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정치사를 압축하는 한 개념으로 당쟁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학자는 일본인 시데하라 히로시였다. 그는 1900년에 學政參與官으로 조선에 와서 이른바 조선의 교육개혁을 단행한다는 명목으로 교육분야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가 1907년에 펴낸 『조선정쟁지』에서 당쟁을 조선 정치의 특징이라고 규정했으니, 당쟁을 조선 역사를 비하는 도구로 이용하는 첫걸음을 뗀 것이었다.
시데하라 히로시는 조선 시대의 정당들을 “주의를 가지고 서로 존재하는 公黨이 아니라 이해 관계에서 서로를 배제하는 私黨”이라고 규정했다. 일본인들이 한국인의 특성이라고 규정지은 ‘당파성론’은 일본인들의 이런 정치적 목적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심지어 호소이 같은 인물은 이런 극언까지 했다.“조선인의 혈액에는 특이한 검푸른 피가 섞여 있어서 당파 싸움이 계속되었으며 이는 결코 고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인의 피 속에는 당파와 싸움을 좋아하는 선천적인 특이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