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책 간단 리뷰)나치즘: 열광과 도취의 심리학
  • 굽이굽이
  • 2019.12.08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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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마르크스의 "나치즘: 열광과 도취의 심리학" 책에 대한 간단 리뷰입니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로버트 팩스턴 교수가 집필한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과 함께 읽으면 좋은 것 같네요.


로버트 팩스턴 교수가 파시즘의 체제와 전개 양상을 치밀하게 추적했다면, 이 책은 나치즘에 동조하고 가담한 사람들의 심리적인 분석에 치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로버트 팩스턴 교수의 저서는 대중 일반에 파시즘, 파시스트라는 용어가 너무 광범위하게, 그리고 오용됨으로써 파시즘의 본질이 흐려지는 것을 경계하며 집필되었다면,


슈테판 마르크스의 이 책은 나치즘을 경계함과 동시에 당대 사람들의 인터뷰와 그에 따른 심리학적 연구를 통해 나치즘을 고찰합니다.


지금은 "나치즘: 열광과 도취의 심리학"에 대한 간단 리뷰이니 이에 집중해서 적어보겠습니다.




1. 나치즘에 대한 계몽 교육의 역효과


슈테판 마르크스가 현재 우려하는 사항은 나치즘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가 부실하다는 점과, 그에 따른 나치즘 관련 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나치즘의 발호에 대한 원인, 그에 따른 대응이 잘못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나치즘을 반성하고 경계하고자 시행되는 교육에 있어 역효과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결과, 나치 정권 시절에 대한 반성하고 이를 재고하자는 취지로 독일 학교에서는 나치 관련 주제에 상당한 교육 시간을 할애하지만 정작 이러한 교육에 따른 성과는 미미하고 비생산적인데다가, 불투명했던 나치 정권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을 오히려 긍정적인 호기심과 매력으로 치환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슈테판 마르크스는 '매체로 인한 전염'이라고 묘사합니다.


나치 정권이 실시한 프로그램 중에서도 매체가 상당한 역할을 수행했는데, 나치 정권은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효과를 활용하여 군중을 선동하고 조종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교육에서는 대부분 시각적인 부분, 즉 영상 매체에만 관심을 고정시키고 계몽시키려 한다는 겁니다. 이렇듯 대응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이를 경고하고 있습니다.


즉, 슈테판 마르크스는 나치 정권의 프로파간다를 위해 제작된 영화뿐 아니라 그 시절에 제작된 영화 역시 교육 매체로 선택될 위험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나치 시대에 의도적으로 제작된 음악의 암시적인 효과가 아무런 여과 없이 수업 시간을 통해 전파되지요. 이 때문에 슈테판 마르크스는 '전염'이라고 묘사하는 겁니다.



2. 수치심에 따른 나치즘의 발호


슈테판 마르크스에 따르면 나치즘의 발호에는 국가적, 개인적인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고 하는데요. 독일의 1차 대전의 패배와 승전국들의 강압적인 태도, 국내 경제와 정치의 불안정, 그리고 그에 따른 국민적인 여론이 수치심으로 침식되었다는 점을 국가적 영향으로 지적합니다.


다시 말해 국가적 패배에 따른 국민들의 수치심 공유, 독일에 대한 승전국들의 강압적인 태도에 따른 패배감 상승과 같은 부분이 나치즘에 힘을 실어줬다고 보는 거죠. 그리고 나치 정권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였고 결국 정치적 영향력 강화에 그대로 써먹죠.


그리고 개인적인 영향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영향은 보통 세대를 따라 공유될 가능성도 내포하는데, 1차 대전에 참가했던 군인이 가정에서는 가부장이 되어 자식과 자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의 패배에 따른 충격은 반유대주의 및 민족주의를 오히려 강화시켰는데, 이러한 성향과 태도가 자식에게도 전이된다고 분석합니다. 특히 당대에는 엄하고 가혹한 가정 교육 관행이 있었기에 상하 수직적인 의식까지 형성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를 나치 정권에서도 다양한 조직 (히틀러소년단, 히틀러청년단, 무장친위대 등)을 설립하여 이용했다고 봅니다.


