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동명성왕
일명 주몽으로 널리 알려진 고구려의 시조
백제의 시조도 주몽의 아들인걸 감안하면 고대 한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중 한명이라 할 수 있다
성은 해씨에서 고씨로 고쳤다 하나, 아들인 유리명왕 대부터는 다시 해(解)씨로 나오기 때문에
고구려의 진짜 국성은 뭐였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든다. 왜냐면 동명성왕은 부여왕자출신이고 부여의 국성이 해씨기 때문
일단 지금까지 유력한 설은 6대왕인 태조왕 때부터 고씨를 차용하게 되면서 건국 왕의 성을 조작했을 것이라고 한다
혹은 해씨를 쓴 게 맞으나 원래는 방계였던 태조왕계가 고씨라는 성을 쓰기 시작하면서
동명성왕계에 대한 신성화 과정에서 동명왕이 고씨임을 유난히 강조했다는 의견이 있다
이러면 유리명왕, 대무신왕 등도 자연히 고씨가 되기 때문에 해씨를 성으로 썼던 역사가 묻힌다
당연히 해씨의 해는 현대 한국어 해(태양)와 동일어로 보고 있다 (解는 그냥 음차표기일뿐이고)

2. 태조왕
나이가 146세에 이르는 미친인물인데 태조왕이 중요한 이유는 이름에서 보다싶이
이건 건국한 군주한테나 붙히는 묘호인데 이게 시호라는건
당대 고구려인들은 태조왕을 실질적인 고구려를 개국한 왕으로 보았단 의미가 된다
태조라는 시호를 받은 이유도 위에서 말했듯이 고씨 고구려의 실질적인 시조가 되기 때문
물론 이건 다 설일 뿐이고 정확한 이유는 신집과 유기의 소실로 알 수가 없다
이렇듯 고대 삼국시대는 우리가 지금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우고 있는건지... 의문이 들정도로 미스테리가 많은 시대다
업적으로는 단순히 오래산것 외엔 한게 없는 왕이 아니라
대무신왕이 겨우 키워놓은거 말아먹은 민중왕과 모본왕때 크게 떨어졌던 왕권을 회복시키고
동옥저 등을 정벌해 고구려의 영토를 창해, 살수까지 넓히는 등 활약을 해낸 명군이기도 하다

3. 소수림왕
이 양반 없었으면 광개토대왕-장수왕-문자명왕으로 이어지는 고구려의 전성기는 나올수가 없었다
소수림왕의 내치로 고구려가 정치적으로 안정되자 외국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왔는데
우문부왕 일두귀, 북연 왕 풍홍, 사마 동수, 유주사 진 등 정치적 거물급 인사들도 줄줄이 망명 왔다
하지만 이들 모두를 고구려의 법과 관습으로만 통치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모든 백성들과 소수민족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보편적 율령 체계를 만들어 반포하고
사상을 통일하기 위해 국교를 정했는데 이때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불교가 국교로 공인된다 (한마디로 불심으로 대동단결)
그리고 중국의 정치 거물들은 낙랑군 지역(평안도)로 보내 그곳에서 나름 한자리씩 챙겨줬다
그래서 현재 평양 주변 일대에는 중국식 벽돌무덤들이 발견 되는데
이들이 바로 소수림왕대에 넘어온 중국 이민자들 무덤이다

소수림왕의 포용정책이 성공적이라는걸 보여주는 사례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발해의 건국이다.
고구려 계승을 내세우며 발해를 건국할때도 고구려인 못지않게 앞장섰던게 소수민족 말갈족이였다
이 말갈족들도 몇백년간 고구려에 더불살이하면서 고구려인으로써의 정체성을 갖게 돼 300년뒤엔 고구려 계승을 내세운 발해건국에 앞장 선것이다
그에비해 신라의 삼국통일은 유민의식이 그대로 존재해 200년 후에 다시 고구려와 백제의 국명을 내세워 쪼개지게 된다

