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보관소] 용인전투 쌍령전투의 뒤를 이어 조센군의 신화를 쓴 전투.jpg
  • 대동아공영
  • 2019.04.2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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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보관소] 용인전투 쌍령전투의 뒤를 이어 조센군의 신화를 쓴 전투.jpg

ㅇㅇ(121.168) 2017-04-07 20:46:24
조회 425 추천 16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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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과



중공군 12군단, 27군단과 조선인민군 5군단은 3군단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보급로인 오마치 고개를 점령했다.

 3군단이 포위당하자 당시 군단장이던 유재흥은 부군단장을 대리로 지정한 후 군단을 버리고 항공기편으로 도주했다.

 "작전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갔다"라고 항변하였지만 당시 참모총장이었던 백선엽 장군의 저서 《밴 플리트 장군과 한국군》 136쪽에는 "이 때 유재흥은 작전회의에 조차 참석하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이 도주 행각으로 3군단은 지휘통제가 불가능한 와해 상황이 되었으며, 사단장들을 비롯한 모든 지휘관들이 지휘를 포기하고 계급장을 제거한 후 살기위해 무질서한 도피를 시작했다. 결국 현리에서 한국군 3군단 예하 3사단, 9사단 병력 1만 9천여명이 희생됐고, 병력의 40% 가량만 복귀했으며, 무기는 거의 다 뺏겼다.






영향


당시 밴 플리트 미8군 사령관은 한국군 제1군단을 제외한 모든 군단 사령부를 해체하고 일체의 작전지휘권을 미군 장성들에게만 부여하였으며,

 1군단 또한 육군본부를 지휘선상에서 제외하고 미군 사령부에서 직접적인 지휘를 받도록 해 시점부터 모든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이 상실되었다.


이 전투에 패전함에 따라 밴 플리트의 명령에 의해 3군단이 1951년 5월 26일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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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어버이군이 조센군 얼빵한거 알고 조센군쪽만 집중공격했는데 


겁먹은 센지휘관들 다 빤스런하고 대패함www


열받은 미국사령관이 조센징지휘권 뺏어버림wwwwww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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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61.255)

    그러니까 전작권 환수를 미국이 허락하는건 사실상 조센을 중국에게 넘겨주겠단 의미나 다름없는거 - dc App

    06.04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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