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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만원 대 1015만원…소득격차 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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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5-24 20:40
수정 2018-05-25 15:56

통계청 올해 1분기 가계동향 조사

하위 20% ‘빈곤에 허덕’(8%↓)
상위 20% ‘나홀로 호황’(9%↑)
소득격차 5.95배 사상 최대 기록
고령층 늘고 일용직 줄며 더 악화
“소득양극화 완화할 수 있을만큼
정부가 구체적 정책 못내놓은 탓”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올해 1분기(1~3월)에 저소득가구의 가계소득이 역대 최대 폭으로 감소했다. 저소득가구에 고령인구가 많아진데다 도소매업과 음식점·숙박업 등의 고용부진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분배지표인 소득 5분위 배율도 역대 가장 큰 폭으로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앞세우고 있지만 소득 양극화를 완화할수 있을만큼 구체적인 정책들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탓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2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1분기에 물가상승 등을 고려한 실질소득(2인이상 전국가구 기준)은 월평균 458만1530원으로 한 해 전보다 2.4% 늘었다. 2015년 3분기 이후 감소세를 보이던 실질소득은 지난해 4분기에 9분기만에 증가세(1.6%)로 돌아섰고, 올해 1분기에는 증가폭이 더 커진 것이다.

하지만 소득계층별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올해 1분기에 소득 하위 20% 계층인 1분위의 가계소득(명목기준·2인 이상 전국 가구)은 월평균 128만6700원으로 1년 전보다 8.0% 감소했다. 2003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근로소득(47만2900원)과 사업소득(18만7800원)이 각각 13.3%와 26%나 줄어든 영향이다. 이에 견줘 소득 상위 20% 계층인 5분위의 가계소득은 한 해 전보다 9.3% 늘어나며, 월평균 1천만원(1015만1700원)을 넘어섰다. 5분위의 소득 증가폭은 2004년 3분기(9.4%) 이후 최대치였다.

이에 따라 소득 상위 20% 계층의 소득이 하위 20%에 견줘 몇 배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소득 5분위 배율(균등화소득 기준)은 역대 최고치인 5.95배로 벌어졌다. 이 지표는 2016년 1분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7분기 연속 악화됐다가 지난해 4분기 다소 개선됐는데 1분기 만에 다시 뒷걸음질한 것이다.

정부는 갈수록 심화되는 고령화와 최근 고용부진 등이 저소득가구의 소득에 타격을 입힌 결과로 보고 있다. 거꾸로 고소득가구의 경우 지난해 대기업 영업실적 개선에 따른 연말 성과급 증가 등의 요인으로 소득이 껑충 뛰었다는 것이다. 도규상 기재부 경제정책국장은 “소득 1분위의 근로소득이 감소한 이유는 70살 이상 노인의 비중이 늘어나고 음식·숙박업과 도·소매업을 중심으로 임시·일용직 일자리가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에 견줘 지난해 일부 상장기업의 당기순이익이 크게 증가하면서 대기업 임원 등이 특별상여금을 받아 5분위의 근로소득은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한국노동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장년층(45~64살)은 올해 2~3월에 임시직에서 7만2천명, 일용직에서 5만4천명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업종별로는 도·소매업(-3만4천명)과 음식·숙박업(-2만8천명) 등에서 감소 폭이 컸다. 2016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갈등 이후 감소한 중국 관광객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영향이 크다는 것이 기재부 쪽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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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직원을 두지 않은 자영업자가 줄어드는 고용시장의 변화도 1분위 소득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기재부는 설명했다. 가구주가 노동자인 가구와 아닌 가구로 나눠보면, 1분위에서 ‘노동자가구’의 소득은 0.2% 상승한 반면, ‘노동자외가구’의 소득은 13.8%나 떨어졌다. 영세 자영업자가 1분기 소득 감소를 이끈 셈이다. 김정란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고령층이 늘어나고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인구구조상 1~2분위의 소득은 감소 추세를 계속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소득가구의 소득 급감이 올해 최저임금 인상 영향인지에 대해선 엇갈린 해석이 나온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시간당 최저임금이 크게 오르더라도 자영업자가 근로시간을 단축하거나 고용을 감축해버리면 노동자의 소득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고용상황이 악화되다 보니 새로 일자리를 구하는 취약계층이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1분위는 일자리를 갖지 못해 최저임금과 관련성이 크지 않다”며 “소득 양극화를 잠재울 수 있을 만큼 정부가 구체적 정책을 내놓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도규상 국장은 “노인 일자리 정책이나 근로장려금(EITC) 등을 강화하고 혁신성장 등을 가속화해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노력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우석진 교수는 “조세·재정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소득재분배에 힘써야 1분위 소득을 끌어올 수 있다. 재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보편 복지로 지향하면 한계가 드러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은주 허승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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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성장의 핵 ‘근로장려금’…334만 가구에 단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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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11-04 18:26
수정 2018-11-05 11:54

