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21일 서울 충무로 (주)풍산 본사 앞에서 4~50대 늙은 노동자들이 20년 만에 원직복직 조끼를 다시 입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1989~91년까지 풍산금속 안강과 부산공장에서 해고된 31명의 노동자들이다. 해고 노동자들은 지난 2000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위원회(민주화위원회)에 집단으로 민주화운동 관련자 인정을 신청했다. 이들은 ‘악덕 기업과 권력의 가공할 탄압으로 합법적 노조운동은 물론 해고까지 겪었다’며 라면 2상자 분량의 증거자료와 함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노태우 정권 때 1988년 7월 풍산 안강 공장에서 폭발사고로 한 노동자가 숨졌다. 풍산금속은 탄약과 포탄을 만들던 국내 최대 방산 업체였다. 노동자들은 살인적 노동 강도와 잦은 산재사고를 없애려 노조를 만들었다. 회사와 경찰은 지난 89년 1월 2일 새벽, 새해 벽두부터 경찰 4500명을 안강공장에 투입, 노조간부들을 체포해 구속시켰다. 90년 9월 11일 새벽 5시10분엔 경찰 2300명을 부산 동래공장에 투입, 농성노조원 3백 명을 연행했다.
화약과 폭발물이 가득한 군수공장에 최루탄과 지랄탄을 쏘며 진입한 경찰은 공장 옆 사원아파트 옥상으로 밀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노조원까지 모두 진압했다. 노조원들은 회사의 일방적 근무형태 변경으로 임금이 줄자 준법투쟁을 벌였다. 경찰과 회사는 새롭게 뽑힌 민주노조의 싹을 자르기 위해 온갖 짓을 다했다. 노조지부장 선거유세에 참가한 노조원에게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했는가 하면 선거관리위원장을 정직시켰다.
회사는 노조가 파업도 하기 전에 전면 휴업해 버렸다. 당시 부산의 대표 인권변호사인 이흥록 변호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경찰서장, 공장장, 안기부(국정원), 동래구청, 소방서, 세무서까지 총동원된 관계기관 대책회의만 수차례 열렸다. 관할 경찰서장과 보안과장은 한 술 더해 노사 교섭장까지 들어와 노조간부를 협박했다. 부산 동래공장 진압 직후 노동자들은 부산대학교에서 농성을 이어갔다. 전노협 부산양산노련은 며칠 뒤 전열을 추슬러서 부산지역의 노동과 시민사회단체를 망라해 부산대 넉넉한터(운동장)에서 풍산 동래공장 살인진압규탄집회를 열었다.
당시 집회 땐 지도부들이 무대 위에 철제의자를 한 줄로 놓고 앉았다. 부산 민변을 대표해 문재인 변호사도 앉았다. 그 옆에 정의헌 부산노련 의장(전 전비연 공동의장)이 앉았다. 집회 중간쯤 군중 속에서 남연모 풍산금속노조 동래지부장이 무대 위로 뛰어 나왔다. 진압현장에서 가까스로 피신한 남 지부장은 경찰의 감시망을 뚫고 마이크를 잡았다. 노동자들의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그 순간 정의헌 의장은 문 변호사로부터 귀엣말을 들었다.
정 의장이 기억을 정리하면 대충 이렇다. “우리 노변(당시 노무현 변호사)께서 풍산의 자문변호사라서 저희가 이번 사건의 사측 변호를 맡을 수밖에 없습니다. 양해해 주세요.” 노무현 변호사는 78년 판사 옷을 벗고 변호사로 전업해 80년대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가 돼 문재인, 정재성 변호사 등 후배 변호사들을 기용, 인권변호사로 날렸다. 부산ㆍ경남지역의 어지간한 활동가들은 이흥록ㆍ노무현 변호사의 무료변론을 받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풍산의 자문변호사였던 5공 청문회 스타 노무현 의원
장면을 바꿔보자. 88년 하반기 여소야대 정국은 ‘5공 청문회’를 만들었다. 당시 증인으로 불러 나온 이들은 전두환 장세동 등 5공 실세와 전두환 정권에 거액의 정치헌금을 바친 정주영, 류찬우(풍산금속 창업주)씨 등 재벌회장들이었다. 의원들은 거물인 증인들을 함부로 다루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초선이던 노무현 의원은 청문회장에서 전두환 증인에게 명패를 집어던지며 호통을 쳐 청문회 스타가 됐다. 5공 청문회가 정치 신인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풍산의 류찬우 회장은 재계의 미국통이다. 노무현 대통령 방미의 전초전 성격으로 한국을 찾은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류 회장을 이어 풍산을 맡은 둘째 아들 류진 회장과 만나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류진 회장의 부인은 5공 때 안기부장과 국무총리를 지낸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딸이다. 류진 회장의 형은 박근혜 전 대표의 동생 박근영 씨와 결혼하기도 했다. 노무현 의원은 5공 청문회장에서 류찬우 회장에게 이렇게 질타했다.
“절대 권력을 가진 권력에겐 5년 동안 34억 5천만 원이나 늘름늘름 갖다 주면서, 내 공장에서 내 돈 벌어주려다 사고로 죽은 노동자에게 3천만 원, 8천만 원 주니 못주니 하면서 싸우는 게, 그것이 기업이 할 일입니까. 답변하십시오.” 청문회장에서 자신이 질타했던 재벌의 변호를 맡은 인권변호사. 그것도 자신이 지적했던 그 노동사건의 회사 측 변호를 맡다니. 물론 당시 노무현 변호사는 국회의원이라서 직접 담당하지 않고, 그의 법률사무소에 소속된 문재인 변호사가 사측 변호를 맡았다.
민주화위원회는 2007년 10월 31명의 풍산금속 해고자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위원회는 관련법에 따라 지난달 복직을 신청한 29명의 복직을 풍산 측에 권고했다. 풍산은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동래지부 부지부장으로 해고됐던 김영일 씨는 “이후 2년을 끈 재판에서 우리는 문재인 변호사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고 했다. 돈벌이만 되면 닥치는 대로 가리지 않고 무슨 짓이라도 해대는 악질 자본과 그들의 편에 선 변호사가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말로만 듣던 노무현과 문재인의 돈벌이 모습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었다. 문재인만 가슴이 아픈 게 아니다. 오죽 했으면 “문재인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는 풍산금속 해고 노동자들의 한 맺힌 소리를 기억이나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지금도 민변 변호사 중에는 노동자 사건 수임도 하고, 사측의 자문 변호를 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그렇지만 대통령을 역임한 인물과 민정수석에다 비서실장까지 지낸 사람에게는 적용 잣대가 달라야 하는 것 아닌가? (오마이뉴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