이러한 수치심은 나치가 여러 조직의 훈련에서도 활용했는데, 일부러 장애가 있는 사람을 훈련 교관으로 선정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면 당사자는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훈련 참가자들보다 더 가혹하게 훈련을 받고,


또 그 수치심을 방어하기 위해 훈련 참가자들을 더 가혹하게 대하고 수치를 주게 됩니다. 그러면 훈련 참가자들은 개인적인 수치심을 해소하기 위해 훈련을 극복하려 애쓰거나, 또는 전쟁에서의 명예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또한 나치 정권은 국가적인 수치를 해소하는 수단으로써 유대인에 대해 더 큰 수치를 안겨주고, 타국을 침략하고 공격했다고 합니다. 결국 나치는 승전국이 조장한 수치심을 잘 활용한 셈이 된 것이죠.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해 독일의 1차대전 패배와 승전국들의 태도가 결정된 시점부터 이미 나치즘은 예견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죠.



3. 구원자로써의 히틀러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히틀러를 신격화하고, 나치의 업적을 강조하면서 합숙을 통해 당대 독일인들의 집단 의식, 그리고 민족주의를 강화시키고자 했다고 합니다.


많은 인터뷰 대상자들은 여전히 히틀러를 "퓌러", "그 분"이라고 지칭하였고, 심지어 본인 스스로는 히틀러와 나치의 범죄와는 선을 그으면서도 인터뷰 중에는 히틀러에 대한 경외심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그 분을 직접 보기까지 했다", "강렬한 시선에 매료되었다"라는 진술로 암시됩니다.


히틀러는 세속적인 권위와 신적인 기원이 결합된 존재로써 나치 프로그램에 묘사되었고, 특히 히틀러가 독신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초월적인 존재로 왜곡시켰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4. 홀로코스트에 대한 인식


나치 상층부의 잘못인가? 아니면 그 문제에 가담했던 자들의 잘못인가? 그도 아니면 모든 독일인들의 잘못인가?


이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기에 후대의 독일인들조차 소위 "침묵하는 언어"로 답변을 회피한다고 합니다. 즉, 주체와 행위에 대한 진술을 모호하고 부정확하게 하는 거죠.


그리고 홀로코스트와 이에 대해 기억을 논할 때면 거의 대부분 "피해자의 기억"에 대해서만 의미한다는 것도 문제라고 합니다. 과거 나치즘 추종자들의 기억은 당연히 배제된 상태인 겁니다.


그 이유는 '이에 대한' 기억이 여전히 금기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슈테판 마르크스는 피해자의 기억뿐 아니라 가해자와 동조자의 기억도 시급히, 그리고 심도 있게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5. 독일인들은 반성하고 있는가?

당대 나치 정권에 순응하거나 동조하고 가담했던 이들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자신이 나치주의자라고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코스트 문제는 본인에게 책임이 없으며 오직 자신의 일에만 충실했다고 주장하는 자도 있었고,

나치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반유대주의, 민족주의를 지닌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치즘에 대해 직접적으로 지적하여 질문할 경우 대다수는 "자신"이라고 명확하게 지칭하기보다는 "사람들"이라고 지칭하거나, 타인의 말을 인용하듯이 진술했다고 합니다.


이는 다시 말해 나치 정권 시절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회피하고 전략적으로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입니다. 대중의 비난을 의식하는 것으로 봐도 무방한 것이죠.


또한 적극적으로 객관적인 정보를 취득할 수 있었음에도 수동적으로 행동했던 사람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이 반성의 의미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특히 독일 민족 외의 집단에게는 가혹했을지언정 적어도 독일 민족이라는 집단 내에서는 평등하고 상호 조화적이었기에 이러한 반성의 요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 세대도 상당하다고 보는 중입니다.