Weconomy | 국회 심의 ‘근로장려금 개편안’

참여정부 논의 바탕 MB정부 첫 지급
문재인정부, 제도 시행 10년 맞아
‘일하는 복지’ 기본틀로 확대 재설계

수급 가능 나이 제한 폐지
대상 연봉 상한 2500만원→3600만원
재산 한도 1억4천만원→2억원
최대지원액 250만원→300만원

확대 개편은 보수야당도 주장
국회 통과되면 168만가구 추가 수혜
전체 가구 17.3% 334만가구 혜택

그래픽_장은영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근로장려금(EITC)이 “소득주도성장에 기여하고 포용성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정책”이라고 소개했다. 올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대표 상품’이 최저임금이었다면, 내년에는 일하는 저소득층 가구의 소득을 지원하는 근로장려금이 소득 향상과 성장의 선순환을 위한 핵심 정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임금노동자 462만명(전체 노동자의 23.6%)이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내년에 근로장려금이 크게 확대 개편되면 전체 가구의 17.3%인 334만 가구(정부 추정치)가 혜택을 보게 된다. 근로장려금 지원 대상과 지급액이 각각 종전보다 두배와 세배로 늘어나면, 소득불평등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 누르면 크게 볼수 있습니다.
■ 시행 10주년 복지 기본틀로 발돋움

1975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된 근로장려금은 저소득 근로가구를 지원하되, 소득 수준에 따라 지급 액수가 차등 적용되는 제도다. 일정 소득 수준까지는 일을 더 많이 할수록 지급액도 늘어나지만(점증 구간), 소득이 더 늘어나면 차츰차츰 지급액이 줄어들도록(점감 구간) 설계됐다. 다소 복잡한 구조를 고안한 이유는 노동 의욕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덕분에 미국에서는 근로장려금이 ‘성장이냐 분배냐’라는 논쟁을 넘어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폭넓게 지지를 받는 제도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도입 논의가 시작됐고, 2006년 법제화돼 2009년부터 지급되기 시작됐다. 하지만 시행 뒤에도 지원 규모가 작아 정책 효과가 크지 않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시행 10년을 맞아 정부는 근로장려금을 일하는 복지의 기본틀로 확대·재설계하기로 했다.

첫째, 단독 가구의 경우 30살 이상만 받을 수 있도록 한 나이 제한이 폐지된다. 둘째, 소득 기준을 완화해 단독 가구는 지급 대상을 연봉 1300만원 미만에서 2000만원 미만으로 확대한다. 홑벌이와 맞벌이 가구도 각각 연 소득 3000만원 미만(기존 2100만원 미만)과 3600만원 미만(기존 2500만원 미만)으로 늘어난다. 셋째, 재산 기준도 완화된다. 종전에는 주택 등 재산이 1억4천만원이 넘으면 혜택을 받을 수 없었지만, 내년부터는 2억원 미만까지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이 된다. 지난해 수급 탈락 가구 33만 가구 가운데 재산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가 72%(23만6천가구)나 됐다. 마지막으로, 최대 지원액도 단독 가구는 85만원에서 150만원, 홑벌이 가구는 200만원에서 260만원, 맞벌이 가구는 25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확대된다.

