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조센징이 파괴한 문화유산. 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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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01.10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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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에 공원 동쪽에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기 위한 사찰을 짓고 사찰이 자리잡은 언덕을 춘무산(春畝山)이라고 불렀다. 


박문사라는 이름은 이토의 이름에서 따왔고, 춘무는 이토의 호이다. 


박문사는 이토의 23주기 기일인 1932년 10월 26일에 완공되었다.


낙성식에는 조선총독 우가키 가즈시게와 이광수, 최린, 윤덕영 등의 친일세력과 그외 천여명의 참석하였다.


정무총감 고다마 히데오(兒玉秀雄)가 발기하여 세워진 소토슈 사찰로 건평은 387평이었다. 


설립 목적은 


"조선 초대총감 이토 히로부미의 훈업을 영구히 후세에 전"하고 "일본불교 진흥 및 일본인과 조선인의 굳은 정신적 결합"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낙성식에는 조선총독 우가키 가즈시게가 참석하고 히로히토 천황과 황족들의 하사품도 전해졌다. 


1939년에는 이 곳에서 이토를 포함하여 이용구, 송병준, 이완용 등 한일 병합 공로자를 위한 감사 위령제가 열리기도 했다. 


이용구의 아들인 이석규가 흑룡회와 함께 개최한 이 행사에는 이광수와 최린, 윤덕영 등 약 1천여 명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사찰은 이승만 정부가 철거하였고 박문사 터로 추정되는 자리에는 현재 신라호텔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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