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장고형 고분 발견 - 전북 고창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전북 고창에서 4세기말∼5세기초쯤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길이 70m, 봉분 높이 9m에 이르는 초대형 삼국시대 고분이 발견됐다.
이 고분은 일본에서는 전방후원형(前方後圓形)이라고 일컫는 장고형, 혹은 여기서 조금 변화된 모양을 하고 있는데다 무엇보다 웬만한 경주나 나주지역 대형고분과 크기가 맞먹는다는 점에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더구나 이 고분은 도굴 피해를 거의 보지 않아 본격 발굴이 기대되고 있다.
이 고분은 익산 미륵사지 유물전시관 노기환 연구원이 서해안과 인접한 고창군 아산면 봉덕리 낮은 구릉에서 발견해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알려졌다.
무덤 규모를 측정한 결과 겉으로 드러난 것만 해도 남북 길이 70.5m, 최대 폭 49m, 봉분높이 9.35m의 거대고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크기는 남북길이 112m, 봉분 높이 22m에 달하는 국내 최대 경주 황남대총이나 해남 장고산고분(77mx9m), 함평 장고산고분(70mx7m)에 맞먹고 있다.
이 고분은 본격발굴을 기다려 봐야겠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낮은 해안가 구릉지에 위치하고 있고 규모나 모양새를 볼 때 영산강 유역 일대에서 잇따라 보고,발굴되고 있는 장고형이나 약간 네모진 형태를 하고 있다.
장고형 고분이란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그 모양이 꼭 장고처럼 생겼다 해서 붙인 이름으로 전형적인 고대 일본계 무덤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장고분은 '80년대 들어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전남 해안가 일대에서 잇따라 발견돼 그 기원을 둘러싸고 두 나라 학계에서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고창 고분은 외형상으로 별도의 2개 봉분을 남북으로 잇대놓은 모양을 하고 있으나 다른 장고형 고분이 그런 것처럼 원래 1개 고분이며 장고분의 전형적인 특징인 주구, 즉 봉분을 두른 도랑도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고분의 정확한 성격은 본격발굴이 이뤄져야만 밝혀질 것이라고 노 연구원은 말했다. 한편 봉분 일부가 파괴된 곳에서는 이 고분의 축조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회색 연질토기를 비롯한 각종 파편이 수습됐다. (끝)1999/11/09 07:0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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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서 14번째 장고형 고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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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전형적인 고대 일본계 무덤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반도에서는 광주와 전남지방에서만 발견되는 독특한 양식인 장고형 고분이 전남 함평군 학교면 마산리에서 14번째로 발견됐다.
장고형 고분이란 시신을 안치한 주봉분(主封墳)은 흙으로 둥그렇게 쌓고 그 앞쪽에는 마치 운동장과 같은 평평한 사각형 단(壇)을 만든 무덤으로 하늘에서 내려다 보았을 때 악기인 장고를 닮았다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일본에서는 전방후원분(前方後援墳)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전남지역에만 모두 13기가 있다고 보고된 이런 장고형 고분중 이번 고분은 전남도가 계획한 '전남 고대 문화유산 보존 및 활용계획'에 따라 전남대 인류학과 임영진 교수팀이 도내 고분군 50여곳 137기에 대한 정밀 측량조사를 실시한 결과 함평 마산리 표산이라는 야산에서 1기가 추가로 확인됐다.
마산리 표산 1호 장고분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고분 또한 다른 장고형 고분들과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가깝고 넓은 평야지대를 내려다보는 야트막한 구릉에 축조돼 있으며 상당한 규모에 이른다.
전체 길이가 46m이고 시신을 안치한 둥근 봉분(封墳)은 지름 25m, 그 앞쪽 사각형 단은 너비 26m를 기록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국내 다른 장고형 고분처럼 무덤 주위를 따라 빙 둘러 판 도랑 시설인 주구(周溝)가 확인되고 있다.
