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신화' 진대제 前장관, 日 경제보복에 대한 생각
반도체 전문가인 진대제(67) 삼성전자 전 사장(현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회장)은 3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일본의 이례적 '경제 보복' 카드에 대해 "아베 신조 총리가 높은 지지율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런 조치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일본은 천황이 바뀐 데다 내년 올림픽을 앞두고 경제 상황도 좋고 국가 분위기 역시 고조돼 있다"면서 "오랜 준비 끝에 한국이 가장 아파할 만한 부분을 골라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1일 예고한 대로, 4일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 3종(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레지스트, 불화수소)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하는 경제 보복 조치를 단행했다. 진 회장은 3가지 규제 대상 중 '포토 레지스트'가 가장 민감하다고 평가했다. "포토 레지스트는 빛이 닿은 부분과 닿지 않은 부분을 구분해주는 일종의 감광(感光) 물질인데 20여년 전부터 그 중요성 때문에 국산화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다만 반도체 기술이 현재 10나노 이하의 초미세공정으로 빠르게 발전했는데 국산 포토 레지스트는 그 속도를 따라오지 못한 거죠. 현재 아주 짧은 파장의 빛으로 감광하는 분야에선 국산화된 것이 전무(全無)합니다." 그는 "디스플레이 장비는 화면을 점점 크게 만들기 때문에 정밀도가 좀 떨어져도 괜찮지만 반도체는 점점 작게 만드는 것이라 소재와 부품의 정밀도, 순도(純度)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반도체를 회로대로 정밀하게 깎아내고, 이물질을 제거하는 데 필요한 불화수소 역시 순도가 99.99%냐 99.99999%냐에 따라 갈리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스마트폰 화면에 주로 쓰이는 투명 폴리이미드 역시 열처리 시 균열 정도, 팽창률, 빛 투과율, 빛 반사도 등 기술 차이가 크다. 진 회장은 "불화수소와 폴리이미드는 품질이 약간 낮아도 손실을 감수하고 억지로 써볼 수 있지만 포토 레지스트는 대체가 현재로선 불가능하다"면서 "특수 용도로 쓰는 고품질의 소재는 공급량이 제한적이라 굳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이를 개발하려는 국가나 기업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2017년 기준 국내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18.2%, 소재 국산화율은 50.3%다.
진 회장은 "반도체칩 하나의 값이 100이라면 포토 레지스트나 불화수소를 모두 합해봐야 가격 비중은 1도 안 되지만 그게 없으면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게 무서운 것"이라며 "일본 소재 기업도 판로(販路)가 막히면 힘들지만 그보다는 한국이 받는 충격이 훨씬 클 것이란 계산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한두 달 정도"라며 "현재 각 사(社)의 구매팀이 백방으로 뛰며 재고 확보에 나섰을 것"이라고 했다. 진 회장은 1990년대 중반 반도체 패키지(포장)용 화학물질을 만드는 일본 업체의 공장이 폭발했던 사례를 떠올렸다. "당시 삼성이 일본에 70%가량을 의존하던 소재였는데 깜짝 놀라서 구매팀이 일본으로 달려가 엎드려 절해가며 겨우 사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부는 정부로서의 체면이 있겠지만 기업은 다릅니다. 무조건 일본 회사에 달려가서 엎드려 절하고, 무릎 꿇고 빌어서라도 사와야 하는 거죠. 기업엔 생사(生死)가 달렸습니다. 이런 건 아마 정부에 있는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다만 진 회장은 "일본이 포토 레지스트 수출을 완전히 끊어 한국이 메모리 생산을 못 하게 만드는 수준까지 가진 못할 것"이라며 "공급량을 조절해 우리 마음대로 생산하지 못하고 최소한 몸살을 앓도록 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문제는 수출 규제를 확대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일본이 카드를 꺼내 보인 소재 3종에 대해서만 얘기하지만 이것 말고도 자동차와 휴대전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등 주요 제품에 들어가는 소재·부품에도 일본에 의존하는 것이 많다"며 "일본이 규제를 확대하면 한국은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진 회장은 2003년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에도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일본 의존도가 높은 20여 소재·부품 리스트를 직접 보고했다고 한다. 