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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 출처






1988년 11월 25일

콘크리트 살인사건....이게 실화라니 정말 가슴이 비통하고 세상이 원망스럽습니다.
진짜 범인들 잡아다가 쳐죽이고 싶네요..절대로 쉽게 죽게 해서는 안됩니다.
피해자가 당한 고문의 10배로 되갚아주어야 합니다.

이 사건이 영화화 되어 상업적으로 이용된것이 엿같긴 하지만 그냥 묻혀져서도
안되는 사건이라 생각이 듭니다.



사건의 내용은....
아르바이트 후 귀가하던 여학생을 납치, 감금하여 수명이 집단강간 및 폭행 , 잔인한 고문
(성기, 항문에 폭죽을 넣어 터뜨리기, 라이터 기름을 부운뒤 불태우기, 아령을 복부에 던지는 등..)
을 40 일간 수없이 반복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뒤 드럼통에 넣고 콘크리트를 부어 사체를 유기..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르는점은.....

1. 범인들이 집에 재미있는것이 있다며 주변인 100 여명 가량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그 가운데 한명도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고 강간 및 폭행에 가담하였다는 점입니다.

2. 이 사건이 재판에 오르자 정작 범인들은 사형은 커녕 주범A 에게는 징역 20년을
나머지는 5~ 10 년을 선고...나머지 가담자들은 약식 기소 처분 되었다고 합니다.
사형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재판 결과가 나오다니...정녕 법은 강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군요.
이런 잔혹무도한 행위를 한 쓰레기들을 굳이 법으로 처리해야 할까요?
재판당시 범인 A 를 제외하고는 죄를 뉘우친다고 하였으나
사실 이들의 목적은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 그랬던 것..
범인A 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벌써 출소하여 그때의 일을 웃으며 얘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법은 피해자를 두번 죽인 셈이 된것입니다.
순진하신 분들....살인한 사람은 죄책감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을 못할거라고요?
천만의 말씀...아주 멀쩡히 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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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11월 25일
죄없는 여고생을 하교길에 납치하여 수개월간 강금하며 여러명이서 온갖 고문과 성 행위 등
'인간으로써 어떻게 저럴수가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정도의
폭행, 고문등을 한 뒤 무참히 살해하여 공사장 인근의 드럼통에 넣어
콘크리트로 묻어버린 뒤 평상시와 똑같은 일상을 살던 소년들.
그들의 나이는 불과 15~18세
그들은 모두 붙잡혔지만 한소년은 자신의 죄를 뉘우침없이 자신들했던
고문, 폭행, 성 행위 등을 모두 자백함
그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실로대단하였음
15살 여학생을 하교길에 납치한 뒤 아지트(소년 C의 2층집)로 끌고가 수시간 폭행
신고하면 조폭이 가족을 몰살시킬거라 겁 준 뒤 공중 전화로 집에 전화하여
친구 집에 있으니 걱정말고 신고 하지 말라고 해 부모님을 안심시킴
그 뒤 그 여학생을 집단 성 폭행 한 뒤 무참히 폭하함
그 여학생은 하루 18시간 이상 폭행, 성적 고문 당했고
집에 보내 달라 요구 하면 폭행은 심해졌다
그 여학생은 신고를 시도한 적 있으나 발각되 전화가 끈킨 뒤
역탐지하여 다시 걸려온 경찰의 전화에 장난 전화였다며 무마시킴
그 뒤 그 여학생은 무자비한 폭행을 당해야했고
신고의 엄두조차 내지못함

물과 음식을 주지않고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즐기다
우유와 건포도를 먹이자 몸이 반응하지 못하여 토해내면
더럽다며 구타하고, 손, 발, 정강이, 무릅 등에 라이트기름을 발라 불을 질러
고통스러워하며 발버둥치는 모습을 즐기며

그것을 끄기위해 몸부림 치는것을 하지말라며 폭행하고 그불이 꺼지면 다시 불을 붙였다.
이 행위로 인해 소녀는 자력으로 일어서지 못하게된다.
또한 술을 억지로 다량 먹여 고통스러워하며 토해내는 모습을 즐기고 더럽다며 폭행
항문과 성기등에 불꽃놀이를 안쪽으로 꼽아놓고 터뜨렸으며
(부검 당시 소녀의 대장에 심각한 화상이 있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여학생에게 웃으라고 강요하며 웃지않으면 무자비한 폭행
소녀의 안면을 구타해 코 높이까지 부어오른 볼과 눈부분에 촛농으로 양초를 고정해놓고
성경험이 없던 소녀의 성기와 항문에 온갖 이물질, 벌레, 페트병까지 넣음