이 고분은 속칭 왕무덤 또는 8장수 무덤이라 일컫는 표산마을 입구 왼편 야산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주위로 13기 이상 되는 무덤들이 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 무덤은 이미 오래 전에 도굴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조사성과는 전남도가 최근에 펴낸 '전남지역 고분측량보고서'에 담겨 있다. taeshik@yonhapnews.net (끝) 2001/04/06 10:32 송고
사진 : 마산리 표산 1호분 사진과 등고선 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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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닮은 영산강가 5~6세기 고분
남도의 광주 변두리와 영산강 강가에는 기묘한 모양새를 지닌 5~6세기 옛 무덤들이 10여 기 널려있다. 앞은 네모꼴, 뒷쪽은 둥그렇게 생겼다고 해서 `장고형 무덤' 혹은 `전방후원분'이라고 불리우는 이 무덤들은 학자들의 발굴대상에서 빠지거나 발굴해도 보고서를 쓰지않기가 예사이다. 이른바 `왕따'당하는 무덤들이다.
기피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3~5세기 고대일본의 무덤양식을 빼닮은데다 원통형 모양새의 토기류 부장품도 일본무덤 주위에 열을 지어 놓였던 장식토기(하니와)들과 별 차이가 없는 까닭이다. 우리 문화의 일본 전파만 가르쳤던 교과서 상식과 어긋나는 것도 그렇지만 봉분이나 토기모양 등이 당시 일본 야마토정권의 장묘풍습을 본떴다는 점에서 이들 유적은 국내학계가 쉬쉬해온 콤플렉스였다. 실제로 광주, 해남, 영암 등지의 장고형 무덤들 가운데 보고서가 나온 것은 광주 명화동 무덤뿐이며 무덤주인공이나 일본과의 연관성에 얽힌 가설들은 무덤이 발견된 80년대 이래 오히려 일본학자들이 활발하게 제기하고 있다.
최근 국내학계에서 미흡하나마 이 문제를 되짚자는 움직임이 일고있는 것은 주목할만한 변화다. 두 결과물이 눈에 띄는데, 첫째는 4일 국립전주박물관 강당에서 열린 `한·일 고대의 문화교류'심포지엄이었고, 둘째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최근 나온 전남 나주 신촌리 9호분 재발굴조사보고서이다.
이건무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과 박순발 충남대교수, 기노시타 일본나라현립연구소 연구원 등 한·일 학자 10여 명이 참석한 심포지엄은 박 교수가 발제한 `영산강 유역 전방후원분과 하니와'가 시종 고갱이였다. 박 교수는 발제에서 무덤주인공이 왜인 아닌 토착세력이라고 못박았다. 장고형이나 옹관무덤 주위에 묻힌 원통형 장식토기를 `분구수립형 토기'라고 명명한 그는 그 뿌리가 일본열도의 하니와에 있으며 5세기 전반부터 등장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를 만든 장본인은 현지 유력자들로 이곳을 압박했던 백제를 견제하고 일본세력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등의 정치적 배경에서 일본의 아이디어를 빌렸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성낙준 국립김해박물관장은 “원통형토기는 천안에서도 비슷한 것이 나온만큼 일본영향설은 유보해야 한다”며 신중론을 폈다.
1917년 일제발굴당시 금동관, 고리칼 등의 유물을 쏟아낸 신촌리 9호분의 재발굴 분석결과를 담은 연구소 보고서 역시 무덤 가장자리에서 줄이어 출토된 원통형 토기가 일본 하니와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고있다. 그러나 받침대에 항아리 얹힌 형태가 일본에 극히 적고 태토, 제작기법 등에서 토착냄새가 난다는 점, 인물·동물상이 많은 일본하니와의 특징이 없다는 점 등으로 미뤄 일본과 가까왔던 현지세력이 하니와의 모양을 참고해 만든 창작품이란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장고형 무덤에 관한한 일본이 논의를 주도하는 양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비교대상인 일본옛무덤에 대한 고고학전공자가 극히 드물어 축적된 연구성과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일본고고학 전공자인 충남대 우제병 조교수는 “일본연구자들은 서태지 음악까지 들으며 한반도 옛 무덤과 토기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주/노형석 기자nuge@hani.co.kr 한겨레신문 2001. 9. 7
고대일본의 장고형 무덤형태를 띤 광주 월계동 고분(위쪽)과 전형적인 장구형 무덤인 인덕천황릉(아래 오른쪽) 최근 나주 신촌리 9호 무덤에서 나온 일본풍의 껴묻거리 원통형 토기들(아래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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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횡혈식 석실분에서 환두대도 출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전북 군산시 산월리 삼국시대 고분군 발굴 결과 전형적인 백제 중.후기 고분 양식으로 평가되는 굴모양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에서 아주 드물게 둥근 고리가 달린 큰 칼인 환두대도(環頭大刀) 3점이 완형으로 출토됐다.