잠깐 삼천포로 빠지자면 고려도 삼국간의 유민의식 통합엔 실패했고 삼국간의 유민의식이 소멸하고
하나의 나라,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상이 싹 튼건 몽골 침입기때다
백성들 갈려나가고 나라 좆망하게 생겼으니 자존심 챙길 여유가 없어진거
6.25 전쟁으로 신분제의 잔제가 모두 타파 된것과 똑같다
이때 "삼국의 조상은 하나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니 힘을 합쳐 적을 무찔러야 한다"를
내세우기 위해 삼국간에 통일 된 시조가 필요 했는데 이때 등장한 인물이 단군이다 (단군이 사서에 처음 등장한것도 이때)
그러니 이런 사회적 배경이 없었다면 우리는 부모 없는 고아새끼 였을 것이다
근데 저렇게 되면 마치 단군이 선전용으로 허구의 인물로 갑툭튀하는게 되는거라 논란이 생기게 된다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의 고대 역사서들이 싸그리 사라져서 그렇다
정말로 고구려,백제,신라가 편찬한 사서에는 단군이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중요한데
땡중 일연은 대체 무슨 사서를 참조해 단군을 시조라고 치켜세운건지 알길도 없다
한국 고대사 기록이 얼마나 처참하냐면 삼국의 성립부터 후삼국의 멸망까지 다룬 1000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정사 삼국사기가 꼴랑 50권 분량이다 ㅠㅠ 반면 똑같은 기간 중국의 정사들은 다 합치면 1500권이다
인구수와 영토크기 감안해도 30분의 1이라는 미친 차이가 난다;
그마저 백제는 6권으로 김유신 열전이 3권 문무왕이 2권이라 신라인물 2명이 백제 600년역사랑 비슷한 눈물없인 볼 수 없는 분량이 나온다 ㅠㅠ
아무튼 그렇게 고려중후기때 고조선과 단군이 부각되면서 시조로 자리매김하니
실제로 어시스트 폭도전은 삼국의 시조인 조선 계승을 내세우며 고려멸망과 조선 건국을 정당화 했다
이리되면 중국처럼 전왕조를 부수고 새왕조를 개창하는게 아닌 신라와 고려의 삼국통일과도 일맥상 통하게 되기 때문
까마득한 고대국가 조선이라는 국호가 1400년만에 다시 등장한것도 이런 이유 때문

4. 광개토대왕
우리나라 역대 부동산 재벌 2위이신 분이다 (1위는 발해선왕)
하지만 1위는 상속이고 이분은 자수성가라 차이가 좀 있다
아쉽게도 그의 탁월한 부동산 거래 방법은 소실 됐다 (이세적 씹쌔끼야)
다만 거래내역은 광개토대왕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 최근에 밝혀진 사실로는 충주 고구려비가 장수왕이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릴려고 세웠다는게 정설이였는데
사실 이것도 광개토대왕이 직접 세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생몰년도는 16세의 급식때 즉위해 38세라는 젊은나이에 떠났다
특히 후연은 모용황 사당이 있는 연군까지 조졌는데 현대로 비유하자면
국군이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가 있는 도쿄도 치요다구에 폭격을 한것과 똑같다
물론 정복왕 굇수인 것은 맞지만, 고려나 조선이나 북방 이민족에게 억눌러 살고
주로 전쟁도 방어전이라 이렇다할 확장이란 개념이 없던 시대가 천년간 이어지니 (꺽해야 국경 확장정도)
민족주의자들에게 업적에 비해 좀 과장된 정복왕으로 시체팔이당하는 불쌍한(?) 임금이다
뭐래드라? 동방의 알렉산더 대왕? ㅋㅋ
어느정도냐면 조선시대땐 이 양반은 그냥 평범한 고구려왕 중 한명으로 취급 받았다
근데 현재의 위상은 세종대왕이 내치로 유명하다면 광개토대왕은 외치 업적으로
한국사에서 대왕하면 떠오르는 투톱이 됐다

5. 장수왕
고구려의 황금기의 절정을 찍은 인물
장수왕은 대강 광개토대왕의 스탯과 소수림왕의 스탯을 반반 쓰까놓았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고구려의 국명을 고려로 정식으로 통일한 왕이기도하다
시호인 장수는 진짜 말그대로 오래 살아서 그렇게 붙여졌다
어느정도냐면 아들이 먼저 죽어 손자(문자명왕)가 왕위를 계승한건 물론이고
5세기 100년이란 기간동안 고구려에 왕은 애비랑 장수왕 둘 뿐이였다
그리고 정복업적으로는 애비 재산을 좀 상속받아 저평가 당하는 느낌이 있긴한데
애비가 미처 못 이룬 고구려의 원수 후연의 화룡성을 불태우고
북연 황제 풍홍을 죽여 복수했다 (중국 황제를 유일하게 죽여 본 한국인도 장수왕이다)
또한 장수왕이 갈아치운 군주만 최소 2명에서 최대 4명이나 된다

