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화려한 눈매의 요리코씨>의 한 장면(풀처:네이버검색)
가마쿠라 막부 말엽, 日本 3대 수필의 하나인 도연초(徒然草)의 저자 요시다 겐코(吉田兼好)의 형제로도 널리 알려진 승려 지벤(慈遍)은 자신의 저서 <구사본기현의旧事本紀玄義>에서 이런 견해를 밝힌다.
<무릇 日本은 삼계의 근본…… 日本은 곧 종자 싹과도 같다. ……중국은 가지와 잎이며, 인도는 열매를 맺었을 따름이다.>
그런 토양이라서 천하인이 된 히데요시의 경우, 천축과 지나를 정벌하겠다는 포부를 거침없이 표출시키고도 남았을 테다. 예컨대 당대 히데요시가 각국에 보냈던 친서들을 보면 그 점을 한층 실감할 수 있겠다.
「그때 히데요시는 류큐(오키나와)를 위협해 입공하게 했으며, 스페인이 침략했던 필리핀에 1588년, 1591년, 1593년 세 차례에 걸쳐 입공을 촉구했으며, 대만에도 강경하게 입공을 명령했을 정도였답니다. 이런 내용들입니다.
<남만과 류큐는 매년 토산물을 바쳐 바다와 육지에 배와 수레가 통하며 나의 덕광을 우러러본다. 그럼에도 너희가 아직 막부에 들어오지 않으므로 너희 죄가 하늘에 다다른다>
<만물을 생장케하는 것도 태양이고, 만물을 고갈케하는 것도 태양이니 이를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당대 지나의 사서인 <明史> 권 322<외국전>에는 여기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를 정복하고 류큐, 루송, 센루오, 포랑지 등 여러나라를 위협하여 공물을 바치게 하였다. 연호를 분로쿠로 고치면서 중국을 침략하고 조선을 멸망시켜 점유하려 하였다> 하면 구미각국에 대해선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국학자 아이자와 세이시사이(會澤正志齊 1782-1863)는 <新論>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우리의 신국 日本은 태양이 떠오르는 곳, 원초적인 에너지가 비롯되는 곳이다. 이는 위대한 태양신의 후손들이 태초부터 변함없이 만세일계의 황통을 이어받아왔기 때문이다. 日本은 세계의 머리에 해당되므로 만방의 기준이 되는 나라이다. 그리하여 日本은 세계 곳곳에 그 빛을 비추지 않는 곳이 없으며 아무리 멀리 떨어진 곳이라 하더라도……중략……황덕(皇德)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기껏해야 세계의 발과 다리에 불과한 서양 오랑캐들이 오늘날 바다를 가로질러 몰려들어 다른 나라들을 발밑에 짓밟고, 가늘게 뜬 눈과 절름대는 다리로 감히 고귀한 나라들을 유린하고 있으니, 이 어찌 오만함의 극치가 아니랴!>
이번에는 권력자나 학자가 아닌 일반 斯民들의 인식도 한 번 살펴보자. 새 연호 레이와(令和)의 출전이 되어 한국에도 일약 유명해진 고전인 만요슈(萬葉集)를 보면,
「오토모 야카모치(大伴家持717-785)님이 편찬한 와카집입니다.
와카집으로서는 가장 오래된 저작물인데요, 전체 20권으로 구성되어 천황부터 사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남긴 와카 4,500여 수를 수록했습니다.^^」
그중에 8세기 중반(737년)의 거지가 걸식을 하면서 읊조린 와카가 흥미로워 게재해 본다. 내용은 이러하다.
<오랜만이오, 여러분
가만히 있다가 어디로 갈까 하다가,
삼한에 있다는 호랑이라고 하는 신을 사로잡아서
여덟 마리나 잡아와서
그 가죽으로 자리를 만들어
여러 겹의 자리를 만들었느니>
16권 3885번의 노래이다. 물론 노래의 작자가 정말로 바다를 건너와서 호랑이를 8마리나 잡아갔다고는 덜컥 믿긴 어려우나, 그 내용만큼은 호쾌하기 이를 데 없다.