■ 수급가구 2배, 지급액 3배 확대

이번 제도 개편으로 수급가구 수는 166만가구에서 334만가구로 갑절 이상 증가하는데, 근로장려금을 새로 받게 되는 신규 가구(168만가구) 가운데 단독 가구 비중이 59.5%(100만가구)로 절반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홑벌이·맞벌이 가구 비중은 26.8%(45만가구), 13.7%(23만가구)로 예상된다.

단독 가구에서 신규 추가가 많은 이유는 나이 제한이 폐지되면서 청년층이 많이 유입되기 때문이다. 30대 미만 단독 가구의 월 평균소득은 182만원으로 60대(186만원)와 비슷한데, 그동안 나이 제한 탓에 근로장려금을 신청할 수 없었다. 또 소득 요건이 완화되면서 수혜 대상자가 단독 가구는 중위소득 100%, 홑벌이·맞벌이 가구는 중위소득 65%까지 확대된 영향도 크다. 근로장려금은 근로빈곤층을 지원하는 제도이기에,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중위소득의 30~50%)보다 지원 대상 범위를 넓히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근로장려금 지급 규모는 기존 약 1조1967억원에서 3조8228억원으로 3배 정도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가구당 수급액은 최대 174만원까지 증가한다. 증가분 2조6261억원 가운데 단독·홑벌이 가구 몫이 각각 41.9%(1조1184억원), 40.5%(1조792억원)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맞벌이 가구는 13.6%(3625억원)로 상대적으로 적었다. 근로장려금의 최대 지급액을 크게 높였을 뿐 아니라 최대 지급구간도 종전보다 2~3배 넓혀 저소득층이 보다 두텁게 지원받도록 했다. 최대 지급구간은 단독 가구의 경우 연 소득 600만~900만원에서 400만~900만원, 홑벌이 가구는 900만~1200만원에서 700만~1400만원, 맞벌이 가구는 1000만~1300만원에서 800만~1700만원으로 확대된다.

근로장려금 개편안은 정부의 세법 개정안의 일환으로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세법 개정안은 통상 예산안과 함께 예산부수법안으로 묶여 11월1일부터 법정 처리 기한(12월2일)까지 한달간 심의를 거친다. 자유한국당 등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근로장려금 확대 개편이 국회의 문턱을 순조롭게 넘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내년 일자리 예산 절반 청년사업에 집중

국회 예산정책처 ‘분석 보고서’

국회 심의 중인 내년 일자리 사업 예산 가운데 청년 대상 사업이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약 계층을 위한 직접 일자리 사업은 전체 일자리 예산의 16%에 머물렀다.

4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에 제출한 ‘2019년 예산안 총괄분석’ 보고서를 보면, 세대별로 분류한 내년 재정지원 일자리사업(23조5천억원)은 청년(34살 이하) 대상 사업이 50.5%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 중년(35∼54살) 37.4%, 노년(65살 이상) 9.9%, 장년(55∼64살) 2.2% 순서였다.

이는 내년 청년 일자리 관련 예산이 올해에 견줘 47.8%나 늘어나기 때문이다. 고용장려금과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사업이 2∼3년차에 접어들면서 예산 규모가 크게 확대된 영향이다. 특히 2017년에 8.8%에 그쳤던 고용장려금 비중이 내년 청년 일자리 예산의 47.2%나 된다. 반면 청년 일자리 예산에서 직업훈련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47.2%에서 내년 18.6%로 크게 줄었다.

내년 일자리사업 예산은 24개 부처, 170개 사업에 편성됐다. 고용노동부가 전체 예산의 70.2%(16조4700억원)를 차지하고, 보건복지부 12.6%(2조9439억원), 중소벤처기업부 11.6%(2조7128억원)로 뒤따랐다. 사업별로 보면, 실직자의 임금 보전을 지원하는 ‘실업 소득 및 유지 사업’이 34.7%로 가장 컸다. 고용장려금(25.2%), 직접 일자리(16.1%), 창업지원(11.0%) 등이 뒤를 이었다.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인 사업은 역시 고용장려금으로, 올해보다 56.3% 늘었다. 실업소득 유지 및 지원은 19.7%, 직접일자리는 18.3% 증가했고, 직업훈련은 4.5% 감소했다.

