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설 연휴이니, 가볍게 츠바키 산주로님 얘기 한 번(1)
  • 유지군(220.87)
  • 2020.01.23 12:48
  • 조회수 107
  • 추천 4
  • 댓글 4


영화 <츠바키 산주로>의 포스터(출처:야후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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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산주로椿三十郞>라는 영화를 아십니까? 불멸의 巨匠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감독님의 1962(昭和37) 작품입니다. 흑백영상입니다.

허나 지금 다시 봐도 위화감 따윈 미장센에서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정말 고전 중의 고전이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진감 넘치는 내러티브에다 강렬한 찬바라(ちゃんばら)의 숏은 단연 인상적입니다.

특히 라스트 신에서 두 사람의 일대일(一對一) 대결(一騎討)은 하나의 위대한 전형(典型)이 되어 후대 영화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연휴 기간에 시간 되시면, 한 번 감상해 보십시오. 小生의 진심 어린 경탄이 결코 과하지 않다는 걸 실감하시고도 남습니다. , 小生도 며칠 전 다시 시청했습니다만, 여전히 깊이 감동해 버렸습니다.^^


사실 구로사와 선생의 위대한 업적은 구구절절이 얘기할 필요도 없겠다. 전 세계에 익히 알려져 있어 重言復言헤 봐야 사족(蛇足)에 불과할 따름이다.

다만 <츠바키 산주로椿三十郞>에서, 불멸의 명배우 미후네 도시로(三船敏郎)의 배역(配役)인 흥미로운 浪人武士 츠바키 산주로를 지켜보면서 떠오른 단상(斷想)에 대해 몇 마디 적어보려 한다. 그를 통해 日本의 일단(一端)이나마 알아보는 것도 나름 유익하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혹여 일방적 시각으로 日本을 보신다 하더라도 세계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므로, 당신과 다른 생각도 한 번 들어보셔요.^^


하면 영화에서 드러난 츠바키 산주로는 어떤 인물일까?

간단하다. 그는 마흔이 가까운 로닌(浪人)이다. 섬기는 주군(主君)도 없어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하는 신세에 불과하다.

그런고로 천하를 떠돌다, 참근교대(参勤交代)로 번주(藩主)가 부재중인 어느 번()에 흘러들어가 가로(家老)들 간의 爭鬪에 휩쓸리고 만다. 졸지에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당한 셈이다. 물론 그는 흔쾌히 한쪽에 참여한다.


그런데 츠바키 산주로는 봉록도 받지 못하는 실업자 주제에 어떠한 대가(代價)도 없이, 열정만 가득한 젊은 번사(藩士)들 쪽으로 합세하는 무모함을 보이고 만다. 오지랖이 넓지 않거나 눈앞의 이익을 따지는 유형이라면, 단연코 세력이 큰 무로토 한베에(室戸半兵衛) 무리로 가담하여 입신출세를 도모했을 텐데 말이다.


입신출세? 봉록? 그는 이딴 것에 관심이 없다. 혈판장(血判狀)을 돌릴 정도로 정의를 향한 열정과 혈기왕성한 젊은 번사들을 샤덴(社殿)에서 만난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소수임에도 다수에 굴하지 않고 정의를 관철하려는 신념을 높이 평가했을 따름이다. 즉 젊은 번사들의 행동이 그의 미학과 맞아떨어진 셈이다.


물론 그의 반대쪽에도 무시무시한 실력자가 있다. 바로 무로토 한베에다.

두 사람은 한눈에 서로를 알아본다. 사무라이()로서의 동류(同流) 감각을 맹수처럼 간파한 것이다.


무로토 역에는 미후네 도시로 선생 못지않은 명배우 나카다이 타츠야(仲代達矢) 선생이 열연하십니다. 나카다이 선생의 멋진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小生은 행복합니다. 그분은 불멸의 명작 <>에서도 활약하시지요.^^


그 결과, 가로들의 권력 쟁투가 결판決判났어도 두 사람의 일기토(一騎討일대일 대결)는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다가오게 된다. 그리하여 후대까지 두고두고 회자되어 버리는 명장면을 탄생시키는데, 그야말로 일기토 숏은 숨죽이고 지켜볼 수밖에 없는 전율 그 자체다.


1.

사무라이 검술의 미학적 극치라 할 수 있겠다. 역시 두말하면 잔소리입니다. 이 숏은 밤하늘의 불꽃과도 같습니다. 구경해 보십시오. 에도시대 당대의 무사들 미학이 여지없이 분출되고 있답니다.

그러고 보면, 日本 하면, 전 세계인 누구나 머릿속에 떠올릴 수많은 심상(心象) 중의 하나로 사무라이가 깊이 구현되는 데에 <츠바키 산주로椿三十郞>도 한몫을 단단히 한 셈이다.^^


물론 무사(武士)라는 表象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 몇 편의 걸작 영화만이 성과를 올렸던 건 단연코 아니다.

일단 무사계급의 역동성과 미학이 역사에 足跡을 깊이 남겨 후대로까지 면밀히 전승되어 왔거니와, 또한 그 미학의 발현에 일조한 수많은 저작물들 속으로 크고 깊고 넓은 현실성이 구축되어 내려왔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가마쿠라(鎌倉), 무로마치(室町),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이어 에도막부(江戸幕府)에 이르러서도 무사의 미학(美學)이 계승되었던 점을 상기하면 이 점을 쉬이 유추할 수 있을 게다.

더 나아가 에도시대의 무사계급은 학자와 예술가 및 관료의 역할까지도 마다하지 않게 되어, 보편의 시대정신(時代精神)을 구축시키는 데에 있어서 부족함이 전혀 없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전국시대 이전의 무사들과는 달리 처절한 투혼이 약화된 현상을 질책하는 저작들도 에도시대에 다수 출간되어 매너리즘에 빠진 무사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일면도 보였다.


이것이 가능한 까닭은 다른 게 아니다. 헤이안(平安) 이래 권력의 중심에 진입한 무사계급이 자신들의 무력(武力)에 정당성을 획득시키기 위해 <형식과 품격>을 근저에 철저히 구현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기토, 즉 잇키우치一騎討에서도 서로가 적에게 예의를 갖추고 자기소개를 하는 의식(儀式)에 집착한 것은 극한의 긴박감 속에서도 승패 이상의 미학을 추구하는 무사의 단면을 여지없이 입증시킨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잇키우치는 고대 지나(支那)나 중세 유럽에서도 볼 수 있었던 현상이지만, 선진 日本의 경우 더욱 심화되어 에도시대에까지 그 격식이 이어져 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계속)



  • 4 고정닉 추천수0
  • 0
  • 굽이굽이

    저 사람 영화 라쇼몽에 주인공 역할로 나온 사람인가요?

    01.23 12:51
  • 유지군(220.87)

    예, 小生이 무척 좋아하는, 무사의 표상 같은 배우이시지요. 미후네 도시로 선생이십니다. 잘 지내시지요? 언제나 건승하는 나날을 보내시길 마음 깊이 소망합니다.

    01.23 12:54
  • 굽이굽이

    하루하루 바쁘지만 그래도 무언가 편한 느낌은 있습니다. 안부에 감사드리며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01.23 13:51
  • ㅇㅇ(115.137)

    조센 명절인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더 격에 맞는 영화 평론이다. 이런 글 덕분에 제갤을 못끊는다.

    01.23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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