그리고 장수왕하면 남진정책이 대표적인 업적인데
아무리 빨리 잡아도 무려 재위 55년(!!)때부터로 처음부터 남진정책을 시작한건 아니였다.
근데 워낙 임팩트가 크다보니 왕이 되자마자 신라와 백제를 쥐어팬것으로 착각한다
본격적인 남진은 475년때로 장수왕은 백제를 전격적으로 침공해 수도 위례성을 함략하여
개로왕을 비롯해 여러 왕족과 귀족들을 죽여 고국원왕의 원수를 갚았다
이때 비로소 우리가 교과서에서 흔히 보는 고구려의 남방 강역의 확장이 이루어졌다.
이 때 직접 출병한 장수왕의 나이는 무려 82세... ㄹㅇ 한국사 최고의 노익장이라 할 수 있다
근데 이러고도 16년을 더 살았다

6. 평원왕
말그대로 고구려 후기 중흥의 대명사
특별히 사서에 어질다라고 나와있을 정도로 명군
내치를 보면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하기 위해 스스로가 먹는 음식을 줄이고 농상을 장려했다
또한 선대 왕부터 축성해온 장안성의 축성을 일시 중단하는 등 민심 수습을 위해 노력했다
외치는 서쪽 북주의 침입을 배산의 들판에서 격퇴했는데 이 때 활약한 사람이 바보온달
평원왕 재위 말년에 이미 수문제의 위협적인 국서가 왔고
이로 말미암아 뒤의 영양왕 대에 여수전쟁이 일어나는데
이 양반의 중흥을 위한 노력이 없었다면 살수대첩 같은 대대적인 싸움은 시도조차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7. 영양왕
여수전쟁을 승리로 이끈 명군
이 양반 업적은 말그대로 여수전쟁 하나로 요약 할 수 있다
통일 중국 왕조를 멸망 시키는 1등 공신으로 물론 직접적으로 처들어가 때려부순건 아니고
당대 중국에서 동원할 수 잇는 인력 물자 다 끌고왔다 다 말아먹으며 그대로 하늘나라로 보내버렸다
이런거보면 중국역대 왕조는 담당 일진이 하나씩 존재한걸 알 수 있다
(한나라-흉노, 수나라-한국, 당나라-티벳, 송나라-몽골, 명나라-만주, 청나라-구미열강, 중화민국-일제, 현재-미국)
특히 여수전쟁 규모가 어느정도냐면 현재에도 여수전쟁보다 규모가 큰 1:1 단일전쟁은 없으며
여수전쟁을 능가하는 전쟁은 1차 세계대전으로 말그대로 근대시대에 와서 수십개국이 참전하면서 갱신됐다

여수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누구겠냐 당연히 을지문덕이다
기록은 밑에 이유 때문에 딱히 많지 않지만 살수대첩이라는 역대급 잭팟을 터트려서 유명해졌다
이런 구국영웅의 일생에 대한 자료가 없는 것이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그리고 수공으로 쓸어버렸다고 하는데 한국사에서 수공으로 적을 무찌른 사람은 강감찬이지
이양반은 강을 건너던 수나라 군대를 친거였던것 뿐 살수대첩은 평지에서 싸운 회전이였다
다만 배틀필드 중에 강이 껴있던것 뿐
근데 와전되서 무슨 댐까지 터뜨렸다는둥 별별 개소리가 다 나온다 상식적으로 평지에 댐이 어딨노?

전개과정을 보면 고구려로 처들어온 수나라 군대 30만은 고구려의 청야 전술 때문에 식량 고갈 상태였다
이때 을장군은 거짓으로 항복하는 척하면서 수나라 진영에 직접 가서 진영을 싹 보고 튀었다
수나라 장군들은 수양제한테 을지문덕이 오면 잡으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는데
위무사인 유사룡이 "사내대장부가 양심이 있지 잡지마라" 하며 말려서 가게 냅뒀다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까 황제가 잡으랬는데 웬 문과놈이 잡지 말랬다고 안 잡아??
결국 뒤늦게 잡을려고 추격대를 보냈는데 을장군은 빛의 속도로 압록강을 건너 대비를 끝낸 상태였다
이후 압록강을 넘어 을장군과 붙었는데 싸울 때마다 고구려군을 이기는 것이 아닌가?

