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
요즘 남한에는 북송된 22명 북한 주민들의 생사를 놓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난 8일 서해상을 통해 남한에 내려왔던 22명의 북한주민들이 북송된 뒤, 전원 총살당했을 거라는 언론의 보도가 나가자 사실 여부에 주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지난 음력 설날 황해남도 강령군 주민 22명을 태운 고무보트 2척이 표류되어 남쪽지역까지 밀려 내려온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남한 해군은 이들을 인천항으로 데려와 조사를 했고, 의도적인 표류도 아니고, 귀순 의사가 없다는 점을 이유로 이날 오후 6시30분쯤에 판문점을 통해 전원 북송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설 명절이 끝나고 북송된 22명 전원이 총살당했다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남한 정보 당국이 그 사건을 안이하게 처리한 게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조난당한 뒤, 북한이 곧바로“우리 선박 2척이 조난당해 내려갔으니, 돌려보내 달라.”고 요구했던 사실도 확인됐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의 요구를 미리 통보받은 남측 당국이 문제를 크게 하지 않으려고 심도있는 조사를 하지 않고 서둘러 조사해서 이들을 돌려보낸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습니다.
만일 이들 모두가 처형되었다면, 살기가 어려워 집단적으로 탈출했던 사람들을 사지(死地)로 보낸 남한 당국은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고, 북한은 독재국가, 비인권국가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은 “이들은 생계를 위해 굴을 따러 왔던 사람들이 아니라 살 길을 찾아 탈출하려고 했던 사람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특별경비주간’으로 선포된 이번 음력설에 북한 해군이 바다출입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과, 가족 단위로 바다에 나가지 못하게 통제한다는 점을 들어 분명히 자유를 찾아 남한에 오기 위해 떠났던 사람들일 거라는 것입니다.
조사도 너무 급하게 서둘러 설사 귀순 의사가 있더라도 주민들끼리 서로 감시하고 통제하는 북한 사회 특성상 선뜻 남한에 남겠다고 말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을 거라는 설명입니다. 그것도 북한의 요구를 수용해 북송시켰다는 점은 항상 저자세로 임해온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최대 비난의 소지로 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탈북자단체들과 북한인권단체들은 “사건내용을 전면 공개하라”고 정부에 촉구하고, 한나라당도 국회에서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회의를 소집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지금까지 나타난 사건의 전말을 보면 북한 당국이 이들을 반역자로 몰아 처형을 하든가, 아니면 최소한 정치범 수용소로 모두 끌어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집단적으로 탈북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장군님을 배신하는 자들은 이렇게 된다.”고 시범케이스로 총살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의문을 더해주는 것은 북한 당국이 이와 관련한 공식적인 발표나 언론보도가 한마디도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 ‘반공화국 모략소문’이라고 기자회견을 하든가 반발했겠는데, 아직까지 반응이 없습니다.
지난 2000년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북한에 들어갔던 탈북자 유태준씨도 공개 처형됐다는 소문이 돌자, 북한 당국은 직접 그를 기자회견 시키는 등 ‘해명작업’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함구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공개총살의 의문이 더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북한 당국이 밝혀야 합니다. 인간이 자기의 삶을 찾아가는 것은 자유에 속하는 문젭니다. 북한이 말하는 주체사상도 자기 운명을 자기 자신이 개척하는 사상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국가를 사람 못살 생지옥으로 만들고, 살기 어려워 못살겠다고 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가혹하게 처형하는 국가는 오직 북한 밖에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도 조선 사람들이 살 길을 찾아 북간도와 연해주로 떠나가도 일본 순사들이 막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국경을 넘는 것 자체가 최대 범죄이며 배를 타고 남쪽의 강토로 내려온 것도 최고의 범죄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진실이라면 북한 당국은 비난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북한 언론들도 당국의 수족이 되어 본연의 위치를 망각하지 말고 언론의 공정한 입장에 서서 사건의 진위여부를 낱낱이 공개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