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보관소] 고종 황제폐하의 광무개혁의 대단함
  • ㅇㅇ(118.87)
  • 2019.10.09 14:45
  • 조회수 143
  • 추천 20
  • 댓글 1


viewimage.php?id=2eb2dc29ebdb39aa67acdb&no=24b0d769e1d32ca73fed84fa11d02831150e3d5bd66e1c599a53538ed0f92cc5fff8c703b264ff4bf21cf59388df4c624ad5e8ef0ea8c590e0dd02ceeb690a95514a7560ff00cc



viewimage.php?id=2eb2dc29ebdb39aa67acdb&no=24b0d769e1d32ca73fed84fa11d02831150e3d5bd66e1c599a53538ed0f92cc5fff8c703b264ff4bf21cf59388df4c624ad5e8ef0ea8c590e0dd02c5b96751976498fa5cf7cd33




개화파와 민중의 정치참여 운동을 탄압하시고


한반도는 다 내꺼를 선언하시며




말 잘듣는 측근인 이용익을 전환국장(돈 찍어서 다 내꺼), 내장원경(황실 재정담당)


삼정감독(홍삼도 내꺼), 탁지부협판(행정부 재정 담당)


군대, 왕실소지토유 은행, 철도 관련 직위까지 모두 한사람에게 겸임시키며


탁지부협판은 하다말다하였고




전환국(화폐 발행)을 1900년 황제의 직속기구로 편입시키시고


역둔토, 광산, 홍삼, 각종 잡세등이 황제의 직속 세원으로 만들어서 황실의 재산을 크게 늘리셨으며




가뜩이나 세수도 계획보다 덜 걷히는 상황에서(부패, 외획의 혼란, 은행 미비 등등) 지세와 호세 중심으로 바꿔 옛 조선의 전통을 회복하셨으며


전환국에서 어리석은 백동화 남발 정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속에 월급도 못 줄 정도로 힘겨워하며


기대했던 양전 지계사업도 성과가 별로 없었고


갑오개혁 이후 적자예산 속에 계획하던 사업들도 포기하였으나




개화파들의 갑오경장 이후 폐하에 대한 '불경'으로 줄었던 황실 수입만은 대폭 증가하였으며


개화파들이 국가 재정을 관리했을때 정부로부터 빼앗으려 했던 역둔토를


만민공동회나 독립협회 같은 불충한 무리들을 힘으로 쫓아버리신 후 황실 직속으로 만들고


'동학반란'으로 폐지했던 전라북도의 균전도 부활시키시며 착취라는 조선 전통을 회복시키시고 수입을 늘리심




이런 돈에 대한 대단한 집착으로 1896년까지는 적자였던 내장원(황실 재산을 관리하는 관청)의 수입이 크게 늘어났는데


1899년 현물 방매인 도조 기준 10만냥 수준이었던게 1년 후 30만냥으로 크게 늘리심




또한 기존 개화파들은 소금이나 어업 등 부담을 주는 잡세들을 폐지하였으나


위대하신 고종 폐하께서는 폐지되었던 세금도 도로 만들고 그동안 만들지 않았던 세목도 신설하고


이를 모두 황실 직속 세원으로 편입시키니 황실은 점점 부유해지며 정부와 백성은 가난해지게 되었는데


계속 그대로 쭉 갔으면 아무 근거는 없지만 어쨋든 황가의 힘이 강해져서 일제를 상대로 싸웠을것임




고종 폐하께서는 간간이 백성들이 힘드니 잡세들을 신설하지 말라는 인자한 면도 보이면서


그러면서도 실제 조치는 취하지 않는 지혜도 가지심


이용익은 백성들을 고통에 몰아넣는 온갖 명목의 잡세는 일부 지방관의 부패에만 해당할뿐이며


이런 세금들은 정당하게 황제폐하를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잡세들을 늘리는걸 당연시하고




간악한 서양놈이 Uri 조선의 세무관을 지내던것에 반대하던 황제께서는


기어코 서양놈을 쫓아내고 전환국의 사유화를 마침내 성공하여 해마다 지게로 백동화를 실어 날라서 각 궁으로 옮겼으니


진정한 조선의 정기가 다시 회복된 대한제국다운 일이이었음




당시 토호세력으로 유통은 안하면서 유통 과정에서 돈만 뜯어가던 사람들에게 돈 받고 객주업, 도고업같은 영업권을 팔고


이렇게 모은 돈으로 고종 황제는 저축도 하고 낡은 상선을 개조한 군함과 무기들을 구입하셨고


자신의 즉위일을 계천기원절로 만드신 황제폐하께서는


즉위 40년 기념하여 그해 세출의 40% 가까운 돈을 예비비로 편성하여 기념에 사용하시며 황실의 위엄도 알리고




돈을 얼마나 아끼셨는지 지방 항교 지원을 위한 원토를 내장원에 귀속시키며 학교에 대한 지원도 감소시켰고


우체-전신 사업을 제외한 모든 분야의 예산을 압박하면서 근대화 관련 사업에 지장을 주고


농상업 관련도 예산 1~2%밖에 안되었지만


황제폐하 자신께서는 거액을 쌓으시는 알뜰살뜰함을 보여주심




자신의 돈인 내탕금을 뿌리는것조차 쓰기 싫어서 왠만한 비용까지 탁지부에서 내라고 해서


탁지부는 내장원에서 돈을 차입해야 했음


심지어 고종 황제폐하 직속인 전환국의 직원 월급조차 탁지부에서 내줌









viewimage.php?id=2eb2dc29ebdb39aa67acdb&no=24b0d769e1d32ca73fed84fa11d02831150e3d5bd66e1c599a53538ed0f92cc5fff8c703b264ff4bf21cf59388df4c624ad5e8ef0ea8c590e0dd0292ed6508c79c15ca7656e690



그중 가장 빛나는것은 고종 황제 폐하께서 추진한 위대한 근대화 사업 중 하나인 한성 전기사업임


콜브란이라는 미국인과 황실 합작으로 시작한 사업인데


한성의 전차 노선의 부설, 전등의 가설, 전화, 전기 등 모두 콜브란에게 전적으로 위임시켜서 그들의 기술과 돈으로 공사하게 하였음


근데 공사가 끝나고 콜브란측에서 150만원을 청구하자 고종 황제께서는 과도한 요금이라며 주지 않고 뻐팅겼었음








viewimage.php?id=2eb2dc29ebdb39aa67acdb&no=24b0d769e1d32ca73fed84fa11d02831150e3d5bd66e1c599a53538ed0f92cc5fff8c703b264ff4bf21cf59388df4c624ad5e8ef0ea8c590e0dd0293eb3351cc0e928946b4563b


참고로 대한제국 황실비는 총 세수액의 10%쯤 될정도로 (1906년도에는 16%) 황실에게 돈이 어마어마하게 모였는데


150만원을 제시한 콜브란의 돈을 충분히 지불할수 있었음에도


황제께서는 그 돈은 조선 백성들의 고통의 피눈물이 담겨있는 소중한 돈이라는걸 인식하셨기에 결국 지불하지 않으셨음

결국 러일전쟁 이후 일제 회사가 120만원을 주고 매수하며 콜브란은 조선땅을 떠나게됨









하지만 우리 범인들은 모르고, 아무 자료도 없고, 아무도 증명도 못 했지만


대한제국은 식산흥업으로 자주 근대화의 길을 걷고


고종 황제 폐하께서는 대한제국을 발전시킬 위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 것임






출처 : 생활잔차

  • 20 고정닉 추천수2
  • 0

파워링크 광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