녁우 단편

[녁우] 두고 가요 - 외전

참는 건 어느 쪽일까.


* 녁우S합작 <두고 가요> 감상 후 봐주시면 더 재밌게 읽으실 수 있어요 :) 

https://keywords-nwnw.postype.com/post/5421072 


하반기의 회사가 광고 경쟁으로 치열하게 예민했다면 상반기의 회사는 일 년의 계획을 세우고 인사이동 및 부서별 프로젝트 발표로 정신이 없었다. 우석은 팍팍한 회사 생활에 연애라도 하면 숨통이 트일 부분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상상 속의 연애였을 때였다. 


"우석씨, 같은 걸 계속 틀리는 건 실수가 아니라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작은 실수들이 잦으면 더 이상 우석씨에게 일을 맡길 수가 없어요."

"죄송합니다..." 


확인한다고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도 고객사의 전화번호 한자리를 틀리고 심지어 광고 홍보물 발주까지 수량을 잘못 내버린 것이었다. 물론 결제자는 진혁이었기 때문에 진혁이 책임지고 수습을 하긴 했지만 이런 기초적인 실수를 했다니 회사 윗 사람들도 의아해하는 상황이었다. 연애한다고 정신 팔렸다는 소리 듣고 싶진 않았는데 우석의 잔실수도 봐주지 못한 진혁도 머리가 지끈 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공과 사는 분명하게 해야했기에 진혁은 우석을 따끔하게 혼내는 일이 잦았다. 그 때마다 우석은 조금 민망하고 더 속상하긴 했지만 진혁이 얼마나 철저하고 꼼꼼한 상사인 걸 알기 때문에 그저 꾹 참을 뿐이었다. 


"팀장님, 화나면 진짜 무서우시다"

"차라리 큰 소리로 욕을 하는 게 낫겠어..."

"우석씨 괜찮아?"

"제가 잘못한 거니까요...팀장님께 죄송하죠..."


진혁에게 된통 혼난 우석을 데리고 동기들이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가 위로를 해주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신입사원 때야 잘 모르니까 하는 실수들도 눈 감고 넘어가주고 하나 둘 가르쳐주곤 했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여러 번 틀리는 건 분명 우석의 잘못이었으니까. 동기들과 잠깐 머리를 식히고 들어간 사무실에서는 진혁이 집중하며 업무를 보고 있었다. 조용히 책상에 앉아 사내 메신저를 켠 우석은 진혁에게 말을 걸까 말까 계속 고민하는데 우석의 메신저가 먼저 띠링 하고 울렸다. 그런데 개인 메세지가 아닌 팀 단체 메신저였다.


[연휴 전이니 다들 조기퇴근 하셔도 됩니다. 탕비실에 명절 선물 있으니 하나씩 챙겨 가세요. 다들 즐거운 설날 보내세요] 


직원들의 작은 환호성이 들렸다. 탕비실에 가서 명절 선물을 먼저 챙기는 사람, 가족들에게 전화하는 사람, 짐부터 후다닥 싸서 먼저 가보겠다고 옷을 입는 사람들 사이로 진혁만 요지부동이었다. 사람들도 처음에는 신나서 퇴근 준비를 하다가 정작 팀장이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으니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소란스럽던 주변이 조용해지자 진혁이 고개를 들어보니 다들 저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이자 아차 싶었는지 자리에서 일어선 진혁이었다. 


"저는 잔업이 좀 남아서 그러니까 다들 먼저 가세요. 연휴 푹 쉬고 새해에 더 힘내봅시다"

"네!"


진혁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배웅하자 그제야 사람들도 저마다 가볍게 회사를 나섰다. 우석도 사람들을 따라 회사 밖으로 나왔지만 잠시 들를데가 있다고 하고는 회사 근처의 카페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혁과 사귀고 난 후 같이 퇴근할 수 있는 날이면 늘 같이 퇴근했고 바래다주던 진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가타부타 말도 없고 자신의 실수로 화까지 나 있는 것 같아서 우석은 괜히 진혁의 눈치가 보였다. 우석은 휴대전화를 들어 토도독 메세지를 입력했다. 


