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친일파라고 욕 먹는 사람들이 더 당당했죠
  • 굽이굽이
  • 2020.01.11 14:56
  • 조회수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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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3
박중양

그는 오랫동안 작대기를 짚고 다녀 박작대기 또는 박짝대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148]

벼슬이 높아진 박중양도 중년 이후 이 개화장을 애용하며 뽐내고 다녀, 사람들이 비꼬는 뜻에서 가져다 붙인 별명이 ‘박짝때기’였다. 뒤따르는 하인 한 사람을 대동하고, ‘朴’이란 큰 글자가 쓰인 전용인력거를 타고 다니며 관가를 누비던 박짝때기였다.[127]

박중양은 단장을 항상 휴대하고 다녔기 때문에 항간에서는 '박 작대기'로 통했다.[149] 그는 개화장(開化杖)이라고 부르는 작대기를 짚고 다녔다.[148]

조선총독부나 일본인 관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작대기로 사정없이 후려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각별한 신임을 얻고 있었고, 칙임관 이상의 대우를 받고 있었으므로 관료들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그는 조선총독이나 정무총감 앞에서도 당당했다고 한다.

1940년 당시 총독부 출입기자 좌담회에서 매일신보 기자 김인이(金麟伊)는 그가 총독과 정무총감 앞에서도 당당했다고 기술하였다.“언젠가 무슨 회의든가에 보니 총독, 총감도 다 열석한 석상인데 박중양이 당당합데다. 예전 도지사 당시에도 내무부장, 경찰부장이 쩔쩔 매였다는 소문이 있느니만치 철저하게 이야기 하더군요. 말에 질서 있고 사리를 잘 분변하는 말이고, 만좌가 경청하더군요.”
— "총독부 기자 좌담회", 《삼천리》 제12권 제3호 (1940년 03월 01일자)

그는 도지사나 고등법원장한테도 예사로 작대기를 겨누며 “기미 기다까”(자네 왔는가)했나 하면, 밉게 보인 순사쯤은 자기 집 사설 감방에 하루 이틀 가두어 두었다가 제복을 벗겨 내쫓기도 하는 등 특출한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127]

일본인 순사를 잡아다 집안 사설감옥에 가두던 그를 두고 '일본인을 혼낸 통쾌한 조선인 이야기'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었고[148], 이는 이후에도 널리 회자화되었다. 각 도지사와 시장, 지방법원장 등이 부임하면 부임인사를 다녔고, 매년 그의 집으로 세배를 갔다.

찌질하게 화장실, 벽에다가 독립 만세 적으며 반일 독일운동(?) 하는 조센징들보다 훨씬 당당했던 게 친일파인데... 정작 그 친일파라 욕 먹는 자들도 진정한 의미의 친일파는 아니었다는 게 참..

  • 6 고정닉 추천수1
  • 0
  • ㅁㅁ(110.70)

    대부분은 진짜 친일파보단 부역자정도에 가까운

    01.11 15:03
  • 센송

    박중양이 센징들을 위해서 일본순사를 괴롭힌 행동 같은 경우는 옛날같으면 높이샀지만 현잰 그냥 전형적인 센징 행동이라고 봐서 딱히 높이사진 않습니다. 그저 박중양은 독립 후 조센징들 속시원하게 깐거 만큼은 진짜 사이다중 사이다라 저거만큼은 제대로 인정..

    01.11 15:26
  • 센송

    뭐 아무튼 센징을 위한 행동을 한 박중양마저도 좆무위키나 박중양 대해서 행적에 대해 좀 하는 센징들은 박중양은 역대급 혐센이다. 이런 결론밖에 못 내리는게 아이러니.. 저것도 결국 애증일건데

    01.1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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