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2차 세계대전 시기 한국여성들이 중국으로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됐음을 뒷받침하는 역사적 자료가 중국에서 무더기로 발견됐다.중국 지린 성 당안관(기록보관소)은 지난 20일 일부 한국 언론을 초청해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뒷받침하는 일본 측 작성 자료들을 공개했다. 중국이 기록보관소 내부와 기밀 자료를 직접 외국 언론에 공개하기는 처음이다.[출처] 이투데이:http://m.etoday.co.kr/view.php?idxno=889803&ref=https%3A%2F%2Fwww.google.co.kr%2F#cb#csidx91ce4ecdef8151699783bd67ef42e39


2.- 존스홉킨스대 교수 “위안소, 日 군 당국 승인 받아 설치”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이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기록한 기밀문서를 작성했던 것으로 밝혀졌다.이 문서는 2006년부터 미국 의회가 위안부 결의안을 추진할 때 일본 정부가 위안부 동원에 직접 개입하고 위안소를 조직적으로 운영했다는 증거 자료로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의해 의회에 제출됨으로써 결의안 통과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1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데니스 헬핀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방문교수가 13일(현지시간) 해당 문서의 주요 내용과 표지 사진 등을 공개했다.1992년 3월 기밀 등급이 해제된 이 문서는 맥아더 최고사령관 이름으로 1945년 11월 15일 연합군 총사령부가 작성한 이 문서는 ‘성적 노예’인 위안부 제도의 대강을 담고 있으며,한국과 버마 등의 위안부 동원 및 위안소 운영에 일본군이 어떤 방식으로 개입했는지 등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http://m.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338


3.미국 고문서국이 1998년 비밀 해제한 1944년 전시정보국 심리작전반의 포로 심문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일본군위안부들이 '창녀'로 징발됐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Early in May of 1942 Japanese agents arrived in Korea for the purpose of enlisting Korean girls for "comfort service" in newly conquered Japanese territories in Southeast Asia. The nature of this "service" was not specified but it was assumed to be work connected with visiting the wounded in hospitals, rolling bandages, and generally making the soldiers happy."http://shindonga.donga.com/Library/3/04/13/106376/1


4.지린성기록보관소, 일본군 사료 25건 공개일본이 한국 여성을 군 위안부로 강제 동원했음을 입증하는 자료가 중국에서 공개됐다. 중국 지린성 기록보관소는 한국인 군 위안부의 존재 사실을 뒷받침하는 6건의 사료를 포함해 총 25건의 일본군 위안부 관련 사료를 최근 언론에 공개했다. 화중 지역에 파견된 일본 헌병대가 작성한 `난징헌병대 치안회복 상황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이 보고서에는 "이 지역 109명의 일본군 위안부 가운데 한국인 위안부가 36명이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한국인 군 위안부를 성적 노리개를 의미하는 `특수위안부`로 표현한 부분도 발견됐다.https://www.google.co.kr/amp/m.mk.co.kr/news/amp/headline/2014/459674


5.스즈키 히라쿠 중장의 자필진술서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9C%84%EC%95%88%EB%B6%80일본 요시미 요시아키 교수가 1992년 우연히 발견한 위안부 관련 서류에는 중국 북부를 점령한 구 일본군의 참모가 위안소의 설치를 명령하는 내용 이 담겨 있었다.[28][29] 1956년에 중국에서 행해진 일본인 전범 재판으로 스즈키 히라쿠 중장의 자필진술서에는 일부 조선인과 중국인 여성을 유괴해 위안부로 만들었다는 진술도 적혀 있다.[30]


6.미 연방정부 기록보존소 파일명 'Kunming-REG-OP-3 출처: http://enjoyjap.egloos.com/1778104"중국 쿤밍의 예난 군화중학교에 위치한 중국 군 본부에 25명의 한국인(여성 23명, 남성2명), 대만 남성 1명, 그리고 81명의 일본인(여성 4명, 남성 77명)이 전쟁포로로 잡혀 있었다. 한국인 포로와 일본인 포로의 태도와 증언은 다르며 대조적이다. 한국인 포로들은 모두 일본 부대로부터 도망 나왔으며, 중국 부대에 자발적으로 투항했다. 한국인들의 민족주의 정신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며, 그들은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했다. 황남석 부인을 제외한 나머지 22명의 한국인 여성들은 모두 성노예(위안부)였다. 그들은 강압(compulsion), 그리고 사기(misrepresentation)에 의해 성노예가 되었다. 1943년 7월 한국을 출발한 15명의 여성들은 싱가포르에 있는 일본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한국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왔다. 약 300여 명의 여성들이 비슷한 사기로 성노예로 모집되어 왔다."



7.1945년 맥아더 작성 기밀문서에서도 ‘일본의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 확인이 문서는 1992년 3월 기밀 등급이 해제됐으며 2006년부터 미국 의회가 위안부 결의안을 추진할 때 일본 정부가 위안부 동원에 직접 개입하고 위안소를 조직적으로 운영했다는 증거 자료로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에 의해 의회에 제출됨으로써 결의안 통과에 큰 역할을 했다.그때 하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 담당 전문위원을 지낸 데니스 헬핀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방문교수가 13일 해당 문서의 주요 내용과 표지 사진 등을 공개했다.맥아더 최고사령관 이름으로 1945년 11월15일 연합군 총사령부가 작성한 이 문서는 ‘성적 노예’인 위안부 제도의 대강을 담고 있으며 한국과 미얀마(버마) 등지로부터의 위안부 동원 및 위안소 운영에 일본군이 어떻게 개입했는지 등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제공한다.http://www.koreareporter.org/?p=18604


8. 

“위안부 강제 동원 일 정부 개입 명백”


미 의회조사국, 증거 공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위안부 증거부족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가 최근 발간돼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상정을 앞두고 연방 의원들에게 배포된 사실이 9일 확인됐다.
CRS는 일본군 위안부 보고서를 통해 일본 정부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 개입 증거가 명백하고 일본군이 위안부 여성 모집에서 위안소 운영까지 모든 단계에 개입했다고 지적했다.
CRS는 미군이 미얀마에서 발견한 20여명의 한국인 출신 ‘위안부’의 증언과 호레이스 언더우드 박사가 미 정부에 보고한 일본군의 한국인 위안부 강제동원 기록, 네덜란드 정부문서기록보관소에 보관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자료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9.

▲ 김문길 교수가 발표한 종군 위안부 강제 연행 문서. 빨간 표시가 된 곳에 '연행'이라고 적혀 있다. 이러한 문건에도 불구하고 종군 위안부를 강제 연행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 일본 정부 입장이다.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