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지적했던 건 “죽은 조직”이 된 정부 부처와 합리적 정책 결정을 어렵게 하는 청와대-정부 간 “기형적인 구조”였지만 울림 없는 메아리가 되고 있습니다. 신 전 사무관은 잠적 전 남긴 유서에서 “죽으면 제가 하는 말을 믿어주겠죠”라고 썼습니다. 신 전 사무관이 진짜 하고 싶었던 얘기, 그리고 우리가 이번 사건으로 돌아봐야 할 점들은 무엇일지 다시 짚어봅니다.
바이백 취소와 적자국채, 국가채무비율의 관계
팩트체크부터 해야겠죠. 신 전 사무관은 2017년 11월14일 “적자성 국채 발행을 멈추면 안 된다. 최대로 발행할 수 있는 물량을 확보하라”는 김동연 전 부총리의 지시에 따라 다음날로 예정됐던 1조원 규모의 바이백을 취소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김 전 부총리가 적자국채 발행을 중단하면 안 된다고 밝힌 이유, 즉 “정무적 고려”란 △국채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을 세계잉여금으로 비축해둬야 한다는 것과 △정권이 교체된 2017년에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줄이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첫 번째 쟁점이 불거졌습니다. 국가부채 순증으로 직결되는 적자국채를 발행하면 국가채무비율이 올라간다는 건 알겠는데, 바이백 취소는 여기서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지요. 바이백 그 자체로는 국고채 잔액, 즉 국가부채 전체 규모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국가채무비율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한 한국은행 간부는 신 전 사무관에 대해 “별로 유능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깎아내리기도 했습니다.
바이백이란
바이백(buy-back)은 ‘되사다’라는 뜻입니다. 기재부도 제대로 구분해서 쓰고 있지 않지만 ‘차환(발행)’과 ‘조기상환’을 아우르는 용어입니다. 차환은 새로 국고채를 발행해 만기가 가까워진 기존 국고채를 사들이는 것입니다. 만기가 어느 한 시점에 너무 몰리지 않도록 평탄화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이뤄집니다. 빚을 내 빚을 갚는 것이므로 전체 국가부채 규모는 변하지 않습니다. 반면 조기상환은 여유자금으로 만기 도래 전에 빚을 갚아버리는 것으로 국가부채 규모를 줄입니다.
보통 바이백은 차환을 뜻합니다. 2017년 11월15일에 예정됐던 바이백도 이것이었다고 기재부는 말합니다. 즉 “바이백을 취소하든 안 하든 국가채무비율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얘기는 맞습니다. 하지만 신 전 사무관은 애초에 ‘국가채무비율을 낮추지 않기 위해 바이백을 취소했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바이백은 국고채 잔액에 변동을 주지 않는다는 것도 물론 알고 있었습니다. 아래는 신 전 사무관이 지난달 30일 올린 글의 내용 일부입니다.
“기존 국가채무의 차환이란 국채는 발행하되 조달된 자금을 재정지출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2018, 2019년 만기 도래 국채를 조기에 상환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국채 만기가 연장되어 해당연도의 국채 관리 부담이 감소하게 된다. 가계로 따지면 5년 뒤에 갚으면 되는 대출을 신규로 받아 내년에 갚아야 할 빚을 미리 상환하는 방식이라 할까. 이때 기존 채무의 조기상환(바이백)이 이루어진다.”
바이백 취소는 왜?… 적자국채 발행규모 늘리기 위해
그렇다면 국가채무비율을 높이는 것과 바이백 취소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국가채무비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는 적자국채의 발행 규모(A)를 늘리려면 바이백용 국채 발행 규모(B)를 줄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신 전 사무관도 “만기 평탄화용 차환을 진행할 때도 국채 발행이 필요하기에 차환 규모를 늘리게 되면 적자성 국채 발행 가능 규모는 줄어든다”고 썼습니다.