[팀장님, 저 회사 앞 카페에 있어요.]


같이 퇴근하면서 기분 풀어줘야지,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야지, 최대한 미안하고 불쌍한 표정까지 연습하는 우석이었는데 금새 진짜 울상이 되었다.


[오늘은 같이 못가요. 퇴근해요.]


어? 정말 화가 많이 났나. 분명 다 같이 연휴를 일 걱정 없이 보내기 위해서 계획대로 일처리를 다 해놓은 터였다. 아무리 우석이 실수를 했기로서니 수습도 다 돼있는 상태였고 잔업이 남아있을리 없었다. 우석은 자기가 모르는 일이 남았으려나 싶어서 카페에서 일어섰다. 


*


"음! 아직 김우석 실력 안 죽었네!"


우석은 김치찌개 간을 보고는 흡족하다는 듯이 웃었다. 우석과 진혁의 연애 철칙 중 하나는 싸우면 하루를 넘기지 말고 화해하기였다. 싸운 건 아니지만 괜히 찝찝한 마음을 안고 퇴근할 수 없었던 우석은 마트에서 장을 보고는 진혁의 집에서 한창 요리를 했다. 진혁이 평소에 좋아한다는 김치찌개에 돼지고기까지 잔뜩넣고는 밥까지 야무지게 해놓고는 진혁의 퇴근을 기다렸다. 진혁이 언제 오려나 식탁에 턱을 괴고는 현관문을 빤히 바라보는데 눈에 띄는 구두 한 켤레. 


사귀기 전 우석이 오해했던 하이힐은 당장에 갖다버리고는 제 구두를 가져다놓은 우석이었다. 진혁과 발 사이즈 자체가 차이가 나서 구두도 누가봐도 진혁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이 집에는 진혁말고도 누군가 같이 살고 있다는 확실한 영역 표시 같은 거였다. 우석의 시선은 저절로 진혁의 집을 훑었다. 현관 입구에 우석이 쓰는 향수 하나, 소파 위에 쿠션 두 개, 똑같은 머그컵과 수저세트, 제 발에 신겨진 진혁과 똑같은 디자인의 슬리퍼. 우석은 슬리퍼를 신은 발을 들어 동동 굴려보았다. 진혁과 같이 살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진혁의 영역에 제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석의 시선이 멈춘 건 진혁의 침실이었다. 


사귄 지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지만 사실 진혁과는 키스 이후의 진도는 나가지 않은 우석이었다. 그 말인 즉슨 진혁의 침실에 입성하지 못했다는 뜻. 다른 방은 다 들어가도 되지만 침실에는 들여놓지 않는 진혁에게 우석도 사실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물론 우석이 남자 경험이 처음이라 어떻게 할지도 모르고 경험도 없지만 진혁이 너무 철벽을 치고 있는 것 같아서 엄두도 못냈다. 그리고 아무래도 먼저 자자고 말하는 건 너무 밝히는 것 같잖아. 우석은 괜히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아 고개를 붕붕 저었고 때마침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녀오셨어요"


활짝 웃으며 현관으로 달려오는 우석을 보는 진혁이 반가워하기 보다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 모습에 우석이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래도 먼저 다가가서는 진혁의 가방을 들어줬다. 꼭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을 맞이하듯이. 그런데 그런 우석의 행동에 진혁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코트를 벗어 제 손에 걸고 아무 말 없이 우석을 지나쳤다. 우석은 진혁의 가방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진혁의 뒤를 쫓았다. 


"생각보다 늦으셨네요..."

"할 게 많았어요."

"팀장님... 화 많이 났어요?"

"...네"

"죄송해요..."


우석이 진혁의 뒤에서 허리를 안아 얼굴을 부볐다. 보통은 이렇게 하면 풀렸으니까.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이렇게 애교로 넘어갈 생각하지 말아요."

"...넘어가려는 게 아니라 정말 죄송해서 그래요."

"나 이번엔 진짜 화났어요."


진혁은 허리를 두른 우석의 손을 힘있게 뿌리치고는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우석은 아랫입술을 꾹 씹었다. 모든 방법을 다 써도 풀리질 않자 우석은 당황했다. 맛있는 요리도 안 통해, 애교도 안 통해, 각서는 전에 한 번 썼고, 어쩌지. 우석의 머릿 속이 복잡하고 굴러갔다. 


