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직원 출근
“추운데 왜 이렇게 일찍 나오셨어요! 얼른 들어오세요!”
지난 5일 인천 동구 ‘추억극장미림’의 운영부장 최현준(45)씨가 오픈 전부터 밖에서 서성이던 단골들을 안으로 들였다. 극장은 오전 10시에 문을 열지만 일부 단골들은 종종 그 전부터 와 있는다. 한 어르신은 난로 옆에 앉으며 “아침에 올 만한 곳이 여기밖에 없다”고 말했다.
추억극장미림은 지역 노인들의 문화생활을 돕기 위해 마련된 고전영화관이다. 일반 멀티플렉스 영화관과는 다르게 하루에 한 편의 영화만 3~4회 상영한다. 현준씨가 오전 8시도 안 돼 가장 먼저 극장에 출근했다. 메일을 확인한 뒤 하루 계획을 세운다. 잠시 뒤 영사기사 조우길(78)씨가 극장에 도착했다. 근무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지만 거의 매일 9시 전에 출근한다. 우길씨가 자신의 작업실인 영사실에 들어가며 말했다. “여든이 코앞인데 앞으로 얼마나 일할 수 있겠어요. 하루에 25시간은 일 해야지.”
오전 9시가 되자 매점이 문을 열었다. 일반 극장에 있는 커다란 팝콘 기계는 없지만 한 손에 들기 좋은 작은 팝콘과 과자들을 팔고 있다. 직원은 “노인들이 많이 찾다 보니 담백한 뻥튀기 종류가 많이 팔린다”고 말했다.
<오전 10시> 영화 상영
미림극장은 원래 1957년 상업영화관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인근 상권이 무너지고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늘어나면서 운영에 차질을 빚어 2004년 폐관했다. 이후 2013년 인천시의 지원을 받아 사회적 기업 ‘추억극장미림’으로 재개관했다. 노인들의 문화생활을 위한 실버영화관이기에 영화표 가격도 만 55세 이상은 2000원(일반 손님은 5000원)만 받는다. 극장 직원도 총 7명 중 4명이 환갑을 넘었다.
오전 10시30분 1차 상영이 시작됐다. 관객석엔 10명 남짓 앉아 있었다. 현준씨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요즘 관객이 많이 줄었다”며 “한여름엔 시원한 에어컨을 쐬며 영화를 보러 온 손님들이 많아 하루 평균 150~200명이 극장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지역 청소년들이 만든 극장관람 예절 안내 영상이 나온 뒤 이날의 영화 ‘마부(1671)’가 상영됐다. 추억극장미림은 어르신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주로 고전 영화를 튼다. 현준씨는 “고전 영화 중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영화가 많다”면서도 “요즘엔 전 연령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성하기 위해 고민한다”고 말했다.
<오후 2시> 방문객 안내
추억극장미림에선 영화 상영뿐 아니라 ‘관객과의 대화’ 등 지역 주민과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이날은 일본에서 민간 영화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견학왔다. 현준씨는 그들에게 “우리나라 영화관은 대기업 멀티플렉스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민간 소규모 극장이 살아남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건물 3층에는 고전 영화 관련 물품들을 전시하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여기엔 지역 청소년과 영화제를 기획했던 기록, 수십 년간의 상영 영화 목록, 옛 인천지도 등이 보관돼 있었다. 방문객이 돌아가면 현준씨는 사무실에서 다음에 어떤 영화를 상영할지 고른다. 상영의뢰가 들어오는 독립영화들의 프리뷰도 꼼꼼히 살핀 뒤 다음 상영작을 결정한다.
<오후 5시> 극장 마감
오후 5시 마지막 시간대 고전영화 상영을 마무리한 뒤 추억극장미림은 독립영화 상영을 준비한다. 마지막 뒷정리를 하던 현준씨가 꽤 오랫동안 뭔가 생각하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추억미림극장은 멀티플렉스처럼 크지 않지만 자주 찾는 단골손님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하며 나누는 정이 있어요. 저는 이곳이 지역에 가치 있는 공간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 영상=차인선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