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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야당 때 발목 잡던 민주당 뒤늦게 “규제프리존법 검토”

[중앙일보] 입력 2017.10.16 03:00   수정 2017.10.16 03:07

1년 반째 낮잠을 자는 기업 규제 완화 법안인 ‘규제프리존특별법’의 국회 통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정권 교체로 공수가 바뀌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사실상 입장을 선회했기 때문이다.
 

통과 기다리는 20대 국회 1호 법안
시·도별 전략산업 규제 풀자는 내용
2015년 민주당 “재벌에 특혜” 반대
그 새 일·러는 특구 세워 외자 유치전

문 대통령 “규제 샌드박스 도입”에
민주당, 발의 1년 반만에 “통과 검토”

지난해 5월 20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된 이 법안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에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주는 ‘규제 프리존’을 만들어 지역별 미래 먹거리를 육성하겠다는 목적을 담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기업규제법안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기업규제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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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규제프리존 설치를 공식화한 박근혜 정부는 적극적으로 법안 처리를 추진했지만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반대했다. 당시 민주당 의원들은 “재벌에 특혜를 주기 위한 법”이라거나 “대통령이 나서서 비선 실세(최순실)를 위해 만든 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대선 당시에는 반대 입장이었다. 상대 후보였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규제프리존법 통과를 주장하자 캠프 수석대변인이던 유은혜 의원은 “규제를 풀어 공공성 침해 우려가 제기된 법을 통과시키자는 것은 자신이 이명박·박근혜 정권 계승자임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 이처럼 대립의 쳇바퀴를 도는 사이 경쟁국들은 투자 유치를 위한 경제특구 경쟁을 벌였다. 일본은 수도권 공장 진입 규제 철폐 등 전국 단위의 국가전략특구 제도를 도입했고, 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베트남·미얀마 등도 경제특구 설치로 외자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문 대통령 당선 이후 여권 고위 관계자들은 잇따라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전남도지사 때부터 찬성하던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5월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과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겠다”고 했고,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도 지난 7월 “규제개혁 차원에서 규제프리존법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에서 “창업과 신산업 창출이 이어지는 혁신생태계를 조성하겠다”며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겠다고 공언하면서 규제프리존법은 새 운명을 맞게 됐다.
 
규제프리존이 특정 지역의 규제를 풀어주는 방식인 반면, 규제 샌드박스는 사업 프로젝트 단위로 규제를 풀어주는 방식이다. 규제 완화 수준은 규제 샌드박스가 더 높다는 평가다.
 
청와대로선 문 대통령이 직접 강조한 만큼 법안 처리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규제프리존법과 규제 샌드박스법을 여야가 서로 절충해 통과시키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며 “정무 라인 등을 중심으로 입법이 되도록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입장도 미묘하게 변했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규제 완화와 관련된 내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규제 샌드박스와 규제프리존을 포함해 법안 내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야당 시절에는 반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다른 법을 침해하는 내용의 개선이 필요하다. (법안 이름을) 규제프리존법으로 해서 통과시킬지, 다르게 해서 통과시킬지는 더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의 입장 변화에 대해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야당 시절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테러방지법에 대해서도 야당이던 지난해 2월에는 법안 처리에 반대하며 192시간 동안 국회 본회의장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했다. 그러나 여당이 된 후 서훈 국정원장이 “테러방지법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침묵했다. 
 
허진·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