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증거력의 우선순위를 전혀 구분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내가 일본이나 유럽 국가의 상황에 관련된 주장을 통계 자료, 언론사의 기사를 가지고 하면 항상 이런 답변을 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여기에서 몇년이나 살고 있다. 그런데 네가 주장하는 것은 전부 틀렸다. 너는 와본적도 없지? 누가 옳은 주장을 하는걸까?"

그런데 내가 만약에 아무 근거도 없이 현지 상황에 대한 주장을 하고 있다면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할 수 있지만, 만약에 내가 현지의 언론 보도나 현지의 공신력 있는 자료를 가지고 주장을 하는 순간 저 사람의 말은 유효하지 않게 된다. 비록 내가 현지의 사정에 대해서 잘 모르더라도 합당한 권위를 가진 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근거들 앞에서 개인적인 경험이나 의견은 더 이상 증거력의 우위를 갖지 못한다. 따라서 이 경우에 상대방은 자신의 거주 경험 따위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자료에 대응할 수 있는 합당한 권위를 가진 자료를 내세워 반박해야 토론이 성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옳고 그름의 여부는 이러한 물적 증거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런 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4년전,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에 한창 위.안부 문제가 시끄러웠고 나는 많은 학생들 앞에서 위.안부 문제는 과장되었음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놀랍게도 나에게 이런 반박을 해왔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실제 체험한 사람들의 경험이 있는데 어떻게 당신은 그 때 태어나지도 않은 주제에 그 사람들의 말을 거짓이라고 하는 겁니까?"

나는 그래서 이렇게 반박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대부분 시대적 상황과 충돌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적인 서류들과 충돌하는 개인적인 증언은 틀렸다고 전제했습니다. 저는 당시의 공적인 문서의 증거력이 다른 증거가 없는 단순 증언보다 우위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그들의 말을 증명할 마땅한 물적 증거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은 이런 답변을 했다.

"물적 증거가 증언보다 우선한다는 의견에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오래 지나서 할머니들이 헷갈렸기 때문에 진술이 모순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유 때문에 위.안부의 강제 납치가 없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그렇다면 당신 위.안부 할머니들이 설마 위증을 하고 있다고 하는겁니까?"

그리고 나는 이렇게 답변했다.

"일부는 그렇다고 봐야겠지요."

그 때의 토론은 상당히 격렬한 싸움(?)에 가깝게 끝났다. 나를 제외한 모든 학생과 심지어 교수까지 나를 격렬하게 공격했다. 만으로도 20대가 다 끝나가는 지금의 나이에서 그 때를 돌아보면 참 무슨 깡이었는지 모르겠다. 운이 없었다면 누군가가 학교 익명 게시판에 올려서 조리돌림을 했을 수도 있었는데 그나마 그들은 최소한의 매너는 있었다(이후에 안중근에 대해서 발표할 때는 그런 조리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이상한 일.뽕 역갤러새끼라며 학교에 소문이 난 적도 있었다. 다행히 학교생활 말년이어서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지만).

그런데 비단 역사적 인식에서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위.안부의 진술에 대한 태도와 비슷한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최근들어서 더 발견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증거나 논리 그 자체보다는 누가 주장을 하는지, 그리고 주장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권위를 가지고 있는지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내가 위.안부의 모순을 지적하고, 그 증거를 가져오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친일 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증거이기 때문에 믿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의 주장에는 성향이 들어갈 수 있어도, 증거 그 자체에는 성향이라는 것이 없다. 그런데 가치중립적인 증거조차 누가 이야기했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나에게는 굉장히 이질적인 사람들이지만, 놀랍게도 한국에는 이런 사람이 굉장히 많다.

나는 한국에서 토론을 하기만 대뜸 인신공격부터 하고 나서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저렇게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인신공격해서 '권위'를 깎으면 상대방의 논리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