소녀의 부검당시 안면부도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만큼 손상었으며 성기와 항문 부분은 더욱 심각여여학생은 그들의 요구에 알몸으로 춤과 노래를 해야했고
미친짓을 해보라는등 엽기적인 것들을 시켰다.
혹한기에 배란다에 알몸으로 보내 여러개의 담배를 한꺼번에 피게함
그 때 마다 웃지않으면 폭행
폭행을 가하다가 넘어진 소녀가 카세트에 머리를 부딪혀 경련을 일으키자
이를 꾀병이라며 6kg의 철아령을 복부에 던짐
소녀가 반응을 않자 몸에 기름을 발라 불을 붙임
반응을 보이자 불을 끈뒤 2시간 가까이 폭행
소녀는 자신이 배설한 소변, 대변, 맞아서 나온 혈흔까지 빨아 먹어야했고
소년들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기위해 손, 발에 봉지를 씌어 뒤 돌려차기 등의 폭행을 가함
소년들은 자신의 집에 재미있는것이 있다며 주변인들에게 자랑하며 다님
이 사실을 아는 소년들의 주변인은 100여명으로 추정됨
이 중 10여명은 직접 폭행, 강간에 관여
소년C 부모들도 여학생이 2층에 있는것은 알았지만
소년C가 두려워 이를 묵살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함
소년A 부모는 이사실이 밝혀지자 충격 받고 집, 전재산 팔아 5000만엔을 피해자 부모에게 줌
피해자의 모친은 사건 내용에 충격을 받고 정신과 치료 받음
사건이 들춰진것은 사건발생 4개월뒤인 평성원년 1989년 3월 29일에 발견
네리마 소년감별소에서 아야세 경찰서 수사관이
1988년 11월 8일에 강간, 절도 등에 의해 소년 감별소로 보내진 소년A를 조사했을때
담당 형사가 무심고 "너 사람을 죽이면 안되잖아?"라고 하자
다른3명이 자백했다고 착각해 모든 사건내용을 자백
담당형사는 당초의 목적인 강간, 절도의 조사를 받는일 없이
반신반의한 채 자백내용에 의지하여
도쿄 코토쿠 와카스 15호지 해변공원 정비공장 현장공터로 향했다.
현장에는 드럼통 한개만 널려있었으며 드럼통의 콘크리트 틈새에세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있어 경찰은 305kg 정도의 드럼통을 크레인으로 메달아 올려
경찰서로 가지고 갔다. 다음날 오후 경찰서내에서 콘크리트를 해체
안에는 보스턴백에 채워진 이불2장에 휩싸인 여자의 시체가 들어었으며
사후2개월 이상 경과에 부패가 진행 되고 있어 상태가 나빳다.
피하지방의 두께는 통상의 6%정도로 영양실조 상태
전신에 구타에 의한 부종(림프액이 다량으로 모여 부어오른 상태)이 시신의 상태있어
사인은 외상성 쇼크 또는 위의 토사물에 의한 질식사로 여겨졌다.
시신의 상태는 안면이 심하게 함몰및 변형되어있었었고
부폐진행중이 였기 때문에 외관으로 부터의 확인은 곤란
지문이나 이빨들의 조합으로 11월 25일 밤 아르바이트후 귀가도중에 행방불명이 된 사이타마현
미사토시타카스 1번지의 현립 야시오고교 3학년의 소녀(17)인것이 확인
야시오 시내의 아르바이트에 먼저 간 채로 귀가하지 않아
요시카와 경찰서에 수색원을 냈던 부모는 무사히 돌아오는 것은 손꼽아 기다렸으며
부친은 일을 쉬어가면서까지 행방을 찾고있는 중이였다.
공판기록에 의하면 변호사가 "그정도의 폭행을 가하면서 그녀가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라는 질문에 "생각할 수 없었다" 라고 대답
"죄를 뉘우치고 있는가?" 라고 하자 소년 B, C, D 등은 죄를 뉘우친다 했으나
소년 A는 "단지 운이 없어서 잡혔을 뿐이다" 하고 대답
A는 이전에 근무하고 있던 타일공장에 가 모르타르·드럼통 등을 조달
사체를 가방에 넣어 A의 집 앞에서 드럼통에 넣고 콘크리트를 흘려넣었다.
이 때 공장 전 상사는 사람을 죽였던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고 여겨져 조사 뒤 처벌

도쿄 고등 법원 판결(확정)

소년A 17년형
나머지 3명에 관해서는 5~9년 형
재판기록에 따르면 실제론 이 소년 외에도 10여명의 가해자가 더 있지만 그들에겐 약식 기소
그 들은 반성조차 하지않으며 자신을 취재하러온 기자들에게 욕설까지 퍼부음
부모는 지금 역시 피고인 측에서의 면회신청 및 성묘 허가를 거절
그 비통한 심정을 재판소에 토로하고 있다
손수 돌봐 길러 온 외동딸을 태연하게 주변에서 문제 삼아
불안 초조로 긴 날들을 보낸 결과 끔찍하게도 피해자가 살해되기에 이른
부모 등 피해자 감정은 지극히 엄하여 피고인에 대해 격렬하게 엄벌을 요구하고 있고
피재자의의 아버지는 당심 증언에 대해서도
피고인에 대한 원판결의 과형은 너무 가볍다고 해 강한 불신감과
불만의 정을 절절히 토로하고 있다.
피해자의 모친은 외동딸이 죽음에 이른 자세한 경과를 들은 뒤 정신과에 다니게 되었다.
덧붙여 주범 A 이 외는 이미 출소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에 나와 대부분이 적응을 하지 못하고있으며, 정신병에 시달리고있다. ← 거짓
소년C의 부모는 아직도 재판이 부당하다며 혐의를 부정하며
신문사에 이를 알리는 편지를 수차례씩 보내고있다.
← 화가 치밀어 오르는 부분..
그중 소년D는 가장 반성하고있으며 폭행당시 소녀는
폭행뒤에 자신에게 "나는 언제 집에갈수 있는거야?"라고 말했다며
수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 출소후 얘기를 들어보면 거짓임


<만화로도 나온 콘크리트 살인사건..차마 영화에서 표현되지 못한 부분도 그려져있다.>

소년
범행시 연령
학력
범죄이력
가정


A
18
고교 중퇴
상해(심판 불개시)
모교의 중학교 건축물 침입(보호관찰)
맞벌이

B
17
고교 중퇴
방치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님(심판 불개시)
부모님 별거

C
17
고교 중퇴
없음
맞벌이

D
16
고교 중퇴
가출(보호관찰)
나이프소지, 폭력행위, 모교에 투석(불처분)
이혼(부친 사망)

구형
1심
2심


A
무기징역
징역 17년
징역 20년

B
징역 13년
징역 5~10년
1심대로

C
징역 5~10년
징역 4~6년
징역 5~9년

D
징역 5~10년
징역 3~4년
징역 5~7년

검찰은 형량이 너무 가볍다 하여 공소, 공소심으로 형량이 무거워져 확정(91/7/12일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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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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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성원년 3월 29일

네리마 소년감별소에서 아야세 경찰서 수사관이 원년 11월 8일에 강간,절도 등에 의해 소년감별소로 보내진 소년 A를 조사했을 때, 담당의 형사가 무심코 '너, 사람을 죽이면 안되잖아'라고 한 말에 다른 3명이 자백했다고 착각.

담당관은 당초의 목적인 여죄의 절도에 관한 조서를 받는 일 없이, 반신반의인 채, 자백내용에 의지하여 도쿄 코토구 와카스 15호지 해변공원 정비공장 현장공터로 향했다.
현장에는 드럼통 한 개만 널려있었다.
드럼통에 채울 수 있었던 콘크리트의 틈새로부터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어 경찰은 305kg정도의 드럼통을 크레인으로 매달아 올려 경찰서로 가지고 돌아갔다.