드레스룸에 들어와서 슬쩍 거울 너머로 본 우석은 제 발끝만 바라보고 서서는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진혁은 이번 기회에 따끔하게 버릇을 고쳐줄 생각이었다. 팀장이 사수인데 이런 사소한 실수를 연발하는 우석을 애초에 따끔하게 혼내지 못한 게 이미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진혁이었다. 우석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애교섞인 목소리를 내면 온 몸이 녹아들 것 같아서 그냥 눈 감고 넘어가주던 진혁이 발등을 찍힌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매몰차게 먼저 퇴근시킨건데 자기 집에 와서 저렇게 편한 차림으로 활짝 웃으면서 맞이해주면 꼭 부부사이가 된 것 같잖아. 진혁은 저도 모르게 입가가 씰룩 거리려는 걸 참으려고 온 얼굴로 표정을 감춘 거였다. 지금도 저렇게 시무룩해져있는 우석을 당장에라도 가서 껴안아주고 싶지만 입술을 꾹 씹었다. 


홈웨어로 갈아입고 나온 진혁이 아무 말 없이 식탁에 앉자 우석도 다시 찌개를 데워와 식탁에 내었다. 먼저 먹지 왜 기다렸냐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고서는 진혁이 수저를 들자 우석도 수저를 들었다. 아무 말 없이 밥 먹는 소리만 들리는 적막함에 우석이 몇 번이나 침묵을 깨려고 대화를 던졌지만 돌아오는 건 단답형 네, 아니오, 괜찮아요 말 뿐이었다. 밥도 평소보다 깨작거리는 진혁을 보자 애써 만든 음식이 맛이 없나 우석은 입술을 삐죽였다. 결국 밥을 다 먹을 때까지 화해는 커녕 제대로 말 걸 타이밍까지 잡지 못했는데 설거지는 진혁이 하겠다고 해서 우석은 그저 소파에 앉아 진혁의 뒷통수만 바라봤다. 


진혁은 설거지 내내 뒷통수로 쏟아지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이대로 져주면 안돼 수없이 되내이고는 커피 한 잔과 페퍼민트 티 한 잔을 타서 소파로 갔다. 평소라면 우석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겠지만 나 아직 화났다를 대놓고 티내기 위해 일부러 한 자리 옆으로 떨어져 앉았다. 우석은 진혁이 옆자리까지 떨어져 앉아 뭔가 결심했다는 듯이 커피 잔을 내려놓고 일부러 진혁의 옆으로 바짝 다가가 앉았다.


"팀장님"

"네"


막상 자신있게 진혁을 부르긴 했지만 뭔가 우물쭈물하는 것 같은 우석에 진혁이 결국 고개를 돌려 우석을 바라봤다. 저를 똑바로 바라보는데 진혁의 손을 잡은 우석의 두 손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자신이 너무 오래 화를 냈나 진혁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려는데 더 강력한 한 방. 


"가슴...만지실래요?"


진혁은 순간 자기가 들은 말이 맞나, 제대로 해석되고 있는 게 맞나 머리를 굴리는데 한 번 내뱉고 나니까 용기가 나는지 우석이 두 눈을 초롱거리면서 진혁에게 한 뼘 더 다가왔다. 심지어 진혁의 손을 가져다가 제 가슴께로 가져가려는 우석에 진혁이 우석을 번쩍 들어서 제 무릎 위로 앉혔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요?"

"애인 화났을 때 효과 좋다고 해서..."

"하아...진짜 우석씨..."


거칠게 앞머리를 휙휙 넘기는 진혁의 얼굴이 잔뜩 찡그려져 있었다. 우석은 역시 네이트 판 같은 건 믿을 게 못된다고 괜히 진혁의 화만 돋운 것 같아서 수치심이 몰려들었다. 우석이 몸을 빼려고 하자 허리를 잡은 진혁의 손길에 힘이 실렸다. 


"나 화 풀어주려는 거 아니었어요?"

