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예산 타낸 권력기관들 … 하루 동안 무슨 특수활동?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심의하기 위해 열린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 각 부처에서 나온 공무원들이 회의장을 메우고 있다. 올 정기 국회에선 특수활동비 예산이 쟁점이 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0월 19일 국회 법사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 현장. 야당인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이례적으로 김준규 검찰총장을 치켜세웠다.
▶박 의원=김준규 검찰총장님, ‘특수활동비 190억원을 떡값으로 쓰지 않겠다’ 이렇게 말하셨지요?
▶김 총장=명절 때 주는 돈요? 예. (김 총장은 국감 20일 전쯤 취임 일성으로 “올해 명절엔 떡값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박 의원=제가 법무부(검찰)로부터 얻은 최고의 답변입니다. 그래서 저는 김 총장님의 개혁의지에 대해, 이 부분에 관해선 굉장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박 의원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쭉 국정감사를 해 보니까 아직도 지검장이나 검사장들이 특수활동비를 어디에 쓰시는지를 잘 모르더라고요. ‘업무추진비’와 ‘특수활동비’는 엄연히 다른데 지검장이나 검사장들은 (특수활동비를) 그냥 떡값으로 나눠 줘도 되는 거고 직원들 경조사비에 써도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특수활동비는 국회 각 상임위원회에서나 국정감사에서 늘 비판의 타깃이 되곤 했다. 그러나 이날 국정감사에서 김 총장은 특수활동비 때문에 야당 의원에게 칭찬을 받은 것이다. 그런 김 총장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지난 3일 특수활동비와 관련해 구설에 휘말렸다. 그는 기자들과 만찬을 하는 자리에서 추첨을 제안했다. 당첨된 기자들에게 그는 50만원이 든 봉투 10개를 돌렸다. 이 돈이 특수활동비였다는 얘기가 나와 논란이 일었다. 특수활동비는 “특정한 업무 수행 및 사건 수사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로 정의된다(2009 기획재정부 예산 및 기금 운용 계획 집행지침).
화환·조화 구입도 특수활동
‘특수활동비’는 일명 ‘230예산’이다. 230은 예산체계상 ‘목(目)’의 분류 번호다. ‘230예산’의 집행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국회 결산 심의 때 영수증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기관 바깥에선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기 쉽지 않다.
일부이긴 하지만 돈의 사용처가 공개된 적은 있다. 국회 결산 심사나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비밀스러운 업무나 수사’와는 무관하게 돈을 쓴 사례가 수차례 드러났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청와대는 그해 배정받은 특수활동비 가운데 2억7600만원을 ‘직원활동비’ 명목으로 12월에 전 직원에게 나눠 줬다. 사실상 연말 보너스로 특수활동비가 쓰인 것이다.
청와대는 또 연말에 국정활동비 명목으로 6억7100만원의 특수활동비를 받았다. 이 중에는 12월 30일 수령한 돈도 상당액이었다. 국회는 “연말에 국정운영비 명목으로 돈을 수령한 것은 결국 다음 해에 쓰기 위한 것”이라며 “연말에 전 직원에게 활동비를 일괄 지급한 것 역시 도덕적 해이였다”고 지적했다.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특수활동비를 빼돌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된 정 전 비서관이 예산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이해 11월이다. 그는 2007년 7월까지 수차례 대통령 특수활동비를 빼돌려 차명계좌에 입금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국무총리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총리실은 그해 배정받은 특수활동비 9억3700만원 중 1억3800만원을 12월 한 달 동안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리실은 이 가운데 2200만원을 12월 30일에 지출했다. ‘비밀을 요하는 수사 또는 특정업무에 사안별로 집행해야 할 특수활동비’가 연말에 뭉텅이로 지출된 것이다.
국회는 “연도 말에 불용(不用) 처리 의혹을 회피하려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해 법무부·경찰청·국가정보원 등의 특수활동비도 본래 목적에 부합하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며 국회의 시정 요구를 받았다.