한편, 내년 일자리사업 예산 23조5천억원은 2014년(13조1천억원)과 비교하면 79.4% 증가한 수치다. 정부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4년 3.7%에서 내년에는 5%로 확대된다.

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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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전 ‘사형수’ 된 고시원 방화범 지금 재판 받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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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11-07 05:00
수정 2018-11-07 06:50

사형제, 폐지할 때 됐다 ③
판결문으로 생존 사형수 55명의 삶 돌아보니

<한겨레>는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사형제 폐지를 위한 기획 보도를 연재하고 있다. “사형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의 대답을 찾기 위해서 현재 살아 있는 사형수 57명(군 사형수 4명 제외)의 삶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기초 자료는 판결문이었다. <한겨레>는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사형수 57명 가운데 55명의 1·2·3심 판결문 150여건을 입수해 사형수들의 범죄 유형과 삶의 궤적 등을 분석했다. 판결문은 익명 처리되어 있어 당시 사건 기사 등으로 신원을 확인했다. 판결문에 기재되지 않은 내용이나, 판결문이 없는 2명의 생존 사형수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사형 제도를 연구해온 김상균 백석대학교 경찰학부 교수의 연구 자료와 기사 등을 참고해 보강했다.

<한겨레> 자료 사진
“피고인을 사형에 처한다.”

<한겨레>가 금태섭 의원실에서 입수한 생존 사형수들의 판결문 ‘주문’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문구다. 판결문에는 피고인이 받아야 할 형벌을 적는 ‘주문’에 이어 ‘범죄사실’이 적힌다. 생존 사형수들의 범죄사실은 ‘주문’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하다. 하지만 판결문 마지막에 있는 ‘양형 이유’에 담긴 피고인의 삶을 보면, 끔찍한 범죄의 책임을 모조리 피고인 한명에게 물은 뒤 생명을 앗는 것이 “반인륜적이고 흉악한 범죄에 대하여 경종”을 울리는 유일한 방법인지 의문이 든다. 흉악 범죄의 책임을 피고인에 대한 ‘엄벌’로만 묻는 것은 그 범죄가 발생하게 된 사회적 문제를 가리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 흉악한 범죄에 앞선 끔찍한 삶

범행 당시 서른살이었던 강민창(가명)씨는 자신이 살던 고시원에 불을 지른 뒤 도망 나오는 이들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6명의 안타까운 생명이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판결문을 보면, 용서받지 못할 범죄의 이면에 그만큼 끔찍했던 강씨의 삶을 읽을 수 있다.

강씨는 4남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2월에 태어나 다른 친구들보다 한해 일찍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몸집이 작고 운동신경이 나빠 친구들에게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다. 중학교에 가서는 같은 반 친구들에게 볼펜이나 가시 같은 것으로 손톱 밑부분을 찔렸다. 가슴을 압박해 기절시키는 ‘기절 놀이’의 단골 대상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성적이 나빠 선생에게 맞았고, 친구들에게 괴롭힘과 따돌림을 당했다. 성실히 살려고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일반판금기능사 2급 자격증을 따 냉장고 부품 생산라인에서 조립 및 용접 일을 했다. 입사 8개월 뒤에는 자신의 생산라인에서 조장을 맡아 조원 4명을 책임지기도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월급과 보너스가 절반으로 줄었다. 회사를 그만뒀다. 그 뒤 단란주점 웨이터와 다단계 회사 등을 전전하며 살았다.

