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연이어 운동권변론을 벌이던 85년경의 또 다른 경험을 이렇게 적고 있다.
《부산에서 운동권 청년들이 만든 공해문제연구소에 내 사무실의 일부를 내주고 있을 때였다. 그때 나는 청년들과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았다. 어느 날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 중에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나는 대뜸 이렇게 농담을 했다. 『그래도 남자한테는 여자가 서너 명은 항상 있어야지. 한 명은 가정용. 또 한 명은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뺑뺑이용, 그리고 또 한 명은 인생과 예술을 논하는 오솔길용, 이 정도는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순간 청년들의 얼굴색이 갑자기 변해 버렸다. 『아니 변호사님이 어떻게 그런 말씀을 다 하십니까?』 청년들의 표정은 농담이 아니었다. 나는 참 난처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었다. 여학생이 화내고 덤비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데 남학생이 펄쩍 뛰는 것은 이해조차 되지 않았다.(「여보, 나 좀 도와줘」 126~127)》
盧대통령은 역시 이 같은 고백 이후 『그 이후 나는 그때까지 나의 행동과 사고방식에 깊은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여성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물론 나와 아내 사이도 달라졌다. 나도 아내를 존경할 줄 알게 된 것이다. 아직 실천은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 어쨌든 달라진 것만은 틀림없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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