다음날 오후 경찰서내에서 콘크리트를 해체, 안에는 보스턴 백에 채워진 이불 2장에 휩싸인 여자의 시체가 들어가 있었다. 사후 2개월 이상 경과에 부패가 진행하고 있어 상태가 나빴다.
피하지방의 두께는 통상의 6%정도로 영양실조 상태. 전신에 구타에 의한 부종(림프액이 다량으로 모여 부어오른 상태)이 있어 사인은 외상성 쇼크 또는 위의 토사물에 의한 질식사로 여겨졌다.

안면이 함몰 및 변형하고 있었기 때문에 외관으로부터의 확인은 곤란했지만, 지문이나 이빨 등의 조합으로부터 11월 25일 밤 아르바이트후 귀가도중에 행방불명이 된 사이타마현 미사토시타카스 1번지의 현립 야시오南고교 3학년의 소녀(17)인 것이 확인.
야시오 시내의 아르바이트에 먼저 간 채로 귀가하지 않아 요시카와 서에 수색원을 냈던 부모는 무사히 돌아오는 것을 손꼽아 기다렸으며 부친은 일을 쉬어 행방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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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63/11월 25일/20:00
자전거로 귀가도중의 소녀를 찾아낸 A가 공범이었던 소년C에 소녀를 발로 차도록 지시, 소녀는 도로옆의 도랑에 자전거와 함께 넘어진다. 공범C 도주후 주범A가 나타나 '위험하니 데려다준다'며 말을 걸어 납치.

공범C 소년의 방에 피해자를 데려가 몇사람이 폭행·강간한다. C의 부친은 이때 소녀가 큰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들어 주의를 줬지만 아들이 고함쳤으므로 그이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희생자에게는 도망쳐 경찰에 신고해도 야쿠자가 가족을 몰살로 한다고 위협, 도망을 저지하려 했다.

11월 30일
A의 제안으로 피해자의 모친과 친구에게 '친구의 집에 있으니까 수색원은 내지 마라'고 공중전화로 전화시킨다.

이때, C의 모친은 피해자를 목격하고 있다. C의 모친이 부엌에 있었을 때 현관으로부터 '오늘 밤은'이라며 소녀를 데리고 들어왔다. '이제 늦었으니까 돌아가세요'라고 말했지만 대답을 하지 않고 2층에 올라갔다. C의 부친도 C가 내려왔을 때 '빨리 돌려보내'라고 말했다.
다음날, 그 아이는 돌아갔다고 말해 C의 부모님은 의심을 품지 않았다.

일주일 후, C의 모친이 화장실을 청소했을 때 생리용품이 있었기 때문에 2층에 올라갔다.
2층에는 공범소년 D과 피해자 소녀가 있었다. 이때 피해자와 말을 주고 받고 있었는데 '주소는 사이타마, 고교 3학년, 취직은 정해져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 소년C와 그 모친, 소년D는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있어 도중에 귀가한 C의 부친은 '걸프렌드인가. 나에게도 소개해다오'하고 C에게 얘기했지만 무시된다.
C의 모친에 의하면 식후 텔레비젼을 보거나 패미콤(게임)을 해 사이가 좋은걸로 알고 있었고.. 소녀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한다.

C의 모친의 설득에 의해 귀가하게 되지만 밖에는 C와 C의 형이 대기하고 있어 실패. 결국 부모님이 잠드는 것을 기다려 전봇대를 타고올라 2층의 C의 방으로 돌아온다. 귀가한 C는 관계없는 일을 하지 말라며 모친을 수시간에 걸쳐 때린다.

63/12월 초
소년A 등 4명이 낮잠자고 있던 틈에 피해자는 1층에 내려와 110번에 신고한다. 곧 A에 눈치채여 전화가 끊어지고 구타. 경찰이 역탐지하여 다시 걸려온 전화는 A가 나와 속인다. 전원이 린치해 라이터 기름을 발목에 바르고 불붙인다.

12월 19일
C의 집에 A가 와 피해자에게 라이터 기름을 바르고 불붙인다. 재차에 걸치는 화상에 의해 상처가 곪는 이상한 냄새를 낸다. 악취로 C의 부모님이 눈치채는 것을 무서워 해 아래층의 화장실을 사용시키지 않고 종이팩에 일을 보게 했다. 이때 이미 자력으로 일어설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소년 C의 자택>

12월 20일
소년 A등 3인외에 여자가 1명 와 '화장'이라며 피해자의 뺨에 매직으로 수염을 그린다.

요즘 소년C는 집에 '재밌는 것이 있다'고 아는 사람에게 공언해 100명정도는 감금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보여지며, 재판기록에 나와있는 것만으로도 10명이 강간 등에 참가하고 있다.

거듭되는 폭행에 의해 뺨이 코높이를 넘을만큼 부어올라 눈의 위치를 모를만큼 되어 있었다.

감금당초 피해자가 가지고 있던 3,000엔으로 요리배달을 시키거나 C가 칫솔 등을 사주거나 하고 있었지만 상처나 화상이 심해지는 것에 따라 식사·목욕에 대해 배려하지 않게 되었다. 12월 하순까지의 식사는 컵라면, 빵, 우유, 알 등 집에 있던 것을 C의 형이 먹였지만 그 이후부터는 쇠약한 탓도 있어 하루에 우유를 한컵 먹일 뿐이었다.

12월 21일
만약 풀려나면 경찰에게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줄 때까지 뭐든지 한다고 피해자가 말했기 때문에 '알몸으로 춤춰라' '미치광이 흉내를 내라' 등을 지시.

12월 28일
A와 C, B의 세명이 한밤중에 C의 방에 들어가자 피해자가 배를 누르고 넘어져 있었다. A의 얼굴을 보며 피해자는 물을 마시고 싶다고 부탁했다. A는 물, 콘스프, 포도빵을 건네주었다. 방에서 나오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우유를 먹였지만 토해 버린다. 그 후, 피해자가 팩의 소변을 흘렸다고 A는 격노, 사과하는 피해자의 하복부를 수십회 구타, 상반신을 알몸으로 해 혹한(12월)의 베란다에 서게 해 담배 두가치를 동시에 피우게 하지만 구토. 양 대퇴부·무릎·정강이 등에 라이터 기름을 바르고 점화. 열이 이는 불을 끄려고 하자 손에도 점화, 불이 꺼지면 다시 점화했다.