6. 이 책이 한국인들에게 주는 메세지


전에 제가 쓴 글에서도 한국의 일민주의는 초대 문교부 장관인 안호상에 의해 기획되었다고 설명한 바 있죠. 문제는 현대 한국의 쇼비니즘의 뼈대가 되는 이 일민주의가 나치즘의 체제를 그대로 본따 만든 것이고, 이게 아직도 유효하게 수용되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 원시성과 종속성이라는 부분에 특히 주목할 만한데, 원시성은 저급하지만 "저급한 나치의 선동에 지성과 교양을 겸비한 사람조차 마음을 빼앗겼고,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백만 독일인의 지지를 받은 나치즘의 정체와 그 성공에 대해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죠.

슈테판 마르크스는 나치당 강령과 그들이 제작한 매체의 지적 수준은 중요하지 않다고 분석합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이성적으로 설득하려 한 게 아니라 독일인들의 심리의 전혀 다른 심층에 호소하려 한 것이기 때문이죠.


합리적인 자아에 호소한 것이 아니라 원초적인 의식을 매료시키려고 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한국의 쇼비니즘은 그 자체로 저질이지만 아마 이러한 분석도 어느 정도 대응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종속성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국민을 억압하는 장치뿐 아니라 감정을 결박하고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킴으로써 의식을 종속시킨다고 분석합니다.


한국의 쇼비니즘에 그대로 적용되지요. 개인적으론 공교육을 통한 세뇌 교육, 광범위한 매체를 통한 세뇌, 그리고 징병으로 정점을 찍는 한국의 쇼비니즘 프로그램도 이와 상당히 유사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외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 소름이 돋았는데, 인터뷰 대상자들의 집단에 대한 태도와 그에 따른 슈테판 마르크스의 분석이 한국인에게 그대로 적용 가능한 부분이 존재했다는 겁니다. 제가 굳이 하나하나 지적할 필요도 없는 거 같아서 그냥 아예 그 일부를 아래에 인용합니다.




"즉 나치의 선동은 언제나 깨어 있으며 의식과 책임감을 가지는 자아로 존재하기 위한 힘든 노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인간의 퇴행 욕구에 호소하고 있었다. 자기의식화 대신 '민족 공동체'에 기반한 거대하고 무의식적인 우리라는 감정에 대중이 융합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동서, p64


"따라서 대중을 설득하기 위한 나치의 프로그램들이 원시적이고 사이비 종교적이고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정신적인 의식의 관점에서 볼 때) 나치의 프로그램들은 원시적이고 사이비 종교적이고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이었기 때문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나치의 프로그램은 고상하고 지적 수준이 높고 차별화되고 교양 있고 합리적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동서, p65


"신경의학자이자 심리분석한자인 솔름스와 신경심리학자인 카플란-솔름스는 심리 치료 시 환자에게 나타나는 무의식 상태의 특징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논리적인 연관성 없이 또는 생각의 종결 없이 한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는 논리적 비약, 화자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모순된 진술들, 의심의 결여, 아무런 논리적 연관성 없이 기억되는 먼 과거의 경험들에 대한 회상, 부족한 자기 관찰과 현실 통제력, 거의 동일한 진부한 표현 방식과 함께 언제나 반복되는 동일한 연상 작용, 공허한 일반화, 추상적 개념, 추상적 암시 속에서 표현되는 언어, 정상적인 논리적 구조와 기능성을 결여한 무절제하고 비전문적인 사고 과정, 논리력과 추상력의 저하, 현상과 관념 사이의 빈약한 연결 등. 그리고 퇴행적인 의식 상태에 빠져 있는 당사자는 불안과 슬픔 같은 감정들을 의도적으로 없애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들은 실제로는 깨어 있으면서도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풍긴다.


