받아 쓰고 있다.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s://www.portablefreeware.com/?id=2696

바이러스, 스파이웨어 검사 결과도 깨끗하니 안심하고 써도 될 듯 하다. 설정을 통해 바로 색온도 전환도 가능한데, 이는 f.lux가 가지지 못한 장점이다. f.lux는 기다리거나 직접 마우스로 클릭해줘야 해서 귀찮았다.

나머지 프로그램은 써본 적 없으나 나중에 필요시 써볼 생각이다.


덧붙임: 윈도우 10 사용자는 위 프로그램들이 필요 없다. 윈도 자체에서 지원한다. 검색하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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