1월 4일
JR아야세역 근처 마작소에서 내기 마작을 해 10만엔을 진 A는 초조해한다.
가수 코이즈미 교코의 테이프를 틀어 가사안의 '예-이!'에 맞추어 피해자의 옆구리에 마음껏 구타한다. 피해자는 소리를 내면 더 맞기 때문에 고통을 참아 얼굴을 비뚤어지게 했다. 그 표정을 보며 소년들은 재미있어 했다.

안면·복부를 구타해 넘어뜨리고 안면 등을 발로차고, 넘어지면 일으켜 때린다. 코나 입으로부터 피를 흘리고 있는 얼굴에 양초를 늘어뜨려 두 눈위에 양초를 세우는 등의 폭행에 이르고, 또 팩의 용기에 누게 한 소변을 먹였다.

피해자가 카셋트에 부딪쳐 전신을 경련하며 넘어진 것을 보며 '꾀병이다'며 C가 격노, A는 6kg의 철아령을 피해자의 배에 떨어뜨리고 대퇴부, 안면을 한층 더 때린다.
구타가 끝난 후,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라이터 기름을 바르고 불붙였다. 처음은 움직였지만 마지막에는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폭행은 2시간 가까이에 이르렀다.

공판기록에 의하면 ;

변호사 : 그정도의 폭행을 가하면서, 그녀가 죽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소년 B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1월 5일
피해자는 이미 사망해 있었다.
A는 이전에 근무하고 있던 타일공장에 가 모르타르·드럼통 등을 조달. 사체를 가방에 넣어 A의 집 앞에서 드럼통에 넣고 콘크리트를 흘려넣었다. 이 때, 공장의 전 상사는 사람을 죽였던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A가 빌려온 웨건을 운전해 도쿄만의 매립지에 갔지만 적당한 장소가 없어 도로틈의 풀숲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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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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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주범)
소화 45/04월생
부친 : 증권회사 사원
모친 : 피아노 강사
여동생 한 명.

당시부터 아버지는 애인집에 있어 가정은 붕괴하고 있었고 부부사이에 문제가 있었다.
초등학교 무렵에는 이미 문제행동이 있었다.

말을 잘하고 재미있다고 하는 평판도 있다.
초등5에 펀치파마.
쌍절곤·목검을 가지고 초등학교에 '쳐들어감'을 했던 적이 있다.
'나쁜 것은 근사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6학년때 공부 잘하는 좋은 친구에게 영향을 받고 성실하게 된다.

졸업 문집에는
「소년원의 원장이 되고 싶다. 나, 나쁜일을 많이 했다.
도둑질, 싸움, 대개 유행했다.
그래서 나쁜 일을 한 녀석의 기분을 알 수 있다.
나라면 비행소년이라고 불리고 있는 무리를 회복하게 해줄 수 있다.
내게 향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학 입학과 동시에 주위사람의 권유로 유도부에 입부, 체형은 작은 몸집(160cm)이었지만 열심히 연습해 3학년때 도대회에서 2위에 입상, 토카이대 부속고에 추천입학.

고등학교 유도부 선배 및 고문에게 체벌을 받는다. 그 내용은 A의 부친이 재판소에 호소했을 정도로 심하고, 살충제에 라이터를 대고 뿌리는 등 도를 넘은 것이었다.

밖에 나와 닥치는대로 싸움을 걸게되고 집에서도 물건을 부수고, 모친에게 늑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힌 적도 있다.

고등학교를 중퇴, 중학무렵부터 교제하고 있던 동급생(D의 누나)과 동거.
18살이 되면 결혼하려고 1년반 타일공으로써 성실히 일하지만 자동차학교의 합숙장에서 알게 된 폭력단원과 알게 되어 긴자의 생화상으로 아르바이트. 그만둘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 현실도피하기 위해 신나를 시작한다.
신나를 들이마시고 있을 때밖에 즐겁다고 느끼지 않는 생활.

폭주족의 특공대장.
폭력단과의 교제, 심부름꾼.

전과 :
재학중에 체벌을 받은 것을 동기로 히가시아야세 중학교에 난입,
유리창을 깨는 등으로 인도, 보호관찰 처분에.

최종판결 징역 20년
외설유괴, 약취, 감금, 강간, 살인, 사체유기, 상해, 절도.

판결 후, A의 부모는 집을 팔아 합계 5,000만엔을 피해자의 부모에게 지불한다.

C(피해자 감금장소의 차남)
소화 47/12월생
부친 : 병원의 사무장(니혼바시 근처 약국의 사장)
모친 : 같은 병원의 간호사.
형 1명

일 외곬의 부친은 엄격한 체벌을 발휘했다. 소년이 결정할 수 있던 가사의 분담을 하지 않는 것등을 모친으로부터 상담받으면, 소년을 흔들어 깨워 꾸짖었다. 울며 도망치는 소년을 뒤쫓아 때리거나 심야에 밖으로 끌어내 공원을 달리게 한 적도 있다.
부친은 매일 저녁 술을 마시고 귀가했다. 소년과 그 형(18)은 '주에 1회는 맞고 있었다. 오싹할만큼 무서웠다'라고 변호사에게 증언. 부친은 '한달에 1번 아니, 일년에 몇차례밖에 때린 기억은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부친이 체벌을 하지 않게 되었을 무렵, C소년의 가정내 폭력이 시작되었다.

다니고 있던 공립중학교는 진학 명문교였지만, 여기서도 교사의 체벌이 횡행하고 있었다. 학생은 매일같이 맞았다. C소년도 바스켓부 고문이었던 여성교사에게 맞고 퇴부(90/11/17, 아침)

A의 중학교 2년 후배, 공업고등학교에 들어가지만 2학기에 중퇴.
이 사건이 발각되었을 때, 다른 건으로 이미 토치기의 소년원에 보내져 있었다. 도쿄에 귀환시켜 체포.

전과 :
오토바이의 무면허 운전으로 인도 → 보호관찰 처분

최종판결 징역 5~9년(소년형무소에서 만기. 벌써 출소)
외설유괴, 약취, 감금, 강간, 살인, 사체유기, 절도.
변호측은 상해치사(살의가 없었다)를 주장.

