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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선친, 일제치하 '훈도' 경력 확인

경상북도 교육청, "유시민 의원 본인에게만 자료 공개하겠다"

박선협 | 기사입력 2004/09/08 [12:36]

나는, 대전 e조은뉴스의 송 모 대표기자가 나선 유시민의원의 과거사 현장취재를 목도했다. 그 장본인으로서의 나는 유시민의원의 변명을 소가 지나다 껄껄거리는 형국이라고 풀이한다해도 이는 과언이 아니라는 판단을 한다.

나는 송 기자를 도와 경북교육청 중등교육과를 취재했다. 

그 취재 과정에서 경북 교육청 중등교육과가 보관하고 있는 인사기록에 유태우란 동명이인 4 사람의 기록카드를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이러한 사실을 확인것이야말로 이 취재의 백미였다.

취재원의 이름밝히기를 거절한 중등교육과 담당자, 그는 분명 그 중 한사람이 유시민의원이 자인한 만주의 한 소학교에서 근무한 기록이 있으며 그 직책은 훈도였다는기록이 있으며 그 기록을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했다.

그리고 담당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서 본인 말고는 정보공개가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했다.

어쨌든 유태우씨는 일제하 훈도를 경력으로 삼아 미 군정시대와, 대한민국의 교사, 교장으로 승진하면서 교장을 마지막으로 퇴임하기에 이른 것은 숨길 수 없은 사실임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유시민의원이 태어난 생가 터로 왼쪽에 남아 있는 집에서 유의원의 조부가 살았다고 하며, 우측 뒤의 터에서 유의원이 태어났다고 하나 현재는 집이 다 헐려 밭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사실을 유시민의원이 알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 아버지 유태우씨의 신상기록을 확인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 교육행정은 그 자료를 철저히 기록 보관해 오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유시민의원이 부친의 과거사를 자기 변명으로 합리화시키려 들었다면, 이는 유의원 본인이 그동안 논객으로 쌓아올린 유명세를 이용하여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되었고, 과반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실력자로 부상한 지금이라도 자신의 부친에 대한 최소한의 자료라도 연구하고 변명 했어야 했을 것이다..

유의원은 도대체 어디가서 무슨 자료를 들쳐보았단 말인가?

국민과 네티즌이 알고싶은 자료가 아니라 어떻게든 교언영색으로 덧칠해서 국민과 네티즌의 이목을 손으로 해 가리듯 지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단 말인가? 어떻게 부친의 치부를 미화(美化)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했을까?

진실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것이 세상사의 이치라지만,  같은 소재를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데 능수능란한 모습을 보이는 유의원의 모습을 상기하면 카멜레온의 생존술을 뻬어 닮은 자태에 그냥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실로 가상한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일제하 훈도(訓徒)란 당시 일제 교육수칙상 제1의로 삼은 "덴노헤이까(天皇陛下)에의 충성을 가르치는 선봉장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맹세치 않은 사람이 발을 붙일 수 없는 일제수호를 위한 신성불가침의 자리였다.

1940년 대 당시는 죽으나 사나 내선일체를 부르짖으며, 만주를 병탄한 후 중국을 넘보던 시기였고 대 일본 제국이란 명칭에 걸맞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시대였으며 이 시대에 일제의 교육은 식민지 국민들을 황국신민화 시키려는데 혈안이 되었던 시대였다.

즉 황국신민화를 의식화시키는데 둘 째 가라면 서러운 직책, 그것이 소위 훈도였으며 그들의 사명이 일제의 영광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분명함에도 유의원은 지금 자신의 논리로 비약에 비약을 거듭하며,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자는 이런 사실로비춰볼 때 그의 박명한 재질을 서러워 한다. 그렇게밖에 나설 수 없는 처량한 행색을 차마 정색하고 보기가 민망할 지경이다.

유장하게 늘어진 버들고을에 노랑새가 살았단다
시도때도 접어두고 홀홀날며 살았단다
민심이 하수상하니 돌아간들 어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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