"...네"

"그럼 풀어줘야죠"


두 손을 들어보이는 진혁을 보고는 우석이 침을 한 번 꼴깍 삼켰다. 일단 자신이 내뱉긴 했는데 막상 제 몸에 진혁의 손이 닿을거라 생각하니 생각만해도 온 몸으로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우석이 조심스럽게 진혁의 두 손을 잡아 제 가슴에 가져다대자 진혁이 가볍게 우석의 가슴을 잡아왔다. 잡힐 것 없이 판판한 가슴인데도 낯선 이의 손이 닿자 우석의 온 몸이 예민해졌다. 진혁은 점점 빨개지는 우석의 귀와 목을 바라보다가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였다. 셔츠의 바스락거리는 질감 너머 탄탄한 우석의 가슴이 살짝씩 눌리더니 어느 순간 톡하고 뭔가를 건드렸다. 그리고 동시에 우석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나오면서 우석이 진혁의 손을 덥썩 잡았다.


"잠깐...거긴..."

"나 아직 화 안 풀렸어요"

"그런데 이거 기분이 좀..."

"그럼 오늘 화해하지 말까요?"

"...아뇨"


화해는 오늘 꼭 해야해. 우석이 가진 연애 철칙이기도 했기에 우석은 잡았던 진혁의 손을 놓고 진혁의 목에 팔을 둘렀다. 창피한 지 두 눈을 감은 우석을 빤히 바라보며 진혁은 셔츠 단추 사이를 살짝 벌려서 우석의 맨 가슴을 만졌다. 진혁의 손길에 점점 힘이 들어갈 수록 우석의 숨이 뜨거워졌다. 만지면 만지는대로 움찔거리면서도 싫다거나 그만하라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온 몸을 부벼오는 우석 때문에 진혁은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한 번 진혁의 손가락 끝에 작은 돌기가 톡하고 걸리자 우석이 꽤 높은 소리를 냈다. 자기가 낸 소리에 자기가 놀라서 우석이 손으로 입을 틀어막자 진혁은 우석을 제 무릎에서 내려서 소파 위로 눕혔다. 그래도 계속 손은 쉬지 않았고 어느새 진혁의 숨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입술을 맞대거나 노골적인 스킨십을 하는 게 아닌데도 기분이 달뜨는게 우석은 너무 이상했다. 진혁과 키스만해도 몸이 달아오르긴 했지만 이건 새로운 기분이었다. 진혁의 손가락이 지날 때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우석이 온 몸이 간지러워 뭐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에 진혁의 목을 끌어당기자 진혁이 우석의 귀 아래 점에 입을 맞췄다. 그런데 그 점을 혀로 지긋이 누르는 진혁 때문에 온 몸을 움츠렸다. 


"하아..팀장님.. 나.. 기분 이상..."

"싫어요?"

"아니..싫은 건 아닌데 이상...흐읏"

"그만...할까요?"


어느새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달린 우석을 보자 진혁은 잠시 정신이 바짝 들었다. 처음에는 우석의 화해제시가 발칙하고 귀여워서 받아주는 척 놀리려는 거였는데 손이 닿을 때마다 새롭게 반응하는 우석에 진혁도 인내심에 한계가 오기 직전이었다. 좋다 싫다 대답없이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는 우석을 보자 진혁은 결국 입을 맞췄다. 혀가 엉키고 입술이 부딪히며 나는 질척이는 소리가 가득했다. 간간이 새어나오는 우석의 소리에 진혁이 가슴에만 머무르던 손을 우석의 허리 아래로 집어넣고 등줄기를 쓸었다. 순간 허리를 들썩이며 높은 소리를 내는 우석에게 진혁이 제 아래를 힘있게 내려 눌렀다. 갑자기 다가온 뜨거운 부피감에 우석이 두 눈을 번쩍 뜨고는 진혁의 몸을 밀어냈다. 


"하아...아...잠깐..."

"아...미안해요"

"아뇨...미안하실 게 아닌..."