그는 여러번 세상을 떠나려 했다.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던 중학교 1학년 때가 처음이었다. 농약을 마셨지만 응급실로 옮겨져 살아남았다. 이듬해에도 집에 있던 외양간에서 목을 맸다. 입대를 위해 고향에 돌아가서도 수면제를 먹었다. 강씨는 그렇게 여러차례 세상을 떠나려 했고, 또 실패했다. 범행 직전 그는 고시원에서 자신의 삶이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고 생각해 불을 지르고 사람들을 해했다.

6명의 목숨 빼앗은 ‘고시원 방화범’
학창시절 왕따·구타·괴롭힘…
사회 나와서도 다단계회사 전전
삶이 막다른 곳 이르자 범행

용서받지 못할 범죄의 이면에는
그만큼 견디기 힘든 삶이 있었다

불우한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 잔혹한 범죄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범죄는 사회와 무관하게 홀로 태어나지 않는다. <한겨레> 분석 결과, 생존 사형수 57명 가운데 판결문에 불우한 어린 시절이나 어려운 경제형편 등이 언급된 경우는 27건(미확인 23건)이었다. 재판부가 피고인의 삶이 평범했다고 판단한 경우(7건)보다 4배 가까이 많았다.

특히 사형수들의 판결문에서는 가정폭력을 경험한 사례가 자주 확인된다. “사망한 피고인의 부친은 생전에 피고인의 모친을 심하게 구타하는 습벽이 있었고 이를 목격하며 자라온 피고인의 성격 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이는 사실” “양부모의 친자들로부터 주워온 자식이라는 놀림을 받는 등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 (중략) 오로지 피해의식과 공격적 성향만이 남아 이 사건의 먼 동기가 되었다” “아버지의 심한 폭력을 겪게 되면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충동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피고인의 어머니를 자주 폭행하는 아버지와 피고인을 학대하는 형의 영향” 등의 대목이 그 흔적이다.

모든 일을 사회의 책임으로 떠넘길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일을 개인의 책임으로만 떠넘길 수도 없다. 사형수들을 오래전부터 연구해온 김상균 백석대학교 경찰학부 교수는 “사형수 중에는 부모에게 학대를 당하거나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경우가 많다. 이들은 사회가 자신이 당한 폭력에 무관심했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 환경이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떨어뜨리고 공격성을 부추기는 등 사이코패스적인 경향을 띠게 하는 것이다. 많은 강력 범죄를 사회가 배양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사형은 범죄가 낳는 다양한 문제를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식이다. 강력한 처벌로 국가의 책임을 다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엄벌주의’는 국가가 범죄 피해자를 지원해야 하는 책임을 소홀하게 여기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외국 연구를 보면 사형은 범죄 피해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있다. 하지만 그 영향이 긍정적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연구의 결론이다. 많은 사형제 폐지론자가 정부가 사형이라는 손쉬운 방법이 아니라 피해자 지원 등 범죄 문제 해결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죗값은 누구에나 공평한가

<한겨레> 분석 결과, 1심 재판을 기준으로 생존 사형수의 70% 넘는 40명이 국선 변호사의 변호를 받았다. 1심에서 사선 변호사를 선임한 경우는 19%인 11명에 불과했고, 6명은 국선·사선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국선 변호사가 사선 변호사보다 변호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뛰어난 국선 변호사도 많다. 하지만 국선 변호사는 여러 사건을 동시에 담당해야 하므로 한 사건에 집중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중요한 사건일수록 재판을 대형 로펌에 의뢰하거나 사선 변호사를 여럿 선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생존 사형수 대부분은 자신의 생명이 오가는 재판에서도 따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아 국선 변호사의 변호를 받았다. 형사 재판에서는 피고인이 별도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을 경우, 국선 변호사가 자동으로 선임된다.

