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보관소] 일제시대의 조선인들과 조선군인의 습성
굽이굽이2019.04.20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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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523추천 47댓글 8
예전에 읽었던 책이고 인상 깊은 부분을 스캔을 했는데 그 일부를 근갤러 분들과 공유합니다. 위는 "조선군사령부 1910/1945 (古野直地 저)"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고요
여기에 똥닙운동가들의 추악함과 당시 상황에 대해 가감없이 나타나 있는데요. 그 중 일부를 옮겨봅니다.
"2천년 전의 한시대로부터 계속 압박받아 왔던 조선민족의 중국에 대한 원한과 반감은 지금에 와서 암반을 뚫고 솟구치는 지하수처럼 분출했다. 일본군의 연승에 의해 박차가 걸렸고, 군국열 (군국주의)은 날이 거듭되면서 고조되어 갔다. 일본에서 화북지방으로 출동하는 부대 대부분은 조선반도를 종단하여 북상하므로 조선인과 군대는 역에서나 시내 거리 등에서 친숙하게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군대의 통역을 비롯해 군내 여러 관련부서 군속에 조선사람이 적지 않았고, 매일밤 '만세' 소리가 각 역에서 울려 퍼져 나왔다. 역두에서의 각종 서비스, 위문품을 주고 받는 모습과 함께 수많은 사연을 갖는 미담들이 헤아릴 수 없었다. 이러한 열기의 와중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의 모습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고, 독립운동가들의 전향이 속출했다. 융통성이 없는 사람들도 친일주의와 봉사운동의 열광을 모른 체 할 수는 없었다.
민족주의자 윤치호, 천도교 최린 등 거물들이 조선신궁을 참배하여 전승기원의 제를 올렸는데, 총독부가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각 도, 면 단위까지 이를 따랐다. 미나미 총독은 전조선청년연맹을 조직하여 경성 운동장에 3만명을 모아 놓고 집회를 열었다."
동 서적, p199
"1938년에서 1943년까지 6년 간의 지원 상황은 아래와 같다 (사진 참고). 얼마나 엄청난 수인가."
동 서적, p200
"육군은 처음으로 관리하게 될 조선병에 관해 세밀한 규칙을 작성, 주의사항까지 넣고 집행을 엄수하도록 요구했다. 특히 주목을 끄는 항목은 다음과 같다.
1. 식사할 때는 언제라도 고추가루를 마음껏 사용하게 할 것.2. 절대로 머리, 신체를 때려서는 안 된다. 원한을 갖고 복수할 기질이 있으며 탈영의 원인이 됨.3. 식사운반용의 청결한 바케스와 잡용 바케스를 구별하도록 잘 가르칠 것.4. 위험한 상황에서는 총을 버리고 '아이고'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버릇이 있으므로 일본병 2명이 조선병 1명을 끼어 행동할 것.
(중략)
조선인은 약자에게 잔학성을 발휘하는 민족성 때문인지, 경멸함과 함께 상당한 백인 학대를 몰래 해 온 것 같다. 패전 후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전범으로 몰려 사형 또는 중형에 처해진 예가 적지 않다. 백인이야말로 보복과 복수의 대가 (大家)가 아니던가."
동 서적, p218
그저 웃음만... wwwww
아이고 wwww - dc App
05.02 02:00황군 경쟁율 봐라 조센징들 www 괜히 미국이 특수지위국가로 분류한게 아니다 www
05.02 02:05http://egloos.zum.com/epoque/v/4123940
05.02 02:081947년 8월4일자 연합국최고사령부 지령(SCAPIN) 1757호는 연합국, 중립국, 적성국의 세 범주에 속하지 않는 ‘특수지위국가’로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태국 등과 함께 ‘조선’을 포함시켰다. 이는 조선이 일본의 과거 식민지로서 당시에는 연합국의 점령 하에 있는 비독립 지역이었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05.02 02:09강화조약의 최종 초안이 확정되어 가던 1951년 7월3일에 작성된 또 다른 미 국무부 문건은 “조선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에 의해 점령된 국가가 아니다”면서 한국의 강화회의 참가 자격 자체를 문제시했다. 요컨대 미국은 한국의 경우 이미 전쟁 전에 일본의 식민지가 된 후 사실상 일본의 일부로서 전쟁에 가담했으므로 배상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05.02 02:10미 국무부 극동조사국은 ‘대한민국의 대일강화조약 참가’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한국에 대한 배상은 한국이 직접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등 다른 연합국에 할당된 배상에서 제공된다”고 말해 한국이 강화회의에 참가해 별도로 일본에 배상을 요구하는 데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 보고서는 또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들은 1910년 일본의 한반도 병합을 승인했다”면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인정한 뒤 “일본의 통치에 대한 한국민의 저항은 제한된 지역에서의 단기간의 소요에 불과했다”고 밝혀 한국의 교전국 지위를 부인했다.
05.02 0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