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공습이 계획적인 기습이었다는 증거 발견
- 출처
1941년12월 8일의 일·미 개전을 둘러싼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최후 통첩의 수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미국에 「비열한 기습」이라고 비난 당한 문제에 관해, 일본 본국에서 대사관에 최후 통첩의 수정을 지시하는 전보가 반나절 이상 (일부러) 늦게 발신되고 있던 것을 증명하는 감청 기록이 미국에서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분명하지 않았던 발신 시각이 판명되어,「 주 워싱턴 일본대사관의 직무 태만에 의한 지연」이라는 지금까지의 정설에 파문을 일으킬 듯하다.
http://www.nikkei.com/article/DGXDZO49302190X01C12A2BC8001/
http://www.gesomoon.com/Ver2/board/view.php?tableName=transUser&bIdx=15485
미국의 1923년 일본 관동 대지진 피해를 위한 모금 운동
그로부터 17년 후 진주만 공습
1941년12월 8일의 일·미 개전을 둘러싼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최후 통첩의 수정이 늦어지는 바람에 미국에 「비열한 기습」이라고 비난 당한 문제에 관해, 일본 본국에서 대사관에 최후 통첩의 수정을 지시하는 전보가 반나절 이상 (일부러) 늦게 발신되고 있던 것을 증명하는 감청 기록이 미국에서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분명하지 않았던 발신 시각이 판명되어,「 주 워싱턴 일본대사관의 직무 태만에 의한 지연」이라는 지금까지의 정설에 파문을 일으킬 듯하다.
http://www.nikkei.com/article/DGXDZO49302190X01C12A2BC8001/
http://www.gesomoon.com/Ver2/board/view.php?tableName=transUser&bIdx=15485
미국의 1923년 일본 관동 대지진 피해를 위한 모금 운동
그로부터 17년 후 진주만 공습