군산대 박물관(관장 이용휘)은 지난해 연말 산월리 고분군을 조사한 결과 최근 들어 서해안을 중심으로 많이 확인되고 있는 삼국시대 전기 양식인 도랑두른 고분(주구묘.周溝墓) 1기와 굴모양 돌방무덤 4기를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도굴의 손길이 뻗치지 않은 이 무덤들에서는 환두대도를 비롯해 토기 65점, 철기류 38점, 방추차 2점, 숫돌 1점, 구슬류 190여점 등 유물 300여점이 쏟아져 나왔다.
출토 유물중 환두대도는 백제와 신라, 가야를 통튼 삼국시대 고분에서 꽤 많은 수가 확인되고 있으나 굴식 돌방무덤에는 출토 사례가 거의 없다.
환두대도와 함께 큰 항아리(대호.大壺)와 수직으로 곧추 선 넓은 아가리 모양을 한 항아리인 광구직구호(廣口直口壺), 모양이 누에고치를 닮았고 주둥이가 몸통 한가운데 난 횡병(橫甁) 등 각종 토기도 이질적인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발굴단은 '이런 토기가 서울 몽촌토성 정도에서만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굴식 돌방무덤에서는 종전과 달리 다량의 철기류와 함께 말 이빨과 말뼈가 확인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발굴단은 환두대도를 비롯한 이 유물들이 고분에 묻힌 주인공의 신분과 산월리 유적의 위상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발굴단은 이 무덤들의 축조연대에 대해서는 주구묘는 4세기 무렵, 굴식 돌방무덤은 6세기 안팎이 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추정했다.
주구묘란 봉분 주위를 따라 직사각형 모양의 도랑을 두른 무덤으로, 특히 고대 일본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으로 역시 도랑을 두른 전방후원분(前方後圓)과의 관련성이 한일 두 나라 학계에서 심도있게 논의되고 있다.
우리 학계에서는 이런 주구묘가 대체로 서기 300년 무렵까지 축조됐으며 주로 충청도 이남 서해안을 따라 확인되고 있는 점을 들어 마한 묘제라 하고 있으나 마한의 존속 시기와 그 영역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상태에서 조심스런 접근이 요망된다.
예컨대 마한이 중국 기록에 서기 300년 무렵까지 자주 등장하기는 하나, 그 실체가 마한이 아닌 백제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설사 마한이 그 무렵까지 있었다 한들 그 영역이 충청도 이남이었다는 증거는 역사기록 어디에도 없다. taeshik@yonhapnews.net (끝) 2001/02/22 10:26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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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 송학동 고분군은 전방후원분과 무관한 가야고분
일본이 가야를 위시한 한반도 남부에 식민지를 두고 있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뒤엎는 획기적인 묘제조사 결과가 밝혀졌다. 동아대 박물관(관장 심봉근)은 22일 오후, 지난해 11월15일부터 시굴조사한 경남 고성군 송학동고분군 6기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되는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과는 상관이 없는 6세기대 전형적인 가야시대의 석곽묘라고 설명했다.<관계기사 23면>
경남 고성군 송학동(무기산)고분군은 지난 80년대부터 한^일 역사학자들간에 임나일본부설의 준거다 아니다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곳으로 동아대 박물관의 이날 발표는 한일고대사의 핵심논쟁이 돼왔던 임나일본부설과 관련, 역사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방후원분은 일본고대국가 지배층의 전형적인 무덤형태로 두개의 무덤을 합쳐 놓은 것처럼 보이며 앞부분이 네모나고 뒷부분이 둥근 모습이다. 그러나 송학동 1호분은 한국형의 둥근묘(圓墓) 3기가 겹쳐있다는 것.