C의 부모님은 2명모두 공산당원. 경찰이 구속영장을 취득한 단계에서 변호사를 준비해 가택 수색도 변호사 입회의 원으로 행해졌다.
당은 사건직후의 단계에서 C의 부모를 제명, 당과는 일절 관계가 없다고 발표. 그리고 '감금이라고 하는 인식이 없었다' '소녀는 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등 C모친의 자기변호적 기사를 기관지 '붉은 기'에 5월 20일~27일 연재 칼럼에서 백업.
C의 모친은 매회 빠트리지 않고 재판을 방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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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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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고등 법원 판결(확정)

부모는 지금 역시 피고인 측에서의 면회신청 및 성묘 허가를 거절하고, 그 비통한 심정을 재판소에 토로하고 있다.
손수 돌봐 길러 온 외동딸을 태연하게 주변에서 문제 삼아, 불안 초조로 긴 날들을 보낸 결과, 끔찍하게도 '갑'이 살해되기에 이른 부모 등 피해자 감정은, 지극히 엄하여 피고인에 대해 격렬하게 엄벌을 요구하고 있고, '갑'의 아버지는 당심 증언에 대해서도, 피고인에 대한 원판결의 과형은 너무 가볍다고 해 강한 불신감과 불만의 정을 절절히 토로하고 있다.

피해자의 모친은, 외동딸이 죽음에 이른 자세한 경과를 들은 뒤, 정신과에 다니게 되었다. 덧붙여 주범 A 이외는 이미 출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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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사건의 해설 = = =

이 사건은, 한없이 사형에 가깝다고는 해도, 현재의 일본에서 사형 판결이 나올 가능성은 없다. 성인이 사형이 되는 것은 희생자의 수가 2명 이상이라거나, 강도나 강간등이 있어, 악질, 계획적으로 반성이 불충분, 등등의 기준을 채우는 경우다. 본건 살인 이외에도 여러가지 범죄를 저질렀지만, 희생자의 수나 연령을 생각하면 사형 판결은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전 사형의 1/3을 집행하고 있는 텍사스주에서도 소년 A 이외는 사형으로 할 수 없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연간 5~10건정도의 사형 판결 밖에 나오지 않고, 집행까지 지극히 긴 시간이 걸린다. 이것은 사형을 유지하면서 사형 폐지론을 고려한 결과지만, 수를 한정하거나 억울함을 방지하기 위해 판결로부터 집행까지 긴 시간을 들이는 것은 필요 불가결하다.

서구를 중심으로 사형 폐지의 조류는 부풀어 오르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과반수의 국민이 사형에 찬성하고 있다. 다만, 사형의 시비에 관계없이, 무기 징역과 사형의 사이가 너무 넓은 것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현재 무기 징역의 경우, 이론적으로는 10년부터 출옥이 가능하고, 평균은 17년 정도가 되고 있다.

유기형의 상한인 20년을 40년 정도로 확대하거나 가석방 없음의 종신형 등을 마련해 사형과 무기 징역의 사이를 메워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출처 : http://profiler.hp.infoseek.co.jp ← 이곳에 흥미로운 글이 많음. 번역이 민망하므로 불만인 분은 직접 가서 보시는 것도..

이것은 15년이 지난 지금의 기록 ....

그 ‘체포감금치상사건’이 발각되었던 것은, 얼굴에 큰 멍이 든 젊은 남자가, 5월 19일 낮, 아다치구(足立区)에 있는 타케노츠카(竹の塚) 경찰서에 뛰어들어 왔을 때 부터였다. 남자는 아다치구 내에 위치한 꽃집에서 일하고 있는 27세의 점원.

그의 공술에 따르면, 낯이 익은 남자에게 트집을 잡혀서,

오전 2시쯤부터 아침 7시쯤까지 5시간정도 감금당해, 계속해서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경찰관계자가 말한다. “사건을 들어보니, 얼굴도 모르는 여성의 일로, 지인의 깡패로부터 시비가 걸렸다고 했습니다. 차 트렁크 안에 감금당해서 사이타마현(埼玉県) 미사토시(三郷市)의 스낵바까지 이동하면서 맞았다는 겁니다. 상처의 상태는 전치 10일정도 였습니다. 놀랐던 것은, 피해자가 그 범인은 16년 전, 아다치구의 아야세에서 일어났던 여고생 콘크리트 암매장 살인사건(女子高生コンクリート詰め殺人事件)의 범인 중 한사람이라고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이 꽃집 점원이 증언했던 대로, 사건의 범인, 카미사쿠 죠(神作譲)라고 하는 33세의 남자를 조사하자, 그는 16년 전, 여고생을 감금하고 살해했던 4명의 범인들 중의 한사람이었다. 당시, 17세의 카미사쿠가 콘크리트 암매장 살인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었는가를 보기 전에,

우선은, 이번에 일어났었던 체포감금치상사건의 전말을 소개하겠다.

피해자의 지인 중 한사람이 설명한다. “카미사쿠는, 피해자가 일하고 있던 플라워샵의 사장과 알고지내는 사람의 젊은 무리였다고 할까. 6~7개월 전에 그 사장의 지인이 가게에 왔을 때, 같이 따라왔었습니다. 신장은 딱 190정도였던 남자로, 한번 보니까, 그런 쪽의 사람이라는 분위기가 있었죠. 우연히 가게에서 일하고 있던 피해자와 얼굴을 알게 되어버린 것뿐입니다.”

그 장소에서 의기투합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이후는, 길에서 얼굴을 보면 인사를 하는 정도의 사이가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왜인지 올해의 춘선에, 갑자기 카미사쿠가 피해자 남성에게 빠르게 접근해왔다. 여기서부터는, 피해자 자신에게 들어보도록 하자.

“때때로, 내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옵니다만, 올해 3월인가 4월 쯤에, 갑자기 새벽 2시에, 내 맨션을 찾아와 위로 올라와서 한참 세간의 이야기를 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30분정도 후에, 또 와서 ‘내 지갑이 없어졌다’라고 하면서, 멋대로 서랍이나 옷장을 열고, 내 방을 뒤지는 겁니다. ‘지갑이 없잖아, 어디를 찾아도 없어’ 라고 말하면서....... 하지만, 그렇다고 관계를 끊을 수도 없어서......”