안그래도 식량은 고갈 됐는데 깐족 거리며 괴롭히는 고구려군 때문에 피로감은 풀충전 됐고
이때 서신 하나가 수나라 군으로 날아들었는데 내용은
"내가 졌다. 너네가 돌아가면 우덜 왕을 데리고 가서 정식으로 항복하겠다." 였다
당연히 피로감에 찌들었던 수나라군은 옳타구나하고 바로 퇴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게 을장군의 계산이였으며 을지문덕은 절대 살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퇴각하던 수나라군은 살수에 이르렀는데 강을 건너고 있을때 후방에서 총공격으로 30만을 싸그리 도륙했다
을장군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아주 간단하다 전쟁은 머릿수가 아니라 머리로 하는거다
그마저 살아남은 2700명도 설세웅이 이대로가면 전멸 당할까봐 갑옷 벗고 튀라고 해서 살아 돌아갈 수 있었다

다시 영양왕으로 돌아와서 영양왕의 내치로는 신집 5권 편찬을 뽑을 수 있겠다
당대 고구려의 기록은 유기 100권이라 불리는 사서가 있었다
이걸 함축해서 5권 분량으로 줄인게 바로 신집이다 꼴랑 5권 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유기가 책이 아니라 목각같은데다 역사나 설화같은걸 적은거라는 주장도 있다
그래서 정리하면서 불필요한거나 역사가 아닌 설화는 그냥 싹 처내면서 분량이 확 줄어들었을것이라고도 본다
당연히 신집 1권의 크기도 어마어마했을거라 추정 그냥 실록처럼 일반책 두께가 아니였을것으로 본다
아마도 영양왕은 유기 100권을 읽은걸로 보이며 고구려뽕이 풀충전 된 왕은 이문집을 시켜 신집 편찬을 명한걸로 추측된다
당연히 신집 5권중 한권이라도 발견되면 한국 고대사를 다시 써야한다 다만 삼국사기에 실린 기록과 별반 차이 없으면 크게 달라지지 않을듯
실제로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초기부터 소수림왕대 까지의 기록은 신집이나 신집의 원본자료를 참고해 만든거 같은데
문제는 이후부터는 기록이 급감하며 중국 기록을 컨트롤 c+v한 티가 그대로 난다

