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청년이여 나약해져라. - 미시마 유키오
  • ㅇㅇ(49.168)
  • 2020.01.2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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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선수가 최고의 영웅인 이 시대에 나약해지기를 권하다니, 조금 이상하게 생각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듯 스포츠가 성행하고 영양식이 중요해지면서 10대남녀들의 체격이 급속도로 향상되는 것을 보면, 나는 왠지 지금 고교생들을 군대 신체검사장으로 끌어내보면 어떨까 하는 공상에 사로잡힌다. 우선 대다수가 1급 판정을 받을 게 틀림 없다.


평화주의자라든지 전쟁 결사반대라는 견지에서 바라보면 현실적으로 체격 향상 따위는 오히려 빈축을 살만한 것으로, 현대 청소년들이 하나같이 나약하고 게이처럼 간들간들 걸으며 쿡 찌르면 금방 넘어질 것 같다면 그야말로 태평한 세상이 여기 있노라고 말할수 있을것이다.


결코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정치가는 청년의 사상을 활용하는 시늉만 보이지 실제로 이용하고 싶은 것은 오로지 청년의 육체뿐이라는 사실이다. 청년의 사상 따위는 전혀 이용 가치가 없고 오직 육체만이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이미 간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가라는 족속들도 무시할 수는 없을 듯하다. 적어도 학교 선생보다는 영리하다. 그러므로 정치가가 청년에게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면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가의 의표를 찌르려면 청년들이 문약으로 흐르고 유약에 빠져서 아무 데도 쓸모가 없는 흐늘흐늘한 육체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젊은이여, 몸을 단련해두라'라는 말을 이렇게 해석해도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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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바로 스포츠다. 여기에 빠져들면 저절로 체격이 향상되고 성욕이 승화되어 저속한 생각을 하지 않게 되므로 결국 이상주의적 인격이 형성되고 만다. 그러면 정치가가 제일 이용하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조금도 머리를 쓸 필요 없이 한가로이 눈길만 주고 있어도 소화는 저절로 되고 몸에는 전혀 해가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마약이 제일 좋겠지만, 나는 구태여 이런 중독환자를 만들어내자는 게 아니라 단지 '문약유약'을 뜻으로 삼자는 것이니 만약까지 가버리면 도를 넘어버리는 셈이 된다.


독서. 이건 괜찮다. 게다가 책을 읽으며 커피까지 마시면 불면증을 유발할테고, 인간을 차츰 공상적으로 만들어 현실로부터 유리시키는 데다, 체격까지 저하시켜준다. 독서할 때는 아무래도 몸을 앞으로 구부리는 자세가 되므로 군대 생활에는 적합하지 않다. 게다가 공부를 하면 할수록 결단력이 둔해지고 행동력을 잃게 되므로 더더욱 좋지 않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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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보이 같은 것은 더더욱 많이 성행해야 한다. 먼 옛날 평화로웠던 시대에 스즈키 하루노부가 그린 풍속화를 보면,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젊은 남녀의 옷차림이나 얼굴 생김새만으로는 어느 쪽이 남자고 어느 쪽이 여자인지 모를 만큼 구분하기 어렵다. 그러한 황금시대가 다시 도래하게 될 것이라는 조짐이 바로 게이보이의 등장인 것이다.


도대체 여자와 자는 것이 가장 남자다운 행위라는 오해는 언제부터 생겨난 걸까? 여자와 자면 잘수록, 그리고 여자와 감정적 심리적 접촉을 가지면 가질수록, 남성은 여성화되게 마련이다. '겐지이야기'의 히카루 겐지나 '호색일대남'의 주인공인 요노스케가 그렇듯, 한 나라를 대표하는 호색한들이 다소 여성적인 것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리얼리즘의 정도를 가고 있는 것이다. 권투든 수영이든 남성적인 체력을 발휘하는 시기는 아직 여자를 모르는 나이에 한정되어 있다.


또한 이상하게도 여자는 비교적 여성적인 남자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문화가 발달된 나라일수록 그런 경향을 보이며, 실제로 일본이나 프랑스에서 여자에게 가장 인기 있는 남자는 대개가 여성적이다.

노래나 무용, 그중에서도 특히 샹송이나 샤미센은 사람을 나약하게 만드는 절대적인 힘이 있다. 그것도 되도록 세상을 비관하는 듯한, 아픈 상처를 달래며 어루만져주는 듯한 가사가 좋다. 아침이건 저녁이건 이런 음악을 즐기는 동안, 청년은 차츰차츰 얼이 빠지게 된다. 이 나라가 흐물흐물, 물렁물렁한 연체동물과도 같은 청년으로 가득 메워진다면 재군비는 물론 파시즘이나 공산혁명에 대한 걱정도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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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나쁜 것은 가난이다. 가난은 사람을 긴장시키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며, 또 투쟁심을 부추기고 분발을 촉구한다. 그러므로 청년을 나약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돈을 되도록 넉넉하게 쥐어줄 필요가 있다. 그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여자에게 돈을 쥐어주는 것인데, 여자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동안에 청년은 일하고자 하는 의욕도,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욕망도 잃게 되므로 그쪽이 더 빠른 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청소년은 멋을 부리는 데에 온 마음을 쏟고 얼굴을 꾸미는 데에 열중해야 한다. 엉덩이가 작은 청년은 히프 패드를 달고 얼굴이 영 아니면 성형수술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청년들의 얼굴이 두루뭉실해진다면 도저히 강한 군대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억지로 군대를 만들었더라도, 휴식 명령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일제히 콤팩트를 열고 화장을 고친다면 틀림없이 사기가 땅에 떨어질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한때 '문화국가'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진정한 문화국가라면 한떄의 프랑스, 한때의 중국처럼 1억이라는 인구가 모두 나약한 상태여야 한다. 성숙한 문화는 궁극적으로 여성적인 표현을 취한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 거기까지 이르지 못했다. 한쪽에 여성적인 남성이 있다면 다른쪽에는 지극히 남성적인 남성이 있는것이다. 대중은 문화에 등을 돌리고 프로야구에 열광한다. 정치가는 재군비나 경직법 개정에 열을 올린다. 이건 문화국가가 아니다. 국민이 모두 일어나 군국주의 경찰국가로 재편성하는 것도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전쟁 중에 한 학생이 학교 연설회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현재 일본이 역사상 처음 겪는 국난에 직면해 있는데도, 명예로운 우리 학교에서 일부 문약한 학생이 있어서 하찮은 소설 따위를 쓰고 있다"라며 내가 있는 쪽을 힐끗 노려보는 것이다. 그 무렵 나는 정말로 몸이 약하고 얼굴이 창백한 데다 연애소설만 쓰고 있었으므로 문약이란 말을 들어도 어쩔 수가 없었지만, 그렇게까지 매도하니 화가 치밀어 올라, "두고봐라. 문약의 시대가 오고야 말 테니까"라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과연 전쟁이 끝나고 문약이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앞서 말했듯 나는 이 나라가 진정으로 '문약유약'의 극치를 달리는 문화국가가 될 것 같지는 않다고 일찌감치 판단했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내가 시대에 편승하며 보디빌딩을 시작함으로써 이제는 근골이 우람한, 언제 소집영장이 날아와도 끄떡없을 듯한 몸을 얻었다. 하긴 이나이가 되면 소집 영장이 나올 일도 없겠지만 말이다.











굉장히 세련된 반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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