그동안 일본역사학자들이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는 준거로 삼아왔던 이 고분군은 남쪽봉분이 높고 북쪽봉분이 낮은데다 일제시대때부터 도굴이 행해지면서 외형은 정상부가 대부분 깎여 전방후원분과 유사한 모습이었다.
일본측의 임나일본부설 주장에 대해 지난 83년 당시 한국정신문화원의 강인구 교수가 송학동고분은 전방후원분이며 일본의 그것보다 시기가 빠른 것이라고 주장, 논쟁의 불을 댕기기도 했다.
한편 1호분중 일부는 지난 1914년 일본인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에 의해 도굴 수준의 발굴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심봉근 관장은 "이번 송학동고분군은 전방후원분이 아닌 전형적인 가야시대의 무덤으로 밝혀짐에 따라 그동안의 임나일본부설 자체가 무의미해졌다"고 설명했다. /조해훈기자
고성 송악동 고분군 본격 발굴/ 국제신문 2000.06.28./ 조해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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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묘제인 전방후원분 여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져온 경남 고성 송학동고분군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발굴이 오는 7월초부터 동아대 박물관팀에 의해 실시된다.
이 고분군은 동아대박물관(관장 심봉근)이 지난 해 11월부터 100여일간 시굴조사를 한후 지난 2월 "송학동고분군은 전방후원분이 아니고 6세기대 가야시대의 석곽묘"라고 밝혀 국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곳으로 앞으로 70일간 발굴이 진행된다.
지난 83년 현 정신문화연구원 강인구교수가 "이 고분은 전방후원분이며 일본의 전방후원분에 영향을 미친 중요한 고분군"이라고 주장한 이후 최근까지 한일 고고학자들간에 끊임없이 전방후원분 논쟁을 벌여왔다.
전방후원분은 일본 고대국가 지배층의 전형적인 무덤형태로 두 개의 무덤을 합쳐 놓은 것처럼 보이며 앞부분이 네모나고 뒷부분이 둥근 열쇠모습. 동아대는 시굴조사후 송학동 고분군은 한국형의 둥근묘(圓墓) 3기가 겹쳐 있으며 남쪽봉분이 높고 북쪽봉분이 낮은데다 일제시대부터 도굴이행해지면서 정상부가 깎여 외형이 전방후원분과 유사할 뿐이라고 밝혔다.
송학동고분군에 대한 시굴조사 기간동안 300여명의 일본인 고고학자와 관계자가 다녀가 현재 일본 학계에서도 전방후원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분위기이다. 7월19∼21일 동아대에서 열리는 영남.큐슈 고고학대회에 참가하는 한^일 고고학자들이 송학동고분군을 직접 답사할 예정이다.
이번 발굴에서 무덤내부 유구의 특징과 유구간의 전후관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면 무덤의 축조방법과 당시의 사회상 등이 어느 정도 밝혀질 것으로 학계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심봉근 관장은 "이번 발굴을 통해 백제지역과 가야지역 고분간의 유사성과 상호관련성, 그리고 정확한 축조시기 등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해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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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일본 `전방후원분'보다 앞선 무덤 발굴
(서울=연합뉴스) 심규석기자 = 북한의 자강도 초산군 일대에서 일본의 `전방후원분'이나 `사우돌출형방문'보다 수백년 앞선 것으로 추정되는 같은 유형의 무덤이발굴됐다고 평양방송이 14일 보도했다.
