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연대 커뮤니티에 올린 글과 반응
  • 굽이굽이
  • 2019.11.2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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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아래와 동일하니 굳이 전부 캡처 안했네요


글 자체는 애국국까 시절에 쓴 거라 지금과 좀 생각이 다르다는 걸 고려해주시길...

그리고 조센징은 다 똑같고 서울대센징, 연고센징 다 센징일 뿐입니다

출처: https://www.seiyon.net/board/anony/+1048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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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도쿄전범재판'을 재검증한다는데…군장성까지 오른 조선인 '홍사익'은 누구?
- 한국경제 2015-12-11 19:32:36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121109581

'전범 멍에' 식민지 조선인 모임 동진회, 슬픈 환갑잔치
- SBS 2015.04.01 16:56

(전략)

한국인 BㆍC급 전범'은 일제가 태평양전쟁 때 태국,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지의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투입했던 조선인 중 일본 패전 후 열린 연합군의 군사재판에서 포로학대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148명을 말합니다.

일본은 3천200여 명의 조선인들을 군속 신분으로 허위 모집한 후 포로 감시원으로 투입했고, BㆍC급 전범으로 지목된 한국인 148명 중 23명이 처형됐습니다.

이들은 한국에서도 긴 세월 '일제 부역자'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했고, 전후 일본 정부의 국적 이탈 조치에 따라 일본 국적마저 상실했습니다.

(후략)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908962&plink=ORI&cooper=NAVER

조선인 148명 종전 후 BㆍC급 전범 판결받았다
연합뉴스 2010-12-28 05:31


정부 진상조사 보고서 발간…"23명은 사형당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기자 = 일제 강점기 당시 포로감시원 등으로 강제동원된 조선인 중 148명이 종전 후 연합국 국제전범재판에서 BㆍC급 전범 판결을 받은 것으로 정부 조사에서 공식 확인됐다.

28일 정부와 징용 피해자단체 등에 따르면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2005년 시작한 조선인 B,C급 전범 진상조사를 마치고 이같은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펴냈다.

연합국의 국제군사재판조례는 B항에서 '통상의 전쟁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B급 전범, C항은 '인도에 반하는 죄'를 지은 사람을 C급 전범으로 각각 규정했다.

전범 판결을 받은 이들은 필리핀에서 게릴라전을 수행한 군인 3명, 일본군 통역자 16명, 포로감시원으로 일한 군무원 129명이다.

이들 중 23명이 사형됐고 나머지는 유기형 처분이 내려져 1947~1957년에 만기 복역하고 풀려났거나 감형으로 석방됐다.

이들의 명단은 일본 후생성이 1955년에 만든 '수형자 명부'에 있다.

전범으로 처벌된 포로감시원은 연합군 포로가 실명을 언급했거나 학대 행위를 증언했을 때 강도 높은 처벌을 받았고 조선인이라는 특수 사정은 배제된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군의 강압에 못이겨 포로를 학대했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범 판결을 받은 이들 중 일부는 일제의 협력자라는 눈총을 받으면서 석방 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일본에 살은 것으로 파악됐다.

위원회는 2006년부터 이들을 강제동원 피해자로 인정했는데, 이는 한국 정부가 전범 재판결과와 상관없이 이들의 피해 사실을 공식화했다는 의미가 있다.

현재까지 위원회에서는 B,C급 전범으로 처벌된 조선인 중 사형자 13명, 일반 복역자 74명이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피해자들이 결성한 모임 '동진회'는 일본 정부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배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은 침묵하고 있다.

yjkim84@yna.co.kr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1&aid=0004839532

일제에 동원된 것도 억울한데 전범 낙인찍힌 한국인
연합뉴스 2014-04-27 13:54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동원한 포로 감시원. 왼쪽 첫 번째 인물이 포로 감시원으로 태국에 보내졌다가 나중에 BC급 전범으로 기소된 이학래(89) 씨. 동진회와 동진회를 응원하는 모임이 26일 도쿄도(東京都) 나카노(中野)구 '나카노제로'에서 개최한 전시회에 게시된 패널 사진을 재촬영한 것임.
도쿄서 한국인 BC급 전범 문제해결 촉구 사진전 열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제의 포로 감시원으로 동원됐다가 전범이라는 멍에를 지고 사는 한국인이 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연합국이 주도한 재판에서 조선인 148명이 BC급 전범으로 분류됐고 이 가운데 23명이 사형됐다.

진주만 공격을 주도한 도조 히데키 등은 A급 전범 14명은 야스쿠니(靖國)신사에 합사돼 극우세력에게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데 반해 이들은 BC급 전범으로 낙인찍힌 삶을 살았다.

한국인 BC급 전범 모여 만든 동진회, '동진회를 응원하는 모임'에 따르면 살아남은 이들 가운데 2명이 자0살로 생을 마감했고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있다.

이학래(89) 씨도 전범 중 한 명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포로감시원으로 태국에 끌려갔다가 전후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8개월간 사형수로 수용돼 있었다. 나중에 20년형으로 감형받았고 모두 11년가량 구금돼 있다가 1956년 10월 가석방됐다.

그는 한국인 전범이 일본이 강요한 전쟁의 피해자임을 인정받으려고 1991년 제소, 오랜 기간 법정에서 싸웠으나 승소하지 못했다.

(후략)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01&aid=0006881299


리콴유의 회고 (박정희를 만났을 때 느낀 감정을 기록한 글 중 일부)

“한국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 한국인들은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점령할 당시 이끌고 온 두 외인부대 중 하나였으며, 다른 외인부대는 타이완인으로 구성됐다. 일본군을 돕고 있던 한국인들은 몹시 거칠게 행동했고, 일본 군인들만큼이나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후략)”

리콴유 자서전 - 내가 걸어온 일류국가의 길 p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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