국무총리실은 다음 해인 2005년 국회 결산 때도 비판을 받았다. 당시 국무총리실은 특수활동비를 매달 6000만원씩 수당처럼 쓰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매달 1500만~2000만원이 국무총리의 업무추진비 성격으로 집행됐다. 당시 국회는 “매월 정기적으로 활동비 명목으로 수당화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할 것”을 요구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또한 매달 직책별로 일정 금액을 배분해 6억1200만원을 쓴 것으로 밝혀졌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감사원이 국정홍보처 등 4개 기관의 특수활동비 활용 실태에 대해 감사한 결과 국정홍보처는 3억6400만원을 ‘현금수령자의 영수증’ 외에는 구체적 용도를 파악할 수 있는 증거 서류를 아예 남기지 않고 집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평통자문회의는 1억8400만원을 유관기관 간담회 개최, 축의·조위금, 화환, 조화 구입과 같은 ‘업무추진비’ 용도로 사용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경대 이원희(경실련 상임집행위원) 교수는 “특수활동비는 용도 자체가 마치 특권조직의 급여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사후 공개와 감시가 꼭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10년간 80% 몸집 불어난 ‘묻지마 예산’
정부 예산에서 특수활동비가 차지하는 규모는 결코 작지 않다. 올해 전 부처의 특수활동비는 8623억원이었다. 정부 부처가 제출한 2010년 예산에는 8647억원이 계상돼 있다.
특수활동비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에는 4730억원이었다. 이후 10년간 한 번도 줄어들지 않았다. 지금은 2000년도에 비해 80% 정도 불어난 상태다. ‘예산 10% 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특수활동비는 3년간 상승 일로였다.
특수활동비 가운데 절반 이상은 국정원 예산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정원 예산을 빼더라도 수천억원이 집행 내역을 알 수 없는 불투명한 예산으로 편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돈을 사용하는 데도 원칙은 있다. 기획재정부의 ‘예산 및 기금 운용계획 지침’에는 특수활동비는 편성된 목적대로 집행해야 한다고 돼 있다. 다만 각 부처가 편성 목적이 무엇인지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또 이 돈은 특수활동의 ‘실제 수행자’에게 ‘필요 시기’에 지급해야 한다. 단 구체적인 지급대상·방법·시기는 각 소관부처가 업무 특성을 감안해 집행할 수 있게 어느 정도 재량을 인정해 주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특수활동비 집행과 관련한 증거 서류에 대해서도 감사원의 ‘업무추진비·특수활동비에 대한 계산증명지침’에 따르도록 했다.
국회 예산정책처 천우정 팀장은 “계산증명지침에 의할 경우 특수활동비 역시 누구에게 얼마를 내줬는지 집행기관이 내역을 정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집행기관이 돈을 어디에 썼는지 영수증을 갖고 있긴 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는 “각 부처가 내역을 공개하라고 하면 절대 안 내놓는다”고 전했다.
사건수사비·정보수집비 등 ‘칸막이’ 시급
특수활동비 자체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정부의 업무 가운데는 보안을 요하거나 내역을 공개할 경우 업무 추진이 곤란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분야를 제외하곤 공개할 것은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예산국회에 돌입한 정치권도 여야 없이 국정원 같은 특수기관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처에 한해선 특수활동비 집행 규모 공개를 추진할 태세다.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와 법사위 등은 국세청·법무부 등의 특수활동비 월별 집행 규모 공개를 추진했으나 국회 예결위 결산 심사 과정에서 무산됐다. 서병수(한나라당) 기획재정위원장은 “‘국정감사 결과 보고서’에 시정 요구 사항으로 다시 ‘특수활동비의 월별 집행 규모 공개’ 문구를 넣어 의결할 예정”이라며 재추진 의사를 밝혔다.
유일하게 세목(細目)으로 구분하지 않고 총액으로만 편성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DA 300
우리나라의 예산(세출)은 장(章)-관(款)-항(項)-세항(細項)-목(目)으로 분류된다. 국회는 예산 심의 과정에서 항까지만 의결한다. 여기까지를 ‘입법과목’이라고 한다. 반면 세항과 목은 ‘행정과목’이라고 부른다.
예산을 경비성질별로 분류할 때 행정과목인 ‘목’에 대해 예산안은 100단위의 일련 번호를 매긴다. 예컨대 인건비(100)·물건비(200)·이전지출(300)·자산취득(400) 식이다. 이 중 물건비(200)는 다시 관서운영비(210)·여비(220)·특수활동비(230)·업무추진비(240)·직무수행경비(250) ·연구개발비(260)로 분류한다. 여섯 가지 비목(費目) 가운데 슬쩍 끼어져 유달리 특혜를 입고 있는 예산이 ‘230목’의 특수활동비다.
국회 예산정책처 천 팀장은 “예산 가운데 (세목 없이) 총액으로만 편성되는 것은 예비비와 특수활동비뿐인데 특수활동비는 영수증도 제출하지 않고 쓸 수 있도록 돼 있어 오남용의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수활동비 세목에 ‘사건수사비’ ‘안보활동비’ ‘정보수집비’ 등 특정한 업무를 명시하는 방안에 대해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칸막이’ 없이 총액으로 두루뭉수리하게 제출돼 있는 특수활동비에 최소한 ‘칸막이’라도 쳐야 한다는 것이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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