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근 부모 "정부 담당자는 유근이가 죽어도 잘 살고 있는 줄 알 것"
"유근이가 죽어도 기사 안 뜨면 (과학기술부 신동프로그램) 담당자는 유근이가 공부 잘 하고 있는 줄 알 거에요. 죽었는지 도망 갔는지 관심조차 없어요."
지난 2005년 '신동' '천재소년' 등으로 관심을 받았던 송유근(10·인하대 자연과학계열 2학년)군의 아버지 송수진(48)씨와 어머니 박옥선(48)씨는 한국에서 영재교육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언론과 학계의 대대적인 관심이 쏟아지자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시들어 있었다. 송군의 공부욕심은 커져왔지만 사회의 관심은 점점 줄어들었다.
아버지 송씨는 "10년이 지나면 유근이가 뭐가 돼 있을까. 나라에서 ‘신동’이라고 추켜세워주던 일이 언제냐는 듯 유근이가 연구를 하지 못하고 병역문제와 취직문제 앞에서 걱정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선다"며 "축구선수에 비유하면 공을 찰 수 있는 운동장이라도 달라고 했는데 그것 마저 안 된다. 적어도 한번은 나가서 공은 두들겨 볼 수 있는 기회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송군의 새 실험실은 하수처리장 옆 컨테이너박스
지난달 말 송군은 실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얻었다. 구리시 하수처리장 옆에 있는 컨테이너박스가 송군이 새롭게 마련한 실험실이었다. 하수처리장 옆이라 냄새가 컨테이너박스를 감싸고 있는 곳이다.
과학기술부와 대학에서 송군이 공부하고 싶은 양자컴퓨팅 실험을 위한 실험실 마련에 난색을 표하자 지난달 말 송군의 어머니 박옥선(48)씨는 가족이 살고 있는 경기도 구리시청을 찾았다. 박씨의 요청에 구리시장은 송군에게 자그마한 컨테이너 박스를 마련해줬다.
아버지 송씨는 "수해 피해를 입으면 수해물자 보관을 하는 모양의 컨테이너박스"라며 송군의 새 실험실 모습을 설명했다. 그는 "유근이 같은 아이가 컨테이너로 쫓겨났다고 하면 고3 학생이 자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유근이가 공부하기 위해 여기밖에 갈 수 없다면 대학교 물리학과 진학한 학생들은 연구와 실험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얘기"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2년 전 송군이 '천재소년'으로 유명해지면서 과학기술부에서 마련했던 신동프로그램도 무용지물에 가까운 상태다.
아버지 송씨는 "유근이가 과학기술부 신동프로그램에 선정된 지 2년이 됐는데 그 동안 담당자만 3~4명이 바뀌었다"면서 "학교와 과학기술부 모두 유근이 문제를 폭탄 떠밀기 하듯이 서로 돌리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송씨는 "유근이를 신경써야 할 과학기술부에서 관심이 없는데 유근이 영재교육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구리시의 관심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곳에 실험실이 마련돼서 아쉽지만 다행"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송씨는 송군의 연구비를 마련하기 위해 연구결과와 제안서 등을 들고 관련 기관이나 재단을 찾는다고 했다. 그는 "연구비를 얻는 것도 능력이라고 하더라. 가만히 있다고 누가 주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실험실과 장비를 지원해달라는 것은 음악 하는 아이에게 악기를 마련해달라는 것과 같다"면서 "유근이가 음악을 해서 악기가 필요하면 집을 팔아서라도 사주겠지만 과학자는 실험이 끝나고 결론을 내면, 새로운 실험을 위해 새 장비를 다시 사야하는 등 비용이 만만찮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척박한 한국 영재교육 여건
"유근이는 물리학 중에서도 양자컴퓨팅을 공부하고 싶어해요. 그런데 이 분야가 미국에서도 앞으로 30년 후에나 상용화가 가능하다는 분야에요. 미국에서도 30년 뒤를 보고 하는 공부인데, 국내에서 30년 뒤를 보고 인재를 키운다는 건 아무도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아버지 송씨는 새 실험실인 컨테이너박스를 마련하게 되자 출입문 옆에 걸기 위해 '전국대 물리학과'라는 간판을 만들었다. 영재인 송군이 공부하기 위해선 학교와 정부 제도와 같은 시스템에 얽매여선 힘들다는 뜻의 표현이었다.
송씨는 “양자컴퓨팅이 첨단분야라 국내에 연구소가 몇 군데 있는 정도에 학부에서 강의도 없다”면서 “유근이가 관심이 있다면 한 대학에 안주할 수 없다. 그래서 ‘전국대’라는 표현을 썼다”고 설명했다. 그는 "유근이가 다니는 학교에선 양자컴퓨팅을 공부할 수 없다"며 "양자컴퓨팅을 연구하는 물리학과나 연구소가 있어야 하는데 그 분야가 없으니까, 자유롭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버지 송씨는 이어 "학교 입장에서도 유근이가 유학 가는 건 상관없다고 하는데 유근이에게 필요한 전공이 국내 다른 학교에 있으면 힘들다는 입장"이라며 "다른 학교를 가고 싶으면 수능 봐서 다시 재입학 하는 방법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송씨는 "대학에서 그런 분야를 한다고 해도 학교나 학과 예산을 유근이 혼자 실험할 수 있는 실험실을 마련하는 데 달라고 하기도 미안한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어머니 박씨도 "학교 측에서 보면 유근이 혼자만 학생이 아니고 학칙이 있다는 게 학교 입장"이라며 "가능하면 학교에서 해결이 되면 좋겠지만 어차피 교수님 연구실도 부족한 현실에서 의지만으로 해결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송씨는 송군이 학교를 그만둘 것이라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선 “중요한 문제는 학교를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한국 영재교육의 문제”라며 “유근이가 학교를 그만 두면 ‘대한민국 대학’을 그만 두는 것이지 어느 한 학교를 그만 두는 의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부하고 싶다는 송군의 꿈
송군 부모는 송군의 교육을 위해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송군 뒷바라지에 전념하고 있는 상황이다. 아버지 송씨는 하던 사업을 접었다. 그는 "유근이가 대학 가면서 신경을 덜 써도 될 줄 알고 만세를 불렀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영재교육을 하기 위한 현실은 쉽지 않았다. 송씨는 "전에 사업하면서 모아둔 돈으로 먹고 사는 건 되지만 이제 유근이가 하고 싶어하는 공부가 부모 능력을 벗어나니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송군은 지난달 27일 만 10살 생일을 맞이했다. 송군은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 일주일에 2번 정도 구리시 내 초등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린다. 이날 아침 송군은 등교하기 전 엄마가 볼 수 있도록 부엌 테이블 위에 작은 쪽지를 남겨 놓았다. "엄마, 오늘 우리집에 애들 놀러올 거니까 치킨이랑 피자 같은 거 사주세요."
아버지 송씨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생일잔치를 하며 기뻐하는 송군의 모습을 보며 "아쉬웠다. 고생하지 않고 이렇게 평범하게 사는 게 아이한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유근아, 힘들지 않니? 이제 다른 거 할까?"
학교 다니면서 평범하게 사는 게 어떻겠냐는 아버지 송씨의 질문에 유근이가 고개를 숙이며 조그맣게 대답했다.
"아빠, 나 그래도 공부할 때가 행복해."
아버지 송씨는 “유근이가 ‘하고싶다, 행복하다’고 말하기 때문에 유근이 공부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끝까지 쫓아다니는 것”이라며 “언제든지 본인이 ‘하기 싫다’고 하면 그만 두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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