우석은 낯선 촉감에 살짝 몸을 떨었다. 당황해하는 우석의 표정을 놓칠리 없는 진혁은 천천히 하체를 떼고 상체를 기울여 우석을 한 번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먼저 몸을 일으키고 우석의 손을 잡아 소파에 다시 앉힌 후 품에 안았다. 불규칙하게 뛰던 심작박동이 일정한 박자를 내고 빨갛던 서로의 귀와 목이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자 진혁은 우석을 품에서 놓았다. 그리고는 우석의 입술에 가볍게 쪽 하고 입을 맞추고는 우석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이거 누가 효과 있데요?"

"인터넷에서..."

"광고한다는 사람이 인터넷 뜨내기 정보를 믿어요?"

"...죄송해요"


기죽은 강아지마냥 추욱 늘어진 우석을 보고는 진혁은 피식 웃고는 우석에게 다시 입을 맞췄다. 저를 슬쩍 올려다보는 우석에게 결국 어쩔 수 없이 활짝 웃어보일 수 밖에 없었다. 진혁의 미소를 보고 나서야 우석도 환하게 웃었다. 


"팀장님...화 풀렸어요?"

"...또 실수하면 진짜 더 화낼 거예요"

"응...미안해요. 진짜 다신 실수 안 할게요"


그제야 애교섞인 목소리로 제 품에 안겨들어 머리를 부비는 우석을 보고 진혁도 한껏 다정하게 안아줬다. 그리고 오늘 밤에 진정 시킬 건 우석 뿐만 아니라 제 몸인 것도 진혁은 퍽 난감했다. 



연휴동안에는 각자의 고향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회사 생활도 특별할 일 없이 돌아갔다. 우석은 진혁의 화난 모습을 제대로 보고난 다음에서야 더 이상 실수를 하지는 않았지만 한 번 확인 할 걸 두 번, 세 번, 네 번 씩 하다보니 일의 진도가 한없이 느려졌다. 


"다들 퇴근하시죠. 오늘도 고생하셨습니다"

"팀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우석 씨는 야근 좀 할까요?"

"네? 오늘 금요일인데..."

"지금 옆에 쌓여있는 서류들 보고도 그래요?"


예상하긴 했지만 결국 야근 당첨이라는 말에 우석은 힘 없이 다시 자리에 앉았고 동기들은 힘내라며 작게 파이팅을 외치고는 퇴근했다. 우석은 내일 데이트하기로 했으니까 오늘 일찍 집에 들어가서 팩도 하고 헤어트리트먼트도 하고 관리의 날로 좀 잡으려고 했는데 이 마음도 모르고 야근 시키는 진혁이 미워서 새초롬하게 쳐다봤다. 거들떠도 안보는 진혁이 얄미워 일부러 키보드를 타닥타닥 쎄게 두드렸다. 저녁 시간이 지나서까지 일을 하는데도 밥 먹으러 가자, 힘들지 않냐 진혁이 말을 걸어오지 않자 커피나 마셔야겠다며 탕비실로 향한 우석이었다. 


"칫...나 오늘은 실수도 안했는데 진짜 나빴다"

"뒤에서 이렇게 내 흉 보고 있어요?"

"몰라요"


언제 따라왔는지 진혁이 뒤에서 크큭 대며 웃고 있자 우석은 삐죽하게 말이 나갔다. 그런데 진혁이 이미 퇴근 준비를 마치고 우석의 가방과 외투까지 들고 서있는 거. 무슨 상황이지? 우석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자 진혁이 또 한 번 웃어보였다. 


"크큭"

"... 아 뭐예요 팀장님" 

"나 화나게 했던 벌이요"


일부러 야근 시킨거라는 말에 우석은 더 심통이 나서 종이컵을 와작 쥐었다가 뜨거운 커피가 왈칵 흘러내렸다. 놀란 우석과 그보다 더 놀란 진혁이 우석의 손을 얼른 잡아 탕비실에 있는 싱크대 수도를 틀어 우석의 손을 넣었다. 진혁은 괜히 놀리려다 우석의 손이 데인 건 아닌가 미안한 마음에 탕비실 냉동실의 얼음까지 꺼내서 우석의 손에 맞대주었다.


"미안해요. 조금 놀리려던 건데"

"심술쟁이..."