일단 노래의 작자도 귀족이나 승려가 아닌 사민, 그것도 거지라고 하니 이 의미 또한 여간 예사롭지 않다. 생각해 보자, 천하의 중심이 자기들이라는 인식이 체화되어 있지 않다면 바다 건너의 세계를 결코 가벼이 보지는 못할 테다.
물론 지나의 책봉체제 국제질서에 편입된 쪽의 입장에선 이러한 日本의 인식 근간이 불쾌할 수도 있고, 다소 황당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자신들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가치관을 ‘국제질서’ 속에서 1천년 이상이나 지속시켜 체화, 뜨겁게 발현했으니 日本人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겠다.
거기에다 이러한 日本의 인식을 한낱 망상에 지나지 않다며 가볍게 치부될 수도 없는 것이 日本의 존재감 또한 남다르고 자별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명(明)이 망하자 나라 잃은 유신(遺臣)들이 반청복명을 위해 日本에 구원군 파병을 거듭 부탁했던 점이나, 대만에서 네덜란드를 몰아낸 정성공 일족도 반청복명 전쟁을 도와달라고 수차례 간청했던 사례들을 보더라도 그 존재감이야 익히 실감할 수 있다.
어디 그뿐 만인가. 대항해 시대부터 日本을 방문한 서양인들의 극찬 세례들을 보더라도 존재감에 있어선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따라서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日本人을 바라본다면, 日本人은 물론이고 교토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해석하는 데에 용이해질 수 있을 게다. 왜 옆집 앞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이 오히려 무례한 일이 되는지, 그들의 에토스를 깊이 이해하는 첩경이 된다.
거기에다 고래로부터 비슷한 화이관이 가치관(價値觀)의 근저에 구현되었다 하더라도 日本人과 지나인(支那人)이 보이는 행동양식의 차이도 매우 흥미롭다. 그렇잖을까. 단적으로 지나인들은 안하무인 종자들이 많아 관광객으로 외국에 나가더라도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한 반면, 日本人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점도 예로 들 수 있겠다.
역시, 앞에서 강조했듯이 <엄격한 자존감의 유무(有無)가 차이의 척도>일 테다. 엄격한 자존감이란 성찰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은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 그것이 진정한 자존감이다.
교토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양식의 원천 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小生은 교토 사람들의 행동양식의 원천을 화이관의 구현이란 관점에서 해석했는데요,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떤지요?
아무튼 <화려한 눈매의 요리코씨はんなりギロリの頼子さん>는 교토 아니 日本人의 행동양식을 이것저것 사색하게 만드는 작품임은 분명합니다. 또 교토가 배경이라 어떤 미장센이든 시선에 부드럽게 안겨들 수밖에 없습니다. 아름답습니다. 눈도 즐거워지는 드라마, 일거양득입니다
하여 이 드라마를 추천합니다..^^ 다들 즐거운 주말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12.28 13:32교토인이 겉과 속이 다른 걸로 일본 내에서도 매우 유명하던데 사실입니까?
12.28 13:55어이쿠.^^ 그렇게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신 듯합니다. 그러나 小生이 본문에서 밝혔듯이 겉과 속이 다르지 않습니다. 격식과 기품이 워낙 엄격한 곳이라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 매우 섬세할 따름이지요. 이를테면 당신 참 못생겼네, 이렇게 말하는 교토인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물론 말종들 빼고요.^^) 당신은 상당히 개성적으로 생겨 독특한 인상입니다. 뭐, 이런 식의 말이라 생각하면 될 듯. 그만큼 타인의 감성을 배려하고 있다는 방증이지요. 그리고 상대에게 겉과 속마음을 함께 표현할 수 있을까요? 小生은 적어도 아닙니다. 타인의 정서를 헤아리기 때문이지요. 예의가 없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예컨대.타인의 정서에 대해 둔감한 것은 공동체적 교감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12.28 1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