사형수 사선 변호사 19%뿐
“경제적 실패로 범행” 이유 많아
대기업 사주처럼 ‘변호’ 받았더라면…

양형기준 마련 이후 사형선고 줄어
‘종교시설 방화 14명 사망’은 사형
‘대구지하철 192명 참사’ 무기징역
사형 선고 형평성에 의문도

이들이 사선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한 것은 가난 때문으로 보인다. <한겨레> 분석 결과, 생존 사형수의 40%인 23명이 범행 당시 무직이었다. 직장인 등은 18명이었지만, 이들 가운데 여럿은 산업연수생이거나 식당 종업원, 대리운전 기사 등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지 못했다. 경제적 곤란이 범행을 저지른 이유가 된 경우도 많았다. “군 복무 후 의류매장에 취업하여 업무능력을 평가받아 점장으로 승진하였고, 자신의 사업체를 차리는 등 (중략) 거액의 부채만 남긴 채 사업에 쉽게 재기할 수 없는 여건에 좌절한 나머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사건 범행에 이르게 된 점” “다니던 회사마저 부도가 나 직업을 잃고 집과 자동차 등이 압류, 경매됨으로써 가족의 부양과 자녀 교육이 더욱 어렵게 되어 절박한 심정” 등이 경제적 실패로 인해 범행을 저지른 경우다. 이들이 대기업 사주나 유력한 정치인들처럼 최선의 변호를 받았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변론에 따라 2~3년의 형량 차이가 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과 무기징역이 변호사의 역량이나 어떤 재판부를 만나느냐 등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민상(가명)씨는 생존 사형수 가운데 유일하게 살인이 아닌 현주건조물 방화치사상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부인이 가정을 소홀히 하자 특정 종교 때문이라고 생각해 1992년 해당 종교 시설에 불을 질러 14명을 숨지게 했다. 반면 2003년 192명의 사망자를 낸 대구지하철 참사의 범인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됐다. 사형수들의 판결문을 분석하고 있는 이덕인 부산과학기술대 경찰경호과 교수는 “한민상씨 사건과 대구지하철 참사 사건을 비교해보면, 사형 선고에 형평성이 있는지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법원에서 (사형이 주로 선고되는) 살인죄에 대한 ‘양형 기준’(형량을 정하는 기준)을 마련한 것이 2009년이다. 그 뒤 사형 선고가 많이 줄어드는 추세다. 형량을 엄격하게 보니 사형 선고 사건이 줄어든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2009년 이전에 사형을 선고받은 사람들은 그 뒤에 재판을 받았다면 무기징역을 선고받을 수도 있었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 사형은 흉악 범죄를 막을 수 있나

사형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요 근거 가운데 하나는 ‘위하(위협) 효과’다. 사형이 범죄를 억제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실제 생존 사형수들의 판결문을 보면, 위하 효과를 염두에 둔 대목이 여럿 나온다. “황금만능주의와 인명 경시현상이 만연되어가는 현대에서 사회를 방위하기 위하여서는 이 사건과 같이 반인륜적이고 흉악한 범죄에 대하여는 경종을 울리지 않을 수 없다” “죄책이 심히 중대하여 죄형의 균형이나 범죄의 일반예방적인 견지에서도 극형이 불가피하다” “인간의 생명을 부정하는 극악한 범죄에 대한 일반예방을 위하여” 등이 사형을 선고한 재판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사형이 종신형 등에 견줘 위하 효과가 크지 않다는 반론은 법조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0년 2월 5(합헌) 대 4(위헌)의 의견으로 사형 제도가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당시 김종대 재판관은 소수의견에서 “사형 제도를 통해 일반예방의 목적이 달성되는지도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김희옥 재판관은 “사형 제도는 범죄인을 사회 전체의 이익 또는 다른 범죄의 예방을 위한 수단 또는 복수의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제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형 제도 연구가 가장 활발히 진행되는 미국에서도 사형 집행과 살인 범죄 증감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실제 미국 콜로라도대학 연구진이 2008년 범죄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사형 제도가 범죄예방에 효과적이라고 믿지 않는다”는 응답이 88.2%로 압도적이었다. 김준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은 “사형이 (종신형 등) 장기형보다 범죄예방 효과가 크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 국외 주요 연구 결과이다. 이런 상황에서 위하 효과 때문에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적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범죄예방을 위한 다른 노력이 더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환봉 신민정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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