이런 방약무인한 태도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것은, 카미사쿠의 외견을 무서워했기 때문은 아니었다고 한다. “사실은, 그와 같이 집으로 오게 되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그 때는 갑자기, ‘나는 말이지-, 소년 시절에 10년도 넘게 형무소에 있었어.’ 라고, 가벼운 어조로 내뱉었습니다. 무서워서, ‘어떤 사건이었습니까?’라고 묻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본인이 ‘아야세에서 일어난 콘크리트 암매장 살인이라고 알겠지. 그거야.’ 라고, 능글능글 웃으면서....... 여고생을 억류하면서 머리를 자른 일이라든지, 죽어버렸을 때의 일 같은 것도.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 연기를 그 애의 코 아래에 갖다 대도, 숨을 안 쉬는 거야.’ 라든가 ‘시체를 이런 느낌으로, 드럼통에 넣어서, 콘크리트를 들이붓고......’ 라고, 사건을 마치 웃는 이야기처럼 몸짓, 손짓으로 자만한 셈이죠.”

꽃집의 점원은, 분노해서, 이후, 전화가 걸려와도 받지 않게 되었지만,

그것이 화근이 되어, 그를 화나게 하고 말았다.

“5월 18일, 전화가 와서, ‘일이 끝나면 전화해라. 내 여자를 가로챘잖아. 야쿠자를 무시하지 마’ 라고 말했습니다. 그 날은 밤이 늦어서, 집에 도착한 것이 새벽 2시경이었습니다만, 맨션의 현관 앞에 흰색 셀시오(セルシオ)가 정차해 있었고, 카미사쿠가 내려왔습니다. 제가 먼저 인사를 하고 가려고 하자, 오른손 주먹으로 5, 6대. 안면을 맞고 쓰러지자 ‘죽여줄까, 무시하지 마’ 라고......”

피해자는 한층 더한 공포의 체험을 계속한다.

“그 안에 있던 금속 배트를 가지고 나와서는, ‘트렁크에 들어가’라고 명령해서, 휩쓸리는 것도 무서웠지만, 말을 듣는 수밖에 없어서....... 그리고 30~40분 달려서, 사이타마의 미사토의 스낵바 앞에서 차에서 끌려나왔습니다. 그가 스낵바의 문의 열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안쪽으로 열쇠를 잠가버렸습니다.”

살아있는 심정이 아닌 피해자에게 대고, 카미사쿠는,

“너, 가는 얼굴에 170정도 되는 여자 말이야. 알고 있겠지”라고, 계속 때렸다. 짐작도 가지 않고, 이유도 모른 채 피해자는, “죄송합니다”라고,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스낵바에서 해방된 것은 날이 밝아오는 오전 7시. 그것도 혐의가 풀려서가 아니라, 카미사쿠가, 때리다 지쳤다는 게 그 이유였던 것이다.

광기조차 느껴지는 폭력을 휘두른 카미사쿠의 생활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근처의 주인에 따르면, “금발이라고 하기보다는 샛노랗게 머리를 물들이고 있었죠. 최근까지 어머니와 둘이서 단독주택 2층에 살고 있고, 1층에는 불고기집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또 하나 어머니가 하고 있던 스낵바가 바빠진 것 같아서, 불고기집 쪽을 폐점했었습니다.”

다른 지인은, “폭력단의 사무소에도 출입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정식 조원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천초의 삼사제에는 자주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근처에서는 카미사쿠의 꺼려지는 과거에 대해서는 모두 알지 못했다.

그럼, 세간를 진동시켰던 15년 전의 콘크리트 암매장 살인사건에서의 그는, 어떠한 역할을 맡고 있었던 걸까. “4인방 중에서, 카미사쿠는 서브 리더라고 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선배가 있을 때는 명령을 듣는 입장이었지만, 없을 때는 그가 리더가 되어 지시를 하거나, 솔선해서 피해자를 괴롭히는 것도 분명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1988년 11월 말-.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한 학년 연상의 선배와 카미사쿠는 두 명의 후배와 같이 4인 그룹을 결성하여, 후배의 집 2층 방을 집합소로 해서, 소매치기나 공갈, 강간 따위를 되풀이해왔다. 어느 날, 돌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고 있던 17세의 여고생을 보고서 납치, “나는 너를 노리고 있는 야쿠자다. 내 말을 들으면 목숨은 살려주지.” 라고 구슬러 호텔에 데리고 들어가 강간했다. 그 후, 그녀를 후배의 집에 데리고 있으면서, 연초에 그녀가 죽을 때까지 40일 이상 감금을 계속한 것이다. 게다가 당초, 성욕의 대상으로 보고 있던 그녀가 탈출을 하려고 110번에 전화를 한 것을 안 4명은 격노, 심한 린치를 가하게 되었던 것이다. 법정에서 밝혀진 린치의 실태는 필설로 다하기 어렵고, 귀를 막고 싶어질 정도의 증언에 방청석은 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하게 변했다. 4인은, 그녀가 도망갈 수 없게 하려고 라이터 오일을 여고생의 다리에 붓고, 몇 번이고 불을 붙였다. 뜨거워서, 필사적으로 불을 끄려고 하는 그녀를 보고, 크게 웃고, 결과적으로 중도의 화상을 입어, 설 수 없을 정도로 그 상처가 화농이 될 때까지 방치했던 것이다. 코이즈미 쿄코의 「뭐라고 해도 아이돌」의 테이프를 틀고, 노래가사 중의 「이예-」에 맞추어, 그녀의 옆구리에 펀치를 가하고, 얼굴이 뒤틀린 것을 보고, 카미사쿠는, 리더에게 “이 얼굴이 좋군요.”라며 웃었다고 한다. 그녀가 생환할 수 있는 찬스를 되돌린 것도 카미사쿠였다. 어느 날, 리더가 그녀를 집에 돌려보내자고 했을 때, “위험해요. 신고할지도 모르잖아요.”라고 반대하여, 후배에게도 여고생을 돌려보내는 것에 반대하라고 타일렀다. 식사도 주지 않고, 폭행을 계속 당해온 여고생은, 쇠약해져 있었다. 촛농을 얼굴에 떨어뜨리고, 소변을 마시게 했다. 타케다 테츠야의 「성원」이라는 노래에 있는 「간바레, 간바레」라는 가사를 부르면서 여고생을 계속 괴롭혔다. 여고생은, 때때로 작은 목소리로 자신에게 들릴 정도로 “간바레, 간바레”하고 소리내고 있었지만, 마침내 “죽여, 죽이라고”라고 애원할 정도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행태였지만, 이 4사람은 체포된 후, 일전해서 기특한 태도를 보여, 법정에서 여러 차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1심판결 직전, 피고인 질문 때, 카미사쿠는, 혼자서 죽어있던 피해자의 일을 물으며, 격렬하게 오열하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의 무참함을 직견하고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죽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 사람이 어땠을지......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악마,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변호사들은, “소년들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고, 재생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했지만,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는가는 지금, 간신히 분명해진 셈이다.

