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디아폴리스-이방경찰>의 포스터(출처:야후재팬)
「<디아스폴리스-이방경찰-ディアスポリス-異邦警察->이란 드라마가 있습니다.
2016년(平成28년) 작품인데요, 원작은 고단샤(講談社)가 발간하는 잡지 「모닝モーニング」에 연재되었던 인기 만화로 영화로도 제작되었답니다.
내러티브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도쿄에 밀입국한 이방인 15만여 명이 은밀히 모여 살면서 자신들만의 자치조직 이방도청(異邦都庁)을 꾸리는데요, 거기에는 금융청(金融庁), 후생노동성(厚生労働省)이 관여하지 않는 은행이나 병원이 있을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질서유지의 보루(堡壘) 경찰마저 있습니다.
이방인들을 보호하고 치안을 유지시키려는 유일의 경찰. 그가 바로 쿠보즈카 사키(久保塚早紀)입니다. 뛰어난 연기 실력을 보이는 마츠다 쇼타(松田翔太)가 쿠보즈카 배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이방도청 내 치안 확보에 필수적인 경찰 쿠보즈카 사키의 영웅적 활약을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묘사한, 당연히 박진감 넘치는 엔터테인먼트 드라마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엔터테인먼트 드라마답게 <디아스폴리스-이방경찰->은 재미있다. 이방인들 사이의 알력이나 외부와의 트러블을 해결하는 패턴으로 스토리텔링이 꾸며지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스토리의 동적(動的) 전개가 시청자의 흥미를 끌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다. 외국인, 범죄, 지하조직 등이 매개(媒介)인지라 불꽃튀는 액션도 아주 볼 만하다.
거기에다 쿠보즈카 사키를 보좌하는 스즈키 히로타카(鈴木博隆)배역의 하마노 겐타(浜野謙太)의 감초 연기(甘草演技)도 시청의 즐거움을 쏠쏠히 안겨주기에 그만이다.
따라서 <ディアスポリス-異邦警察->는 잘 만든 오락작품이 아닐 수 없겠다. 오락작품이라면 킬링 타임用 드라마로 간단히 평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의 미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 데에 있다.
왜냐하면 <이민移民>이란 민감한 소재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물론 원작이 「모닝」에 연재되었던 2006년은 日本人들이 아직 <외국인 정주자>들에 대해 생활 속에서 "아, 이거 외국인들이 많구나!" 하고 간단히 실감하긴 어려웠겠지만, 레이와(令和)인 지금은 일상 속에서도 체감하기 쉬울 정도가 됐다.
취업비자 문호를 비롯해 영주 자격도 완화하고 있으니, 외국인들은 이제 일상의 소품처럼 자연스러운 존재가 된 셈이다. 뭐, 273만 명이 넘는 정주자(定住者)들이 있으니 그건 두말하면 잔소리이겠다. 그야말로 역대 최고다.
앞으로도 이민자들은 더욱 가파르게 늘어날 전망인지라, 日本社会는 외국인들이 수월하게 공동체에 적응될 수 있도록 매우 애쓰고 있다. 예컨대 외국인이 범죄에 연루되어 재판에 넘겨졌을 경우를 상정한 <사법 통역>에도 지원책이 나올 정도다.
물론 日本은 아직 米国이나 캐나다 같은 이민국가가 아니다. 외래인(外來人)이 日本에 정주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까다로운 연유는 외래인들을 확실하면서도 제대로 日本社会에 적응시키기 위해서이다. 사회의 조류가 <조화>에 있으므로 外來人들을 社会에 적응시키기 위한 日本人들의 노력은 가일층 진지할 수밖에 없다.
언뜻 생각하면 日本은 원래 자기 정체성이 확실하고 독자문명을 구축해 온 문명권인지라 外來人에 대해 배타적이란 편견을 가지기 쉬운데,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日本은 고대부터 外來人에 관대했습니다. 천황에 귀속되면 臣民이란 의식이 고대부터 정착되어 신분 질서를 유지시키면서도 포용력과 개방성을 遝至해 냈기 때문입니다. 임진전쟁 때 바다를 건넌 조선 피로인(被虜人)들이 정착한 사례들은 단적인 예입니다. 명나라가 망했을 때의 대륙 유민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컨대 이런 사례를 보면 고대부터 얼마나 많은 외래인들이 건너갔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게다. 그러니까 고닌(弘仁) 6년(815년)에 천황의 칙명에 의해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이 편찬됐는데, 1182개 씨의 본계를 분류하면서 시조를 밝혀내 기재했던 책이다. 여기에 대해 <신황정통기神皇正統記>는 이렇게 말한다.
<삼한, 중국과 통교한 이래 그 나라 사람들도 다수 일본에 귀화하였다. 진나라와 한나라의 후예, 고구려 백제의 사람들 그 외 번인의 자손들도 왔다…… 그 유래를 밝히기 위해 성씨록이란 서적이 만들어졌다,>
사실 대륙이나 반도에서 열도인 日本으로 건너 간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육로가 아닌, 험난한 해로(海路)를 반드시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고대부터 바다를 건넜다는 것은 그곳이 크고 개방적이란 방증(傍證)에 다름 아니다. 그 단초가 바로 귀화(歸化)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歸化란 어진 왕의 정치에 감화되어 그 나라의 신민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국적이나 혈통을 불문하고 누구라도 귀화하면 신민으로 받아준다는 얘기다. 이것이 바로 쇼토쿠 태자(聖徳太子) 이래, 열도에 구축된 和의 정신이다. 이를 감안하면 당대 日本人들이 자신들의 天皇과 外來人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가 쉽게 유추될 수 있을 게다.
日本의 개방성과 포용력은 이렇게 역사적으로도 깊이 구축되어 있어, 솔직히 지금보다 더 많이 이민자들을 받아들인다 해도 부작용만 속출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이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나 편견을 가진 분들도 적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임진전쟁 때 日本으로 건너갔거나 끌려간 조선 피로인들의 상황을 한 번 살펴보자.
당시 임진전쟁이 일어나게 된 간략한 정황은 이러했다.
1587년 규수를 평정한 뒤부터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과 인도 정벌까지 구상했는데, 그 첫 번째로 조선의 복속과 명 정벌의 선도 역을 조선에 요구해 왔다.
조선은 1590년 히데요시의 천하통일을 축하하는 사절단을 파견시켰다. 히데요시는 조선왕이 직접 건너오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으며, ‘정명가도’로 윽박질렀으나 명의 화이질서에 속한 조선은 이것을 단연코 거부했다.
그리하여 1592년 유례없는 세계최대의 상륙작전이 감행, 임진전쟁이 발발되었다.
개전 초기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바치는 다이묘들이 이끄는 군대가 호랑이의 기세처럼 파죽지세 진군하자, 겁이 난 명은 '日本과 조선이 짜고 공격해오는 것'이 아닌가, 라고 의심했다. 워낙 진격속도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