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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들 "정대협, 中서 정체불명 피해자 6명 수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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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우비가 씌워져 있다. 연합뉴스

비가 내린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우비가 씌워져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04년 심미자 할머니를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나눔의집이 일본군 위안부라는 할머니 6명을 거금을 들여 중국에서 수입해 수요시위 앵벌이용으로 내세웠다”고 주장한 사실이 드러났다. 심 할머니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가장 처음 위안부 피해자로 인정받은 피해자다. 지난 2008년 별세했다.
 

2004년 정대협·나눔의집 상대 소송서 주장

심 할머니 등 할머니 12명이 2004년 서울서부지법에 정대협·나눔의집을 상대로 낸 ‘모금 행위 및 시위 동원 금지 가처분’ 신청서에 따르면 “피신청인 정대협이 주도하는 수요집회에 참석하는 피해 할머니는 10명 내외에 불과하다. 중국에서 수입해 온 정체불명의 할머니들을 동원해 수요집회를 유지해나가고 있다”고 적혀있다.
 
당시 정대협 측 변호를 맡은 김강원 변호사는 19일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 난다”라면서도 "(중국 할머니는) 만리타국에 있다가 뒤늦게 귀국한 피해자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또 당시 신혜수 정대협 대표, 송현섭 나눔의집 대표에 대해 신청서에서 “피해자들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과거를 들추어 비디오물, 책자들을 제작해 배포하는가 하면 비극적 과거 유포해 국민을 대상으로 모금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모금한 돈의 행방을 알 길이 없으며 자신들의 배만 불리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할머니들은 또 “1998년 일본 ‘아시아 여성기금’ 신청 당시 피해자들이 정대협과 나눔의 집 등의 맹렬한 반대와 돈을 받지 말 것을 종용하는 협박에 못 이겨 상당수 금원을 수령하지 못했다”며 “금원을 받은 신청인 중 7인은 ‘아시아 여성기금을 받는다면 자원해 나간 공창(公娼)이 되는 것’이라며 피신청인들의 입에 담지 못할 망발에 다시 한번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받아야 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심 할머니는 자신이 살아있을 때 일본에 받을 수 있는 사과와 지원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고 아시아 여성기금의 지원금을 받았다.  
 
신청서에는 할머니 일부가 언론·시위 현장 등에 노출을 거부하자 나눔의집에서 쫓겨났다는 얘기도 나온다. 할머니들은 수요시위 등 정대협 활동을 두고 “한국과 일본 간 외교관계에도 보탬이 되지 않는 행위”라고도 주장했다.
 
신청서는 할머니들이 고통스러운 과거 경험을 이용한 모금 등 수익 창출을 금지해달라는 취지로 2004년 3월 작성했다. 서부지법은 약 1년 뒤인 2005년 5월 신청을 기각했다.
 
당시 법원은 기각 결정을 내리며 “피신청인들이 후원금을 모금하고, 비디오물·책자를 제작·판매하거나 수요집회를 개최하는 행위는 모두 신청인들을 포함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계지원, 교육지원, 진상규명, 대국민 홍보, 외교적 권익수호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며 “신청인 3명을 제외한 나머지 생존 피해자 약 125명은 피신청인의 활동 덕분에 그들이 겪은 과거의 아픈 경험으로 인해 침해당한 명예와 인격권을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할 개연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처음 이 사건 가처분을 신청할 당시 피해자는 13명이었으나 그 중 상당수가 취하해 남은 신청인은 3명이었다.
2004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신청한 '모금행위및시위동원금지가처분' 관련 대법원 결정문.

2004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신청한 '모금행위및시위동원금지가처분' 관련 대법원 결정문.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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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jy5**** 2020-05-20 21:29:21 신고하기

    당시 재판관이었던 김용담 유지담 이라는 판사들, 본말전도어 판결을 한 것으로 보이네요. 정대협이 할머니들을 위해 존재하는가, 할머니들이 정대협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제대로 판단했다면, 저런 판결을 안 내릴텐데, 저 판사들의 양식이 의심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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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성하기46 반대하기0
  • L C **** 2020-05-20 19:42:35 신고하기

    조금 안심이 되네. 무슨 달나라에서 온 위안부인가, 어찌 저리 얼굴뚜꺼울까 했는데 집회에 나가길 꺼려했다는거 아냐?한국인의 인성에 도저히 이해불가인 윤은 앵벌이로 딸애까지 미국유학보냈고 2억주택에 3억현금예금!저런철면피 여자는 일식삼찬무상급식을 10년을 먹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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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성하기66 반대하기1
  • kjh2**** 2020-05-20 19:11:52 신고하기

    그때도 인산매매 성행했고 현재도 계속연속선상에 놓여있다 주범은 그때시절엔 굶어죽게한 시점이고 현제는 경제 폭망 자가 주범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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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성하기38 반대하기1
  • oh.g**** 2020-05-20 17:57:13 신고하기

    결코 바뀌지 않는 진실. 일본의 만행! 결코 물러설 수 없는 것은 일본에 면죄부를 줘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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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성하기9 반대하기13
  • jjoy**** 2020-05-20 17:24:19 신고하기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에 기생해서 먹고 살려는 사람들이 문제인 듯, 이제는 정치적으로,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이용하지 말라고 이야기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특정 정당이나 특정 집단의 소유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가슴 아픈 역사여야 하고 거기에 대해 모든 국민이 자유롭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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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성하기50 반대하기0
  • shte**** 2020-05-20 16:27:59 신고하기

    이 정권은 중국 공산당과 협잡으로 나라를 망치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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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성하기62 반대하기0
  • dant**** 2020-05-20 15:05:43

    관리자에 의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찬성하기34 반대하기0
  • soul**** 2020-05-20 14:06:30 신고하기

    진짜 중국에서 왔다면 같이 합석하여 통역을 통하여 언제 어디에서 고초를 껵었다는둥 손도 부여 잡고 기념 촬영도 하여 기록을 남기고 언론에 보도를 하게 하여야지 금시초문이여.윤미향 성격에 항공편 체류비를 매면서 진짜 중국에서 데려올리가 있냐?절라도 시골에 가서늙은 할머니 알바비주고 여섯 데려오면서 옆에 할머니들에게 벙어리 행세하라하고 수요집회끝나서 봉고차로 고향에 보냈겠지.안그러면 식사라도 다함께하면서 신문에 중국에서 온 위안부 할머니들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났을꺼 아냐?쳐주겨도 션치 않을 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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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성하기78 반대하기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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