실제로,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그의 이런 말을 듣고 있다.

“카미사쿠는, 아야세의 일을 가지고, ‘한 사람 죽이든, 두 사람 죽이든 똑같아. 나는 말야, 조사받은 경력이 있으니까, 경찰이나 검사에게 어떤 말을 해야 죄가 가벼워지는지 알고 있다고
검사를 속이는 것 정도야 간단하지.’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정신감정이 되는지 알고있어.’ 라는 등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번 죄의 형량은, 그의 경력을 참작하여 그에 상응하는 엄한 벌이 될 것인가.

테이쿄대학의 우에모토 타케시 교수(형법)은 이렇게 본다.

“복역을 끝내서, 본 사건은 이전 사건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재판소가 개심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는 정도일 겁니다. 감금죄는 5년이 한정으로, 상해 쪽은 10년 이하로 결정되어 있고, 사회정의에 반하는 요소가 크다는 것을 고려해도, 5년 구형에, 3년이나 3년 6개월의 실형으로 마무리되지 않겠습니까.”

30대 후반에, 또 한 번 그는 형무소에서 돌아올 것이다.

http://2ch-library.com/news/concrete/text/flash.html

준 주범 격, 카미사쿠 죠(33) 등, “귀축” 가해소년들은 지금...
철저 추적 르포 -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 “15년째의 진실”


“카미사쿠 죠입니다” 이름을 묻는 재판관에게, 180센티 정도의 장신의 남자가 대답했다.

7월 28일에 열린 체포감금상치사건의 피고, 카미사쿠 죠(33)의 초공판.

피해자 남성에게 도쿄, 아다치 구에서 폭행을 가하고, 차에 태워 모친이 운영하는 사이타마 현 미사토 시내의 스낵바에 감금. 「내 여자를 채갔잖아」라는 이유로 때리고 차는 등의 폭행에 이르렀다고 하는 사건이다. 검찰 측은 카미사쿠 피고가, “나는 사람을 죽여본 적이 있다. 정말로 죽여 버릴 테다. 나는 10년 징역을 살다왔다고. 경찰이나 검사를 구워삶는 여유로움을 배웠단 말이지. 무슨 일이 있어도 나올 수 있어.” 라는 등의 협박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피고는 그것을 부인.

“이것만으로는 체포감금이라고는, 뭐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만.” 이라고 진술하는 등, 그 태도에 반성의 기색은 없었다. 카미사쿠 피고가 이전에 일으켰던 사건, 그것이 15년 전의 「여고생 콘크리트 암매장 살인사건」이다.

88년 11월 25일, 미사토 시의 고교 3년생이던 A양(당시 17세)은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던 중 행방불명되었다. 소년 A(당시 18세), B(카미사쿠 피고, 당시 17), C(당시 16), D(당시 17)의 4인방은, A양을 외설목적으로 유괴하여 아다치구 아야세의 소년 C의 자택 2층에 감금하고, 41일간에 걸려 레이프나 폭행을 되풀이하여 살해한 것이었다. 사건으로는 이 4명이 기소, 그 외의 소년 3명이 소년원 송치 정도를 받았지만, 그 처참하게 행해진 폭력의 내용은 예를 들면 이렇다.

코이즈미 쿄코의 「뭐라고 해도 아이돌」의 곡에 맞추어 「예이-」라고 부를 때마다 폭행.

타케타 테츠야의 노래에서 「간바레」의 프레이즈에 맞추어 린치를 가하고 여고생은 소리를 내서 그 노래를 부른다. 50몇 킬로였던 체중은 30킬로대로...

또, 감금현장의 목격 증언에 따르면, “여자아이가 전라로 기둥에 묶여 있었고, 방 안에는 신나와 술이 여기저기 널려있어서, 더 지독했다.” 라고 말하는 상황. 귀축의 소행 그대로다.

91년 7월, 도쿄고재는 A에게 징역 20년, 카미사쿠 피고에게 징역 5년 이상 10년 이하, C에게 징역 5년 이상 9년 이하, D에게 징역 5년 이상 7년 이하를 선고했다. 주범격인 A 이외에는 전부 출소했다. 그들의 「현재」를 쫓았다.

소년 B = 카미사쿠 피고의 출소 후

카미사쿠 피고는 99년 8월에 출소, 4년 전에 중국인 여성과 결혼, 작년에 이혼했다.

“카미사쿠는 일본에서는 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중국에서 생활하기 위해 결혼한 것 같다. 하지만, 이혼으로 그것은 실현되지 않았다.” 라는 어느 저널리스트의 말이다.

출소 후, 한 때 컴퓨터 관련 회사에 취직했지만, 02년 쯤 부터는 취업도 하지 않고, 폭력단에 출입하게 되었다. 동급생은 이렇게 말한다. “이번의 사건보도를 보고, 친구와 연락을 했습니다. 모두 ‘역시 그 녀석은 안 된다니까-. 그 버릇 못 고치는 놈이야’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모친과 살고 있던 곳은, 사이타마현 야시오시의 목조 2층 건물의 2층.

1층에 입주해있는 설비관련회사의 관계자가 말한다. “어머니쪽은 머리가 길고 좀 화려하죠. 싹싹하고 좋은 사람같이 않아요? 그 집 아들은 점심때부터 러프한 저지를 입고 있어서 방탕한 사람인가부다, 하고 생각했어요.”