우리 정부는 예산총계주의에 따라 연간 국채 총 발행규모(한도)를 국회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국채의 신규(순증)발행뿐 아니라 차환발행도 포함됩니다. 해외 대부분 국가들이 국가채무 증가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국채 순증발행한도나 잔액한도만 국회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거칠게 말하면 A+B의 총액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A를 늘리려면 B를 줄여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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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2017년 예산에서 적자국채 발행한도를 28조7,000억원으로 정했습니다. 그해 10월까지 적자국채는 20조원만 발행됐고 초과세수는 14조원 가량 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신 전 사무관의 주장에 따르면 당시 김 전 부총리를 제외한 기재부 간부들은 남은 8조7,000원의 적자국채 추가발행에 부정적이었습니다. 세금이 많이 걷히는데 이자 부담을 지면서까지 적자국채를 발행할 필요가 있느냐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당시 실무 과에서는 적자국채 미발행분, 즉 8조7,000억원을 바이백에 활용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그 중에 4조원 가량을 바이백용으로 사용을 했거나 하려고 예정해놓은 상황이었다고 신 전 사무관은 밝혔습니다. 자연히 적자국채 발행 가능 규모로는 4조원 정도가 남았는데, 김 전 부총리가 “왜 추가 발행할 수 있는 적자국채 규모가 8조7,000억원이 안 되느냐, 물량을 최대로 확보하라”고 질책했다는 겁니다.
결국 한도 내에서 적자국채 발행규모를 늘리려면 바이백용 물량을 줄여야 했고 이 때문에 바이백이 취소됐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바이백 취소→적자국채 발행 물량 추가 확보→적자국채 추가발행을 통한 국가부채 증가→채무비율 상승을 의도했다는 겁니다. 신 전 사무관 주장의 구체성과 논리 정합성에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결국 적자국채 발행 안했는데…바이백 취소 왜 문제?
두 번째 쟁점은 “어쨌든 결국 적자국채 추가발행 안 하지 않았느냐”는 데서 출발합니다. 신 전 사무관은 바이백 취소 후 기재부 내 논쟁과 설득 끝에 결국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하지 않기로 부총리가 최종 결정을 내렸지만 그 뒤 청와대가 추가 발행을 거듭 요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청와대의 강압적 지시는 전혀 없었고 청와대와 협의를 거쳐 기재부가 최종적으로 결정한 것”이라며 “만약 강압적인 지시가 있었더라면 궁극적으로 적자국채 추가 발행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나 추가적인 적자국채 발행은 없었다”고 반박했습니다. 청와대도 “압력을 넣은 적은 없다”고 부인했고 결국 기재부 쪽 판단을 받아들여 추가 발행은 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도 바이백 취소 자체가 문제라는 쪽은 왜일까요? 시장의 손실과 정부의 신뢰도 하락 때문입니다. 2017년 11월14일 기재부의 바이백 취소에 국고채 3~10년물 금리는 일제히 3bp(1bp=0.01%p) 가량 급등(가격 하락)해 당시 일평균 변동폭(0.03bp)의 100배로 뛰었습니다. 약속했던 매수주체(정부)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면서 국고채전문딜러(PD)는 물론 정부를 믿고 채권에 투자했던 시장참가자들도 손실이 불가피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깨진 점입니다. 당시 한 PD는 “기관끼리 구두로 한 약속도 쉽게 깰 수 없는데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을 엎었으니 향후 정부의 계획을 믿겠느냐”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신 전 사무관도 “바이백 자체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한다고 해놓고 하루 전에 취소해버리는 건 굉장히 큰 문제”라며 “납득할 수 없는 의사결정과정을 거쳐 실질적으로 국가경제에 그렇게 금리가 뛰는 모습을 했다는 것만으로 죄송스러웠고 그런 의사결정과정이 다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폭로 이유를 밝혔습니다.