"맞아요. 우석씨 반응이 너무 귀여워서 심술 부렸어요. 진짜 미안해요"


눈썹을 팔자로 내리며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짓는 진혁을 보자 우석이 번뜩 머릿 속을 스치는 생각이 들었다. 올커니. 기회다. 


"나 화 났어요"

"많이 아파요? 병원 갈까요?"

"아뇨"

"얼음 더 갖다줄까요?"

"아니요오"


우석이 화났다는 말에 진혁이 안절부절하는데 뭔가 이상한 말투에 진혁이 우석을 바라보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우석이 보였다. 진혁은 그런 우석을 보고 잠시 생각하더니 이 앙큼한 애인이 무슨 생각하는지 빤히 보였다. 진혁은 입고 있던 코트와 재킷을 벗어 탕비실 테이블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가슴... 만질래요?"


우석은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이 손을 뻗어 진혁의 가슴에 닿았다. 금방 얼음 때문에 차가워진 손가락이 진혁의 가슴께에 닿자 진혁이 잠깐 움찔했지만 도리어 한 발짝 더 가까이 우석에게 다가가 제 품에 우석을 가뒀다. 진혁의 품에 갇혀 두 손으로 진혁의 가슴을 만지는 우석인데 같은 스킨십도 회사에서 하는 건 더욱 조심스러우면서도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하면 안될 짓을 하는 기분. 


우석은 제가 진혁에게 당했을 때 기분 좋았던 느낌을 떠올리며 그대로 움직여보였다. 처음에는 진혁의 가슴팍을 손바닥 전체로 잡았다가 지긋이 눌러도 보고,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쓰다듬다가 어느 부근을 톡하고 건드리기까지. 그런 우석의 손길에 진혁이 고개를 조금씩 저으면서 점점 따뜻한 숨이 배어나왔다. 제 손길에 늘 단정하고 곧았던 사람이 작게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니 우석은 왠지 모를 성취감도 느껴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진혁을 놀래주고 싶었던 우석은 제 손가락 끝에 닿은 봉오리에 살짝 입을 맞췄다. 순간 진혁의 몸이 크게 떨리며 우석의 고개가 들렸다. 순식간에 맞붙은 입술에 우석은 진혁의 가슴을 꼬옥 쥐었다. 


"하아...과감한 면도 있네요 우석씨. 여기 회산데"

"나 아직 화 안 풀렸어요..."

"나 따라하는 거예요?"

"따라하는 거 아니...으읏, 잠깐"

"쉬이... 경비 아저씨 순찰 오실 수도 있어요"

"하아..어떻게 조용히..흐읏... 그만"


텅 빈 사무실에 질척이게 입술이 섞이는 소리, 간간히 몰아쉬는 숨소리만 가득했다. 우석은 진혁의 키스에 그 때와 같이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살짝 눈을 뜬 우석은 안달난 자신과 달리 평온한 진혁의 표정이 조금 얄미웠다. 나는 키스 하나만도 이렇게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여유로운 진혁을 괜히 당황시키고 싶었다. 우석은 진혁의 가슴에 있던 손을 내려 진혁의 중심부에 손을 얹었다. 그런데 막상 내린 손바닥에 한껏 부풀어 올라 뜨끈하기까지한 앞섬이 닿자 후다닥 손을 떼었다. 그러나 진혁이 우석의 손 위로 제 손을 덮었다. 


" 이거 무슨 뜻이에요?"

"네? 그게..."

"의미없이 행동하는 거 나 안 좋아하는데"

"...네"

"나 화나면 무서운 거 알죠?"


알죠. 그런데 아래가 화나있는 건 직접 경험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하죠. 우석은 어쨌든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덤벼든 것도 있어서 진혁의 눈을 피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는데 진혁은 또 작게 한숨을 쉬더니 제 손을 진혁의 허리에 두르게 하더니 품에 가득 안았다. 뭐지 또 이렇게 끝나는 건가. 나름 용기낸건데, 우석은 제 손길이 싫었나, 남자가 서툰게 티가 나서 어설퍼서 싫은건가 싶어서 찔끔 눈물이 났다.  울 일이 전혀 아닌데 자신이 진혁을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우석은 기분이 꽁기해졌다. 


