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세키가하라 대전투 前夜 土佐国 本山村의 어느 풍경(2)
  • 유지군(220.87)
  • 2019.10.18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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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키가하라>의 출연진들(출처:야후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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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여전히 미소 짓고 있었다.

"허허, 아무리 봐도 상사람 같지 않고, 어디 전통 있는 공가(公家)의 분위기인데, 제법 농민의 애환을 안다니까, 그려. 해서 마음에 들어…… 허허."

"그러게, 자네 말이 맞네. 裕二君의 얼굴이나 행동거지를 보면 교토의 공가나 무가(武家) 출신 같은데 말일세. 시정잡배들이야 저런 와카를 깊이 있게 읊조리진 못하지.

허허, 그건 그렇고 말이 나온 김에 묻네만. 裕二君은 이번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나?“


"이시다님의 벗인 오타니 교부쇼우(大谷刑部)께서 가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말씀이시던가?“


"무사란 질 것을 알면서도 나서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네. 다메히로, 지금이 그때인 게야. 천하를 위해, 유군(幼君)을 위해, 친구를 위해…… 미안하지만 자네의 생명, 나한테 맡길 수 있겠나?


그러자 그 가신이 흔쾌히 대답했다더군요.


이 늙은 목숨이 대의를 위해 쓰이게 되었으니 즐거워 웃음이 나옵니다, 라고요.


그 대화야말로 이번 전쟁의 성격을 가장 극명히 보이는 게 아니겠습니까?

거기서 저는 이번 전쟁의 의미를 봅니다. 필시 여기의 국주께서도 천하의 형세를 오타니 교부쇼우님처럼 판단하셨겠지만, 무사의 길을 올곧게 걷기 위해, 이시다 지부쇼우님과 함께 결의를 굳히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혐오로 세계를 보려는 만무방들과 일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소중한 그 무엇을 지키려 떨쳐 일어나는 사무라이()와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허허허, 그것을 이해하는 자네도 보기 드문 혜안과 마음씨를 가졌네그려. 허구한 날 냇가에 모여 타인의 머릿속 견해를 억압하려는 꼬맹이들의 선민(選民)적 망상이나 증오에 젖은 行脚과는 너무도 다른 거동이로세."

"허구한 날, 이웃을 증오하느라 날밤 까는 시시한 것들과도 다르지. 이를테면 이웃에 역대급 태풍이 온다니까, 온갖 저주와 조롱으로 찧고 까부는 저 가증스런 것들을 보면 혀를 찰 수밖에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裕二君과 같이 관점이 우물 바깥에까지 뻗어 있는 이들도 소수이긴 하지만 분명코 존재한다는 점에서 아직은 이 세상에 희망이란 걸 가질 수 있어. 허허허."


청년은 다시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여보게, 裕二君, 여기 일이 끝나면 어디로 가려는가?"

"에도(江戸]로 가려고 합니다."

"에도?"

"."


"거긴 이번 전쟁으로 시끄러울 텐데."

"갑자기 너구리 얼굴이 보고 싶어서요.“

"잠깐, 잠깐. 너구리? 너구리라면 도쿠가와 나이후를 말하는 것인가?”

, 그렇습니다.”

이 사람아, 누군가 들으면 어쩌려고?”

말조심해야지.”


상관없습니다. 너구리라는 별칭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라면 도쿠가와 나이후는 잡배라 불려도 마땅합니다.”

어허, 그려, 그려, 아무튼 보고 나면?”

보고 나서, 너구리에게 한마디 해주려고요. 당신이 너구리처럼 음흉하게 일신의 사욕을 위해 이번 전쟁에 임한다면 천하의 사민(四民)들로부터 결코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헤에, 이 사람아, 설마하니 나이후에게 정말로 그렇게 말하겠다는 것인가?”

누군가는 해야 될 말이 아니겠습니까? 내친 김에 이렇게도 덧붙이겠습니다.”

뭐라고?”


자기들만 선민이라 부르짖으며, 상대를 악마화시켜, 대중을 결집시키는 행각 따윈 사민들에겐 절대로 통하지 않을 거라고. 왜냐하면 우물 안 개구리라면 모르되, 진실을 찾는 四民의 세계에선 데마고기(demagogy)의 선동은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그것이 진실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더 이상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거든요.

아무리 감성팔이를 하더라도 이제는 날조가 진실을 결코 이기지 못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면 몰라도, 감성이 아닌 팩트를 추구하는 사민들은 결코 개돼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증스런 위선은 무너졌고 순연한 진실이 살아남았다는 것인가? 어허허…… , 그런 말을 나이후에게 하고 싶다는 게야?"

", 너구리에게요. 그것이 바로 언로(言路)가 아니겠습니까? 시대는 달라졌고 세계는 진보하고 있습니다. 깨어 있는 분들은 더 이상 우물 안 개구리로 지내지는 않을 겁니다.

너구리도 그 점을 이제는 인식해야겠지요."


농민들은 서로 눈을 말똥 뜬 채 마주보다가 이내 와하하, 하고 웃음을 함께 터뜨렸다. 天下의 나이후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별명을 이토록 천연덕스레 부르는 이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모처럼 파안대소한 농민들은 햇살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영차, 하며 힘차게 일하기 시작했다. 裕二라 불린 청년도 그들과 함께했다.


때는 게이초(慶長) 5(1600), 천하를 가르는 세키가하라() 대결전이 바야흐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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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지군(220.87)

    역대급 태풍은 이웃에 적지 않은 인명피해를 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태풍으로 희생되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甚深한 조의를 표합니다.
    피해 복구가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마음 깊이 소망합니다. 그리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향해 노력하시는 모든 분들의 건승도 간절히 바랍니다.
    위대한 이웃을 항상 응원합니다. 사랑합니다. “がんばれ!”

    10.18 10:44
  • 유지군(220.87)

    본문에 백인일수를 얘기했으니, 그중 69번을 한 번 읊조려 봅니다. 지은이는 승려로서 노인법사(能因法師)이십니다. 사색의 여지가 활짝 열려 있는 노래라 읊조릴 때마다 그 의미를 깊이 음미합니다.

    미무로 산에/ 거친 바람 불어와/ 떨어진 낙엽/ 다쓰다 강 수면을/ 비단길로 만들었네

    10.18 10:48
  • 유지군(220.87)

    또 하나 39번도 낭송해 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 분들에겐 그 무엇보다 체감되는 와카가 아닐 수 없겠습니다.

    님 향한 마음/ 조릿대 숲 들판에/ 숨겨 보아도/ 어찌하여 이토록/ 그대가 그리운지

    10.18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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