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日, 화이트리스트 제외하면 엄청난 문제 초래"
외신 대상 여론전…19세기 '삿초동맹' 언급, 日내부 여론에도 호소
2019.07.17 18:57:05
정부 "日, 화이트리스트 제외하면 엄청난 문제 초래"
일본 정부가 대(對)한국 무역 제재 조치의 2단계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우호국)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한국 정부 관계자가 이에 대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정부 관계자는 17일 오후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다음 문제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유지하느냐 제외하느냐가 될 것으로 본다"며 "그것은 매우, 매우 중대한 행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는 엄청나게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고, 한미일 3자 협력에 부담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관계자는 "건설적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를 희망한다"는 정부 기본 입장을 수차례 되풀이 강조하면서, 한국은 일본에 대해 "건설적 제안에 열려 있으며 유연성을 발휘하려 노력해 왔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양국 기업이 기금을 조성하고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는 것이 앞으로 나가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일본이 거부한 한국의 제안을 다시 언급하고 "외교 대화 채널을 통하든, 조정 형태가 되든 두 정부가 평화적으로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일본 정부가 오는 18일을 시한으로 제3국 중재위원회 구성을 요청한 데 대해서는 "이렇게 두 나라가 연관된 경우에 중재라는 것은 보통 '의견이 나눠진 결정(split decision. 부분승소 등)'이 나온다. 그러면 어느 쪽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고, 문제의 본질을 전혀 해결하지 못한다"면서 "(제3국 중재위는)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리고 그 시간 동안 앙금이 쌓이게 된다. 그건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에 좋지 않다"고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도 "중재 문제에 대해서는 적대적이지 않다. 중립적"이라거나 "모든 제안에 열려 있다"며 전날 청와대 발표와 다소 달리 해석될 소지가 있는 말을 하기도 했다. 제3국 중재안에 대한 청와대·정부의 입장은 "신중히 검토할 사안"이라는 것이지만, 전날 청와대 관계자는 "명쾌하게 답이 난 것"이라며 수용 불가 입장을 확인했다.  

이 관계자는 방한한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김현종 안보실 1차장과 나눈 대화에 대해 "동북아에서 3국(한미일) 간의 협력에 대해 좋은 토의"를 한 것으로 안다며 김 차장은 스틸웰 차관보에게 "한일 간의 경제 이슈가 3국 협력에 줄 충격, 그리고 사태가 악화될 경우 얼마나 끔찍한 영향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 말했고 사태 악화를 막는 것(de-escalating)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고, 스틸웰 차관보는 "이 문제의 심각한 속성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중재 의지가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오바마 행정부 때 (중재는)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미 정부가 막후 중재했던 일을 언급하면서 "미국이 (스틸웰 차관보 방일 계기에) 도쿄에서 한미일 3자 고위급 대화를 열자고 했는데 한국은 '예스(yes)'를 했고 일본은 '노(no)'를 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있다"고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국제·일본 사회 여론에 호소 나서…"애플·소니도 타격" 지적에 '메이지유신' 언급까지


이날 외신 간담회 자리는 한국 정부 입장을 외국 언론에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자리였다. 국제 여론에 대한 호소인 셈이다. 정부 관계자는 특히 일본의 이번 조치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불이익이 될 것이라며 "일본 지도자들이 그렇게 웅변한 신성불가 원칙을 어겼을 경우 글로벌 가치 체인이 붕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반도체 생산 라인의 중단으로 인한 끔찍한 결과"로 인해 "애플, 아마존, 델 등의 기업과 수십억 세계 소비자들에게 불리한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기업 '소니'도 타격을 입을 기업 중 하나로 언급됐다. 그는 "한국 제조사들은 D램의 70%를 생산한다"며 "한국 반도체에 의존하는 생산자들도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지난 수십년 간 작동해온 '글로벌 체인'이 전체적으로 의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부 관계자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대신이 "자유롭고 개방된 경제는 세계 평화와 번영의 기초"라고 지난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이나, 지난 2010년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분쟁 끝에 중국이 일본에 희토류 수출 제한을 가했을 때 일본 정부가 "구체적으로 일본만을 겨냥한 (수출 제한) 조치는 WTO 규정 위반"이라며 "WTO 규정은 세계에 적용되는 규칙"이라고 비판했던 점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 "수출 제한은 그것이 화학물질이든 희토류이든 WTO 원칙에 위배된다"고 꼬집기도 했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로서 대법원 판결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점 등 한국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는 한편, 일본의 '말 바꾸기도'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은 당초 '신뢰 훼손'을 이유로 들었다가, 다음에는 어떤 명확한 증거 제시도 없이 북한으로의 불법 수출을 수출 제한의 배경이라고 주장했다"면서 "(그러나) 한국은 4대 수출통제체제 참여국이며 그 의무를 엄격하게 이행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것은 미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보고서인데, 국가 전략물자 통제 면에서 한국은 17위, 일본은 36위에 랭크됐다"고 말했다.

국제사회 일반뿐 아니라 일본 시민사회에 대한 호소 내지 일본 내 여론전을 시도하는 듯한 대목도 있었다. 국제사회나 한국 내부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메이지 유신 시절의 일화를 거론한 부분이 그렇다. 이 관계자는 "일본은 메이지 시대부터 서방세계와 접촉하고 사장 자유화 조치를 하면서 오늘날 정치적.경제적 주요 국가가 됐다"면서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발전된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강조하고 "한일 양국이 공유하는 공통의 가치에 비춰볼 때, 두 나라는 마치 19세기에 사츠마와 초슈가 그랬던 것처럼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지역이 삿초(사츠마-초슈)동맹을 통해 일본의 문명개화를 이끌었듯 "한일 양국은 기술과 혁신을 통해 동북아시아를 발전의 다음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서로 도와야 할 판에, 왜 우리에게 부당한 조치를 하느냐'는 일침인 셈이다.

이 관계자는 또한 "아베 총리대신 및 그의 존경받는 부친 아베 신타로(安倍 晋太郎)와 같은 한자 '진(晋)'자를 쓰는 다카스기 신사쿠(高杉 晋作)나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오늘날 살아있다면, 그들은 미래지향적 양국 협력에 대한 나의 의견에 동의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재차 메이시 유신 시절의 고사를 인용하기도 했다.  

"나카소네, 후쿠다 전 총리처럼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한 전임 일본 총리들도 저에게 공감할 것"이라고 일본의 전직 내각 수반들을 언급하거나 "일본은 '레이와' 시대를 맞았다. 새 국왕이 아버지만큼의 성취를 얻고 지역의 번영과 평화에 기여하기를 소망한다"고 올봄 새 연호 발표로 들떴던 일본인들의 심리에 기댄 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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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기자 nowhere@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국제팀에서 '아랍의 봄'과 위키리크스 사태를 겪었고, 후쿠시마 사태 당시 동일본 현지를 다녀왔습니다. 통일부 출입기자 시절 연평도 사태가 터졌고, 김정일이 사망했습니다. 2012년 총선 때부터는 정치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