중앙역사박물관은 최근 압록강 기슭을 따라 동서 2천m, 남북 350m의 면적에 6곳으로 나뉘어 분포돼 있는 고구려 시기 2백여기의 적석무덤과 돌칸흙무덤을 발굴했는데, 앞이 네모지고 뒤가 둥근 `전방후원형무덤'과 네 모서리가 노출돼 있는 `네모
서리돌출형무덤'이 포함돼 있다고 이 방송은 전했다,.
전방후원형무덤은 북한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것이며 네모서리돌출형무덤은 한반도 동해와 일본의 서부해안지대에 분포돼 있는 것이라고 이 방송은 전했다.
평양방송은 두 유형의 무덤이 고구려 건국초기인 기원전 3세기 경부터 기워전후 시기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축조연대가 일본의 전방후원분이나 사후돌출형방분보다 수백년 앞선 것으로 밝혀졌으며 일본열도에 진출한 고구려 주민들과 그 후손들의 영
향으로 발전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전방후원형무덤인 `운평리 4지구 6호무덤'은 전체 길이 22.5m로 둥근 부분은 길이 14.5m, 너비 10.5m, 높이 1.95m로 말방울과 말띠고리, 손칼, 쇠못 등 금속 제품들과 질그릇.기와 조각들이 출토됐다.
네모서리돌출형무덤인 `운평리 4지구 8호무덤'은 길이 12m, 너비 7m, 높이 1.5m로 전형적 고구려 무기인 고리자루긴칼을 비롯해 창끝, 비수 등의 무기류와 청동 말안장, 질그릇조각이 나왔다고 이 방송은 소개했다.
남한 국립중앙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의 그같은 주장에 대해 "북한지역에서 같은 양식의 무덤이 대량 발굴된다면 몰라도 1∼2기로 그같이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면서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중앙역사박물관은 또 `운평리 2지구 35호무덤'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된 사람지문이 남아 있는 기와조각도 발견했는데 "오른손 손가락의 지문이 근 2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개인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뚜렷하다"고 지적한 것으로 이
방송은 말했다.
중앙역사박물관은 이외에도 평양시 순안구역 오산리 부근 산 능선 위에서 20여기의 `묵방형 고인돌'과 `오덕형 고인돌'을 발굴한 것으로 평양방송은 전했다.
고인돌에서는 좁은 놋단검과 돌단검, 돌활촉 등이 발굴됐는데, "놋단검의 경우 선천군 백현리 9호고인돌에서 나온 14세기의 것보다 더 오래된 것이 확증됐다"고 이 방송은 덧붙였다. nksks@yonhapnews.co.kr(끝) 송고일 : 199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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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서 사비시대 백제고분 수십기 발굴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사비시대(536-660년) 백제지역 무덤이 어떻게 조성, 관리됐는지를 결정적으로 볼 수 있는 고고학적 증거가 충남 청양군 청양읍 장승리 고분군에서 확인됐다.
충청매장문화재연구원(원장 박용진)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이 시행하는 청양우회도로 확.포장 구간에 위치한 장승리 고분군을 발굴한 결과 17일 현재 백제-통일신라시대 고분 51기를 비롯한 다수의 유적 및 유물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도굴 피해를 전혀 보지 않은 백제시대 처녀분 4기를 확인함으로써 이들 묘가 어떤 방식으로 축조됐고, 시신과 부장품은 어떻게 안치했는지 등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평가된다
백제고분은 양식상 입구시설이 별도로 있는 횡혈식(橫穴式)과 그렇지 않은 횡구식(橫口式)으로 대별된다. 이중 일부는 봉토가 확인됐으며 어떤 무덤은 묘실로 통하는 입구에서도 시신을 안치한 흔적이 확인됐다.
22호분 묘실 안에서는 인골 2구가 확인됐다. 인골은 모두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있으며 입구에서 볼 때 좌측이 여성, 우측이 남성으로 추정되고 있다.이는 1971년 무령왕릉 발굴과 비교할 때 남녀 시신 배치는 동일하지만, 머리 방향은 정반대이다.
머리를 북쪽으로 두는 장례 풍습은 북쪽에는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고대 중국사상에서 유래하며 실제 웅진시대 이후 백제(475-660년) 무덤은 대체로 머리를 북쪽을 향한 반면, 무령왕릉만 특이하게 머리를 남쪽에 두고 있다.