우석이 이렇게 삽질하고 있을 때 진혁은 진혁 나름대로 머릿 속이 복잡했다. 분명 모르고 하는 행동들은 아닐텐데 남자가 처음일 우석이 무서워 하거나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는 행동들에 대해서는 밀어붙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늘 참고 우석이 허락하는 선에서만 행동하고 있는데 막상 자신에게 달려들고서는 좀 더 진혁이 한 발짝 다가가려고 하면 움찔하는 것에 진혁도 늘 제동이 걸렸다. 진혁이라고 이 예쁜 애인을 빨리 안고 싶은데 자기가 너무 본능대로 행동해버릴까봐, 언제든 우석이 진짜 원할때,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때 하고 싶은거였다. 그래서 늘 마지막 순간에 멈추는 건 진혁이었다. 그게 우석을 배려한다고 생각했다. 


"늦었으니까 이제 갈까요"

"...네"


다음날 주말이었기에 우석을 집으로 데려다주는 내내 어디를 갈까 데이트 코스를 얘기하고 평소와 다름 없는 퇴근길이었다. 그런데 우석은 자꾸 아쉬웠다. 아직 제 몸의 열기도 안 가라앉고 운전하는 진혁의 옆 얼굴, 핸들을 잡고 있는 긴 손가락, 셔츠 너머 탄탄하게 느껴졌던 가슴의 감촉까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우석의 집 앞까지 도착했는데도 우석이 내리지 않자 진혁이 머리에 물음표를 달고 우석을 쳐다봤다. 


"그...팀장님, 저 현관 센서등이 고장났는데 한 번 봐주세요"


그럼 전등을 사러가자는 진혁의 말에 우석은 집에 사다놨는데 키가 안 닿는다고, 잘 모르겠다고 무작정 진혁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반짝 하고 잘만 들어오는 불에 진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몇 번을 왔다갔다 했지만 당연히 이상이 없지. 


"괜찮은 것 같은데요?"

"....그러네요"

"다음에 전등 바꾸는 거 가르쳐줄게요. 잘자고 우리 내일 봐요"


진혁이 우석의 입에 가볍게 쪽 하고 입을 맞추고 돌아서려는데 덜컥 몸이 붙잡혔다. 걸리는 느낌이 나자 진혁이 잡힌 제 손을 바라보자 진혁의 코트 끝을 잡은 우석의 손 끝에 붉게 물들어있었다. 그리고 저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귀까지 빨개진 우석과 달싹거리는 입술. 


"왜요? 할 말 있어요?"

"우리 어차피...내일 데이트 할 거 잖아요..."

"네"

"그러니까..."


우석이 자켓을 벗고 셔츠 단추를 하나 둘 풀기 시작했다. 너무 놀랐는지 현관에 가만히 서 있는 진혁 위로 현관 전등이 까맣게 꺼졌다. 그러다가 잠시 우석의 몸짓에 현관불이 탁 켜지자 셔츠를 다 벗은 우석이 서있다. 그 모습에 더 눈이 커진 진혁에게 다가가 우석이 진혁의 손을 잡아 제 맨가슴에 닿게했다. 진혁의 손이 작게 떨리자 우석은 진혁의 손가락 하나를 잡아서 제 가슴의 봉긋한 것에 부러 가져다 꾸욱 눌렀다. 그와 동시에 진혁이 입술을 깨물었고 우석은 작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두 눈에 눈물인지, 기대인지 모를 감정을 가득 담고 진혁을 올려다보는 우석이었다. 


"사실...나 화 아직 안 풀렸어요"


이번에는 우석이 힘을 주지 않아도 진혁의 손가락에 저절로 힘이 들어가 눌렸다. 그리고 우석이 몸을 작게 떨었다. 


"그러니까..."



"자고 가요"



진혁의 발에서 구두가 둔탁하게 떨어져 나갔다. 현관 앞의 구두들도 늘 정갈히 두던 진혁은 그 날 없었다. 




+)이것은 리멘물인가 아닌가 모르겠다 하지만 네 그렇습니다. 룰루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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