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아키히토 日王 부부, 고구려 왕족 기리는 '고마신사' 방문
국제 일반

아키히토 日王 부부, 고구려 왕족 기리는 '고마신사' 방문

입력 2017.09.20 18:29 | 수정 2017.09.20 19:01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부가 20일 고마신사를 방문한 모습. /연합뉴스

아키히토(明仁) 일왕(日王) 부부가 20일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에 있는 고마(高麗·고구려를 의미) 신사를 참배했다. 일왕 부부가 고마 신사를 참배한 것은 처음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아키히토 일왕과 미치코(美智子) 왕비는 이날 오전 사이타마현 여행길에 히다카시의 고마신사를 찾았다고 한다. 고마 신사는 고구려 멸망 이후 일본에 정착한 유민들이 고구려의 마지막 왕 보장왕의 아들 고약광(일본 이름 고마노잣코·高麗若光)을 모시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히다카시 일대엔 당시 고구려 유민들이 정착촌을 세웠다. 이 지역이 메이지(明治)시대(1868~1912년) 중반까지 '고구려인들의 마을'을 의미하는 '고마군'(高麗郡)으로 불린 이유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날 약광의 후손인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 궁사(宮司)의 설명과 함께 신사를 둘러본 뒤 참배를 마쳤다. 전시관에 있는 고마씨(氏)의 족보도 살펴봤다고 한다. 신사 인근 고마가(家) 주택을 보면서 “여러가지가 잘 남아있군요”라며 관심도 보였다고 한다. 고마 궁사는 일왕에게 “저는 조선반도의 사람들이 이 지역에 세운 역사를 계속해서 전할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내년 말 퇴위를 앞둔 일왕 부부가 일본 내 한반도를 상징하는 고마 신사를 방문하는 것을 두고 반성과 화해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교도통신은 일왕 부부의 여행 목적에 대해 "다양한 역사를 접하기 위한 것"이라며, 아키히토 일왕이 2001년 생일 기자회견에서 "내 개인으로서는 간무(桓武)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 데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고 소개했다. 자신의 '뿌리'가 한반도에 있음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당시 아키히토 일왕은 “무령왕의 아들인 성명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과의 교류는 이것만이 아니었다”며 “이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일왕의 당숙인 아사카노미야((朝香宮誠彦王)가 충남 공주시의 무령왕릉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그동안 여러 차례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해에는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전시한 한국 국보 78호인 금동반가사유상을 관람하기도 했다. 당시 일왕의 방문을 두고 “한일관계 개선의 대한 뜻이 담겨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2007년에는 도쿄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사망한 고(故) 이수현씨를 소재로 한 영화를 시사회에 직접 참석해 관람하는 등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2005년 6월엔 사이판의 한국인 전몰자 위령지인 ‘한국평화기념탑’을 참배한 적도 있다. 1989년 즉위 이후 “(방한의) 기회가 있다면 친선관계 증진에 노력하겠다”며 방한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아키히토 일왕의 행보는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총리와도 대비된다. 아키히토 일왕은 8월 15일 패전일 희생자 추도식에서 3년 연속 ‘반성’을 언급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수년째 ‘가해’ 언급을 피하고 있는 아베 총리와는 다르다.

일본 왕실 담당 기관인 궁내청은 아키히토 일왕의 1박2일 간 사이타마현 방문 일정에 대해 2013년 시작된 '사적(私的) 여행'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여행은 8번째다.

아키히토 일왕 부부는 이날 오후엔 히다카시의 석산 군락지를 둘러본 뒤 구마가야(熊谷)시에서 하룻밤을 묵고, 21일엔 후카야(深谷)시에 위치한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 시부사와 에이치(澁鐸榮一) 기념관 등 방문한 뒤 귀경길에 오를 예정이다.



100자평

49
유성출(yoo****)
모바일에서 작성2017.09.2108:47:57신고
"덴노하이까 반자이!" 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던 그들이 해방이 되자 왜 그토록 반일감정을 외쳤는지 아는가? 친일행위를 고백한 적이 한번도 없던 그들이 왜 그토록 반일감정을 외쳤는지 아는가? 그들이 왜 조선 황실에게는 그토록 잔인했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유성출(yoo****)
모바일에서 작성2017.09.2108:23:04신고
해방 후 해외독립운동가와 일제시대 국내인사 중에서 반일감정은 순전히 후자로부터 나왔다. 전자는 일본인에게 관대하고 친일파에게 강경했으나 후자는 일본인에게 강경하고 친일파에게 관대했다. 대한민국은 후자의 길을 걸었다. 일본과 영원히 화해하지 않았다. 해방 후 70년이 지나도 일본국왕은 단 한번도 방한하지 못했다.
유성출(yoo****)
모바일에서 작성2017.09.2107:48:53신고
우리가 경계하는 것은 군국주의 일본이지 자유민주주의 일본이 아니다. 일본 국왕이 전쟁의 제국주의 일본이 아니라 평화의 민주주의 일본을 상징하는 한, 2차대전 후 변화된 일본을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일본 그 자체를 미워하는 마음은 올바른 애국심이 아니라 게으르고 편협한 민족주의이다.
권오병(kor****)
모바일에서 작성2017.09.2107:41:55신고
고구려 국명이 고려(코리아)이니 당연히 일본이 고려라 부른 거지만, 일본은 발해도 고려라 불렀다죠.
조정래(cho****)
2017.09.2106:14:59신고
5천년간 으리 민족을 괴롭힌 중국은 이북 눈치 보느라 비판 한마디 못하면서 ...고구려,백제 유민이 가장 많이 정착해서 사는 일본에 대해선 그저 이런 기사에도 욕을 쏱아내어야 자기가 애국자 인것처럼 하는 것은 약자의 표출이라고 보는 사람이다. 나도 이곳을 가 본 사람이지만 그 많은 고구려 난민을 받아드리고 땅을 주어서 살도록 해준 일본에대해서 솔직히감사할줄 알아야 한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