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영 도쿄 특파원
책임감이 피투성이인 그녀를 달리게 했다지만, 기자의 눈에는 맡은 구간만은 최선을 다해 달리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던 무모한 도전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동시에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약속’이란 무릎이 박살나도 지켜야 하는 ‘무서운 것’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끼게 해준 사건이기도 했다.
새해 벽두부터 아베 신조 총리는 ‘룰을 지키는 나라’를 강조했다. 한 신춘대담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을 ‘룰을 지키지 않는 나라’ 범위에 은근슬쩍 끼워넣었다. 진행자가 “일본은 룰을 잘 지키는 나라인데, 룰을 지키지 않는 나라는 대하기가 참 어려울 것 같다”고 운을 띄우자, 아베 총리는 “룰을 지키지 않는 나라는 (국제적) 평판이 안 좋아지고, 반드시 경제적으로 마이너스가 된다”고 말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겨냥한 질문과 답변이었다.
최근에 만난 한국문제 담당 외교관은 한국과 일본의 인식차를 설명하며 “한국어의 ‘올바르다’라는 표현을 일본어로 표현하기가 가장 곤란하다”고 실토했다. ‘올바르다’가 ‘正しい(ただしい)’라는 단어로만은 설명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일본인에게 있어 ‘올바르다’는 정해진 기준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합의나 약속이 있으면 그것대로 하는 게 ‘올바른 방식’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통용되는 ‘올바르다’의 의미는 그야말로 시대에 따라 달리 받아들여진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올바르다’라는 의미로 사용된다는 의미다. 한·일 위안부 합의나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그렇다. ‘역사 바로 세우기’는 일본어에 없는 말이다. ‘역사 다시 세우기(立て直す)’로밖에 번역이 안 된다.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 현립대 교수는 한·일 간의 이런 차이를 “중요시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나라인 반면, 한국은 정의를 중요시하는 나라”라는 설명이다.
그러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런 시도는 잘 감지되지 않아 걱정이다. 한·일 관계는 원래 그런 것이라는 ‘방관론’이야 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한·일 관계가 언제는 좋았냐. 좀 나빠도 된다”는 식의 인식은 차라리 외교를 하지 않겠다는 말로 들린다. 새해엔 가시적인 상호노력들이 보이는 한 해였으면 좋겠다.
윤설영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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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약속이란 양 당사자 간의 이행계약이다. 그 반면에 정의는 양 당사자 뿐만 아니라 모두가 준수해야 할 올바른 규준이다. 본문을 보니, 일본 총리가 얼마나 단견인가를 그대로 드러낸다. 설령 국가 간의 위안부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 사이의 정치적 약속일 뿐,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들에게 개별적으로 법적 효력이 미치는 것은 아니다. 즉, 일본 총리는 정치인의 약속과 법적 정의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후자가 전자가 보다 상위 개념이고, 후자에 위배되는 전자는 효력이 없을 수 있는 것인데, 그것들을 구별하지 못하고 모른 것이다. 무지한 정치인은 히틀러처럼 결국 국가과 국민을 오도한다. 일본의 양심적 법률가들이 나서서 일본 총리를 가르쳐야 한다. 본문의 기자가 말했듯이, 과도한 약속 이행은 무모한 도전일뿐 결코 인도적인 정의가 아니다. 약속을 지키겠다며 무릎을 절단내는 것은 우매한 들쥐떼의 집단자살과 같은 짓이기 때문이다. 인류 정의가 약속보다 우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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