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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부, 재벌개혁 아닌 재벌체제 강화로 가나?

재벌대기업이 던진 빵부스러기나 주워 먹는 성장…이젠 안된다 

기사입력2019-10-16 19:31
중기이코노미 기자 (junggi@junggi.co.kr) 다른기사보기
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보면, 촛불대선 당시 공약했던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전면 폐기한 듯하다. 나아가 재벌개혁 중단이란 소극적인 수준을 넘어, 재벌체제 강화로 돌아섰다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화성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를 찾았고, 그 닷새 전 10일에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든 생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 산업 국가비전 선포식’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30개월이 안된 오늘까지 9번에 걸쳐 이재용 삼정전자 부회장을 만났다. 인도의 스마트폰 공장을 포함 삼성공장을 3차례 방문했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과도 11번 회동했고, 올해 들어서만 7번의 만남을 가졌다. 신년회·기업인과의 간담회·평양정상회담 수행 등 의례행사를 감안해도, 자주 만났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같은 기간 재계·경영계의 파트너인 노동계 지도자들과 대통령과의 만남이 있었는데,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이런 생각까지 한다. 자주 만나면 귀가 열리고 이해하게 된다고. 재벌총수의 앓는 소리를 자꾸 듣다보니, 대통령에게 부여된 책무는 잊어버렸다. 대통령 자신이 이재용·정의선이 된 듯한 행보가 반복된다. 단언할 수 없지만, 그 같은 추정을 뒷받침할 단서도 있다. 대통령의 말 속에. 

문재인 대통령은 남양연구소에서 열린 ‘미래차산업 국가 비전 선포식’에 참석, “우리의 목표는 2030년까지 미래차 경쟁력 1등 국가가 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전기차·수소차의 신차 판매비중을 2030년 33%, 세계 1위 수준으로 늘리고 세계시장 점유율 10%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국내 미래차산업을 추동할 주력이 현대차임을 감안해도, 너무 나갔고 공허하다. ‘미래차 경쟁력 1등 국가’가 되면, 대통령이 언급한 ‘우리’의 삶이 어떤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이 없어서다.

이날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는 이미 세계 최고의 전기차·수소차 기술력을 입증했고, 올해 수소차 판매 세계 1위를 달성했다”면서 “미래차의 핵심인 배터리, 반도체, IT 기술도 세계 최고”라며 자신감도 내비쳤다. 대통령 말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미래차 경쟁력 1등에 이미 근접했다. 그럼에도 ‘우리’ 대부분은 계층간 극단적인 양극화에 따른 사회적 갈등, 취약한 사회안전망으로 고통 받는다. 심각한 수준의 대·중소기업간 생산성·경쟁력 격차, 그에 따라 99·88로 대별되는 중소기업·소상공인 대부분은 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렸다. 삼성전자·현대차 경쟁력을 세계 1위로 올리려고, 한정된 국가자원을 정부가 이들에게 ‘몰빵’한 결과다.

“삼성이 가전에 이어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늘 세계에서 앞서나가고 있고, 그것으로 대한민국 경제를 늘 이끌어 주고 계셔서 늘 감사드린다.”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한 격려다.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이 이재용이고, 그는 서울고법 파기환송심 최종판결을 앞둔 피고인이다. 국정최고책임자가 뇌물공여죄 등으로 실형 가능성이 높은 범죄자를 치켜세우는 발언을 하는 게 어색하단 말은 않겠다. 하지만 대통령이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같아, 바로 잡았으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이재용 부회장에게 덕담 이상의 칭찬도 건넸다. “디스플레이 핵심장비를 국산화한 중소기업, ‘그린광학’의 사례는 핵심 부품·장비의 자립화라는 면에서도,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이란 면에서도, 좋은 모범이 됐다”는 게 이유다. 그린광학 사례,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수많은 하도급업체 가운데 대통령의 말대로 ‘좋은 모범’일 뿐이다. 그린광학 이외 나머지 하도급업체와 삼성전자 간의 상거래 관행과 이들 하도급업체의 경영사정을 대통령이 알고나 한 소린지 의문이다. 

산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삼성전자 전속협력업체의 영업이익률은 삼성전자의 3분의 1 수준이다. 또 호서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김학수 교수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2017년 영업이익률·영업이익은 각각 47%와 48조9255억원이다. 반면 반도체 후방산업인 소재·장비·부품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영업이익은 각각 5.9%, 8조1816억원에 불과했다. 반도체 재벌기업의 영업이익률은 소재·장비·부품 기업보다 8배 높았고, 영업이익 규모는 6배이상 컸다. 김학수 교수가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슈퍼호황의 낙수효과는 없었다”고 단언한 이유다. 

우리사회가 지금껏 경험한 바에 따르면 재벌그룹 삼성은 ‘상생협력’과는 거리가 먼 기업이다. 다른 재벌기업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삼성은 유별나다.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을 공공연히 부정하는, ‘내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안된다’는 반헌법 사고를 조장하고 장려한 기업이다. 삼성전자서비스의 노조탄압에 항거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 故 염호석씨의 부친을 돈으로 매수했다. 그리고 염씨의 시신을 빼돌린 게 삼성이다. 염씨는 죽음에 앞서 “노조가 승리하는 날 장례를 치러 달라”고 유언했다. 삼성은 고인의 유지를 짓밟고 부자간 천륜마저 끊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면, 대통령은 재벌기업 총수에게 덕담을 건네기에 앞서 책임을 물었어야했다. 100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사내유보금을 쌓아놓은 재벌대기업 총수를 향해, 곳간을 좀 열라고 요구했어야했다. 부와 경영권 대물림을 위한 일감몰아주기를 멈추고, 중소기업에게 사업기회를 주라고 강력히 촉구했어야했다. 대통령이 가진 ‘권한과 명령’조차 행사하지 못할 거라면, 지난 대선에서 재벌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우지 말아야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지만, 국민 모두는 삼성전자가 애플을 능가하는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현대차가 도요타와 폭스바겐을 넘어, 글로벌 Top으로 도약하는데 반대할 국민 또한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가야할 최종 목적지는 삼성전자·현대차가 글로벌시장을 석권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다. 삼성전자·현대차의 글로벌 순위는 낮아도, 이들 기업의 수익이 전후방산업 모든 기업에 ‘공정하게’ 나눠질 수 있는 그런 나라여야 한다. 

대통령도 인정했다. 현대차와 삼성전자 모두 세계 1위에 근접한 경쟁력을 가졌다고. 그런데 같은 나라에서 기업활동을 하는 99·88(중소기업·소상공인)이 아우성을 지른다. 그 원인을 찾아 바로 잡아야 하는 게 대통령의 책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재벌대기업만이 독식하는 그런 성장, 한번으로 족하다. 또다시 재벌대기업이 던진 빵부스러기나 주워 먹으면서 인내할 만큼, 국민 인식수준이 낮지도 않다. 문재인 정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계륵이 되어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중기이코노미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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