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감이 교차하는 밤이다... 나는 낮은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대학에는 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거 같다. 다른 사람들처럼 막연하게 공무원이나 준비할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에는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소설책을 이따금 보곤 했다. 그러나 거기에 어떠한 풍미나 매력을 느끼기 보다는 그저 재미있다는 수준에 그쳤다. 라면이나 초밥도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이다...
군대는 빨리 가면 좋다는 막연한 생각에 현역으로 입대하게 되었고, 자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하루라도 빨리 밖에 나가고 싶었다. 바깥 세상이 너무나도 궁금해서 인터넷을 하고 싶었고, 롤도 하고 싶었다.
그렇게 휴가를 받게 되고 나는 유튜브에서 음악을 찾던 도중에 우연히 엑스 재팬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케이팝 이외에는 해외 노래는 전혀 듣지 않았고, 그 존재를 알지도 못했다. 진지하게 빅뱅이나 씨엔블루가 비틀즈나 퀸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했고, 옛 명성을 향유했던 전설적인 가수들이나 밴드의 존재들은 작금의 케이팝이 차지하는 위상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지 우연히 유튜브 추천란에 엑스 재팬의 'Tears'라는 노래가 있길래 나는 호기심에 그걸 눌렀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지금의 내 인생을 바꾼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가 되리라는 건 당시에는 생각지도 못했다.
노래를 틀자마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알고 있던 일본어는 아리가또 수준 밖에 모르던 나는 이 노래의 가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나 어느새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Tears라는 노래의 진가는, 클라이맥스는 가사 자체보다는 (물론 가사도 훌륭하지만) 곡 후반부의 연주 부분에 있다. 정점에 다다르는 클래식 느낌의 아름다운 연주를 들을 때에는 가슴이 뭉쿨해져서 너무 괴로웠다. 내가 줄곧 듣곤 했던 케이팝에선 찾아볼 수 없는 큰 감동을 느끼게 되었고, 나는 엑스 재팬을 시작으로 점점 일본 노래에 빠지게 되었다.
라르크앙시엘, 우버월드, 가젯트, 스핏츠, 히자키, 토쿠나가 히데아키 그리고 라우드니스와 VOW WOW에 이르는 제이락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전설적인 밴드까지 듣게 되자 나는 케이팝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고, 내가 듣던 음악은 아무 가치도 없이 단지 즉흥적인 감정에 휩쓸리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걸 결코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영국과 미국, 독일 그리고 북유럽 밴드까지 샅샅이 조사해서 듣게 되어 락이나 헤비메탈에 대한 조예가 나름 깊어지게 되었다.
한국 음악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나는 정말로 해외 노래를 내 몸과 뗄 수 없을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다. 군대 동기들이나 선임들은 이러한 나의 전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나를 사회부적응자로 취급하였다. 어차피 전역하면 헤어질 인연이라 생각하여 나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단지 내가 이토록 좋아하는 노래만 들을 수 있다면 설령 이러한 취미로 한국 사회에서 도태되어버린다고 하더라도 큰 상관이 없을 거 같았다... 현 제국주의 갤러리 (정확히는 옛 근현대사 갤러리)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가 제이락에 미학을 느낀다고 해서 나의 근본적인 역사관이 바뀌지는 않았다. 제갤에서 흔히 말하는 반일국뽕 같은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진 못했다. 한국은 나에게 의무만 강요하는 피곤한 국가였고, 내가 한국에 살면서 누리는 것들은 다른 보통 국가들에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일반 국가들보다 못한 면도 있었다...
그렇게 옛 근갤을 어떻게 우연치 않게 접하게 되었다. 디씨를 하게 된 첫 계기도 근갤이었다. 나는 그전까지 디씨가 일베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였을 뿐이었다. 헬조선 광풍이 일어나고 한동안 잠잠해진 무렵, 나는 그 단어에 굉장히 동조하여 그 단어의 시작점이 되는 근현대사 갤러리를 들어갔었다. 첫 인상은 내가 이때까지 배워 온 한국사와는 전혀 다른 허무맹랑한 얘기를 하는 이상한 정신병자들이 우글우글 몰려대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아는 한국사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그들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애썼지만 애초에 한국사 지식자체도 매우 협소하며, 무엇보다도 근갤 유저들과 얘기하면서 그들의 사상에 감화되어버린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 제갤러들이 애용하는 문구인... 소위 탈센트릭스를 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제이락을 점점 더 많이 접하면서 나는 아예 일본이라는 국가 자체에 굉장한 매력을 가지게 되었고, 평소에 잘못 생각해던 일본이라는 국가, 그 이미지가 전해져 오는 대표적인 사상, 생각, 평가들은 근갤 유저들 덕분에 많이 희석되었다. 나는 이 시점에서 일본 유학을 생각하게 되었고, 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지는 강력한 충동처럼 여겨졌다.