대표적으로 연개소문이 피휘당해 천개소문으로 적힌거 (연개소문이라는건 조선시대때 밝혀진다)
신집이 싹 날아간건 당나라가 평양을 함락 시켰을때
당나라 사령관 이세적이 안학궁을 번해버렸다 시발련 (현재는 보다시피 터만 남았다ㅠㅠ)
일설에는 "소국 주제에 뭔 책이 이리 많아?" 라고 없애버렸다고 한다
당연히 보통 나라에서 편찬한 역사서들은 궐내에서 보관하는게 일반적이다
특히 조선처럼 백업 시스템이 없던 고대국가 같은 경우엔 더더욱 곁에두고 지켰다
그래서 초중기땐 졸본-국내성이 수도라 초기 기록은 어느정도 건질 수 있던걸로 보이며
후기 장수왕의 평양천도 이후 기록은 중국 사서를 컨트롤 c+v를 할 수 밖에 없었던걸로 보인다
그 결과 삼국사기에서 백제나 신라는 후기로 갈수록 기록이 풍부해지는 전형적인 고대국가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고구려만 초기 기록이 풍부하고 후기 기록이 딸리는 역주행을 한다
결론 고구려의 7대 명군을 뽑으라 한다면
1. 건국의 동명성왕 주몽
2. 왕권 회복과 외정의 태조왕
3. 내치와 포용의 소수림왕
4. 정복굇수 광개토대왕
5. 78년 재위기간의 장수왕
6. 중흥의 평원왕
7. 대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양왕
7명이라 할 수 있겠다
댓글 영역
고구려 치켜세우는 놈들 특) 전라도임
홍통
아 존나기네 시발련이 3줄요약 안쳐하냐??
팩트) 어차피 1000년 뒤에 조선 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팩트) 대국한테 깝치다가 기어이 멸망당함
중국황제가 갑자기 항복하라하니 좆까라한거다
김춘추시발련이 배신빵에 문열어서 그렇지 깝치다 멸망햇냐 - dc App
팩트) 멸망시킨 당나라 포함해서 그래봤자 미개한 똥송 토인
팩트) 예수 안 믿어서 전부 지옥 갔음
전혀 위대해보이지 않네 조상새끼들 ㅋㅋ
ㅈ반도랑 요동 먹은거치고 선방했다..
진짜 역갤러 티나노..
딴것도 아니고 중화 통일 왕조 하나를 갈아치웠는데 국뽕 빨만하지 씹 ㅋㅋㅋㅋ
몇몇 잘못된 정보가 있어서 바로잡는다. 본문에 광개토대왕 부분에, 충주 고구려비가 아니라 광개토대왕릉비로 수정해야한다. 광개토대왕릉비가 광개토대왕을 기리기 위해 장수왕이 세웠다고 알려져잇는 비석이다. 그리고 부동산재벌 역대2위가 광개토대왕이라한 이유가 혹시 나라의 영토 면적을 기준으로 한거라면 아쉽게도 고구려 최대영토를 보유한 왕은 문자명왕이기 때문에 광개토대왕이 부동산 재벌 2위라는 비유는 알맞지않다
문자명왕도 논란많아서 북부여 영토를 먹은게 아니라 그 유민 받아들인걸로 보여서 고고학이랑 부합되는 최대영토도 영양왕때로보임
박주신 담당일진 등판 http://m.dcinside.com/board/baseball_new9/892668
도요토미히데요시 -- 전라도놈들은 남김없이 한번에쳐라
중국 이민족 도륙내는거 개재밌어~
응 신라가 통일했어~최후의 승자는 신라야~ 니들 다 신라 후손이야 병신들아~
발해는?
이걸 안자르노
고구려가 남벌부터 먼저하고 북진을 햇으면 어땟을까
백제는 고구려랑같은 부여계니까 원래 친했고 신라는 한대줘패고 식민지수준으로 만들어놔서 점령할 필요가 없었음
ㄹㅇ 윗댓글이 맞음 ㅋㅋ 백제는 솔족히 부여뿌리고 신라는 내물마립간부터 사실상 식민지
남진부터하다가 한계치오고 내부분열심해서 망한거임
???원래친한데 통수치고 서로의 왕을 죽이냐?고구려 고국원왕은 백제 근초고왕 통수로 병사하고 백제 개로왕은 고구려 장수왕에게 목이 잘리는 작두형 당함.
왜놈 만들어오면 빌빌기던게 신라임 ㅋㅋㅋ 김유신 김춘추 아니였으면 이미 끝날나라
이딴걸 왜 야갤에 쓰냐?
을씨가 아니라 을지씨야
영양왕 추가해야될게 수나라에 선빵친거
팩트) 만주족의 역사다
이왜념
비추는 뭐냐?
발해는 몰라도 고구려는 한국사 맞음 명나라 시절만해도 조선=고구려 후예로 인식했는데 짱개새끼들이 현대와서 갑자기 지랄하는거지
애초에 짱께도 지들 역사로 취급 안함 걍 좆진핑 병신년이 땅 한평이라도 더 넓혀볼려고 주작질하는거지
광개토태왕-장수왕 이시절때 백제신라부터 멸망시켰어야됬다 ...
네 다음 조센징