당시 휴대전화에 들어가던 일본 야마하의 음향칩과 같은 100% 수입 의존품이 리스트에 담겼다. 진 회장은 "당시에도 기업과 정부가 국산화 노력을 꾸준히 했고 이 덕분에 국산화율이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첨단 기술 분야에선 공백이 있다"며 "국가가 나서서 돈을 쏟아붓고 개발에 나선다고 해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운영체제(OS)를 대체할 수 없듯 우리가 모든 걸 다 국산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이번 일본 수출 규제로 한국 기업들이 '소재의 자원화'에 경각심을 갖게 된다고 해도 뚜렷한 대안이 없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이 꺼낼 수 있는 '반격 카드'에 대해 묻자, 진 회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별로 없다"고 말했다. "산업계 일부에서는 OLED를 말하는데, 다른 데서도 살 수 있고 그게 없다고 해도 일본은 별로 아프지 않을 겁니다. 일본은 원자재·부품에 강한 나라지, 완제품을 하는 건 별로 없습니다. 잃어버린 20년 동안 한국이 상당 부분을 뺏어왔기 때문이죠. 일본은 이런 계산까지 다 마쳤을 겁니다."
진 회장은 "결국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해 일본·미국·중국과 같은 주변 강대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강대국 틈바구니에 껴 있으면서도 중립국을 표방하며 실익을 챙기는 스위스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지금은 북한 때문에 완충이 되지만 통일이 되면 중국·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게 되는 만큼 통일 이후에는 오히려 더 강한 군사력을 가진 상태에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1989년 日 반도체 장비 때문에 평생 잊지 못할 설움"]
"日, 16MD램 노광장비 납품 미뤄…
웨이퍼 싸들고 공장 찾아갔지만 반경 10㎞ 내 얼씬도 못하게 해"
'삼성 반도체 신화'를 이끈 진대제 회장은 1989년 16메가(M) D램 반도체 개발을 이끌던 시절 "일본의 반도체 장비 때문에 평생 잊지 못할 설움을 겪었다"고 했다. 반도체를 만들려면 미세한 회로를 반도체 원재료인 동그란 웨이퍼(wafer) 위에 사진 현상하듯 찍어내는 노광(露光) 공정이 필요하다. 당시 한국에는 노광 장비를 만드는 곳이 없었고, 일본 히타치사(社)가 기술력을 갖고 있었다. 1년 생산량은 고작 4대. 3대는 히타치가 자체적으로 쓰고 1대만 삼성에 팔기로 했다. 그런데 납품을 차일피일 미뤘다. 당시 삼성은 일본과 16M D램을 누가 먼저 개발하느냐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다. 진 회장은 "미리 돈까지 지불했는데 삼성에 주려던 기계가 불량이라며 히타치가 두 달째 장비를 주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일본 히타치 지점장의 멱살까지 붙잡고 거칠게 싸웠다"고 했다.
결국 급한 자가 무릎을 꿇었다. 궁여지책으로 한국에서 웨이퍼를 싸들고 일본 히타치 본사까지 가서 장비로 빛을 쏘이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유례없는 '해외 원정 공정(工程)'을 하기로 한 것이다. 히타치는 웨이퍼를 들고 온 삼성 직원이 공장 반경 10㎞ 이내에는 얼씬도 못하게 하고, 그 제한선 바깥의 지정 호텔에만 머물도록 했다. 대신 히타치 직원이 웨이퍼를 받아다가 장비에 돌리고 다시 갖다줬다. 철저히 기술 접근을 차단한 것이다. 반도체 노광 장비는 여전히 국산화를 하지 못한 상태다. 대신 삼성전자는 이후 네덜란드의 ASML이 일본 못지않은 노광 기술을 확보하자, 일본산(産) 장비 상당 부분을 이 회사 장비로 대체했다.
☞진대제(陳大濟)는 누구?
1952년 경남 의령 출생. 서울대를 졸업하고 '국비 유학생 1호'로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IBM 연구소에서 일하다 1985년 삼성전자로 옮겨 세계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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