우리는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이러한 무의식 상태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서, p104


"(전략)이 즐거운 민족 공동체 속에는 당연히 당시 유대인들이 낄 자리가 없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터뷰 대상자들의 머릿속 민족 공동체에서 유대인들은 배제되고 있었다"

- 동서, p200


"이제 겨우 초기 단계인 대그룹의 역동성에 대한 연구는 대그룹에서는 소그룹에서보다 더 강력한 역동성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그룹에서의 흥분과 열광의 정도는 소그룹에서보다 더 강렬하다. 대그룹은 또한 특별히 감정적으로 더 전염성이 강하며 더 압도적이다. 그리고 대그룹에 속한 개인은 내적으로 완전히 흥분되어 아무런 사유도 하지 않고 도취감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

-동서, p261


"평상시에 생동감 있는 정신을 가진 사람조차도 대그룹 속에서는 의미 있고 이성적인 정신을 통해 기여할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속한 대그룹에서 개인은 자신의 정신적 사고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동서, p262


"(전략)그 효과가 어떠했는가는 비교적 나이가 적은 인터뷰 대상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의 심리가 발전하는 데 있어서 나치즘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우리(저희)'라는 단어 자체가 나치즘에서의 그룹의 중요성을 드러내준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특히 나치의 청년 조직에서의 공동체 체험을 긍정적으로, 심지어 열광적으로 묘사했다."

-동서, p265

  • 9 고정닉 추천수1
  • 0
  • ㅇㅇ(49.168)

    좆센이 유독 심각하긴하지만 솔직히 전세계에서 정치하는놈들치고 나치를 악마집단으로 묘사하는 레토릭 한번 안써본인간들 없을텐데 나치의 정치기술은 정치꾼들 누구나 좋아한다는게 아이러니죠

    12.08 23:32
  • 굽이굽이

    사실 정치기술만 써먹는 거야 그렇다 쳐도 그 사상까지 열화시켜 써먹는 주제에 나치 욕하는 게 가소로울 뿐이죠

    12.08 23:40
  • ㅇㅇ(115.137)

    30년부터 45년 까지의 일본도 저거와 일치했지.

    12.08 23:33
  • 굽이굽이

    일본은 정확히는 민족주의적이라기보단 국가주의적인 성향이 강했고, 파시즘이 창궐한 적은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해선 이미 팩스턴 교수가 지적한 바 있죠

    12.08 23:39
  • ㅇㅇ(115.137)

    전통적인 파시즘 체제하고는 형태가 많이 다르기는 했지만 행동은 비스무리 했으니

    12.08 23:53
  • 굽이굽이

    지금 권위주의 정권 하의 분위기와 파시즘 치하의 여론을 혼동하시는데, 그게 팩스턴 교수가 파시즘의 오용 사례로 경계했던 것 중 하나죠. 권위주의 정권 하 국가주의적인 여론이 팽배했을 때의 분위기가 일제 중기-말기에 해당합니다

    12.08 23:56
  • 굽이굽이

    장제스가 파시즘의 정치 체제와 기술을 본따서 활용했지만 당대 국민정부를 파시즘 정권으로 보지 않고 권위주의 정권으로 해석되고, 스페인의 프랑코가 스스로를 카우디요라고 우상화하고 이탈리아, 독일과 친하게 지내는 정책을 폈지만 권위주의 정권으로 해석되는 것이 타당하듯이, 팩스턴 교수가 지적한 부분이 바로 그런 부분들입니다.

    12.09 00:00
  • 댓글돌이
  • ㅇㅇ(115.137)

    그리고 저책의 내용은 남조선에는 그대로 적용하기 불가능함. 왜냐면 구성원들이 언제나 도주할 경로를 확보하려고 노력중이니까.....ㅋ 이영훈이 정확하게 본거.

    12.08 23:57
  • 굽이굽이

    당연히 그대로 적용은 불가하지만 어느 정도 적용할 구석은 보이는 것 같네요

    12.08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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