발굴단은 인골에 대해서는 형질인류학적 분석을 실시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이번 출토 유물로 보아 2명 이상을 안치한 것이 확실한 A-11호분은 묘실 입구와 바깥을 판석으로 완전히 밀폐시킨 가운데 묘실 안쪽은 천장 덮개까지 완전히 흙으로 메웠음이 드러났다. 이러한 무덤 축조방식은 새로운 것으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일부 무덤에서는 봉분 주위로 판 일종의 도랑 시설인 주구(周溝)가 확인된 것은 물론 어떤 무덤은 이러한 주구를 2중으로 둘러치고 있음도 드러났다. 주구를 갖춘 이러한 무덤은 최근 들어 충청 이남 서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연이어 확인되고 있는 삼국시대 초기 무덤들인 소위 주구묘 및 일본열도의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과도 어떤 연관성을 지닐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아울러 2중 주구는 축조 시기가 다른 것으로 판단됨으로써 무덤을 축조한 뒤에도 봉분과 묘역을 꾸준히 관리했음을 추측하게 한다.
출토 유물로는 곧은아가리토기(直口壺)와 병(甁), 덮개(蓋杯) 등 토기와 쇠도끼와 쇠칼, 쇠못 및 석제 방추차가 확인됐다. 장신구로는 금동으로 만든 귀고리 한 쌍과 관모(冠帽) 장식용 철심(鐵心)도 있다. < 사진 있음 >taeshik@yna.co.kr (끝) 2002/10/17 14:3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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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함평 주거지서 '하니와' 토기 출토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고대 일본열도 특유의 토기로 꼽히고 있는 '하니와'(埴輪)라는 원통형 토기가 전남 함평의 주거지 유적에서 확인됐다.
이런 토기는 한반도에서는 전남에 분포하는 일본식 고분양식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등지에서만 간헐적으로 확인되던 것으로 주거지에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호남문화재연구원(원장 윤덕향)은 함평-함평IC간 도로 확포장 공사 구간에 위치한 함평군 대동면 노적마을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주거지 8곳 중 2군데서 '하니와' 토기편을 확인했다고 17일 말했다.
이들 주거지는 모두 구릉지 경사면에 축조돼 있으며 내부에는 화덕과 굴뚝시설 등이 있고 일부 주거지의 경우 그 위쪽에 배수 등을 위한 기능으로 생각되는 일종의 도랑 시설인 주구(周溝)가 드러났다.
이들 주거지 중 '하니와'는 제2호 및 제4호 주거지에서 완형이 아닌 조각 형태로 출토됐다.
전남 함평 주거지서 '하니와' 토기 출토
전남 함평 노적마을 고대 주거지(위) 유적과 이 일대에서 출토된 원통형 토기인 '하니와'(아래).
조사단은 이 유적 바로 근처에 하늘에서 내려다 보았을 때 무덤 모양이 악기 일종인 장고를 닮았다 해서 장고분이라고 일컫는(실제 이런 무덤을 현지인들은 장고분이라고 하고 있다) 전방후원분이 위치하고 있음을 주목하면서 이들 주거지 및 '하니와'는 이 고분과 밀접한 시설이거나 유물일 것으로 추정했다.
원래 '하니와'란 일본 고고학계에서 만들어낸 용어로서 주로 무덤 부장품으로 애용되는 원통형 토기지만, 실제 그 모양은 다종다양해 사람이나 동물을 형상화한 것 등이 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이러한 '하니와'는 순장(殉葬)하는 사람 대신 묻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한반도의 경우 이러한 하니와는 나주 복암리 3호분을 비롯해 90년대 초반에 각각 국립광주박물관과 전남대박물관이 조사한 전방후원분들인 광주 명화동고분과 같은 지역 월계동 1호분에서 주구 혹은 봉분 끝자락에서 실물이 확인된 바 있다. <사진있음> taeshik@yna.co.kr(끝)2003/10/17 14:06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