(...)
제대를 하고 나서 나는 일본의 중상위권 국립대 (치바, 츠쿠바, 요코하마국립, 히로시마 라인)의 2차 소논문 시험과 면접을 응시하였으나 보기 좋게 떨어졌다. 이게 작년의 일이고, 나는 올해 입시를 준비하고 있으나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ㅡ라는 불안감과 스트레스의 극치에 다달해 충동적으로 이 글을 쓴다. 나에게 난생 태어나서 처음으로 꿈을 가지게 해 준 제갤러들에게 너무나 많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때때로는 내가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이러한 것들을 돈 많은 사람들은 너무도 보기 쉽게 금방 이루며, 막상 그렇게 일본에 가버려서는 자신들의 부적응이나 무례함에 대해서는 일절 생각하지 않고 일본을 헐뜯기만 하는 자들이 너무도 혐오스럽고 구역질이 나기도 한다...
때때로는 이러한 생각도 드는 적이 많다. 어둠이 진 밤하늘을 보며 베란다에서 담배를 물곤 주로 하는 생각이다. 나도 여타 한국인들처럼 김치를 좋아하며, 찌개를 여럿이서 떠먹는 걸 좋아하며, 한국 드라마 보는 걸 좋아하며, 우리나라의 세계적 위상에 대해 좋아하며, 진지한 얘기를 하면 아싸 취급을 하며, 섹스를 한 것에 굉장히 자랑스러워하며, 여자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싸늘하고 냉담한 시선을 보내며, 4년마다 한번 열리는 월드컵에 목숨을 걸며 열광하며, 책을 읽는 것보다는 스마트폰을 보는 걸 미덕으로 여기며, 일순의 편의를 얻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한글에 자긍심을 가지며, 케이팝이 우수하다고 생각하며, 서점에 가는 것을 패배자 취급하며, 치킨을 숭배하며, 예능 프로그램을 줄곧 챙겨보며, 좋아하는 아이돌 콘서트를 보기 위해 정기적으로 티켓을 구매하며, 원치 않는 장애를 가져 그래도 군복무를 위해 끌려간 공익들을 향한 현역의 부심을 갖는 걸 당연스러운 명제라고 생각하며,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모하며, 꿈과 자아실현보다는 현재의 쾌락을 우선시하는 그러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 케이팝을 매우 좋아하던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때에는 이러한 고민, 현기증, 메스꺼움 등을 전혀 느끼지 않았으니까...
결국 내 실력의 부족이고, 가난한 집에 태어난 내가 원인이라는 건 누구보다도 잘 알며, 나를 탓해야 하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ㅡ... 나는 쳐다보지도 못할 높이의 꿈을 꾸게 해주게 한 제갤러들이 지금은 너무도 밉다. 나에게 일본 유학은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처럼 너무나도 높은 벽이고,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게 더 나았을 지도 모른다. 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어쩌면 탈센트릭스라는 건 너무나도 과분한 처사가 아닐까ㅡ...
L'Arc~en~Ciel,Uverworld,the GazettE 이런 사운드 개쩔고 가창력도 연주력도 쩌는 일본밴드들 듣다보면 케이팝은 유치해서 못듣지... 센징들이 일본음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못듣게 막았던 이유도 센징들 음악이랑 차원자체가 다를정도로 수준높기때문이야
08.14 23:38탈센트릭스후 아무리 헬조센에 사는게 괴로워도 날조센동에 놀아나는 헬센징들과 대다수의 달리 나는 정상적인 인간답게 사는거라는 이 신념 하나만 품고 살면 내 자신에 떳떳해짐
08.14 2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