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징징대는 녀석들은 사내답게 무간의 종을 칠 수 있을까?(1)
  • 유지군(220.87)
  • 2019.12.2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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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비브리아 고서당의 사건수첩>의 포스터(출처:네이버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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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책을 좋아하시는지요?

특히 오래전에 출간되어 손때 묻은 책들을 보면 어떤 감흥이 드십니까? 小生은 중고 서점에도 자주 들러 케케묵은 책들을 구경하는 편이라, 새 책도 좋고 중고 서적에도 감수성이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 복고적입니다만, 레트로(レトロ)의 정조(情操)를 즐기는 취향을 가졌으니 고서점(古書店)에도 애정을 듬뿍 가지고 있답니다.^^

그런 小生인지라, 좋아하는 드라마들 중에서도 유독 애착이 큰 작품들이 있다. 그중에 <비브리아 고서당의 사건수첩ビブリア古書堂事件手帖>이 떡하니 존재한다. 2013(平成25) 후지TV에서 제작, 방영한 작품이다.


원작은 동명 소설인데, 보통 라이트 노벨(ライトノベル)로 분류된다. 미스터리 장르로서, 일러스트는 소녀만화(少女漫画) 이다. 그래서 깔끔한 畫風이다. 소설보단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도 독서하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하니, 2019년 현재, 시리즈 총계의 누적 판매부수가 645만 부를 훌쩍 넘었다.


오호, 부럽습니다. 축하합니다.^^

물론 헤이세이 25년에 방영된 드라마 시청률도 평균 11.4%를 기록할 정도로 선방했다.

소설이나 드라마나 제목부터 정적(靜的)인 분위기가 짙다. 서적에서 動的인 기운을 느끼긴 어려운 판국에 고서점에서의 사건수첩이라 하니, 미스터리 애호가라면 제목을 통해서도 이야기 구조를 적절히 유추시키고도 남을 테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 중의 하나는, 중후하기 이를 데 없는 의고풍(擬古風)의 고서점과 절묘히 어울려 보이는 예스러운 도시 가마쿠라(鎌倉).

무사 계급이 처음으로 막부(幕府)를 열었던 도시다. 교토를 뒤로 한 채 수도의 기능을 힘껏 발휘했던 셈이라 일종의 고도(古都). 만약 도쿄가 배경이었다면 빈티지한 느낌은 훨씬 덜했을 터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 내러티브의 전개도 보통의 미스터리와는 달리 연쇄살인사건 따위를 다루지 않는다. 매 화 심각하지 않다. 이런저런 책에 얽혀 있는 소소한 일상 속의 사소한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패턴이기 때문이다. 제목의 이미지와 어긋나지 않는다. 플롯도 언뜻 보면 헐렁해 보인다.(허나 한 치의 빈틈도 없다.)

박진감 넘치고 살벌한 서스펜스와 미스터리를 기대했던 분이라면 적잖이 싱겁게 느껴질 만하다. 허나 기존의 미스터리와는 다른 심심한 양상이 책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에겐 오히려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특히 小生처럼 낡은 책과 고서점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 드라마는 최적격이다.

그야말로 앤티크 카페(antique café)에서 커피를 음미하는 일상의 느낌과 다를 바 없다. 깊은 즐거움과 넉넉한 평안을 준다.

과장이 아니냐고요? 천만에요, 책을 좋아하신다면 일단 보세요. 서술편집(敍述編輯)적 구성과 그 미장센은 정말로 앤티크 카페에서의 정조를 흠씬 느끼게 하기에 충분합니다. 여타의 미스터리 드라마와는 다른 미학적 느낌이랍니다.^^


이를테면 3화가 작품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일례다. 고서점을 찾아온 사내, 용모와 거동이 어색하기 짝이 없다. 마침 근방에 교도소를 탈주한 죄수가 출몰했다는 으스스한 보도(報道)도 나온 참이다. 그런데 사내는 뉴스에 나온 탈주범과 비슷한 행색이다.

사내의 이름은 사카구치 마사시(坂口昌志). 서점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는 이상하게 바깥을 신경 쓰는 눈치이고, 도서 매매장(売買帳)에 적은 성함과 주소의 글자도 마치 희석식 소주를 네댓 병 들이마신 주정꾼이 마구 휘갈긴 듯 어지럽다.


게다가 도서 감정이 금방 끝난다고 말했음에도 다음 날 오후 4시에 다시 찾아오겠다며 서둘러 서점을 나간다. 누가 봐도 위화감이 넘치는 행동이다. 그래서 탈주범이란 의심까지 받기에 이른다.

그런 사내가 팔려고 내놓은 책, 비노 그라도프(Ivan Matveyevich Vinogradov)<논리학입문論理学入門>이다. 그것도 문고본(文庫本)이다.


여기서 더 수수께끼 같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손님이 고서당을 방문한다. 여자다. 이름은 사카구치 시노부(坂口しのぶ).

그녀는 사카구치 마사시의 아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남편이 팔려고 내놓은 책을 돌려달라고 요구한다. 부부의 푸른 추억이 세월과 함께 오롯이 묻어 있는 소중한 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 아닌 이상, 책을 간단히 돌려줄 수야 없는 노릇이다.


고서당의 店員 고우라 다이스케(五浦大輔)로선 난처하고 곤혹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그녀는 얼른 책을 낚아채듯 수중에 넣고 총총 사라진다.

곤란해진 것은 고서당 쪽이다. 아무리 부인이라지만 사카구치 본인이 맡긴 책이라, 서점으로선 책을 되찾아야 할 입장에 놓인다.

그런데 무슨 곡절이기에 남편은 책을 팔려 하고, 아내는 반대로 되찾으려 할까?


수상한 거동을 보인 남편의 비밀은 무엇이며, <논리학입문>에 얽힌 아내의 추억은 무엇일까? 큰 사건이 아닌데도 보고 있노라면 그 이후의 전개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부부의 비밀을 밝혀 나가는 과정의 디테일이 섬세하여 몰입도(沒入度)가 명산(名山) 온타케(御嶽山)처럼 높다.


그러니 드라마를 보면, 온타케에 올라 깊은 감동을 머금었던 작가 후카다 규야(深田久弥1903-1971)로 순식간에 돌변해 버린다. 속절없이 가슴마저 벅차오르기 십상이다.

더 이상 서술하면 스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해지므로 이후의 향방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드라마를 보시길 바랍니다.^^ 감상하는 시간 내내 후카다 규야 선생으로 빙의되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이런 패턴으로 매 화 각각의 책이 소개되는데, 그것에 버무려져 있는 하나하나의 사연과 그리움이 애틋하기 그지없다.


예컨대 2화에서는 코야마 키요시(小山清)<이삭줍기落穂拾>, 4화에서는 미야자와 켄지(宮澤賢治1896-1933)<봄과 수라修羅>이다.

특히 미야자와 선생은 <은하철도의 밤銀河鐵道>으로 애니메이션의 걸작 <은하철도999銀河鉄道999>의 원안(原案)을 제공한 것과 다름없으므로, 애니메이션 팬들에겐 4화의 감동과 감회(感懷)는 한층 깊고도 새로울 것 같다.

따라서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비브리아 고서당의 사건수첩ビブリア古書堂事件手帖>은 노스탤지어의 유려한 안내서(案内書)에 다름 아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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