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제3제국과 욱일승천 제국
  • 역덕(182.224)
  • 2019.08.0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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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당시 산업역량을 대폭 끌어올린 일본. 일본은 거기에다가 외채를 싹 청산했고, 동아시아의 경제 발전소로 발돋움했다. 1930년대에 독일은 사방의 협동 공격에 취약한 상황에서, 1차 대전 기간과 동일한 지전략적 도전에 직면했다. 그러나 당시 독일은 유럽의 비독일어권 영토와 해외 식민지를 빼앗긴 처지였다. 독일은 석유가 전혀 없었고 다른 필수 자원들도 부족했다.


일본의 지전략적 상황은 달랐다. 일본의 이웃 중국은 착취 가능한 영토를 가진 몰락한 제국이었다. 여기서 일본은 근접성과 기존 연계를 토대로 다른 침투 세력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 일본은 미국의 야심을 두려워했다. 미국의 해외 전초기지들은 일본의 잠재적 팽창 지대를 똑바로 겨냥하고 있었다. 나치의 제국주의는 독일인과 나머지를 구별하는 입장을 극단적인 인종주의로 밀어붙였고, 일본의 제국주의는 일본의 역학을 범아시아 인종의 운명을 이끄는 선봉으로 내세웠다. 나치의 인종적 논리가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유대인 등에게 제시한 선택지는 예속 아니면 절멸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치 제국은 비독일인 민족들에게 전진하거나 동화되거나 구제받을 여지를 전혀 주지 않았다. 나치 인종주의는 제국들의 차이의 정치의 스펙트럼에서 한 극단에 위치한다. 나치 인종주의의 등장은 격한 논쟁을 일으켰다. 나치 인종주의는 다시 말해 비인간화의 유럽에의 이식이라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지만 나치 독일은 유난히도 특별했다. 어째서 제노사이드는 제정 프랑스나 영국이 아닌 나치 독일의 정책이 되었는가? 어째서 한때 유럽 밖의 식민지들을 소유했다가 잃어버린 한 유럽 강대국이 제노사이드를 저질렀는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바와 다르게 프랑스와 영국의 통치자들은 실제 아프리카인이나 아시아인을 통치하다가 더 섬세하게 그리고 더 인도적으로 변해갔다. 영국과 프랑스는 나치의 제국 건설의 초기 단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대공황기에 두 나라는 갈수록 협소해진 신중상주의 정책에 빠져들었고, 이처럼 후퇴한 까닭에 1930년대 후반 양국은 움직이기가 더 어려워졌다. 


일본은 영국보다 뒤늦게 산업화와 제국주의에 가담한 후발주자였다. 하지만 빠른 시일만에 산업경제, 효율적인 국가 관료제, 강력한 군대를 빚어내는데 성공했다. 유럽 식민국들이 해외 영토에서 했던 것 이상으로, 일본은 만주국에서 산업화와 농업 개발을 활발히 추진했다. 일본의 범아시아주의적 사명에는 나중에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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