짱깨새끼들 비추ㅋㅋㅋㅋ - dc App
짱깨새끼들 존나많나보네 시발 니네나라로 꺼지세요 짱퀴벌레새끼들아
진주 강씨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고구려계 성씨라던데 사실이냐? 예전에 나무위키에서 봤는데 - dc App
대무신왕이 빠진건 많이 아쉽네 - dc App
자료는 좋은데 왜 야갤에 올렸어... - dc App
역갤에 올릴순없자너~
광개토태왕 부동산 거래(물리)
괜찮게 읽었는데 비추수 왤케 많음. 야갤 말고 다른 곳에 올리셈 ㅋㅋ
49.172=반일 국뽕 병신 좆센징새끼 - dc App
49.172 이새끼는 예전부터 병신같은 글 올리더니 그거 다 다른 글에서 키배뜨다가 반박당하니까 조용히 글삭튀하던 새끼다 - dc App
난 일뽕들한테 진적도 없고 글삭은 커녕 댓삭조차 한적이 없는데 일뽕들 다른세계의 49.172랑 싸웠노ㅋㅋㅋ
야 49.172야 대화좀하자
비추뭐냐? 짱개새끼들 집합했냐?
명예짱깨+명예토착왜구 비추 콜라보 씨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동산 부자는 문자왕 아니냐? 부여 남은거 다 먹어서 제일 큰 영토가 문자왕인데..
문자명왕도 북부여 영역을 먹었다기보단 왕족이랑 유민들을 받아들였다고 보는게 타당함 실질적으로 영양왕이 최대영토때고 고고학적으로 연해주쪽에서 고구려 유물 유적 나오는시기가 영양왕때쯤
역사, 민족의식 따지던건 이미 낡아빠진 구세대적 발상임, 인종, 문화, 심지어 성별의 구분까지 모호해지는 세상인데 그깟 과거사, 민족성 운운하는게 뭐가 중요하냐?ㅋㅋ 곧 국경도 희미해질거다
지랄하지마 아나키스트 히피새끼야 - dc App
ㅈㄹ하네 ㅂㅅ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dc App
이래서 문과충새끼들은 죽어야되
비추박는거 짱개새끼냐 애미뒤진 일뽕역센징통구이새끼들이냐?
140년 ㅋㅋㅋ 일본도 1대부터 10대까지 천황은 다 가공인물
애초에 일본에서 하다못해 야마토왕권-야마타이같은 연맹왕국단계의 국체가 출현하는게 2~3세기경이다..
치토게 ㅇㄷ - dc App
비추500개는 ㄹㅇ 뭐냐? ㅋㅋㅋㅋㅋ
국뽕 내용도 아닌데 비추 600개 근접? 흐음
해당 댓글은 삭제되었습니다.
ㄴ 그 조선 덕분에 겨우 국체 형성한 ㅈ본인은 무엇?
전뷔 윗동네 빨갱이 새끼들이네???? 글쓴이 사상 흠흠.
일단 쫙 내려서 ㅁㅈㅎ줌
이거 처외울시간에 고다이고천황 왕정복고문외움ㅇ
명예 황국신민이누
오우 개꿀잼 - dc App
추)장수왕의 아들은 아버지보다 먼저 죽어서 왕위를 못 이었다고 후에 욕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름은 '조다'였다고 한다. 쪼다새끼
풍후좌 머하노
거의 2천년전에 100살 산놈들이 있다는게 말이 안되지 ㅋㅋㅋㅋ
태조왕 강역도에서 낙랑군 요동군 현토군이 실종되어있고 글에서 태조왕이 요동군 현토군 존나 후드려팬게 언급이 없음 - dc App
광개토왕 즉위 이후 왜가 바다를 건너서 광개토가 거의 작살낸 백잔 가라 신라를 왜왕이 신민으로 거둬 대고구려반대연맹 결성한거도 없네 - dc App
근데 풍후야 요즘은 릉비에서 왜 역할이 과장되었다고 보고있다 근데 담덕 입장에서도 깔짝깔짝대는 애들 빡치긴했었을듯
그 시절에 왜왕이 신라를 신민으로 거둔다는 ㅈ까는 소리를 믿고 있네 인프라는 되냐? 정신차려라 - dc App
태왕릉비 세울당시 한반도에 일본계 무기나 토기등 뭐 직접적으로 크게 관여했다는 유물조차 볼수없고 신라나 가야쪽에선 마갑나오고 중장기병 운용했다고 볼수있는데 ㅈ본측에선 마갑같은거 나오지도않고 임나일본부도 안라왜신과처럼 외교부같은걸로 보고있다
그리고 낙랑군 대방군 따먹은 미천태왕도 전혀 언급이 없어 - dc App
근데 이왜념
이왜념
토개추 ㅋㅋ
응 그래서 지금 180석이야ㅋㅋ
뚜방뚜방
국성이뭐임
짱깨 역사인데 빨고 있노ㅋㅋㅋㅋ
어디서 춘장냄새난다
소중화의 나라 대다나다 K-역사
정보ㅇㅂ
조선족이야말로 신라부정하고 고구려 내세우지
팩트) 똥센징이라서 헬조센으로 바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