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곶이 이케바나를 다룬 드라마 <타카네노하나>의 한 장면(출처:네이버검색)
오해하시거나 잘못 아시는 분이 계시는 듯하여, 헤이안 시대에 대해 간략히 얘기해 봅니다.
일단 日本의 시대 구분부터 해 보지요. 학계의 평가에 따르면 이러합니다.
‘야마토-아스카-하쿠오-나라-헤이안-가마쿠라-남북조-무로마치-아즈치모모야마-에도-메이지-다이쇼-쇼와-헤이세이 그리고 지금의 레이와’입니다.
小生이 지금 이야기하는 헤이안 시대는 간무천황께서 헤이안쿄로 그러니까 지금의 교토입니다^^ 794년 천도한 이래, 미나모토노 가문이 가마쿠라에 막부를 설치하기까지의 1185년까지의 시기를 말합니다.
전 세계의 학계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훌륭한 장편소설이라 평가받는 <겐지모노가타리>가 출간된 것이 1010년이니, 그 작품에는 헤이안 시대의 모든 특색이 집약되어, 아려하게 표현된 그야말로 헤이안 시대의 정수가 담긴 결정판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럼 헤이안 시대의 특징을 한마디로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깊이 있는 화려함입니다. 가장 일본적인 미의식이 응축되어, 일본식 미학이 뿌리를 내려 극도의 아름다움이 만개되었던 시대라는 겁니다.
예컨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와쿠쇼 즉 일식과 일식문화가 자리 잡은 것도 이 시기였다는 것이고, 문학과 미술, 음악, 건축, 패션에 이르기까지 일본 미학의 정점이 뿌리를 내려 현대일본으로 전승되었다고 해도 크게 과언이 아닙니다.(드라마 <타카네노하나>의 매개로 작용하고 있는 이케바나의 원형도 이때 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헤이안 시대의 초기만 해도 지나(중국)의 문화적 영향 즉 ‘당풍’이 꿈틀대긴 했지만 894년 견당사 폐지로 알 수 있듯 ‘국풍’이 일본전역에 체화되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문학과 미술에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왔는데요. 히라가나와 가타가나가 정립된 것도 901년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문자를 가지게 된 일본인들은 더욱 크고 깊고 넓은 문화 활동을 향유하게 되는데요, ‘日本化’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대세였고 추세였습니다.
그래서 헤이안 시대에 불어 닥쳤던 그 거대한 기류를 ‘국풍’이라 하는데요, 이를테면 당나라 풍의 그림 기법 가라에(唐絵)가 야마토에(大和絵)로 바뀌어 정착되고 가라우다(唐歌∙漢詩)가 쇠퇴하고 와카(和歌)가 거세게 부흥하여 귀족의 필수적인 소양이 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후지와라 가문의 섭정 아래 국풍이 구축되었다는 것인데요, 귀족 주도의 ‘깊이 있는 화려함’이 당풍을 종결시킬 만큼, 독특한 고유의 문화적 자신감으로 가득 찼기 때문으로 사료됩니다.
물론 일본식 화이관은 야마토 시대부터 넘쳤으나, 이 시기가 ‘무력’에 의존했던 경우라고 보면, 헤이안의 화이관은 명실상부 ‘총체적 콘텐츠’로서의 역량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전 시대에 비해 문화는 한층 세련되어지고, 고상하며 우아하게 고고해집니다.
예컨대 시가에서 전 시대의 <만요슈>가 소박하고 강렬한 표현이었다면 이 시기는 절제된 화려함의 깊이를 보여주거든요.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드네
사초(莎草)에 뒤덮인 들판만 펼쳐져 있는
후시미 마을의 가을 저녁>
와카의 저자는 미나모토노 도시요리입니다. 귀족이 아닌 무가의 시가마저 이렇듯 섬세하고 아려합니다. 헤이안 시대의 무가다운 와카이지요^^
무가들마저 귀족들의 미의식에 고취되어 버린 것이 헤이안 시대라고 보면, 서구의 학자들이 <서구의 어떤 것도 헤이안 시대 이래 일본인의 삶과 역사에서 미학이 차지했던 역할에 견줄 만한 것은 없었으며, 세련된 감수성에서 비롯된 미야비의 정신은 지금도 여전히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라고 경탄하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닙니다.
미야비(雅)는 우아하고 절제되어 암시적인, 즉 깊이 있는 화려함이라는 의미라고 小生은 생각합니다.
그래서 헤이안 시대의 대표적 저작물인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는 이러한 극도의 아름다움을 쫓는 토양에서 집필된 것입니다.
저자는 귀족의 딸로 태어난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입니다.
세계 최초의 장편소설입니다. 현대적으로 보면 200자 원고지 5200매(일본어는 띄어쓰기가 없으므로 그 이상으로 보아야 됩니다)의 장대한 분량입니다. 한마디로 주인공 히카루 겐지가 출중한 외모로 수많은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는, 연애소설^^입니다.
당대의 문화의 미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걸작이라 칭송받습니다. 한국에도 번역본이 나와 있어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히카루 겐지가 세인들의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가 헤이안 당대의 모든 덕목을 갖춘 전형적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출중한 외모에서 깊이 있는 학식과 빛나는 가인의 재능까지. 그야말로 현대판 이케맨(いけめん)의 모든 요소를 갖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겐지모노가타리>는 헤이안 시대를 비추어 볼 수 있는 소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작품의 저자 무라사키 시키부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늦은 나이에 후지와라노 노부타카와 결혼했으나. 그가 병사하는 바람에 결혼 생활은 3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겐지모노가타리>는 독신생활 중에 집필되었습니다.
그럼 결론을 맺지요. 헤이안 시대는 한마디로 국풍이 정립되어 모든 문화 행위에 있어서의 의식과 격식, 품격이 고도화된 시기라고 평가할 수 있겠는데요, 즉 궁극의 경지 ‘도’(道)를 문화 생산 계층들이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이케바나가 달리 카도오(花道)라고 불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덧붙여, 헤이안 이래 구축된 ‘미야비’를 소비하는 문화대중은 가마쿠라, 무로마치, 에도를 넘어 현재에도 日本에서 거대하게 존재하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문화를 소비하는 그들이 현재의 日本文化를 구축시킨 셈입니다. 그래서 ‘화풍(和風일본풍)’은 여전히 건재할 뿐만 아니라 도도히 발전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전통과 미의식은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참고로 日本은 607년 스이코 천황 때 수양제에게 <해 뜨는 곳의 천자가 해 지는 곳의 천자에게 편지를 보내오>라는 국서를 보낸 이래, 지나(支那)를 추종한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의 화이관으로 세계와 자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日本의 화이관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글로 게재하겠습니다.^^
하면, 아침커피를 마시며, 와카 한 수를 읊조려 보렵니다. ^^
<세상에 벚꽃이 없었다면 봄의 마음이
이토록 설레지 않았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