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포스트 아베"의 조건이란
  • ㄴㄹㄴㄹㄴㄹ
  • 2019.10.0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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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1

아베 신조 총리의 자민당 총재로서 임기가 10월로 2년이 된다. 앞의 내각 개조 및 자민당 임원 인사에서 아베 씨는 총재 후보들을 정부와 당 요직에 배치했다. 누가 "포스트 아베"의 최단 거리에 있는지 나가타초와 카스미가세키는 시끄럽다. 자주 입가에 오른 것이 최대 파벌의 영수로서 군림했던 타나카 카쿠에이 씨와 타케시타 노보루 씨가 "총리 총재"의 조건으로 만들어 낸 모델이다.


타나카 카쿠에이 씨가 제시한 2가지 조건은 "당삼역(간사장, 총무회장, 정무조사회장) 중 간사장을 포함 2개 / 대장대신(재무대신), 통상산업대신(경제산업대신), 외무대신 중 2개"로 여겨진다. 일본 의원내각제의 모델로 한 영국에서는 원스턴 처칠 씨는 재무재신, 현 총리인 보리스 존슨 씨는 외무대신을 역임했다. 국가의 기본 정책에 숙달하여 허들을 넘지 않으면 지도자가 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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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시타 노부루 씨는 중요 각료는 몇 점, 당삼역 간부는 몇 점 이라고 점수화하면서 특히 간사장을 중시했다. 당수가 총리가 되는 의원내각제로는 선거나 국회대책 등의 당무 전반에 정통하는 것이 필수라는 생각이다.


이번에 가장 주목된 것이 간사장이었던 것은 이 사고방식에 의한 것이다. 타나카 카쿠에이 씨는 간사장으로서 선거를 통해 세력을 확대하여 총리가 됐다. 정조회장에 유임한 키시다 후미오 씨와 키시다파가 간사장 취임을 기대한 배경에는 바로 "타나카 신화"가 있다.


"타나카·타케시타 모델"은 경제가 고도성장 시기에 중선거구에서 파벌이 경쟁하고 오랫동안 동서냉전이 계속되던 시기이기에 설득력이 있었다. 간사장으로서 총재선거위해 세력을 모으고 재무대신으로서 이익의 분배를 엄중히 감독했다. 타나카 씨와 타케시타 씨는 간사장과 재무대신을 경험하고 총리의 자리를 획득 한 것이 그것을 상징한다.


원래 소선거구제에서는 제1의 야당 당수가 "포스트 아베"에 가깝다. 지민당에서는 "타나카·타케시타 모델"이 부활한 것은 야당의 침체와 표리 관계에 있다. 파벌의 합종연횡에 의해 차기 총재 레이스가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것도 자민당 총재는 곧 총리라는 전제이기 때문이다.


"타나카·타케시타 모델"이 잠잠했던 시기도 있다.


2001년 3번째 총재선거에서 승리한 코이즈미 준이치로 씨는 당삼역, 외무대신, 재무대신의 경험이 없었다. "타나카·타케시타 모델"로 치면 "총리 총재의 자격 없음"이 된다. 그런데 코이즈미 씨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여 5년에 이르는 장기집권을 쌓아 올렸다. 괴짜라고 불린 캐릭터는 당내가 "이것은 코이즈미만의 특이 현상"라고 인정한 사정도 컸다.


하지만 코이즈미적인 것은 일과성이 아니고 속인적도 아니다. 집행부·총재에게 권한이 집중과 총리와 관방장관을 중심으로 하는 관저 주도는 파벌의 기능을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던 소선거구제와 부처 재편이 가져온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무파벌에서 당삼역의 경험이 없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포스트 아베"에 오른 것은 레이와시대 발표 효과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개각에서는 외무대신에서 방위대상으로 자리를 옮긴 코노 타로 씨, 타케시타파의 카토 가츠노부 후생노동대신도 "포스트 아베"로 꼽힌다. 카토 씨는 후생노동대신 재등판으로 후생대신 경험 2번의 코이즈미 씨와 닯았다. 준이치로 씨의 차남 38세로 첫 입각한 코이즈미 신지로 환경대신도 있다. 프랑스 대통령인 에마뉘엘 마크롱 씨는 39세로 취임했다.


여전히 중요성한 것도 있다. 오부치 케이조 씨는 1997년, 관방장관 퇴임 후 8년 만에 입각하여 "냉전이 끝난 지금이야말로 외교의 시대"라며 외무대신을 열망했고 염원을 이룬 다음 98년에 총리가 됐다.


이번에 외무대신로 오른 모테기 토시미츠 씨는 경제재정담당대신으로서 일미무역교섭을 최종 합의에 이끌었다. 70년대에는 타나카 카우에이 씨가 섬유교섭을, 90년대에는 하시모토 류타로 씨가 자동차교섭을 결착시켰다. 일미동맹이 외교·안보 정책의 기축인 일본에게는 미국과의 경제분쟁 해결의 중요성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아베 씨는 간사장과 관방장관을 경험하고 총리가 되었다. 이 두자리를 말하면 당시 직책이 없었던 오부치 씨의 환갑잔치 자리에서 타케시타 씨가 "나는 관방장관 역임 후 간사장이 되었다. 오부치 군도 그렇다. 내가 총리가 된 것은 63세로 오부치 군에게는 아직도 3년이 남았다."라고 격려한 봐가 있다. 아베 씨는 "타나카·타케시타 모델"을 조건으로 삼는 당과 내각의 요직을 경험했다고도 할 수 있다.


1기는 단시간으로 끝나고 2기는 총재선거도 의원표에서는 이시하라 노부테루 씨에게 지방표에서는 이시바 시게루 씨에게 뒤졌지만 결선투표에서 역전했다. 그리고 요시다 시게루 총리 이래 재등판을 완수해 11월에는 카츠라 타로 총리를 추월하고 입헌정치 사상 최장의 정권 담당자가 된다. "타나카·타케시타 모델"과는 거리가 먼 승리가 초장기 정권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베 씨의 강점은 양면성에 있다. 아버지 신타로 씨의 비서를 맡아 마지막 중선거구에서 첫 당선하고 소선거구 시대에 커리어를 거듭했다. 인터넷 여론에도 민감하고 디지털 툴로 적극적으로 발신한다. 보수파의 얼굴로 리버럴한 정책도 실행한다. 낡은 파벌 정치와 관저 주도, 새로운 디지털 정치의 쌍방을 아는 "하이브리드형"이다.


아베 씨는 4선 임기 연장의 분위기를 신경쓰지 않고 마시막 인사를 하는 것이다. 차기 총재는 파벌 연계의 "타나카·타케시타 모델" 형이냐? 새로운 모델이냐? "포스트 아베"는 자민당뿐만 아니라 일본정치의 향방도 점친다.


https://www.nikkei.com/article/DGXMZO50506520S9A001C1TCT000/


  • 4 고정닉 추천수1
  • 0
  • ㅋㅋ(211.194)

    일본은 고이즈미 아들놈만 아니면 된다.

    10.0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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