건너편의 상점 주인은 이런 인상을 말한다. “그집 아들은 머리를 금색으로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노랗게 되어버렸네’라고 말했더니 웃더군요. 길 저쪽을 걷고 있어도 인사를 하고, 저 사람이 옛날,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사건을 일으켰다고 하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모친의 스낵바에서 호스티스를 하고있는 여성은 이번 사건 후, 콘크리트 살인사건을 알았다고 한다.

“7월 5일에 TV를 봤더니, 「콘크리트 사건의 B」라고 나와서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마마(여기서는 호스티스가 가게 주인을 부르는 호칭인 듯.) 에게서 ‘들통나버렸네. 지금까지 계속 숨기려고, 그저 무리해서 밝게 행동하며 살아왔는데, 이제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겠어.’ 라는 메일이 왔습니다.”

카미사쿠 피고에게도 전의 사건의 ‘후유증’은 나타났던 것 같다. 호스티스가 말을 잇는다.

“점심 때에도 ‘으악-’이라든가 ‘으으-’라든가 소리지르는 게 있었고요. 분명히 감정을 억누를 수 없게 된 거겠죠. 죠 군은 ‘엄마, 내 앞에서 사라져 줘, 안 그러면 엄마를 때려 버릴거야’라고 말했던 것 같고. 죠 군도 아마도 계속 사는게 지옥같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형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죠...”

현재 모친은 가게에도 얼굴을 내밀지 않고, 자택에도 없다.

“아마 차 안에서 생활하고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마마와 만나면 항상 신발이 같았어요. 가게에 오기 전에 목욕하고, 가게가 끝난 뒤에 한번 더 목욕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신발이 같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죠.”(호스티스)

7월 29일에 모친과 만났던 마츠리에서, 모친은 카미사쿠 피고로부터 직접 건네받았던 편지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경찰의 신세를 지는 일 같은 것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테니까, 엄마도 걱정하지 말아줘. 당분간만 참으면 되니까, 견뎌줘」라고 써 있었습니다. ‘그렇게 들어서 믿어버린거야’ 라고 마마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호스티스)

한 편, 사건 이후 이혼하고, 다른 가정을 가진 부친은 본지의 직격에, ‘돌아가 주세요’ 라고 반복하며, 현관문을 닫았다.

주범 A와 감금현장 집의 C는...

A는 현재도 복역 중이지만, 08년 쯤 출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하는 법조관계자의 말.

“A는 관서지방의 보호사와 양자연조하고, 완전히 다른 호적에 들어가는 수속을 밟았습니다. 여동생도 있고, 가족을 귀감으로 하는 셈이죠.”

감금장소였던 C의 자택은 사건 이후 헐리고, 지금은 다른 주거가 세워져 있다.

“벌써 15년도 더 지났네요. 회사에서 돌아왔더니 로프가 쳐져있어서, 사건을 들었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죠. C군의 양친은 사건 후 당분간 머물러 있었는데, 그 후에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양친이 이사했던 곳은 사이타마 현 내에 있다. 부친이 4~5년 전까지 근무하고 있던 생화점 사장은 이런 말을 한다. “사생활은 일체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사건의 일은 몰랐죠. 술만 마시는 것 같은 인상이었고.”

현재 양친이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하자, 부친으로 생각되는 남자가 인터폰 너머에서 “이야기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돌아가 주세요.”라고 말할 뿐이었다.

C는 출소 후, 한 때 양친의 곁에서 몸을 의지하고 있었던 것 같지만, 그 후 사이타마 현 내 1K의 목조 아파트에서 살았다. 하지만 거기서도 1년 정도 전에 퇴거했다.

“직업은 운송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독신이었습니다. 4만 몇천엔의 집세를 매월 꼬박꼬박 가지고 왔었고, 보통이었습니다. 아파트를 나갈 때는, 일을 그만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아파트 주인)

이번 카미사쿠 피고의 사건을 C는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런 친구에게는 ‘아무것도 대답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소년 D의 모친이 본지에 말했다.

D는 청소일을 하는 모친과 살고 있다. “그 사건은 어째서 막을 수 없었던 걸까, 지금도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출소하고 나서 일은 하고 있지 않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게 되는 병에 걸려있어, 곧 입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만, 돈이 없어서 집에서 계속 자고 있습니다. 저녁이 되면 가까운 상점가에 늦은 식사를 사러가서, 자신의 방에 가지고 돌아와 먹고 있습니다.”

누나의 가족에게만은 마음을 열고 있는 것 같지만, 모친과 D가 얼굴을 마주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한다. 다만, 최근에는 ‘일요대공’을 하기도.

“에어컨을 설치해 준다거나, 100엔샵에서 카펫을 사가지고 와서 깔아준다거나 합니다.”(모친)

사건 후에는 (범인의) 부모들 사이에서 이런 걸 했었던 적이 있다.

“우란분(음력 7월 15일에 죽은 이의 혼을 제사지내는 불사) 때에 잠시 부모들이 모여서, 사건의 집에 꽃을 바치러 갔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연락하고 싶지 않겠죠.”

모친은, “뭘 사러나간 아들과 마주치면 안 되기 때문에”라며, 언제나와 다른 길을 숨듯이 걸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서는, 죽을 때까지 아들의 뒷바라지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체념이 전해져 왔다.

A양이 유기되어 있던, 코토구 와카스의 현장에는 물류센터의 건물이 들어서 있어, 빈 땅이었던 당시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당시에는 황량한 곳이었죠. 저런 곳에 버려졌다니, 불쌍하네요. 정말 비참한 사건이었어요.”(현장 근처 시멘트 회사의 운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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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역, 국가 던지 간에 이런 쓰레기 같은 놈들은 항상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무서운것은 사람들의 무관심과 불의를 봐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일겁니다.

법은 최소한의 장치일뿐 자신의 몸은 자신이 지킬 수 밖에 없다는 것....

이 사건을 보면서 피해자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채 눈뜨고 지켜 볼수 밖에 없는
제 자신과 지금의 현실이 용서가 되지 않는군요. 할수만 있다면 범인을 납치해서
똑같이 해주고 싶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2-11-25 : 성진국의 실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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