핵심은 폐쇄적인 靑과 비합리적인 의사결정 시스템
신 전 사무관 주장의 핵심은 바이백 취소와 적자국채 발행 여부를 둘러싼 ‘의사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재부와 청와대·여당 등의 주장처럼 적자국채 발행을 할지 말지에 대해 관계기관이 치열하게 토론해야 하고 사무관은 모르는 중장기적인 정책 판단도 할 수 있습니다. 실제 당시 초과세수 규모 예측과 그 처리 문제에 대해 기재부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었다고 신 전 사무관도 적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이견과 토론이 부총리 앞에서는 이뤄지지 못했고 그것이 ‘하루 전 바이백 취소’와 같은 유례 없는 결정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신 전 사무관에 따르면 2017년 초과세수 규모와 그에 따른 적자국채 발행 규모 관련 부총리 보고는 원래 그해 10월에 예정됐다가 계속 미뤄져 바이백 이틀 전인 11월13일에야 이뤄졌습니다. 세제실과 국고과의 초과세수 전망이 서로 달라 부총리에게 보고하기가 부담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는 사이 11월 바이백 계획은 10월말에 공고됐습니다. 신 전 사무관은 “보고하는 것이 무서워 적시에 상급자에게 관련 내용을 보고하지 못하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라며 “늦어진 보고 속에서 결국 사건이 발생했다”고 썼습니다.
청와대의 폐쇄적이고 일방향적인 의사결정 과정도 드러납니다. 신 전 사무관은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기재부 내부 토론 끝에 부총리가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말자’고 했는데 청와대가 직접 국·과장에게 전화해 (적자국채 발행을 안 한다는) 보도자료를 취소하라고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미 추가 발행하는 것으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결정돼 대통령에게 보고가 올라갔으니 “되돌릴 수 없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이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김 전 부총리의 대통령 보고가 막혔고 경제수석과 부총리가 언쟁을 벌였다고도 했습니다.
신 전 사무관은 그러면서 “왜 이번 정권도 도대체 부총리가 대통령한테 보고할 수 없나. 왜 국채 발행 여부에 대해 전문성을 잘 모르는 청와대 수보회의에서 이미 결정해서 의미를 내리느냐” “정책의 합리성 여부를 떠나서 대통령에게 보고된 사안이니 무조건 지켜져야 한다는 식의 청와대 조직은 정말 국민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 것인가”라고 반문합니다. 그가 가장 목소리를 높인 부분이지만 청와대와 기재부는 “청와대도 (국채발행에 관여할) 권한이 있다. 협의 과정을 거쳤을 뿐” “청와대의 강압은 없었다”는 것 외에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검찰 고발, 추측성 비난…내부고발자를 대하는 자세
내부 고발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의 자세도 돌아봐야 할 지점입니다. 신 전 사무관이 처음 밝은 분위기로 광고 배너와 후원계좌를 공개한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폭로를 시작하자 여당 포함 일각에서는 ‘스타강사가 되려는 노이즈마케팅’ ‘물정 모르는 신참 사무관’이라는 폄훼가 쏟아졌습니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신재민에게 가장 급한 것은 돈!!”이라며 근거 없는 추측으로 매도해 공분을 샀습니다. 기재부는 그를 직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입니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는 4일 “내부 고발을 가로막는 고발과 소송 남발, 인신공격을 지양해야 한다”며 “전직 공무원이 자신이 보기에 부당하다고 생각한 사안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고발부터 하고 보는 행태는 입막음을 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고발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공익제보자모임’도 “정부나 여당이 지금처럼 제보자를 헐뜯고 수사하는 식으로 입을 막으려 한다면 앞으로 누가 내부 고발을 하겠느냐”고 반발했습니다.
신 전 사무관의 주장에 사실 여부가 더 철저히 밝혀져야 할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내부 고발자에게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와는 관련 없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도 돌아봐야 할 일입니다. 신 전 사무관은 유서에 “제가 죽어서 조금 더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적었습니다. “공익 제보자라도 어두운 곳에 숨어다닐 필요없이 얼마든지 즐겁고 유쾌하게 폭로할 수 있어야 한다”며 “내부고발하고 더 잘 살고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 보이고 싶었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저를 보고 용기를 낼 것 아니냐”고 한 지 하루만이었습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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